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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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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르슈가 우울해한다. 이유는 터무니 없다. 스자나나 동인지가 이번 이벤트에서도 한 권도 나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스자나나는 를르슈가 파고 있는 커플링으로, 스자쿠x나나리 커플링이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남자친구지만, 를르슈는 남자친구로서의 스자쿠를 우선시하는 것보다 스자나나 커플링 속의 스자쿠를 약간 좋아하는 감이 없잖아 있다.(스자쿠는 부정하고 있지만)

이벤트 하루 전날, 뒤늦게 당일 마감이라도 치는 사람이 있을까 싶어서 를르슈는 X(구 트위터)를 이 잡듯이 뒤졌지만 스자나나 커플링은 총 2부스 뿐이었는데, 그 2부스 마저도 요즘 먹고 살기 힘들다는 이유로 현생에 집중해서 펑크라는 소식을 접해버리고 만 것이었다. 를르슈는 마우스를 집어던질 기세로 휠을 굴렸다.

 

아, 병원에 가서 링겔 맞는 한이 있더라도 그냥 이벤트 신청 할 걸!!!!

내가 스자나나 가오를, 위상을, 품격을 살려줬어야 했는데!!!

 

코드기어스 이벤트는 연에 1~2회씩 열렸지만, 스자나나 부스는 가뭄에 콩 나듯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중 한 부스는 늘 를르슈가 담당하고 있었지만, 이번 이벤트 만큼은 를르슈 인생에서도 중요한 일이 있었기 때문에 참여할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남은 동지들을 믿고 있었는데. 그 동지들이 전부 다 를르슈의 기대를 져버리고 펑크를 낸 것이다.

 

이로써 올해 나올 스자나나는 전부 끝이 났다…

아무도 스자나나를 내지 않아… 

스자나나는… 

아무도 없어… 

내가 스자쿠와의 결혼을 앞둔 몸만 아니었다면 이벤트에 참여해서 스자나나 동인지를 냈을 텐데…!!

 

를르슈는 이마를 퍽퍽 내리치면서 그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단전으로부터 올라오는 깊은 한숨의 어두운 기운이 꽉 닫힌 서재 밖으로 흘러나갔다. 멀쩡히 텔레비전을 잘 보고 있던 를르슈의 남자친구이자 예비 신랑인 쿠루루기 스자쿠에게도 닿았다.

스자쿠는 ‘흐어어—’하는 소리가 들리는 서재 앞에서 문을 똑똑 두드렸다. 를르슈, 무슨 일 있어? 어지간한 일로 흔들리지 않는 를르슈가 저런 앓는 소리를 내는 것을 보면 보통 스자나나 때문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스자쿠는 그래도 예의상 그에게 한 번 에둘러 물었다.

 

“스자나나가….”

“아, 응….”

 

를르슈는 책상에 머리를 박다시피 하며 중얼거렸다.

—그러니까 스자나나가 이 세상에 한 권도 태어나지 않는 이벤트가 존재한다는게 말이 될까? 난 이해를 할 수 없어. 받아 들일 수 없어. 용서가 되지 않아. 스자나나가… 스자나나는 왜 아무도 하지 않는거지? 스자나나를… 해야 하는 거 아니냐고. 하, 스자쿠와 나나리 서사가 얼마나 기깔나는데 왜 아무도 못 알아주는 거지… 그런데도 세상은 돌아가고 이벤트는 진행된다는게 믿기지 않아.

를르슈의 장황한 설명에 스자쿠는 어색하게 볼을 긁적이며 말했다.

 

“내일 이벤트 이야기 하는 거야?”

“그래… 내일 이벤트. 아무도, 아무도 스자나나를 해주지 않아.”

“음… 내가 해줄까?”

 

를르슈는 그 말에 눈을 부릅떴다. 시계를 살폈다. 지금 시각 오후 10시 45분. 스자쿠의 신들린 손이라면 인쇄소가 여는 아침 7시까지 마감할 수 있는 분량은 어느 정도일까. 스자쿠는 평소에 만화를 그리지 않는 천재 일러스트레이터이다보니 4컷 만화를 그리는 것이 고작… 아니, 4컷 만화 마저도 그에게는 어려울 지도 모른다. 차라리 스자쿠가 표지를 그려주고 를르슈가 미친척 썰북을 낸다고 해도… 아니, 그렇게 되면 아침 7시까지는 늦는다…! 를르슈는 느려터진 자신의 손을 잘라내고 싶었다.

모처럼 스자쿠가 스자나나를 해준다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아서 를르슈는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내가 해주는 스자나나는 싫어, 를르슈?”

“아니, 아니, 오히려 좋아. 그건 진짜 좋아. 너 나랑 사귀고 나서부터는 스자나나 한 번도 안 그려줬잖아.”

“당연하지, 난 너랑 사귀는데 어떻게 스자나나를 그리겠어?”

“그런 건 이제 됐어. 아무튼 그려주는 거잖아! 난 이 기회를 어떻게 놓칠 수가 없어, 스자쿠, 그러니까…!”

“응응, 천천히 생각해.”

“아침 7시가 데드라인인데 어떻게 천천히를 생각하냐! 너 어디까지 가능해, 수위는? R18도 가능해?!”

“아, 미안. 그건 안 돼.”

“젠장, 칼 같군!”

“그냥 하지 말까? 지금부터 를르슈가 혼자 해서 부스를 양도 받아 들어가는 거로 해도 되잖아?”

“안 돼! 늦어!”

 

를르슈는 급하게 자신의 스자나나썰창고 X계정을 살펴보면서 어디 쓸만한 게 없나 뒤지기 시작했다. 욕망에 가득한 그 계정에 R18 썰들을 제외하면 남는 것은 스자쿠와 나나리가 바다에 가서 눈가리고 수박깨기를 하며 수박을 나눠먹는다는 아방달달폭닥포근한 내용 뿐이었다. 하지만 지금 계절감에 맞지 않지만…! 뭐 어때 이제부터 여름이다!!! 알게 뭐야!!!

그리하여 를르슈는 급하게 스자쿠에게 설명했다.

 

“그러니까, 스자쿠랑 나나리가 같이 바다에 가는 거야.”

“를르슈는?”

“나는 필요 없어! 단 둘이 가는 거야. 그래서 수박 깨기를 해서 수박을 먹는 거야.”

“그걸 굳이 바다에서 하는 이유는 뭐야? 모래 안 튀어?”

“그런 건 논외다! 그리고 스자나나가 불꽃놀이도 하는 거도 그려줘!”

“흠… 흑백이야, 컬러야?”

“어, 어느 쪽이 더 빨라?”

“난 둘 다 잘해.”

 

타고날 때부터 천재그림러. 카미神작화. 神성급 일러스트레이터로 유명한 스자쿠의 천연 재능충 발언은 재수없기 그지 없었으나 를르슈는 우선 입을 다물고 스자쿠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게 그에게 4컷 만화를 그려줄 수 있냐고 했다.

 

“그 내용이면 4컷 만화로 가능하지. 지금부터 그릴게. 그래도 대사는 를르슈가 써줘.”

“응. 우선 콘티부터….”

“아니, 선화부터 바로 들어갈게.”

“?!”

“시간 별로 없다며?”

 

그리고 스자쿠는 시간이 별로 없다는 이유로 를르슈를 옆에 앉혀두고서 선화를 그리기 시작했다. 러프도 그리지 않고 바로 선부터 들어가는 그의 솜씨에 를르슈는 잠시 넋을 잃었다. 스자쿠는 ‘이게 맞아, 를르슈?’라며 자신의 허벅지에 앉은 를르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스자나나를 선보였다. 스자쿠가 자신의 몸을 떡처럼 주무르든 말든, 를르슈는 스자쿠가 그리는 스자나나는 너무 달고 맛있었다.

를르슈가 스자쿠랑 사귀지 않았더라면 이 스자나나는 계속 되었겠지. 하지만 를르슈가 스자쿠랑 사귀는 바람에 이 스자나나들은 세상에 선보일 수 없게되고, 그나마 결혼을 해서 를르슈가 우울해하니까 스자쿠가 선심 쓰듯이 그려주는 것이지만…! 그래도 좋아!! 난 나를 팔아서라도 스자나나를 하는 게 좋아!!!

를르슈는 훌쩍훌쩍 울면서 스자쿠의 액정 타블렛에 묻은 눈물을 닦아내며 미안하다고 했다.

 

“스자나나가 그렇게 좋아?”

“응, 좋아….”

“나는 얼마나 좋아?”

“스자나나 해주는 만큼 좋아….”

“안 해주면 싫어?”

“그래도 좋아.”

“후, 나 이거 다 그리면 섹스할래?”

“싫어… 인쇄소 갔다가 행사장 들러서 이거 배포할 거야.”

“그럼 행사 끝나고 오랜만에 호텔 갈까?”

“싫어… 뒤풀이 갈 거야.”

“……스자나나 하는 사람들 다 펑크라며.”

“너랑 뒤풀이 갈 거야.”

 

뒤풀이라는 이름으로 스자루루하는 사람들의 욕을 속사포처럼 할 를르슈를 생각하면 스자쿠는 그래도 그가 귀엽기 그지 없었다. 그래, 니가 스자루루 싫어해도 세상은 물론, 너도 스자루루 하고 있는데 정말 를르슈는 귀엽구나…. 스자쿠는 대충 명암을 넣어주며 를르슈한테 대사를 입력해달라고 했다. 평소라면 ‘좋아해’라는 말도 제정신으로 못하는 를르슈가 달달한 대사들을 집어넣었다.

 

“‘스자쿠 씨랑 함께라면 어디든 좋네요.’ 라고 적어.”

“으응, 응….”

“‘나도 너와 함께라면 어디든 즐겁네, 나나리.’ 이 쯤에 적어. 그래, 하트도 그려주라, 스자쿠.”

“……응.”

“그리고 불꽃놀이 할때는 살짝 약간 은근히 룽한 느낌으로….”

“안 돼.”

“제발 부탁이야, 스자쿠.”

“싫어.”

“부탁드립니다…!”

“존댓말 해도 안 돼! 그리고 불꽃놀이 하는데 살짝 약간 은근히 룽한 느낌이 뭔데!”

“네가 유카타 입고 나와서 나랑 같이 솜사탕 먹으면서 불꽃놀이 봤을 때의 느낌이라고 해야하나, 아무튼 그런 게 있어. 스자쿠, 제발, 부탁, 부탁할게. 제발 스자나나를 구해주세요…!”

“싫어!”

 

그리하여 스자쿠는 4컷 만화 A5 4p를 완성했다. 를르슈는 이 만화를 무료배포할 것이라고 했다. 몇장 뽑을 거야? 스자쿠는 평소 를르슈가 파는 스자나나의 규모를 생각하면 한 20부 정도겠거니 싶었다. 그러나 를르슈는 대답 대신에 웃기만 할 뿐이었다.

를르슈는 총 300부를 뽑았다. 전부 다 배포해서 전국에 스자나나의 위엄을 떨칠 생각이었다. 만약 배포하다가도 남는다고 하면 남은 배포본들을 를르슈 서재의 벽지로 다 발라버릴 생각이었다. 남는다면 침실에도 발라주마. 아니, 거실도 스자쿠의 스자나나로… ! 이렇게 좋을 수가 있을까…! 

그리고 인쇄소에서 300부의 스자나나를 뽑은 를르슈는 행사장으로 향했다. 양도받은 부스러가 미안해하며 를르슈에게 간식을 챙겨주었다. 

 

“미안해요, L.L.님. 원래대로라면 제가 냈어야 했을 텐데.”

“아닙니다. 그래도 부스를 빛낼 수 있는 기회가 생겼으니 저도 힘냈습니다. 아, 그리고. 이거 배포본이에요. 썰 원본은 제 거인데 예랑이가 그려줬어요.”

“헐, 진짜요?! 와, 그림 진짜 장난 아니에요! 아, 이거 그거잖아요. L.L.님 꾸금계에 있는 바닷가에 가서 신혼여행 즐기는 스자나나!”

“네, 맞아요! 기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스자쿠는 아무리 그래도 스자나나 부스에 스자쿠가 앉아있는 것은 무리라고 하면서 오지 않았다. 를르슈는 300부의 배포본을 올려두었다. 이벤트가 시작되고, 스자나나를 찾아주는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갑자기 어느 순간부터 를르슈의 부스에는 사람이 많아지더니, 어떤 사람은 ‘배포용, 보관용, 실사용’으로 세 부 집어가도 되냐고 물어보았다. 를르슈는 혹시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X에 스자나나가 흥하는 지 싶어서 살펴보고 싶었지만, 갑자기 물밀듯이 들어와서 300부의 배포본이 모두 배포 종료가 되고 나서야 겨우 휴대폰을 켤 수 있었다.

 

그러자 그곳엔…. 

 

To be Continu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