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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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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peat 7

Re:play / DOZI 2020.05.28 11:18 read.104 /

L.L.가 C.C.로부터 도망치고 나서 14년의 시간이 흘렀다. 

시간은 너무 빠르게 흐른다. L.L.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시간은 흘러갔다. C.C.는 L.L.를 찾아오지 않았다. 그녀가 없어져도 L.L.는 잘 살고 있었다. 이 년에 한 번씩 나라를 바꿔가면서 얌전히 숨어 살고 있었다. 늙지 않는 L.L.가 의심 받는 일이 없도록 2년이라는 싸이클을 지키고 있다.

벌써 일곱 번째 나라였다. 다음 달이면 떠날 준비를 해야 했다. L.L.는 몇 없는 짐을 챙기면서 한숨을 쉬었다. 가끔씩 이렇게 짐을 싸고 있을 때면 아주 예전에 버렸던 전화기가 생각났다. 

버리지 말 걸.

하지만 가지고 있어도 의미가 없는 것을 알고 있었고, 후회하는 지금도 소용없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알고 있는 것과 감정은 늘 다른 방향으로 흐른다. L.L.는 그런 감정은 사치스럽다고 생각하며 다시 고개를 흔들어 모두 털어냈다.

다음 나라로 떠나기 위한 마지막 날 밤이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서 새벽이 되어 겨우 잠든 L.L.는 꿈을 꾸었다. 

 

쿠루루기 스자쿠다. 

 

L.L.의 머리카락을 살살 쓸어넘기던 스자쿠는 눈을 휘며 웃고 있었다. 지금은 아무래도 스자쿠의 무릎 베개를 받은 채로 누워있는 모양이었다. L.L.는 그 상황이 뜬금없어서 잠깐 눈을 뜬 채로 숨도 멈추었다.

 

“잘 잤어?”

“잘 잤어, 가 아니잖아. 여기에 왜 또 온 거야? 무의식 주제에.”

“를르슈가 무의식적으로 날 부른 거니까.”

 

스자쿠가 L.L.를 를르슈라고 부를 때마다, L.L.는 오랜만에 를르슈가 된다. 

 

“정확히 말하면 를르슈가 여기에 온 거야.”

“뭐든. 네가 나타나면 기분이 안 좋아.”

“또 거짓말.”

 

를르슈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벌써 일어나? 를르슈 머리카락은 고양이 털 같아서 기분 좋은데.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 

 

“고양이를 제대로 만져본 적도 없으면서.”

“아픈데 찌르지 마.”

“됐어. 여기서 나가게 해줘.”

“응? 를르슈가 멋대로 나타난 거니까 혼자서 알아서 해야지.”

“네가 내 꿈에 멋대로 나타나는 거다!”

“그래? 지난번에도 그랬어?”

“그래!”

“그래서 지난번에는 어떻게 됐어?”

 

스자쿠의 순진한 물음에 를르슈는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어떻게 되었는지, 말하면 스자쿠는 상처 받을까. 그러나 그런 를르슈의 마음을 읽은 것처럼 스자쿠는 괜찮다고 말했다. 

 

“안 좋게 끝났어.”

“어떻게?”

“너, 알고 있으면서 그렇게 물어보는거지?”

“를르슈의 말로 듣는 게 엄청 중요하거든.”

“웃기는군, 무의식 주제에.”

“무의식이라고 모든 걸 다 알 수는 없잖아?”

“그래……. 너는 죽었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하게 됐어, 스자쿠.”

“미안한 느낌 하나도 안 드는데, 뭐, 를르슈 치고는 여기까지 한 건 잘했다고 해줄까?”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고개를 숙였다. 갑작스러운 그의 인사에 를르슈는 네가 죽었다고, 라고 다시 말을 반복했다.

 

“죽는 건 괜찮아, 어차피 난 무의식이고. 네가 만났던 나와는 다른 사람이니까.”

“……그래도 얼굴도, 이름도 똑같았어.”

“응, 그것도 나니까.”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건지 모르겠어. 너는 죽었지만 다시 살아났고…. C.C.는 네가 기어스의 조각이라고 말을 하고 있는데, 그게 맞는 건지는.”

“맞아. 기어스의 조각이야. 아마 너도 그렇게 이해하고 있으니까 나도 이렇게 대답하고 있는 거겠지? 정확하게는 알 수는 없지만, 확실한 건 나는 를르슈의 기어스라는 거야.”

“나의 기어스?”

“를르슈의 기어스는 어떤거야?”

“알고 있잖아, 한 사람당 한 번, 효과는 평생에 가까울 정도니까 기어스 캔슬러가 없으면….”

“하하하.”

 

난데없는 스자쿠의 웃음소리에 를르슈가 미간을 찌푸리고 그를 바라보자, 스자쿠는 배를 잡고 한참을 웃다가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그 기어스는 알고 있어. 그런 거, 우리 사이에는 이미 공공연한 이야기니까 굳이 할 필요는 없는데…. 를르슈, 좀 변했구나.”

“너는 사람이 친절하게 알려주는데도!”

“그러게, 갑자기 친절해져서 좀 놀랐어.”

 

를르슈는 원래 안 그러잖아? 스자쿠는 장난스러운 미소와 함께 그렇게 말했다. 그가 그렇게 여유롭게 웃는 것을 보는 건 정말 오랜만이라서 를르슈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꿈에서 깨어나야만 했는데, 방법도 모르고, 또 깨어나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꿈에서라도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결국 스자쿠와 마주보고 앉은 채로 있을 수밖에 없었다. 

 

“너랑 대체 무슨 이야기를 해야하는지….”

“굳이 무슨 말을 할 필요는 없어. 나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아무런 말도 안하고 있으면, 답답하잖아.”

“그런가.”

“너라도 해봐.”

“난 다 했는데.”

“뭔데, 방금 전의 그 기어스?”

“응. 를르슈의 기어스.”

“별 거 아닌 이야기를 하려고 여기에 왔어?”

“방금 전에도 말했지만, 를르슈가 여기에 온 거야.”

“말장난 하지 마.”

 

를르슈가 스자쿠의 머리를 쭉 잡아당기며 말했다. 아파. 아프다고 말하는 스자쿠의 말이 거짓말 같진 않았다. 를르슈도 자기 뺨을 쭉 잡아당겼다. 꼬집는 느낌에 뺨이 얼얼했다. 

얼얼했다. 아프다. 그러니까, 이건. 

 

“뭐야, 이거 꿈 아니야?!”

“꿈인데, 좀 생생한 꿈?”

“꿈인데 어떻게 아픈 거야?!”

“모르지, 를르슈가 모르는 걸 내가 알 수는 없거든.”

 

아마도 C의 세계가 아닐까?

무시무시한 소리를 태평하게 하고 있는 스자쿠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그런 게 어디 있어, 아직 기어스의 조각은…. 를르슈는 스자쿠의 앞에서 무심코 중얼거렸다.

 

“C.C.는 잘 지내?”

“…알면서 물어보는 거지?”

“모르니까 물어보는 거야.”

“여기가 정말 C의 세계라면 이미 알고 있을 거야.”

“그럼 여기는 C의 세계가 아닌 거 같아. 실제로 내가 너와 함께 다녀왔던 그곳과는 느낌이 좀 다르지 않아?”

 

거기는 좀 무서웠다면, 여기는 아늑한 기분이잖아.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자기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맞는 말이었다. 스자쿠의 말처럼 여기는 시간의 흐름도 매섭게 느껴지지 않았고, 다음을 위해 도망쳐야한다는 긴장감도 없었다. 휴식을 위해서 완벽하게 차단된 공간 같았다. 하지만 그런 달콤한 휴식 끝에 오는 위기는 늘 공포에 가까웠다. 그런 를르슈의 마음을 모르는 듯, 스자쿠는 그저 웃기만 했다.

 

“C.C.를 만난 적은 없어. 여기서 만난건 를르슈 뿐이야.”

“……영문을 모르겠군. 대체 뭐하는 곳이지?”

“있잖아, 를르슈.”

“응?”

“왜 나를 만나고 싶었어? 나는 를르슈한테 나나리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나를 다시 만나고 싶어할 줄은 몰랐어.”

“……딱히,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은 없다만.”

"그럼 여기에 내가 있을 리가 없어. 를르슈, 기어스라는 건 네가 말했다시피 소망과 닮아있다고 했잖아?“

“그 말은, 그 기어스의 조각이 꼭 나 때문에.”

“맞아.”

“맞다고?! 그럴 리가.”

“그렇지? 나도 그렇게 생각해! 너는 나나리가 더 중요했잖아. 그 다음엔 C.C.였고.”

“C.C.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 그런 마녀 따위.”

“그래도, 너는 C.C.를 선택했어.”

 

를르슈는 스자쿠가 저를 쳐다보는 것에 시선을 바닥으로 내던졌다. 어느새 바닥을 알 수 없는 풀밭으로 바뀐 채였다. 아니, 이 풍경은 익숙하다. 

여기는 에그제리카 정원이다. 제로 레퀴엠을 앞두고 이야기를 나누었을 그때와 같다. 

 

“나는… 그 선택에 대해서, 후회하고 있는 걸지도 몰라.”

 

를르슈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이게 정답일까. 눈치를 보면서 스자쿠를 살피면 스자쿠는 미묘한 표정을 지으며 를르슈를 쳐다보았다. 

 

“왜 후회하는 거야?”

“너와 이야기를 해본 적이 없으니까.”

“무슨 이야기?”

“너에게 못한 이야기가 있어.”

 

유피에 대한 것, 나에 대한 것, 너에 대한 것, 모두 다. 하지만 그런 것들을 정리하려고 해본 적은 없었다. 그 이전에 이런 것을 자각해본 적도 없었다. 그저 이 끝없는 삶이 괴로워서 도망치고, 그 마녀가 걸어버린 저주로부터 도망치고, 도망 밖에 모르는 인생이다. 후회밖에 남지 않은 지금에서야 이제 깨달았을 뿐이었다. 

 

“나 말이야, 나는 를르슈에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어.”

“뭔데?”

“하지만 지금은 기억 안 나.”

“…….”

“기억하지 않아도 되는 사소한 일들이었던 거야.”

“…그, 래.”

“그렇다고 를르슈가 신경 쓰고 있는 게 다 부질없는 것들은 아니야. 나를 계속 생각해줘서 기뻐. 그렇지만….”

 

나에게 지금은 말할 수 없는 거 같아. 스자쿠는 조금 슬픈 표정을 지었다. 를르슈의 뺨을 매만지는 손끝이 차게 식어있었다. 

 

“네게 물어보고 싶은 이야기는 없어도, 듣고 싶은 말이 있었어. 하지만 시간이 다 된 거 같아.”

 

 스자쿠의 차가운 손이 를르슈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를르슈,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뭐?”

“일본에서 만나. 그럼 안녕.”

 

에그제리카 정원의 계단에서, 이번에도 스자쿠는 를르슈를 밀어버렸다. 언제 계단으로 내려간거람?! 를르슈는 비명을 지르면서 꿈에서 깨어났다. 

꿈에서 깨어난 L.L.는 숨을 몰아쉬면서 다음 나라를 떠올렸다. 그 나라의 위치를 머릿속의 지도에서 그려보았다.

그곳은 일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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