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어스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자신의 뜻을 이루지 못한 적이 없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모든 것을 갖추고 태어났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지만 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남긴 막대한 보험금과 유산 같은 것으로 부유하게 살 수 있었고, 타고난 미모와 뛰어난 두뇌회전으로 스스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것도 가능했다. 그러나 줄리어스가 가지고 있는 것 중에 제일 최고를 꼽자면, 단언컨대 자신과 똑같은 얼굴로 태어나 자신과 같은 운명을 같이 할 를르슈라는 쌍둥이 형이었다.
를르슈는 줄리어스를 끔찍이도 아꼈다. 줄리어스가 자신이 지켜야 할 세상의 전부인 것처럼 구는 를르슈가 좋았다. 줄리어스는 를르슈는 사실 자신이 없어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저에게 매달리듯 의존하는 를르슈가 좋아서 그 사실을 알려주진 않았다. 부모님을 잃고 나서부터 줄리어스만을 위해 헌신하는 를르슈가 좋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줄리어스는 그런 를르슈의 친애에 만족하지 못했다. 세상에 단 하나 남은 가족이라는 위치는 언젠가 빼앗겨버리고 만다. 를르슈가 또 다른 가족을 만들고자 한다면 줄리어스의 입지는 작아질 것이 분명했다. 그런 반쪽짜리 애정으로는 줄리어스는 만족할 수 없었다. 그래서 시간이 걸리더라도 천천히, 공을 들여서 를르슈를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둘로써 완성되는 완벽한 세계. 그런 세상 속에서 살아간다면 줄리어스와 를르슈는 영원히 행복할 게 분명했다.
그러나 그런 세계를 부순 이레귤러는 어느날 갑자기 나타났다. 쿠루루기 스자쿠였다.
“줄리어스는 나 싫어하지?”
를르슈가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에, 스자쿠와 단둘이 남아있었을 때였다. 를르슈, 언제 오려나. 스자쿠는 그런 시시한 말을 하고 있었고, 줄리어스는 휴대폰으로 를르슈가 좋아할 법한 신제품 푸딩 소식을 북마크하고 있을 때였다. 를르슈가 오는 것까지 시간이 제법 걸리고, 스자쿠와 줄리어스 사이의 정적이 길어지고 있을 때 스자쿠가 물어온 것이었다. 그 목소리 톤은 마치 ‘를르슈 금방 오겠지?’라고 하는 말투랑 똑같아서, 줄리어스는 자신이 들은 말이 무엇인지 잠시 고민해야만 했다.
“무슨 소리야?”
교실 밖 왁자지껄하게 떠드는 아이들 소리에 파묻혀서 제대로 들리지 않은 척, 스자쿠에게 다시 물어보았다. 줄리어스의 반응에 스자쿠는 다시 한 번 정직하게 질문했다. 아니, 이젠 확실한 듯 평서문으로 말했다.
“줄리어스는 나 싫어하잖아.”
줄리어스는 그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러자 스자쿠는 ‘웃긴 표정 짓지 마’ 라고 말하면서 기대고 있던 를르슈의 책상에서 일어났다. 를르슈의 책상을 차지하고 있었던 줄리어스를 돌아보면서, 스자쿠는 정말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말했다.
“근데 나도 줄리어스가 싫어. 우리 서로 싫어하니까 다행이다.”
주변에서는 아무도 스자쿠가 하는 말에 관심이 없는 듯 했다. 하지만 그럼에도 눈치가 보였다. 누군가 한 명이 를르슈에게 두 사람 사이에서 이런 대화가 오갔다는 것을 전하기라도 한다면…. 그렇다면 미움을 받는 건 틀림없이 줄리어스가 될 것이 분명했다.
자리를 벗어나려는 스자쿠의 손목을 붙잡은 줄리어스는 그를 잡아세웠다. 스자쿠는 순순히 붙잡혀주었다. 저보다 조금 작은 스자쿠의 시선이 살짝 올려다보는 것에 줄리어스는 꽤나 여유로운 표정을 지으려고 애를 썼다. 스자쿠가 싫고, 불편하다는 걸 내색해서는 안 됐다.
“내가 왜 널 싫어해?”
“그럼 좋아해?”
“사람이 꼭 이분법적으로 싫다, 좋다로만 대답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나 의외로 이런 거 눈치 빨라. 네가 날 싫어하는 거 정도는 알아.”
“그러니까 내가 왜 널 싫어하냐고.”
“당연히 를르슈 때문인 거 아니야? 를르슈가 날 좋아하니까.”
정답이었다. 줄리어스는 쿠루루기 스자쿠가 싫었다. 조금 더 과장을 보태면 미울 정도였다.
스자쿠가 그냥 던진 말 치고는 뼈가 있고 날카로운 말이었다. 그리고 스트라이크의 정확도도 높은 직구였다. 한 마디로, 스자쿠는 지금 이 말을 하기 위해서 기회를 엿보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생각치도 못한 한 방을 먹은 줄리어스는 스자쿠의 말에 잠시 뜸을 들이다 겨우 한 마디를 했다.
“를르슈가 왜 널 좋아해?”
“하하, 이제 와서? 를르슈랑 나랑 사귀고 있는 거 알고 있잖아.”
사귀고 있다는 게 친구 사이의 우정이 아니라는 것 쯤은 알고 있었다. 같이 목욕을 하던 를르슈가 어느날부터 줄리어스를 피하게 되었으니까. 한참을 조르고 며칠 뒤에야 같이 욕조에 넣어주는 것에 그의 몸을 샅샅이 훑어보면 희미하게 남은 키스마크나 잇자국 같은 것으로 두 사람의 성 사정에 대해서 알게 된 것도 열받을 지경이었다.
줄리어스로써는 계속해서 이어지는 공격에 이를 악물 수 밖에 없었다. 몰아치는 잽과 훅 사이로 스자쿠에게 먹일 수 있는 한타를 노리고 있었다.
“그래서? 영원히 사귈 거야? 언젠가 헤어지겠지, 뭐.”
그리고 스자쿠와 헤어진 를르슈의 옆에 있는 것은 줄리어스가 될 테니까. 줄리어스는 자신이 내밀 수 있는 유일한 카드에 대해서 자신있게 선보였다. 스자쿠는 그 말에 기분이 상한듯 미간을 찌푸렸다. 평소에는 온화하게 웃고 있는 그 싱그러운 눈빛이 단숨에 어두워지고 날이 서는 것이 오싹했다. 하지만 그런 것에 굴할 줄리어스가 아니었다.
“그럴 일은 없어. 나는 를르슈랑 결혼할 거야.”
“를르슈가 해준대?”
“안 해줄 건 뭐야?”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데, 를르슈는 내가 싫다고 하면 너랑 결혼도 안 할 거야.”
“…….”
“정말로 나한테 미움 받고 있다고 생각하면 나한테 잘 보여야 하지 않겠어?”
줄리어스는 스자쿠의 손목을 놓아주면서 인자한 미소를 지었다.
“네가 를르슈에 대해서 뭘 알아?”
“…….”
“를르슈랑 섹스 몇 번 해본 거 가지고 유세 부리지 마, 쿠루루기 스자쿠.”
마지막 말은 나직하게, 스자쿠에게만 들릴 듯이 하고 속삭여주었다. 때마침 를르슈가 돌아왔다. 둘이서 무슨 이야기 했어? 를르슈는 바삐 다녀온 모양인지 숨이 조금 가빠보였다. 줄리어스와 스자쿠는 서로의 냉전을 암묵적으로 합의했다. 줄리어스는 평소대로 를르슈의 곁을 파고들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꾸했다.
“쿠루루기가 나한테 오렌지 주스 사준다고 했어.”
“뭐, 내가 언제?”
“를르슈도 마시고 싶지? 점심시간 끝나기 전에 빨리 사와.”
“줄리어스, 스자쿠를 너무 부려먹지 마. 내가 사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아냐, 를르슈. 내가 사올게. 줄리어스, 네 말을 들어주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야.”
“그래, 그래. 지난 번에도 그렇게 말했지, 너.”
스자쿠는 분한 듯 줄리어스를 바라보면서 매점으로 향했다. 를르슈는 의자에 앉고 싶다면서 자신의 의자를 차지하고 있는 줄리어스에게 일어나라고 말했다. 줄리어스는 일어나는 대신에 를르슈의 허리를 붙잡아 끌고서 를르슈를 제 허벅지에 앉혔다. 뭐, 뭐야. 를르슈가 당황하면서 일어나려는 것에 줄리어스가 를르슈에게 칭얼거렸다.
“를르슈는 요즘 쿠루루기랑만 놀잖아. 나 외로워.”
“너랑도 열심히 놀아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
“내가 외롭다니까?”
“대체 언제까지 그 소리 할 거야?”
“를르슈가 놀아줄 때까지.”
“놀아주고 있잖아.”
“쿠루루기랑 노는 것처럼 놀아줘.”
“그게 어떻게 노는 건데…….”
어떻게 놀긴, 끌어안고 키스하고 섹스하는 주제에.
줄리어스한테는 아무것도 말해주지 않으면서.
하지만 줄리어스는 그런 것을 투정부리는 대신에 를르슈의 등에 얼굴을 파묻었다. 이마를 등줄기에 맞대고서 부비면 를르슈가 간지럽다고 웃었다. 줄리어스가 를르슈를 독차지 하는 시간은 짧았다. 그 빠른 발로 스자쿠가 금방 매점까지 다녀오고 나서 오렌지 주스를 사왔기 때문이었다.
“왜 두 개 뿐이야?”
“두 개 밖에 없었어.”
“음, 그럼 하나는 쿠루루기가 먹어. 난 를르슈랑 나눠 마실래.”
“뭐? 그럼 줄리어스가 하나 다 마셔. 네가 마시고 싶다고 한 거잖아. 내가 스자쿠랑 마실게.”
“싫어.”
“뭐가 또 싫어?”
줄리어스가 싫다고 하는데도 를르슈는 기어이 스자쿠와 같은 오렌지 주스를 마셨다. 혼자서 한 개 분의 오렌지 주스를 빨대로 쪽쪽 빨아들이던 줄리어스는, 스자쿠와 를르슈가 빨대 하나로 간접 키스를 하는 모습을 지켜봐야만 했다.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의식하지 않은 척, 빨대 하나로 오렌지 주스를 나눠 먹는 풋풋한 커플들의 모습 같은 건 진부하기 짝이 없는데도, 볼 때마다 새롭게 분노했다.
그날 저녁, 줄리어스는 를르슈의 침대에 따라누웠다. 줄리어스가 자신의 방에서 자지 않고 를르슈의 방을 찾아오는 것에 대해서 를르슈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또 뭐야, 라는 시선이 있었지만 줄리어스가 ‘를르슈…’ 하고 어리광을 부리는 목소리를 내면 를르슈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침대의 한 구석을 비워주었다. 딱 파고들기 좋은 간격으로 서로 몸을 맞대고서 잠을 잘 수 있는 공간이 생겼다.
줄리어스는 를르슈를 끌어안았다. 요 며칠 쿠루루기 스자쿠와의 데이트를 어떻게 줄리어스 몰래 할 것인지 계획을 세우느라 정신이 없어보이던 를르슈는 금세라도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를르슈의 허리를 끌어안으면서 줄리어스가 낮은 목소리로 를르슈를 불렀다.
“있잖아, 를르슈….”
“으응. 오늘은 또 무슨 일이야…?”
“나 외로워.”
“뭐가 또….”
“를르슈가 자꾸 쿠루루기랑만 놀아서 싫어.”
“딱히, 스자쿠랑만 노는 건 아닌데….”
“그래서 쿠루루기가 싫어.”
“후후, 뭐야. 질투하는 거야?”
“응.”
“질투하지 마, 스자쿠는 친구잖아.”
“…….”
나에게서 를르슈를 뺏어가는데 어떻게 친구인 거지? 줄리어스는 납득할 수 없었지만, 이내 잠에 빠져드는 것 같이 나른해지는 를르슈의 목소리에 조용히 귀를 기울였다.
“스자쿠가… 뭘 잘못했어?”
“를르슈랑 사귀잖아.”
“그건 스자쿠가 나쁜 게 아니잖아…. 차라리 나를 미워해.”
“를르슈를 어떻게 미워해?”
를르슈는 눈이 반쯤 감기기 일보 직전이었다. 줄리어스는 잠에 빠져드는 를르슈의 턱을 붙잡았다. 줄리어스의 조금 차가운 손끝이 얼굴에 닿는 것에 를르슈가 간지럽다고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매끄럽게 뻗은 턱선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그의 뺨을 어루만지고, 그의 입술 근처를 더듬고 있으면 를르슈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물었다.
“줄리어스, 잠이 안 와?”
“응.”
“키스 해줘?”
“응.”
“대체 언제까지 해줘야 하는 거야…?”
“평생.”
“그건 무리지.”
를르슈는 줄리어스에게 입을 맞춰주었다. 어렸을 때부터 해왔던 키스였다. 입술끼리 가볍게 맞닿고 혀로 아랫입술을 문지르고 가볍게 서로의 혀를 핥고 깨무는 시늉을 하며 하는 키스. 줄리어스가 집요하게 혀를 놓아주지 않는 것에 를르슈가 숨쉬기가 괴로운 듯이 줄리어스의 어깨를 살짝 밀어냈다. 그러나 힘없이 밀어내는 손에 줄리어스가 밀려날 리가 없었다. 줄리어스는 를르슈의 입술을 천천히, 그리고 깊게 맛보고 삼켰다.
저에게 키스를 해주는 를르슈는 오로지 줄리어스만의 것이었다. 그 아무리 쿠루루기 스자쿠가 갈망한다고 한들, 이 키스를 받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줄리어스 뿐이었다. 를르슈의 침대를 아무렇지 않게 파고들며, 그의 품의 한 구석에서 원하는 만큼 키스를 조를 수 있는 것은 줄리어스의 특권이었다. 그건 태어날 때부터 지금까지 줄리어스만의 권리였다.
를르슈가 미간을 찌푸리고 힘들어하는 모습에 줄리어스는 그의 입술을 놓아주었다. 하아, 하아, 하고 숨을 고르는 를르슈는 줄리어스에게 이제 자라고 이불을 뒤집어 씌웠다. 조금 거칠게 느껴지는 손길이었지만, 를르슈는 줄리어스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았다. 오히려 줄리어스를 꼭 끌어안고서 잘 자라고 등을 토닥이기까지 해주었다.
줄리어스는 오지 않는 잠을 청하면서 를르슈의 허리를 끌어안았다. 오늘밤은 이걸로 넘어가지만, 다음은 어떻게 참아야 할지 모르는 밤이 올 것이다. 그럴 때가 오면… 를르슈는 어떤 표정으로 키스해줄까? 줄리어스의 입가에는 그제서야 미소가 지어졌다. 쿠루루기 스자쿠도 모르는 그 표정으로 를르슈와 키스할 생각을 하니 잠결에도 즐거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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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6.07.25 17:18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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