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루루기 스자쿠는 집을 나와서 어느 한 시골 마을에 정착하고 있었다. 시골 마을이라고 해도 시내에는 제법 큰 마트가 있었는데, 스자쿠는 그곳에서 배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시골이다보니 어르신들이 장을 보더라도 집까지 끌고 가는 방법이 시원찮던 찰나에, 23살 스자쿠의 배달은 속전속결로 모든 것을 해결했다.
처음에는 명문가를 져버리고 나온 풍운아로 사람들은 스자쿠가 온실 속 화초마냥 나약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누구에게나 웃으면서 다정하게 대해주고, 배달하는 집집마다 안부를 물어봐주는 그 상냥함에 이끌려 이제 이 마을에서 스자쿠의 배달은 누구나 기다리게 되었다. 가끔 어르신들은 스자쿠에게 “자네만 괜찮다면 내 딸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라는 말을 하곤 했는데, 스자쿠는 겨우 웃으면서 넘어갈 뿐이었다.
스자쿠에게는 다정한 어르신들의 딸을 소개 받는 것보다, 더 알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바로 두 달 전에 이사온 ‘람페르지 씨’였다. 람페르지 씨는 나흘에 한 번 마트에서 장을 보고, 생수와 함께 같이 그 물건들을 주변이 한적한 2층 단독주택인 자기 집으로 배달을 시켰다. 주문은 대체로 오후 1시 지정배달이었다.
스자쿠는 배달지 목록에 람페르지 씨의 이름이 있는 날이면 괜히 탈취제를 더 뿌리고, 차의 에어컨을 틀어서 최대한 뽀송하게 있으려고 노력했다. 람페르지 씨를 좋아해서… 그런 것이라고 하기에는 양심이 찔렸다. 스자쿠의 람페르지 씨에 대한 감정은 양심이 찔릴 수 밖에 없는 호의였다.
사실 스자쿠가 생각하기에는, 람페르지 씨는 딸이 있는 누군가의 남편임이 틀림없었다. 배달 왔습니다, 하고 처음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였다. 어린 여자아이가 갖고 놀 법한 요술봉 장난감들이 즐비한 집안이며, 그 아이가 그릴 법한 그림들이 덕지덕지 붙여진 벽, 그리고 무엇보다 문을 열었을 때 환하게 빛이 비치는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아름다웠던 람페르지 씨.
“람페르지 씨, 맞으신가요? OO마트에서 배달시키셨죠?”
“아아, 네. 맞습니다. 금방 왔네요.”
“네, 1시까지인데… 어라, 벌써 1시가 넘었네요. 죄송합니다.”
“뭐, 5분 정도면 세이프죠. 물건은 이쪽으로 부탁드려도 될까요?”
낮으면서도 부드러운 목소리와 정중한 말투는 이 시골마을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스자쿠는 원래 배달된 물건을 집안까지 넣어주는 서비스는 하지 않지만, 왜인지 람페르지 씨의 집안은 들어가보고 싶어져서 그렇게 해주었다. 무엇보다 몸이 가느다란 람페르지 씨는 무거운 생수 2L를 12개나 들 수 있을 것 같지도 않았다. 물건들을 금방 날라주고서 가보겠습니다, 하고 나와버렸다. 람페르지 씨는 안녕히 가세요, 하고 고개를 숙여 인사해주었다.
람페르지 씨, 미인이고, 예쁘고, 머리도 좋을 거고, 분명… 결혼 했겠지. 딸이 있는 거 같고. 브리타니아 사람… 일 테고. 왜 이런 시골에서 사는 걸까? 뭔가… 아내의 친정이 있었던 곳이라던가, 그런 거겠지? 뭔가 그런 사연이 있어보여. 아내는, 사별… 했으려나? 아니, 사별이라니 그런 실례되는…!
스자쿠는 진부하고 지리멸렬한 상상을 했다. 그리고 람페르지 씨가 시킬 배달을 기대하며, 벌써 두 달째 그에 대한 마음을 접지 못하고 있었다.
* * *
를르슈는 원래부터 남자가 좋았다. 여자를 좋아하려고 노력은 해봤지만 끊임없이 눈길이 가는 것은 남자 뿐이었다. 나이가 들면서 취향은 좀 더 확고해졌고, 체육계 남자의 동정을 애널로 빼앗는 전개의 게이 비디오가 를르슈의 최애 영상이었다. 체육계 남자의 그 탄탄한 몸 밑에 깔려서 애널이 거침없이 들쑤셔진다는 상상은 20대 초반부터 해온 망상 반찬 중에 하나였으나, 현재 를르슈의 나이 32세, 그럴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았다.
를르슈의 미모가 아마 문제일 것이다. 여자들은 물론 남자들도 꾀어낼 수 있는 미모이지만, 를르슈는 자신에게 고백해온 사람들 중에서 성에 차는 사람이 없었다. 대부분 를르슈를 자신의 트로피처럼 보여주고 싶어했으며, 를르슈를 사회적으로, 성적으로 깔아뭉개고 싶어하는 가학적인 성향이 있었던 것 같았다. 를르슈는 몇번의 연애 끝에 여자는 물론, 남자들도 사귀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런 결심을 세운지 얼마 되지 않아, 때마침 늦둥이 여동생 나나리의 건강이 좋지 않아져서 어느 외딴 시골 마을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외진 곳에 있어도 나나리의 건강을 잘 살펴주던 의사가 있는 병원은 가까웠고 무엇보다 스자쿠를 만나게 되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망상 반찬을 모두 끌어놓은 것 같은 남자였다. 체육계, 탄탄한 몸, 다정한 눈, 어딘가 동정일 것 같은 순진한 표정까지. ‘쿠루루기’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지만, 두 번째 만남 때에는 “쿠루루기라고 읽긴 하는데요, 스자쿠라고 불러주세요. 다들 그렇게 불러주고 계세요!”라고 말했을 때의 상쾌함이란 말할 것도 없었다.
그래서 를르슈는 오후 1시 15분, 스자쿠가 막 배달을 끝내고 돌아갔을 그 시간에 조심스럽게 문을 잠가놓은 자신의 방에서 애널을 풀면서 자위에 한창이었다. 애널 자위는 익숙했다. 숨겨놓은 딜도를 꺼내서 젤로 풀어둔 애널 뒷편에 꾸욱 눌러주었다. 딜도도 열심히 매만져서 체온 만큼 달아오르게 해놓고, 자지를 받듯이 딜도를 서서히 삼키는 애널이 벌어지는 걸 느꼈다.
흐으으… 으응… 스자쿠 씨이…. 스자쿠의 이름이 흐르는 건 벌써 한 달전부터의 일이었다. 를르슈는 그 청년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을 다시 복기했다.
쿠루루기 스자쿠, 23세, 어른들이 눈독 들이는 사위 후보 1위, 명문가 출신이지만 집안과 사이가 좋지 않음, 배달 일을 한 지는 거의 7개월째, 혼자 살고 있고… 섹스는 해봤을까? 그 얼굴과 그 몸매로 동정이긴 쉽지 않을 거 같은데. 동정이면 좋을 거 같고, 아니, 동정이 아니라도 좋아. 섹스해보고 싶어. 하, 스자쿠 씨한테서 나던 땀 냄새랑 희미한 탈취제 냄새도 좋았는데.
스자쿠가 자신을 의식한다는 것 정도는 알고 있지만, 를르슈는 동정에 처녀에 애널 자위만 좀 익숙할 뿐 모든 연애적 정사에는 능숙하지 못했다. 어떻게 꼬셔보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요, 스자쿠 씨…. 를르슈는 절정으로 치닫기 위해 딜도를 퍽퍽 쑤시던 손길을 더 빠르게 하고 있을 때였다.
딩—동—.
“람페르지 씨! 죄송한데 딸기 한 팩이 빠져 있었어요!”
를르슈는 화들짝 놀라서 딜도를 빼버렸다. 그, 그래요?! 뒤집어진 목소리가 놀란 티가 역력했다. 를르슈는 당황한 나머지 속옷을 꿰어입기도 전에 그냥 바지부터 밀어넣었다. 놀라서 발기가 풀린 페니스를 겨우 구겨넣고서 현관으로 부랴부랴 달려나갔다.
그러면 스자쿠가 민망하게 웃으면서 딸기 한 팩을 들고 서있었다. 를르슈는 약간 맥이 풀리면서도 시선을 맞출 수가 없었다. 갑자기 젤로 적신 애널의 적나라함과 그로 인해 바지가 축축한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이상성욕이 생길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 발기할 것 같았다.
“람페르지 씨, 어디 아프세요? 방금 전보다 얼굴이 빨개요.”
“아, 아니에요. 가, 감사합니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내미는 딸기 팩을 받다가 그만 떨어뜨리고 말았다. 손과 손이 스치는 짧은 순간이었다. 그 순간의 짜릿함에 를르슈는 딸기를 놓치고 말았다. 어어?! 스자쿠가 내는 소리에 딸기가 와르르 쏟아지고, 현관에서는 딸기 한 팩 만큼의 향이 물씬 풍기기 시작했다. 달콤한 딸기 냄새, 여름 땡볕이 쏟아지는 바깥 풍경, 후텁지근한 바람, 스자쿠의 땀 냄새….
“이거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바로 마트에 가서 새 거 하나 달라고 할게요. 이건 제 잘못이니까….”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울고 싶었다. 스자쿠의 체취를 의식하고 나니까 정말 서버리고 만 것이었다. 를르슈는 현관 바닥에 주저앉아서 발기한 아래를 감추고 말았다. 를르슈가 휘청거리면서 밟은 딸기들이 짓눌리면서 새콤달콤한 향이 퍼져나갔다.
“람페르지 씨, 괜찮으세요?!”
“모, 모르겠어요….”
“네? 어디 아프시거나.”
“스자쿠 씨, 저 좀 도와주세요.”
를르슈는 스자쿠의 바짓자락을 붙잡았다. 떨리는 손이었지만 강한 힘으로 이끌었다. 도와주세요, 라는 말에 스자쿠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서 를르슈를 내려다보는 게 느껴졌다. 람페르지 씨… 하고 부르는 목소리가 멀게 느껴졌다. 를르슈는 밭은 숨을 몰아쉬면서 스자쿠를 향한 시선이 어딘가 흐려졌다. 눈물이 고이고 있구나, 하는 것에 를르슈는 스스로가 경멸스러웠다.
“저, 너무, 몸이… 뜨거워서.”
“라, 람페르지 씨.”
“스자쿠 씨가… 도와주세요.”
그렇게 눈물이 또르륵 흐르고 나면, 스자쿠가 침을 꿀꺽 삼켰다. 를르슈는 택도 없는 소리를 하는 자신이 어이가 없었다.
한편 스자쿠는 가리려고 했지만 이미 발기한 아래를 제 신발 사이에 두고서, 빨개진 두 뺨과 붉어진 눈가로 눈물까지 흘리며 도와달라는 람페르지 씨의 상황을 믿을 수 없었다. 몸이 뜨겁다고 어쩔 줄 몰라하는 이 남자, 도와달라고 하며 스자쿠의 바짓자락을 붙잡는 람페르지 씨.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이며 현관 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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