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르슈가 나나리가 아닌 다른 사람과 키스를 하는 것은 처음 보았다. 심지어 입술과 입술이 살짝 닿았고, 를르슈의 품에 살짝 끌어안긴 여자는 뭔가 부끄럽네에, 하고 말끝을 늘리면서 다시 한 번 조르는 듯 고개를 치켜들었다. 그것을 몰래 훔쳐보던 스자쿠는 를르슈가 그 여자를 빨리 밀어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생각은 거의 기도에 가까웠다. 그게 닿았는지, 를르슈는 그녀를 안고 있던 팔을 풀었다. “이제 늦었으니까, 돌아가는 게 좋겠어. 데려다 줄게.” 를르슈가 쉽게 짓는 그 왕자님 같은 얼굴을 하고서 말했다. 여자는 민망한지 치켜든 고개를 내리고서 를르슈와 손을 잡고서 저녁 가로등이 총총한 골목을 걷기 시작했다. 를르슈는 그 손을 떼어내지도 않았다. 그것을 모두 보고 있던 스자쿠는 배신 당했다는 생각 뿐이었다.
를르슈가 날 배신했어. 집으로 돌아가는 길 내내 스자쿠는 계속 그 생각만 했다.
* * *
스자쿠는 열두 살 초등학생이었고, 를르슈는 스무 살 대학생이었다. 두 사람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시간이 존재했고, 스자쿠는 그것이 늘 불만스러웠다. 스자쿠도 금방 어른이 될 거야, 라고 를르슈는 별 거 아니라고 말했지만 그런 위로로 스자쿠의 불만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그리고 그 불만은 보란듯이 불안으로, 현실로 드러났다.
어제, 옆집에 사는 를르슈가 아직 돌아오지 않았다는 걸 깨달은 스자쿠는 그를 마중나갈 겸 전철역을 향해 걷고 있었다. 를르슈는 의외로 덤벙대고, 또 부주의하니까 내가 지켜주지 않으면. 어린 기사의 마음으로 나갔던 것이었다. 그런데 를르슈는 옆에 여자를 끼고서 어두컴컴한 담벼락 밑에서 키스를 했다. 그 여자는 스자쿠가 모르는 여자였다. 를르슈가 곧잘 데리고 왔던 친구들이랑 다른 여자였고, 아마 대학교에서 사귄 여자임에 틀림없었다.
스자쿠와 를르슈 사이에는 채워지지 못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것이 피부로 와닿는 사건이었다. 열두 살과 스무 살이라는 차이는 영원히 좁힐 수 없을 것이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보지 못하는 곳에서 더 많은 배신을 저질렀을 지도 모른다. 나나리와 스자쿠에게만 베풀어주는 그런 다정함을 다른 사람에게 보여줬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스자쿠는 속이 아렸다.
너무 슬프면 눈물조차 나오지 않는구나. 너무 화나면 눈앞이 빨개지는구나. 스자쿠는 두 주먹을 꽉 쥐었다. 더 이상 를르슈를 빼앗기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스자쿠가 를르슈를 붙잡을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그것은 이미 존재하는 나이 차이 만큼의 한계가 있었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아무것도 못한 채로? 스자쿠는 어느새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를르슈를 떠올렸다.
그래도 를르슈는 내 거야. 누구도 가질 수 없어. 오직 나만이.
* * *
를르슈는 요즘 들어 자신의 집에 찾아오지 않는 스자쿠가 걱정이 되었다. 나나리의 말로는 ‘요즘 검도에 한창이신가봐요.’라고는 했지만, 를르슈를 늘 쫓아다니는 커다란 초록색 눈동자가 보이지 않으니 처음에는 섭섭하다가, 나중에는 걱정이 되었다. 또래 친구가 한창 좋을 때이긴 하지만, 어렸을 때부터 믿고 의지해온 를르슈는 우선순위가 밀리는 것이 썩 달갑지는 않았다.
사실 달갑지 않은 정도가 아니다. 그건 정말 싫었다. 스자쿠의 세상이 친구들로 인해 더 넓어지고, 더 밝아질 수 있다면 좋은 일인데도, 그것이 를르슈가 하는 게 아니라면 싫었다. 를르슈는 어린 스자쿠를 독점하고 싶어지는 자신의 마음이 옳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자중해야 한다고 생각은 한다. 반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오랫동안 얼굴을 비추지 않는 건 너무하지 않나?
스자쿠는 벌써 일주일째 람페르지 집안에 발을 들이지 않고 있었다.
검도를 그렇게 좋아했나? 를르슈는 우울해지는 마음을 달랠 겸, 휴대폰을 켜서 스자쿠에게 메시지를 보낼 생각이었다. 요즘 잘 지내고 있어?, 라고 보내려고 할 때 사귄지 딱 한 달이 된 여자친구로부터 연락이 왔다. 내일 데이트는 어디서 할까, 라고 들뜬 캐릭터 이모티콘과 함께 온 메시지를 미리보기로 확인하고, 를르슈는 피곤해진 나머지 휴대폰의 메시지 어플을 종료해버렸다.
대학교에 들어가고, 여자친구를 사귄 것은 순전히 스자쿠에게 계속 쏟아지는 관심을 조금 분산시킬 생각이었다. 스자쿠에게 품게 되는 불온한 마음을 덜어내기 위해서 여자친구를 이용했다는 것은 죄책감이 들었다. 하지만 요즘 들어서 귀찮게 달라붙는 그녀는 피곤했다. 며칠 전부터는 키스를 아무데서나 졸라서 부끄러울 지경이었다. 그때 딱 한 번 몰아부치는 분위기 속에서 담벼락 밑 키스를 했던 것이 실수였다.
빨리 헤어지고 싶다. 를르슈가 울적해지던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알림 소리가 다른 것을 보면 나나리였다. 오늘 친구 아냐의 집에서 자고 갈 예정이라는 메시지였다. 나나리도 없고, 스자쿠도 없고. 힐링을 위한 시간을 가질 수 없게 된 를르슈는 그래도 나나리에게는 내색하지 않으려고 ‘재미있게 놀아’라고 답장했다. 스자쿠가 선물해준 장난스러운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까지 보내주었다.
오늘은 그럼 혼자서 저녁을 먹어야 하나…? 를르슈는 창문 밖의 옆집을 바라보았다. 불이 켜져있는 것을 보아서 스자쿠가 돌아온 모양이었다. 지금은 일하시는 아주머니도 퇴근할 시간일 것이고, 스자쿠의 부모님은 매일 일 때문에 늦게 들어오시니, 스자쿠는 혼자 있을 것 이다. 스자쿠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에는 곧잘 람페르지 집안에 맡겨지기도 했는데…. 그때가 퍽 그리워져서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스자쿠가 보고 싶다. 그 사이에 어떻게 또 컸을까. 왜 이렇게 멀어지게 된 걸까.
스자쿠를 생각하면 여자친구를 그리워하는 것보다 더 슬퍼졌다.
* * *
[를르슈, 피자 먹을래?]
갑자기 온 스자쿠의 메시지에 를르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다짜고짜 피자 먹을래, 라는 말로 오는 메시지는 바로 다음 건의 메시지로 이어졌다.
[두 판이나 시켰어.]
[원 플러스 원 데이였대.]
[를르슈가 같이 와서 먹어줘.]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또 몸에 좋지 않은 패스트 푸드를 먹는다며 잔소리를 해줄까 하다가, 오랜만에 저에게 메시지 겸 SOS를 보내는 스자쿠의 모습에 알겠다고 답장했다. 지금 집으로 가면 돼? 그러자 스자쿠가 검은 고양이 이모티콘을 보냈다. OK라는 뜻이었다.
를르슈가 쿠루루기 집안 문을 두드리면, 스자쿠가 문을 열고 나왔다. 피자를 한 조각 들고서 나온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가 황당한 표정으로 인사했다.
“스자쿠, 오랜만인데 꼴이 그게 뭐야?”
“피자 먹고 있는데 문도 열어야 하니까 어쩔 수 없었어. 를르슈, 빨리 들어와. 에어컨 틀었어.”
“벌써 에어컨을 틀어?”
“난 덥단 말이야.”
를르슈는 자기 방에서 피자를 먹고 있었다고 말하는 스자쿠를 따라 스자쿠의 방으로 들어갔다. 고등학생이 될 때까지 넉넉하게 쓸 수 있도록 아직 초등학생인 스자쿠의 체구에 맞지 않는 큰 침대와 큰 책상, 큰 옷장 같은 것들이 놓여진 곳이었다. 그런데도 스자쿠의 취향에 맞게 하얀 고양이가 가득한 접이식 테이블이 한 가운데에 놓여져 있었다. 그 위에서 피자 두 판과 콜라를 한 가득 늘어놓고서 먹고 있던 모양이었다.
“거실에서 먹어도 되잖아. 여긴 너무 좁잖아?”
“그래도 되긴 하는데, 너무 혼자서 먹는 느낌이라 싫어. 이렇게 좁은 게 좋아.”
“그럼 우리집에 오지 그랬어?”
“그건… 싫어.”
스자쿠는 피자 끄트머리를 한입에 욱여넣으면서 아무튼 피자 먹자, 라고 말을 돌렸다. ‘싫다’라는 말을 들으니 를르슈는 순간 눈앞이 캄캄해졌다. 스자쿠가 언젠가 자신과 멀어질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은 했지만, 이렇게 빨리 올 줄은 몰랐다. 를르슈의 집에 오는 것도 싫어하다니. 를르슈는 조금 침울해진 기분을 감추면서 손을 씻고 오겠다고 했다. 그럼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이며 다녀오라고 했다.
화장실에서 손을 씻고 스자쿠의 집안을 살폈다. 새로 걸린 상장이나 트로피는 없었다. 스자쿠가 나가는 크고 작은 스포츠 대회는 람페르지 집안 사람들도 나가서 응원하기 때문에 모를 리가 없었다. 다만 확인하고 싶었을 뿐이었다. 혹시, 스자쿠가 자신에게 비밀로 무언가를 하고 있지는 않은가. 를르슈는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면서 스자쿠의 방으로 다시 돌아갔다.
피자를 먹으면서 스자쿠의 눈치를 살피고, 를르슈는 조심스럽게 요즘의 이야기를 꺼냈다.
“스자쿠, 요즘 왜 우리집에 안 와? 나나리가 외로워 해.”
“나나리 안 본지도 꽤 오래 되었네, 그러고 보니까. 근데 그래봤자 일주일 정도 밖에 지나지 않았잖아?”
“일주일이나 된 거라고. 그리고… 스자쿠를 못 보면 나도 외롭고.”
“거짓말 하지 마. 를르슈 여자친구도 있으면서.”
스자쿠는 피자 한 조각을 덜어내서 먹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스자쿠에게 여자친구가 있다는 말은 한 번도 한 적이 없었고, 그런 기색조차 내비친 적이 없었다. 그런데도 스자쿠는 어디서 그런 이야기를 안 걸까? 나나리 조차 모르고 있는 그 여자친구를.
“나 다 봤어. 를르슈, 여자친구랑 키스했잖아.”
“…언제 본 거야?”
“를르슈가 하도 안 와서 데리러 가다가 봤어. 뭐, 잘 어울리던데?”
“…….”
“를르슈도 어른이구나. 어른이라서 여자친구도 있고, 외롭지도 않을 거잖아. 거짓말쟁이.”
스자쿠는 잔뜩 상처받은 얼굴을 하고서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피자를 우적우적 씹어먹는 모습은 심통이 난 거 같았다.
“여자친구 많이 좋아해? 그래서 키스했어?”
“…스자쿠한테 들려줄 이야기는 아니야.”
“왜? 내가 어리니까? 나랑 친구라면서 왜 이런 이야기 안 해? 여자친구 이야기 하는 거 싫어?”
스자쿠의 쏟아내듯 하는 대화에 를르슈는 시선을 마주한 채로 굳어버렸다. 스자쿠의 성이 난 초록색 눈동자는 잔뜩 벌어져 있었고, 그 시선 끝에 맺힌 자신의 모습은 얼빠진 어른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그렇구나, 스자쿠가 봤구나. 그래서 우리집에 오지 않았던 거야. 못 보여줄 꼴을 보였다는 것에 스스로 한심하게 느껴져서 를르슈는 고개를 돌려버렸다.
스자쿠는 한 조각을 또 해치우고, 그런 를르슈에게 씨익 웃어보이면서 말했다.
“근데 나도 그렇게 어리진 않아. 있잖아, 를르슈. 섹스 해봤어?”
“…뭐?”
“나는 해봤거든, 섹스.”
다음편은,,,, R18 도전~
이게~ 내 도전인지~ 스자쿠의 도전인지,,,
| 공지 | <부활의 를르슈> 스포일러 있는 글은 * | 2019.05.12 |
| 390 | 쇼타 스자쿠의 도전 下 | 2025.06.22 |
| 389 | 츤데레를 좋아하시나요? | 2025.06.17 |
| 388 | 쓸모없는 메이드 허무슈와 상냥한 나이트 오브 세븐 | 2025.06.15 |
| 387 | 욕구불만 유부녀(아님)를 달래주는 20대 청년 | 2025.06.12 |
| 386 | 욕구불만 유부녀(아님)의 섹스어필 공격에 당하는 20대 청년 | 2025.06.12 |
| > | 쇼타 스자쿠의 도전 上 | 2025.06.10 |
| 384 | 컨트보이 를르슈 | 2025.06.09 |
| 383 | ㅍㄹㅊㅇ 절정하는 오메가버스 스자루루 | 2025.06.09 |
| 382 | 줄리어스 대리로 간 를르슈 下 | 2025.05.23 |
| 381 | 스자나나 하는 를르슈와 그의 예랑이 스자쿠 | 2025.05.1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