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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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전화를 걸었던 일주일 전을 떠올렸다.
스자쿠는 나이트 오브 원과의 경합에서 이겼다. 그 말은 즉 나이트 오브 원의 자리를 받을 수 있으며, 그에 속하는 에리어 하나를 원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그건 스자쿠가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되면서 예전부터 원했던 목표였지만, 스자쿠는 그 자리를 원하는 대신에 다른 것을 달라고 했다.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 황자전하를 제게 주십시오, 라고 말하는 스자쿠의 모습에 황제는 무표정한 얼굴로 부마가 되길 원하냐고 물었다.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들은 스자쿠가 ‘원하는 것’이 심상치 않다는 것을 알고, 평소라면 시끄럽게 떠들어댈 녀석들도 입을 다물고 있었다.
황제가 왜 하필이면 를르슈를 원하냐고 묻는다면, 스자쿠는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그것을 가늠하지 못하고 있었다. 그저 그를 원했다. 그가 다른 누군가의 것이 되기 전에, 스자쿠가 그를 가져야만 한다는 본능만이 앞서고 있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황제는 그 이상의 이유에 대해서 묻지 않았고,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를 하사하겠다는 말만 남겼으며, 스자쿠는 그에게 깊이 고개를 숙인 후 자리에서 물러났다.
그리고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공식 경합에서 스자쿠가 나이트 오브 원을 꺾었다는 것이 궁 안을 휩쓸고 나서 반 시간 후,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전화를 걸었다.
“안녕하세요, 를르슈 전하.”
‘…잘 지냈나, 나이트 오브 세븐.’
“예, 전하. 혹시 소식은 들으셨나요?”
‘네가 비스마르크를 경합에서 꺾었다는 이야기? 들었지. 소문이 자자하더군.’
“네, 맞습니다. 그리고 저는 브리타니아의 부마가 되고자 합니다.”
‘그 소문도 사실인가보군. 네가 누군가와 결혼한다는 이야기도 들렸지만.’
“……네. 그 소문대로 저는 를르슈 전화를 원합니다.”
‘정말… 나이트 오브 원의 자리 대신에 나를?’
“네. 전하께서 괜찮으시다면 결혼식은 빨리 치르고 싶은데요.”
‘…….’
를르슈는 그 소문을 믿고 싶지 않았던 모양이었다.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의 심정을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스자쿠와 를르슈는 어릴 때부터 소꿉친구였으나, 각기 속한 나라의 사정이 일본와 브리타니아라는 문제가 있는 만큼 같이 있을 수 없었다. 어렸을 때야 스자쿠를 기사로 삼아주겠다는 를르슈의 약속이 있었지만, 나이를 먹고 머리가 굵어질수록 그것은 어렵다는 것을 깨달을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스자쿠는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되었다. 를르슈의 곁에 있기 위한 방법 중에서는 제일 확실하다고 생각했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되어서 를르슈의 옆에 있을 수 있는 방법을 강구했지만, 최근 들어 를르슈에게 혼담이 오간다는 소식에 스자쿠는 자신의 방법이 틀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를르슈의 옆에 스자쿠보다 더 친한 누군가가 있다는 것은 인정할 수 없었다. 때마침 다가온 공식경합에서 나이트 오브 원을 꺾을 수 있었던 것은 운이 좋았다. 나이트 오브 원이 되어도 상관 없지만, 스자쿠는 그것보다 더 급한 것이 있었다.
그것이 를르슈다. 지금 전화를 받고서 결혼식을 빨리 치르고 싶다고 하는데도 대답이 없는 를르슈.
“일정이 없으시다면 일주일 뒤에 식을 올릴 수 있도록 준비하겠습니다.”
‘…넌 정말 그걸로 괜찮은 거야?’
“네.”
‘…….’
“그럼 전하, 안녕히 주무세요.”
스자쿠는 그동안의 밀린 일을 처리하고, 황제폐하의 부마가 되기 위한 특별 교육을 받고, 또 황제가 준비한 인력에 맞추어서 예복과 식을 올릴 장소를 찾는 것에 정신이 없었다. 식 전에 를르슈를 찾아가 한 번 쯤은 인사를 하고 싶었으나, 그럴 짬 조차 나지 않았다.
궁 바깥에 있는 제도의 교외에 있는 작은 본당에서 식을 올리기로 했다. 초대객은 몇명이나 부를 거냐는 이야기에 스자쿠는 신랑과 신부 둘 뿐이라고 대답했다. 바로 신혼여행을 가시니 그게 편하실 수도 있겠네요, 라는 말을 들으면서 스자쿠는 그게 아니라고 생각했다.
신혼여행이라고 해봤자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되고 나서 하사 받은 저택과 그 주변 땅을 둘러보는 것이 고작일 것이다. 세계는 아직도 전쟁 중이었고, 스자쿠는 언제 또 명령에 따라 원정을 떠날 지 알 수 없는 몸이었기 때문에, 멀리 나갈 수 없는 것이 아쉽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이 결혼식에 를르슈의 의사를 알 수 없으니 더 진행시킬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숨가쁜 일주일이 지나고 나서, 아침이 밝아오는 식장 앞에 서있었다. 단순하고 눈에 띄지 않게, 라는 스자쿠의 명령대로 본당은 평소와 같은 분위기였다. 꽃다발 몇 개가 놓여있을 뿐,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 황자의 결혼식이 올라가는 곳이라고 하기에는 초라할 정도였다.
기다리고 있으면 곧 아리에스의 문장을 단 자동차 한 대 가 들어섰다. 스자쿠는 뒷문 쪽으로 가서 황족을 에스코트하는 자세로 를르슈를 맞이했다. 차에서 내리는 를르슈는 하얀 턱시도 차림이었다. 평소에 검은색 옷만 고집하던 그와는 전혀 다른 모습에 스자쿠는 일순 굳고 말아버렸다.
“…나이트 오브 세븐? 무슨 문제라도 있나?”
그 말에 스자쿠는 아닙니다, 라고 말하며 그의 손을 잡고 본당 앞까지 에스코트했다.
두 사람을 위해 준비된 버진로드는 두 사람이 동시에 걸을 것이다. 스자쿠는 어떠한 예행 연습도 없이, 사전 지식도 없이, 스자쿠에게 모든 것을 맡기는 를르슈의 모습에 알 수 없는 충동 같은 것이 일어서 그것을 억누르는 걸 겨우 참아냈다.
하얀 턱시도 차림의 두 남자가 버진로드를 걸었다. 부케는 물론, 노래도 없고, 박수를 치는 사람도 없고, 환호소리도 들리지 않는 이 결혼식은 단촐하게 끝이 날 것이다. 황족의 결혼식을 위해 불려온 신부 앞에서 스자쿠와 를르슈는 사랑의 맹세를 해야만 했다.
“두 사람은 어떠한 경우에도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에 대한 도리를 다하여 행복한 가정을 이룰 것을 맹세합니까?”
어디에선가 많이 들었던 그 말에 대해서 대답하는 것은 쉬웠다. 스자쿠는 그 뜻을 헤아려보다가, ‘항상’ ‘사랑하고’ ‘존중하며’ ‘서로에 대한 도리’라던가, ‘행복한 가정’ 같은 단어들이 우스워졌다. 그래도 를르슈와 함께라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대답이 없던 두 사람 중에서 먼저 대답한 것은 스자쿠였다. 그리고 이어서 를르슈도 네, 라고 대답했다.
“두 사람이 정식으로 부부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텔레비전이나 영화관의 스크린이라면 지금쯤 진한 키스를 나누었겠지만, 스자쿠와 를르슈는 애초부터 키스를 하는 사이는 아니다. 스자쿠는 를르슈를 바라볼 뿐이었고, 를르슈는 스자쿠와 맞잡은 손이며, 마주치는 시선에 동요하는 듯, 시선을 깊게 맞추질 못하고 있었다.
다시 버진로드를 걷는다. 처음 걸었던 모양처럼, 두 사람이서, 천천히, 신중하게, 그러나, 끝을 알 수 없다는 느낌이 드는 것은 여전했다.
하지만 이제 달라진 것이다. 두 사람은 부부이고, 결혼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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