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가운데 생일, 이라는 개념은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를르슈 람페르지는 한 번도 신경 써본 적 없던 그 개념의 생일을 챙기기 위해서 지금 고군분투 중이었다. 생크림을 치덕치덕 바른 빵 시트를 보면서 를르슈는 이를 갈았다.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하고, 출근 준비를 위해서 성실하게 놀고 있어야 할 일요일 저녁에! 말도 안되는 가운데 생일이라는 개념을 위해서 를르슈는 쉬지도 못하고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다.
집안에 떨어지지 않게 구비해두는 음식들이 있어서 다행이었다. 안 그랬다면 주말의 마트를 뚫고 스자쿠가 좋아할 만한 제철 과일들을 싸들고 오는 것에 지쳐버려서 케이크 만들기는 고사하고 를르슈 한 몸 건사하기도 힘들었을 것이다.
한숨을 깊게 내쉰 를르슈는 심기일전하며 다시 케이크 앞에 섰다. 그래도 어쩌겠어, 이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 내 남자친구인데 별 수 있나. 생크림을 두둑하게 넣은 짤 주머니를 꽉 움켜쥔 를르슈는 천천히 데코레이션에 들어가기 시작했다.
시작은 금요일 퇴근 전, 스자쿠가 어떤 사이트를 찾았다며 보내준 것이었다.
가운데 생일. 즉 A와 B의 생일 차이를 절반으로 쪼갰을 때, 그 가운데 날을 가운데 생일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흠, 흥미롭군. 스자쿠와 나의 가운데 생일은? 를르슈는 스자쿠가 보내준 사이트 링크에 생일을 넣어보고서는 9월 22일이라는 값을 얻었다. 생각보다 가깝잖아? 를르슈가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
[이제 곧 가운데 생일이네^^]
[가운데 생일이어도 뭘 하는데?]
[약간 100일, 200일 이벤트 하는 것처럼 즐기는 거 아닐까?]
[우리 사귄지 13년 째인데? 이제 와서?]
[기념일이 있다는건 좋잖아~]
[그래?]
를르슈는 퍽이나 좋겠다, 라고 적으려다가 말았다. 스자쿠가 주도적으로 뭔가 해보려고 하는 일들은 어딘가 꺼림칙했다. 사람들 각자의 가운데 생일은 365일 다 있을 테고, 그때마다 챙기는 커플은 몇이나 될까. 그리고 애초에 13년째 사귀고 있는 이 커플이 이제 와서 첫 만남(기억도 안 난다.)이나 사귀기 시작한 날(까마득한 언젠가의 8월 31일) 같은 것들을 챙기는 것도 귀찮아 죽겠는데.
하지만 스자쿠에게 노골적으로 귀찮다는 뉘앙스를 보내는 것은 즉 싸우자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에, 를르슈는 아무말이나 던지기로 했다.
[케이크라도 만들어줘?]
[진짜? 생크림 딸기 케이크!]
[…9월 22일이면 월요일인데 언제 먹겠다고?]
[회사에서 먹으면 되지^^]
[회사가 네 살롱이야?]
[재벌 3세에게는 비슷한 개념이야~]
마지막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를르슈는 답장도 하지 않았다. 누가 들으면 혁명을 염불처럼 외우게 만드는 말이었다. 그리고 저녁에 퇴근을 하고, 를르슈는 옆 건물에서 근무하는 스자쿠와 만나서 스자쿠네 집에 가서 데이트를 했다.
일요일 오전까지 푸지게 놀고 있던 스자쿠와 를르슈는 다가오는 월요일이 징그럽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앞으로 몇십 년, 월요일을 얼마나 더 미워하게 될 지 감도 잡히지 않는다며 시시덕거리고 있을 때였다. 스자쿠의 탄탄한 허벅지 베개에 머리를 기대고 있던 를르슈는 잊고 있던 가운데 생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내일 케이크 진짜 만들어줘?”
“응? 무슨 케이크?”
“네가 먼저 가운데 생일인지 뭔지 하는 케이크… 만들어 달라며.”
“아! 가운데 생일!”
“잊고 있었지? 괜히 말했군.”
“아냐, 나 진짜 받아보고 싶어. 사실 며칠 전에 회사에 어떤 직원한테 꽃 배달이 온 거야. 근데 그 배달해주시는 분이 ‘애인 분이 보내셨습니다!’라고 외치면서 줘서 너무 부러웠어.”
“대체 어디가?”
“애인한테 당당하게 꽃 받는다는 부분이?”
“본인이 가져다 준 거도 아니잖아.”
“와, 를르슈가 직접 가져다주면 나 진짜 감동 받을 거야.”
“그런 감동 줄 생각 없어.”
“나와 함께 하는 매 순간순간이 감동이라?”
“그건, 솔직히… 맞긴 한데… 아무튼 그럴 일은 없어.”
능글맞게 구는 스자쿠의 뺨을 쭉 잡아 늘리고는, 를르슈는 다가오는 일요일 저녁은 집에서 쉬어야겠다며 돌아가기로 했다. 스자쿠는 빨리 집을 합치자고 조르는 눈으로 를르슈를 배웅했다. 서로 알고 지낸 세월이며 사귄 시간을 생각하면 진작에 호적을 합치고도 남았겠지만, 를르슈는 스자쿠와 함께 사는 것을 최대한 미루고 싶었다. 이유는 스스로도 알 수 없었다. 스자쿠의 집이나 를르슈의 집이나 서로에게 익숙해졌는데, 굳이 합쳐야 하나, 싶기도 했고.
하지만 이렇게 헤어지는 순간에는 아쉽기도 해서 를르슈는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다시 한 번 곰곰히 동거와 결혼에 대해서 생각했다. 하지만 집에 들어서자마자 그런 생각을 잊게 만드는 미루어 두었던 빨래나 주말 사이에 쌓인 거실의 먼지며 쌓여있던 택배 박스 같은 것들을 분주하게 치우다 보면 일요일 저녁은 끝나가고 있었다.
내일 출근 어떻게 하지? 를르슈가 일요일이 끝나감에 상심에 젖어있을 때 갑자기 떠오르는 것이 있었다.
“아, 가운데 생일… 케이크.”
그런 개념을 대체 누가 만든 것인지… 스자쿠는 왜 그런 걸 좋아하는지….
를르슈는 귀엽고 앙증맞게 완성된 케이크를 보면서 다시 한 번 한숨을 푹 내쉬었다. 시간을 벌써 12시 30분. 내일은 월요일인데 어째서 이 시간까지 케이크를 만들고 있었을까. 를르슈는 잠시 후회하면서도, 그래도 어쩌겠어, 내 남자친구는 이런 걸 좋아한다… 라고 생각하며 버텼다.
제로레퀴엠인데 이걸 올리고 자빠짐,..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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