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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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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나카논 SS

DOZI 2025.04.13 16:58 read.145 /

슈나이젤 엘 브리타니아와 카논 말디니 사이의 관계는 명명백백했으므로, 모두가 의심할 것이 없었으나, 놀라운 사실은 그 둘 사이에서는 아무런 관계도 없었다는 것이다. 슈나이젤이 채찍을 든 이후로 그 망나니 같았던 카논이 얌전하게 굴게 된 것에는 모두가 모종의 이유가 있겠거니 싶었지만, 두 사람에는 오직 채찍만 오갔을 뿐이었다.

슈나이젤은 저에게 다소곳하게 구는 카논이 불편한 듯, 불편하지 않은 듯, 미묘한 온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사흘에 한 번 크게 사고를 쳤을 카논이 얌전하게 굴게 된 것, 그리고 그 결정적인 사건에는 슈나이젤의 채찍이 크게 영향을 끼쳤다는 것은 슈나이젤 스스로도 잘 알고 있었다.

맞는 것을 좋아하는 마조히스트. 슈나이젤은 카논을 그렇게 정의하고 싶었다. 그렇게 정의함으로써 카논을 자신의 안중에서 치워버리는 것을 원했지만, 이상하게도 그것은 쉽지 않았다. 카논은 이론상의 마조히스트들처럼 채찍이나 그와 비슷한 가학적인 폭력을 원하는 행동을 보이지 않았으며, 그저 얌전해질 뿐이었다. 그렇다고 슈나이젤을 보면 피하거나, 혹은 적극적으로 대쉬하는 행동 또한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얌전해진 카논 말디니. 슈나이젤 엘 브리타니아는 인정하기로 했다. 얌전해진 그는 불편하기만 했다.

 

‘무슨 꿍꿍이일까.’

 

브리타니아 황실 안에서도 우수한 인물로 손꼽히는 슈나이젤을 상대로 이렇게 불안하게 만드는 카논 말디니는 쉽지 않은 상대임이 분명했다.

슈나이젤의 뒤에 있는 브리타니아 황실을 염두해서 아부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노골적이라서 대하기가 쉽다. 하지만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듯, 카논 말디니처럼 얌전하게, 그저 슈나이젤을 바라보기만 하며, 어떠한 액션도 취하지 않는 쪽은 피곤하다. 어떤 상을 줘야할지, 어떤 벌을 줘야할지, 고민하는 자체로도 스트레스였다.

슈나이젤은 한 달이 다 되어가도록 아무런 짓도 하지 않는 카논 말디니를 생각했다.

 

그리고 결단을 내리기로 한 그날 저녁. 슈나이젤 엘 브리타니아는 카논 말디니를 자신의 기숙사 방으로 불러냈다.

 

“부르셨습니까, 전하.”

“앉도록 하지, 말디니 군.”

 

카논 말디니는 평소라면 풀어헤치고 다녔을 교복도 단정하게 입은 채로, 슈나이젤의 앞에 정중하게 인사를 하며 나타났다. 슈나이젤이 홍차를 내리고 카논의 앞에 놓인 찻잔에 부어줄 때까지도, 카논은 말 한 마디도 하지 않고, 시선 한 번 마주치지 않은 채였다. 그것은 브리타니아 황족을 대할 때의 정석적인 예의이기도 했었다. 황족이 허락하기 전까지 시선을 마주하지 않으며, 함부로 입을 열지 않는 것. 귀족이라면 모름지기 배우는 몸가짐일 것이다.

여태까지의 카논 말디니라면 그런 귀족적인 태도를 지키지 않았음에도, 슈나이젤의 채찍으로 다스려진 카논은 늘 그래왔던 것마냥 슈나이젤 앞에서 예의범절의 교과서마냥 굴고 있었다.

 

“지난 번… 건 에 대해서 할 말이 있는데.”

“예, 전하.”

 

그 아무리 슈나이젤이라고 하더라도 채찍을 언급하는 것은 꽤 쉽지 않은 일이었다. 잠시 뜸을 들이는 슈나이젤의 망설임에도 카논은 그저 대답 한 번으로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이건 더 말하고 싶은 건지, 아니면 말하고 싶지 않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요즘은 얌전하게 지낸다더군.”

“네, 전하께 폐를 끼치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다행이야. 말디니 경도 걱정을 한시름 놓았다고 들었는데.”

“아버지의 걱정까지 해주시다니, 감사할 따름입니다.”

“…….”

 

받아치는 대답마다 너무나 정중한 대답이라, 슈나이젤은 본론으로 들어가도 왜인지 모르게 원하는 것을 얻을 수 없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뭐든지 척척 해내는 슈나이젤 답지 않은 불길한 예감이었다.

 

“혹시 이렇게 달라진 척 하고 다른 짓을 하는 건 아니겠지? 내가 지내는 동안, 학교의 품위를 무너뜨리는 짓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는걸.”

“물론입니다. 전하가 계시는 동안…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앞으로도?”

“이전과 같은 행동은 하지 않을 것입니다.”

 

흐음. 슈나이젤은 턱을 괸 채로 카논을 바라보았다. 카논은 차를 한 모금 마셨다. 황족이 주는 것을 마다 않고 받아들이는 것마저도 귀족적인 자세였다. 이렇게 잘 배운 귀족 자제의 변심에 대해서 슈나이젤은 좋게 받아들여야 하는지 생각에 빠졌다.

 

“대체 이유가 뭐야?”

“……네?”

“갑자기 이렇게 달라진 이유에 대해서 묻고 있다만. 그때의… 것으로 한 번에 달라질 리가 없다고 생각해, 말디니 군. 나는 말이야, 사람은 어떻게 해서든 변하지 않는다고 생각하거든.”

“…….”

“무슨 꿍꿍이가 있다고 생각해. 물론 말디니 군은 어리석은 사람이 아니니 나를 해하거나, 브리타니아 황실을 적으로 돌릴 짓을 하지 않을 거라고 믿고는 있지만.”

“…….”

“본론으로 들어가지. 무슨 속셈이야?”

 

슈나이젤 치고는 꽤나 노골적인 방법으로 카논에게 다가서는 수밖에 없었다. 카논은 자신에게 ‘속셈’을 묻는 슈나이젤의 모습에 당황한 듯 눈을 한 번 맞추고는 다시 내리깔았다. 

그, 저, 그, 그게. 그런 말들이 카논 말디니의 입안에서 맴돌다가 사라지면서 그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그냥 다물어버리고 말았다. 엉터리 같은 말들을 늘어놓기에는, 카논에게는 그마저의 용기도 없었다.

하지만 모처럼 슈나이젤의 방에 초대받아 들어와 ‘속셈’을 토로하는 자리에 온 것. 카논은 입을 열기로 결심했다.

 

“속셈이라면 속셈이고, 꿍꿍이라면 꿍꿍이가 있습니다.”

“그래, 솔직해서 좋아.”

“……전하를 좋아하니까요.”

 

떨어지는 말은 어딘가 현실감이 없어서, 카논은 자신이 한 말이 제대로 된 말인지 의심이 되었다. 턱을 괴고 있던 슈나이젤은 음, 하고 아무런 미동도 없었다. 그저 카논과 눈을 한 번 다시 맞추고, 이번엔 카논처럼 슈나이젤이 시선을 피했다.

좋아하니까요, 라고 말해놓고 나니 가슴이 쿵쾅거려서 견딜 수가 없었다. 어차피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카논은 한 번 말해본 것 정도는 괜찮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이제 더 이상의 슈나이젤 전하의 폐가 되는 일은 하지 않으면 되는 거야. 그냥, 지금처럼 평생 얌전히, 예의 바르게, 다소곳하게.

 

“나를 좋아하니까 바뀌었다, 라고 말하고 싶은 건가?”

“…….”

“대답을 해, 말디니 군.”

“……네, 전하.”

 

슈나이젤은 카논을 지그시 한 번 쳐다보았다. 모처럼의 눈맞춤에 카논은 그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 슈나이젤에게 좋아한다고 한 번 더 확인사살을 당한 카논은 ‘알겠어.’라고 말하는 슈나이젤의 반응에 가만히 받고 있던 그의 시선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무엇을 알았다는 것일까?

 

“말디니 군이 나를 좋아한다는 건, 황족에 대한 경애나 존경, 이런 것이겠지?”

“아뇨. 그런 것과… 다른 저급한 감정입니다.”

“저급하다?”

“네.”

“쉽지 않은 말이군.”

“……앞으로는 전하의 삶에 어떠한 누도 가지 않게 하겠으니, 저를 한 번만 믿어주세요.”

“‘믿어달라’? 뭘 믿으면 되는 걸까?”

“저는… 저는 전하를 좋아하고 나서 변했습니다. 그러니까, 변한 저를 그냥 믿어주세요.”

“…….”

 

카논은 자신의 감정을 ‘저급하다’는 것으로 정의내린 것을 조금 후회했다. 하지만 맞는 말이었다. 슈나이젤에게 갖고 있는 감정은 존경과 경애라는 말로는 다할 수 없는 추잡하고 더러운 사랑이었으니. 차마 브리타니아 황실의 제2황자이자 앞으로의 미래가 펼쳐질 슈나이젤에게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그저 할 수 있는 것은, 앞으로도 얌전히 살 테니 그런 자신에 대한 관심도 갖지 말고, 그렇게 살아갈 자신을 믿어달라고 호소하는 것 뿐.

 

“믿어주기만 하면 되는 건가.”

“…네. 그럼 전하께서 신경쓰이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

“이제 피곤하실 테니 그만 돌아가보겠습니다. 차는 잘 마셨습니다. 전하, 좋은 밤 되시길.”

 

카논은 그렇게 말하면서 정중한 인사와 함께 슈나이젤의 방 밖으로 나갔다.

홀로 남은 슈나이젤은 찻잔을 치우면서 곰곰히 생각에 빠졌다. 카논의 목소리는 계속해서 메아리쳐 슈나이젤의 안에서 울려퍼져 나갔다.

 

‘저는 전하를 좋아하고 나서 변했습니다.’

‘변한 저를 그냥 믿어주세요.’

 

사랑에 대해서 무지한 것도 아니다. 고백을 처음 받는 것도 아니다. 변했다고 주장하는 사람을 처음 보는 것도 아니다. 모두가 아닌데, 슈나이젤은 어째서 자신이 카논의 말을 그렇게 곱씹고 있는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믿어달라고만 하는 그 카논 말디니를 믿기만 하면 되는 걸까. 그저 얌전하게 변한 그를 이제 시야 밖으로 내쫓고 슈나이젤은 슈나이젤의 인생을 살면 되는 걸까. 슈나이젤이 그렇게 깊게 고민해본 것은 처음이었다.

그 이후로 카논 말디니는 얌전하게, 졸업할 때까지 슈나이젤의 시야에 들지 않으려고 부단히도 애를 썼다. 슈나이젤은 카논 말디니가 사고를 친다거나, 사건을 일으킨다거나, 그런 이야기를 하나도 듣지 않았지만 매 순간, 어쩌다 마주칠 순간이 생긴다면 카논 말디니를 바라보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알 수 없었으며, 왜 그런지도 알고 싶지도 않았다.

카논 말디니, 카논 말디니, 카논 말디니!

슈나이젤은 자신이 카논 말디니를 그렇게 신경 쓰는 것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것이 사랑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