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뉴스에서 7월 13일은 나이스데이, 라고 말했다. 를르슈는 그 말에 의지하고 싶었다. 스자쿠 생일 당일에는 회사 야근에 시달려서 다음날에 겨우 퇴근했으며, 퇴근한 다음날 죽은듯이 자고 일어나니 주말의 절반인 토요일이 사라졌다는 건, 눈을 떴을 때는 이제 일요일이라는 게 숨막히는 공포였다. 를르슈는 오늘이 일요일이라는 생각에 이제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는 기분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옷장 가장 깊숙한 곳에 더스트 백으로 싸두었던 이타백을 꺼내고, 경건한 마음으로 스자쿠의 향수로 칙칙 뿌려 나중엔 박수 두 번과 머리 숙인 깊은 합장을 했다. C.C.가 봤다면 ‘새삼스러운 지랄이군.’이라고 말했을 게 뻔했지만, 를르슈는 이 정성을 들이는 일을 멈출 수 없었다.
스자쿠 향수는 어느덧 절반 가까이로 줄어들어 있었지만 를르슈에게는 스자쿠 향수 미개봉품 7개가 남아있었기 때문에 아쉽지 않았다. 굿즈는 쓸 수 있는 실용품이라면 있는 힘껏 활용해준다는 것이 를르슈의 덕질 철칙이었으니까. (대신 팍팍 쓰는 만큼 줄어드는 것이 아쉬워서 10개들이로 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샤워를 마친 를르슈는 선크림을 바르고 혹시 몰라 파운데이션으로 꼼꼼하게 발랐다. 컨실러나 프라이머를 하려고 했지만 그렇게 본격적으로 했다가는 괴상한 여장남자 취급을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파운데이션까지만 합의한 셈이었다. 체리색 붉은빛이 발색되는 립 케어 제품을 살짝 덧발라주면 나름의 생기가 돌았다.
샤워 하기 전에 스자쿠의 향수로 절여진 이타백과 화장까지 하는 를르슈의 정성은 를르슈가 스자쿠 관련 행사에 나갈 때마다 꾸준히 해온 것이었다. 오늘은 7월 10일부터 있었던 스자쿠 생일 카페에 가지 못했던 한을 푸는 7월 13일, 즉 행사의 마지막 날이었다. 를르슈는 늦게 가는 만큼 욕심은 버리지만 정성은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스자쿠로 가득한 공간, 스자쿠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잔뜩 있는 그 공간에 를르슈가 맨 얼굴로 가는 것은 부끄러운 일이었다.(고 를르슈는 생각한다.) 를르슈는 이타백을 들고 7월 13일, 행사의 마지막 날이 열리는 스자쿠의 생일 콜라보 카페로 향했다.
7월 10일 생일 당일부터 계속해서 콜라보 카페의 예약을 해두고 있었지만 잦은 야근과 컨디션 난조 이슈로 노쇼를 할 수 밖에 없었다. 마지막 날에 겨우 얼굴을 비친다는 것이 미안해서 를르슈는 콜라보 카페에 도착하기 전, 자신이 알고 있는 한 가장 맛있는 수제 초콜릿을 파는 디저트 샵에 들러서 10개들이 선물팩을 포장으로 샀다. 이타백에 넣어두고 나면 마음이 든든해졌다.
스자쿠 생일 콜라보 카페는 행사 마지막 날이라고 잔뜩 붐비진 않았지만 그렇다고 사람이 거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사람이 없으면 없는 만큼 사주면 되는 것이고, 사람이 많으면 눈치껏 갖고 싶은 만큼 사면 되는 법. 를르슈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스자쿠의 사진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는 벽면을 바라보면서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것을 꾹 참았다.
자리를 안내 받은 뒤, 를르슈는 예약자 특전을 받으면서 이타백의 어깨끈을 꼬옥 움켜쥐었다. 가슴이 벅차오른다. 스자쿠, 너의 게스트가 될 수 있어서 너무 기쁜 나머지 울어버릴 거 같다. 스자쿠랑 직접 데이트할 때보다 더 떨려. 를르슈는 스자쿠로 가득한 콜라보 카페 내부의 사진을 49장 정도 찍은 뒤, 굿즈를 사냥하러 나가기로 했다.
스자쿠의 아름다운 한 모습을 담아낸 일러스트 디스플레이 메탈 플레이트를 있는대로 다 쓸어모아서 욕실 벽면 타일로 시공하고 싶었으나, 녹이 슨다는 문제도 있고 무엇보다도 를르슈가 그런 돈 지랄을 했다가는 다른 팬들이 난처해지고 말 것이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스자쿠의 시선이 오가는 욕실에서 샤워하는 건 부끄러워서 할 수가 없었다. 이래보여도 를르슈는 자신이 옷을 갈아입거나 자거나 생리적인 현상을 해결하는 장소에서는 스자쿠의 시선이 하나도 닿지 않도록 철저한 계산으로 굿즈 전시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스자쿠의 탄생월인 7월에 맞춰서 7개의 디스플레이 메탈 플레이트 카드와 10개의 미니 플레이트 카드를 결제한 를르슈는 뒤늦게서야 스자쿠의 콜라보 카페에서 먹을 수 있는 음식들을 고르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스자쿠와 같이 먹을 수 있으니 마음껏 시키는 편이지만, 오늘은 스자쿠가 없는 스자쿠 생일 콜라보 카페라서 혼자서 다 해치워야만 했다. 스자쿠의 부재가 아쉬운 것은 처음이었다. 모든 음식을 다 올 컴플릿하고 싶었지만 90분 내로 모든 걸 다 먹어보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생일 케이크와 생일 기념 드링크, 그리고 스자쿠의 햄버그 스테이크를 골랐다. 마음 같아서는 나나리의 메뉴도 시켜보고 싶었지만 오늘은 아쉬운대로 어쩔 수 없었다. 를르슈는 속으로 성호를 긋고 사랑하는 나나리, 항상 사랑한다, 라고 중얼거렸다.
그 사이에 받은 굿즈 특전들을 하나 둘 언박싱 하기로 했다. 대략 25개의 랜덤 굿즈가 생긴 를르슈는 빠르고 정확하게 떨지도 않으면서 스자쿠의 잘생긴 얼굴이 담긴 굿즈들을 분류해나갔다. 중복은 총 7개. 올컴플릿은 완수했지만, 를르슈는 자신이 좋아하는 스자쿠1 일러스트와 스자쿠7 일러스트, 그리고 제일 좋아하는 스자쿠0(시크릿)을 교환해줄 사람을 찾기로 했다. 그러기 위해서 이타백에 초콜릿을 가득 담고 온 것이었다.
를르슈는 빠르게 인터넷 SNS에 글을 올렸다.
ZERO @zero710125
스자쿠 생일 콜라보 카페 교환 원합니다. 시크릿 하나랑 일괄 교환 가능합니다!
🥲저: 스자쿠2, 3, 8, 10, 11, 15
👼천사님: 스자쿠0 (시크릿)
를르슈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서 다들 각자 스자쿠 토크를 즐기는 게 좋았다. 이 아늑하고 부드러운 분위기 속에서 스자쿠에 대한 애정이 넘치고 있다는 것이 스자쿠를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자랑스러웠다.
아, 정말 평생 스자쿠 생일이면 좋겠다. 스자쿠 생일 한 40일 정도로 축하해주면 안되나?
[스자쿠: 를르슈 내 시크릿 원해?]
[스자쿠: 를르슈가 원할 거 같아서 내가 미리 빼놨어.]
[스자쿠: ㅎㅎ내일 갖다줄게!]
너는 팬의 마음을 조금도 몰라주는구나, 스자쿠. 를르슈는 스자쿠의 메시지를 보고서 가볍게 [스자쿠(님)을/를 차단하겠습니까?]라는 문구를 띄우고서 바로 YES 버튼을 눌렀다. 스자쿠의 프로필 사진은 재미없는 잿빛으로 바뀌고 [차단된 사용자]라는 문구가 떴다. 그러나 얼마 안 가서 스자쿠한테 전화가 왔다. 채팅 어플을 차단했으니 전화번호로 전화를 거는 급한 성질머리는 어디서 배워먹은 것인지…, 를르슈는 아예 수신 거부를 박고 휴대폰이 더 울리지 않게 방해금지 모드를 설정했다. (SNS알림은 켜둔 채로.)
를르슈는 모든 신경을 곤두 세우고서 휴대폰을 노려보았다. 빨리 스자쿠0을 교환해줄 천사님에게 연락이 오길 기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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