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루루기 스자쿠가 피격을 당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것은 7월 9일의 일이었다.
랜슬롯이 거의 반쯤 박살났다는 소식을 들은 를르슈는 슈나이젤의 앞이라는 것도 잊고서 스자쿠의 이름을 불렀다. 쿠루루기 스자쿠는 중태에 빠졌다는 이야기를 마친 슈나이젤은 를르슈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남겼다. 를르슈는 그 말을 들은 직후 슈나이젤의 멱살을 잡고 회의실에서 크게 한바탕을 벌여으며, 카논이 말리지 않았더라면 를르슈는 슈나이젤을 때렸을 것이다. 그리고 슈나이젤도 를르슈에게 기꺼이 맞아주었을 것이다.
슈나이젤과 를르슈가 세운 이번 작전에 나이트 오브 세븐이 핵심 인력이 되었던 것이 문제였다. 기동력과 작전 수행력이 높은 스자쿠를 믿고서 조금 과감한 계획을 세웠던 것이 를르슈의 문제였을 것이다. 그리고 그런 생떼에 가까운 작전을 슈나이젤이 채택한 것이, 아마 스자쿠를 죽음의 문턱까지 끌고 간 것이다.
를르슈는 스자쿠가 누워있다는 병실에 뛰어들어갔다. 하얀 병실 안, 온갖 기계에 둘러 쌓여서 스자쿠는 창백한 얼굴로 누워있었다. 탄탄한 근육질의 몸은 피투성이가 되어서 이리저리 상처를 입고 있었고, 를르슈는 스자쿠를 너무 믿은 자신을 원망하고 탓하며 병실 앞에서 무너졌다.
7월 8일의 무전은 아직도 생생했다.
“곧 있으면 네 생일이잖아.”
‘응, 그러네. 를르슈한테 직접 축하를 받을 수 있으면 좋았을 텐데.’
“본국에 돌아오면 너를 위한 파티를 아리에스에서 열어줄게. 게스트 명단도 이미 다 짜뒀다고.”
‘정말? 를르슈가 준비한 파티라니 너무 기대되는 걸.’
“새삼 열받는군.”
‘뭐가?’
“슈나이젤 형님 말이야. 일부러 네 생일을 앞두고서 이런 전투를 준비한다는 게 열받아.”
‘하하, 를르슈. 싸움은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생일 때문에 할 일을 못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생일에 애인한테 축하 키스도 못 받는 주제에.”
‘그건 좀 아쉽긴 해.’
기밀유지를 위해서 이루어진 스텔스 라인에서의 대화는 음성으로만 이어져서, 보고 싶었던 얼굴을 보지는 못했다는 게 아쉬웠다. 하지만 다정한 목소리로도 충분히 사랑이 느껴져서,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많이 보고 싶고 사랑한다고 속삭였다. 그리고 곧 있을 네 생일을 정말 기대하라고 말했다. 그 말을 들어주던 스자쿠는 낮게 웃으면서 네가 축하해준다면 어느날이든 생일일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것이 7월 8일. 그리고 스자쿠의 출격이 이루어진 새벽이 지나고 나서, 7월 9일. 스자쿠는 거의 숨만 붙어있는 상태로 본국으로 송환되었고, 를르슈는 엉망이 된 스자쿠를 보면서 눈물 한 방울 나오지 않는 분노를 다스리고 있는 중이었다.
곧 있으면 너의 생일이고, 너를 위한 파티도 준비했는데. 어째서 너는 그런 꼴로 돌아온 거야. 스자쿠, 빨리 일어나서 나를 안아주고 생일을 축하해달라고 말해줘야지.
를르슈는 병실 앞에서 한동안 떠나지 못했다. 나나리가 아니었다면 그간의 정무도 미룰 생각도 못한 채로 무책임하게 병실 앞에서 버티고 있었을 것이다. 스자쿠의 소식을 듣고 무너진 를르슈에 대한 이야기는 아리에스에도 금방 퍼져서, 유로 브리타니아에서 유학 중인 나나리까지 그 소식이 닿았다. 오라버니의 쇼크 상태를 빠르게 인지한 나나리는 본국으로 달려와서 를르슈를 달랬다.
“오라버니, 지금 모습을 스자쿠 씨가 보면 속상할 거예요. 스자쿠 씨는 죽지 않았어요. 오라버니도 그런 스자쿠 씨를 믿고 기다려야죠.”
“…나나리.”
“저는 오라버니를 믿어요. 오라버니도 스자쿠 씨를 믿고요.”
를르슈는 그제서야 자신이 스자쿠가 살아돌아오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인지했다. 그의 완전한 생환을 믿지 못하고 있었다는 것이 충격적이라서, 를르슈는 나나리 앞에서 부끄러움을 느꼈다. 그제서야 내팽개친 정무를 슈나이젤 쪽으로 돌리면서 ‘당분간 요양을 하겠다’라며 를르슈는 다소 뻔뻔하게 굴었다. 동생 를르슈에게 한 대 얻어맞을 뻔한 슈나이젤은 기꺼이 그런 응석을 받아주었다.
7월 10일, 스자쿠의 생일이 되었을 때 를르슈는 말끔하게 갈아입은 옷차림으로 스자쿠의 병실 앞에 섰다. 여전히 직접 면회하는 것은 금지되었으나 가까이서 볼 수 있음에 감사하자고 생각했다. 를르슈는 이런 꼴이 되었어도 스자쿠의 생일에 스자쿠에게 직접 생일을 축하해줄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다.
“빨리 일어나, 이 체력 바보…….”
그리고 내 생일 축하 키스를 받으란 말이야.
를르슈는 병실 안쪽까지 닿을 일이 없는 말들을 중얼거렸다. 시간은 천천히 흐르는 듯, 7월 10일이 지나고, 7월 11일이 되었다.
를르슈는 슈나이젤 쪽으로 넘어간 자신의 정무 보고를 브리핑으로 들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 번 정무를 내팽개친 황자의 신임은 바닥으로 떨어져도 할 말이 없었다. 사랑에 눈이 멀어서 그랬다는 건 더 떠들기 좋은 가십거리였다. 를르슈의 황족 지지율이 떨어졌다는 최종 보고까지 들으면서, 를르슈는 이 사실을 나중에 스자쿠에게 어떻게 알려야 하나 고민이 들었다.
그때였다. 스자쿠가 눈을 떴다는 소식이 들린 것이다. 를르슈는 한달음에 병원까지 달려가서 스자쿠가 움직이는 것을 보았다. 스자쿠는 를르슈를 알아보고서 희미하게 미소를 지었다. 의식을 되찾고 느껴지는 고통 속에서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입 모양을 벙긋거리며 ‘괜찮아’라고 말해주었다.
를르슈는 그제서야 울음을 터뜨리며 스자쿠의 병실 앞에서 흐느꼈다.
그래서 둘이 잘 되었다면, 해피엔딩인 이야기겠지만. 지금부터 이어지는 이야기는 그러지 못했다.
“헤어지자, 를르슈.”
를르슈는 사과를 깎다 말고 손을 멈추었다. 병색이 파리했던 스자쿠는 이제 거의 예전 상태라고 봐도 무방할 정도로 회복이 되었다. 그러기 위해서 거의 보름 가까이 안정을 취하고 상처 회복에 힘을 썼다. 를르슈는 스자쿠를 위해서 거의 병원에서 살다시피 하며 그의 곁을 살폈다.
그런 결과, 스자쿠는 헤어지자고 말했다. 를르슈는 사과 껍질을 다 벗겨낸 사과 한 알을 쟁반 위에 올려두고서 다시 눈짓으로 물었다. 뭐라고?
“우리는 헤어지는 게 좋겠어.”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에게 ‘오늘은 날씨가 덥네’라는 식으로 말했다. 너무 평온하고 아무렇지 않은 말투라서 를르슈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실감이 되지 않았다. 스자쿠는 를르슈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 시선은 여전히 올곧고 자신이 맞다고 주장하는 그 심지가 느껴져서, 를르슈는 순간 헤어지는 것이 맞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렇지만 왜? 갑자기?
“무슨 소리야, 그게.”
를르슈가 겨우 뒤집히려는 목소리를 가다듬고서 하는 말은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스자쿠는 과도를 내려두고서 사과를 더 깎지 못하는 를르슈를 보고 쓴웃음을 지었다.
“헤어지는 데에 이유가 필요한 건 아니잖아. 그냥 그럴 마음이 들었다면 헤어지는 거겠지?”
“…….”
“를르슈랑 더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
“…잘 해본다는 게 뭐야?”
“서로 같이 있으면 더 못해줄 거 같다는 생각이 들어서 그래.”
스자쿠는 손끝이 떨리는 를르슈에게서 사과가 담긴 접시와 과도를 협탁으로 돌려둔 뒤,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그러니까 헤어지는 게 좋은 거겠지. 를르슈는 자신이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다시 한 번 이해하려고 했다.
헤어지는 데에 이유가 필요한 게 아니다, 마음이 들면 헤어지는 거다, 잘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같이 있으면 더 못 해준다.
그런 마음이라는 것이 대체 무엇인지, 를르슈는 알 수 없었다. 지금까지는 스자쿠가 걱정이 되어서 아무것도 못하고 있었고, 그렇지만 스자쿠가 건강해지고 있어서 정무도 다시 볼 수 있게 되었고, 스자쿠랑 함께라면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이제 스자쿠에게는 들지 않는 것인가?
“내가 뭔가 잘못했어?”
“아, 그런 건 아니야. 그냥 이건 내 마음의 문제야.”
“그럼 내가 싫어진 건가?”
를르슈는 물어보면서도 입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제대로 발음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를르슈의 잠긴 목소리로 이어지는 질문에 스자쿠는 절대 그런 게 아니라고 했다.
“좋은 건 여전해, 근데 이제 같이 있기엔 힘드니까 그런 거야.”
“……설마, 네가 쓰러졌을 때 내가 일을 안 해서.”
“그런 게 아니라니까.”
“그럼 왜 헤어져?”
“다시 말하지만 헤어지는 데에 이유가 필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아.”
“나는 필요해!”
를르슈는 큰 소리를 냈다. 어째서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도 모르겠어. 를르슈의 발악에 스자쿠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은 채로, 를르슈를 바라만 보고 있었다.
“누가 너한테 쓸데 없는 소리라도 했어?”
“아니야, 를르슈….”
“그럼 왜 그런 소리를 하는데? 내가 싫어진 거도 아니고, 내가 뭔가 잘못한 거도 아니면…….”
“더 이상 말해줄 수 없어. 이제 를르슈랑은 끝이니까.”
스자쿠는 쐐기를 박았다. 를르슈는 끝을 쉽게 말하는 스자쿠의 입술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이제 여기에도 오지 말고, 나랑 어쩌다 마주쳐도…… 알지?”
뭘 알아, 라고 를르슈는 대꾸하고 싶은 것을 꾹 참았다. 눈앞이 빨개지는 기분이었다. 눈앞의 과도가 넘실넘실 춤을 추었다.
아, 그래, 스자쿠가 헤어지자고 하는 거라면 그냥 이대로 죽여버리는 게 좋을 지도 몰라. 스자쿠는 지금 회복이 다 안 된 상태니까 내가 간단하게 죽이는 게 편할지도 몰라. 왜냐면, 스자쿠가 말도 안되는 소리를 했잖아. 헤어지자고, 왜 헤어지는지도 알려주지도 않고.
를르슈가 말 없이 멈춰있는 것에 흐름을 깬 것은 스자쿠였다. 스자쿠는 호출기를 들고서 를르슈를 응시했다. 그리고 호출기에 대고서 또박또박 말했다.
“전하께서 나가십니다, 제레미아 경. 호위를 부탁드립니다.”
나가라는 이야기를, 이렇게 쉽게. 그것도 마지막이 되는 이 관계의 끝에서.
를르슈는 스자쿠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과도가 넘실거려도 손 한 번 뻗지 못하겠고, 제레미아가 다가올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모르는데 발악은 더 이상할 힘이 나지 않았다. 신기했다. 허탈하고 막막해서 관계가 끝나가는 것이 온몸으로 느껴졌다.
스자쿠의 시선은 여전히 다정하고 상냥한데, 그런데 끝났다.
그 이후로 를르슈는 어떻게 스자쿠의 병실에서 나왔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제레미아가 다가와서, 를르슈에게 전하, 돌아가시죠, 라고 말했던 것은 어렴풋하게. 그리고 스자쿠가 ‘잘 가, 를르슈’라고 했는지, ‘조심히 들어가십시오, 전하’라고 했는지, 기억이 나지 않는다.
두 사람의 관계는 아리에스 안팎으로 공공연하고 자연스러운 관계였는데, 그래서 더 거리낄 것도 없이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사이였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그렇지만 끝났다.
끝나버린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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