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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2

Summer / DOZI 2021.07.21 10:02 read.150 /

를르슈가 머그잔 속의 커피를 절반 정도 비웠을 무렵이었다. 그 사이 스자쿠는 를르슈와 함께 듣고 있는 교양 수업에서의 질문을 대부분 정도 해결했다. 를르슈의 알아듣기 쉬운 설명에 스자쿠는 금세 이해했다. 포스트잇으로 덕지덕지 붙은 교양서는 제목부터 스자쿠의 취향이 아니었다. 아마 그 교양 과목 자체가 스자쿠의 관심 밖에 있는 분야였다. 실제로 스자쿠는 수업시간 내내 졸고 있거나 정신을 놓고 있기 일쑤였다. 그럼에도 그 수업에 꿋꿋하게 출석하는 이유는 하나 뿐이었다. 를르슈와 시간이 맞는 교양수업은 그것이 유일했기 때문이었다.

학기 초 오리엔테이션 내내 졸린 눈을 부릅 뜨려고 애를 쓰는 스자쿠에게 를르슈는 다른 수업을 들을 것을 권했지만, 스자쿠는 극구 반대하며 를르슈와 같이 수업을 듣겠다고 했었다. 를르슈랑 앞으로 수업 들을 날이 얼마나 있겠어! 이런 기회를 놓칠 순 없어. 단호하기까지 한 그 말에 를르슈는 조금 어이가 없었다. 아직 2학년이고, 앞으로 2년이나 더 학교를 다녀야하는데 수업을 같이 들을 기회 정도는 시간적 여유를 낸다면 간단할 것 같았다. 그러나 이미 스자쿠가 그러기로 했다면 꺾을 방법도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를르슈는 쓴웃음을 지을 뿐이었다. 네 학점이니까 네가 책임져—라고 나름 냉정하게 말했지만 결국 지금처럼 스자쿠의 질문 공세를 받아주느라 정신이 없었다.

응용 문제의 답안을 써내리느라 한껏 집중한 스자쿠의 모습을 힐끔거리다가, 를르슈는 그의 손 밑에 깔려 있는 종잇조각들을 빤히 쳐다보았다. 스자쿠가 ‘보지 마!’라고 말했지만 들킨 이후에 보지 말라고 해봤자 의미가 없다는 것을 본인도 알고 있을 것이다.

 

“스자쿠, 손 잠깐 치워줘.”

“응? 알았어.”

 

스자쿠는 이렇게나 단순하다. 를르슈는 손쉽게 들어온, 스자쿠가 감추고자 필사적이었던 여행 계획서 가안을 훑어보았다. 책에 코를 박고서 쓱쓱 써내리고 있는 스자쿠는 제가 지금 뭘 했는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그런 모습에 양심이 조금 찔리긴 했지만, 이 정도면 단순한 것도 죄다. 를르슈는 그런 자기합리화를 하며 종잇조각을 천천히 읽어보았다.

 

1. 바다

- 어렸을 때 가던 섬

2. 산

- 쿠루루기 신사 쪽… 

3. 비행기

- 갈 때 : 오전 출발

- 올 때 : 오후 출발 

4. 차

- 렌트 ? 

5. 가는 사람 

- 를르슈

- 나

 

5의 항목에서 를르슈는 눈을 깜빡거렸다. 

 

- 로로 

- 나나리 

 

 

“로로랑 나나리도 가는 거야, 여행?”

“응? 아마 시간이 된다면 나쁘지 않을 거 같아서…가 아니라, 언제 가져간 거야?!”

“네가 줬어.”

“그럴 리가 없잖아!”

“맞아, 그냥 내가 봤어.”

 

순순히 자기 혐의를 인정하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입술을 뻐끔거렸다. 바보 같은 얼굴. 를르슈가 쿡쿡거리며 웃는 것에 스자쿠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그의 손에 들려 있던 종잇조각들을 뺏어들었다. 다 봤으니 굳이 붙들고 있을 이유는 없는 를르슈는 기꺼이 내주었다. 그나저나, 

 

“로로랑 나나리도 데려가?”

“두사람 다 내년에 수험생이니까 같이 놀 시간 없잖아.”

“뭐, 그렇겠지만….”

“그래서 를르슈가 외로워할 거 같아서, 미리 좋은 추억 만들 겸.”

“같이 사는데 외로워할 리가.”

“거짓말. 지난주 주말에 로로랑 나나리가 친구들이랑 논다고 너 버리고 갔을 때 되게 외로워했잖아.”

“안 버렸어! 원래 그 나이 때는 또래 친구들이랑 노는 거도 중요한 거야!”

 

를르슈는 정곡을 찔린 것을 감추듯이 버럭 화를 냈다. 그런 를르슈의 심리를 읽은 거마냥 스자쿠는 빙글빙글 웃을 뿐이었다.

 

“그래서 갑자기 할 일이 없어졌다고 나랑 데이트 했잖아. 아, 이건 좀 너무하지 않아? 동생들한테 버림 받았다고 남자친구를 대타로 부르는 건.”

“뭐…?”

“아니, 원래 그날 내가 데이트하자고 했을 땐 쌍둥이랑 놀 거라고 나 버리고 갔잖아. 기억 안 나?”

“내가 언제 버렸다고….”

“그렇게 자각 없이 버리고 가는 게 정말 나쁜 거야, 를르슈!”

 

비참해! 스자쿠의 마지막 말에 를르슈는 허어, 하고 한숨을 쉬었다. 그게 그렇게까지 비참할 일인가, 생각이 들면서도, 한편으로는 쌍둥이 동생들이 자신보다 친구들을 선택했을 때의 비참함을 떠올리면 버려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래, 이럴 때는 솔직하게 인정하는 게 낫겠지.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버리고 가서 미안해.”

“아니, 그걸 또 인정하면…!”

“고의로 널 버린 건 아니야.”

“그만해, 진짜 비참해지려고 해.”

 

를르슈의 진정 어린 사과에 스자쿠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빼앗아든 종잇조각을 꼬깃꼬깃 접기 시작한 스자쿠는 깊게 심호흡을 했다. 어차피 다 봐버렸으니 이제 숨겨봤자 의미가 없겠지.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했다. 어차피 계획은 나보다 를르슈가 잘 짜는 편이고.

 

“바다나 산으로… 좀 한적한 곳에 가서 놀면 어떨까 싶어서.”

“나쁘진 않네.”

“를르슈랑 단둘이 있는 건 언제든지 할 수 있으니까. 네 명이서 멀리 나가본 적도 없잖아?”

“그렇지.”

“그래서… 로로와 나나리도 같이 갔으면 좋겠습니다.”

 

를르슈는 그 다음 말을 계속 기다리는 듯이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자쿠의 입에서는 아직 중요한 말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그래서?”

“그, 그래서? 어, 그래서. 음. 아, 그래서! 미안, 아니 죄송합니다. 멋대로 계획 짜놓고 있어서.”

 

드디어 사과를 했다. 를르슈는 이 고집불통의 입에서 나온 사과의 말에 겨우 웃어보였다. 따지고 들려면 짚을 구석이 한두 군데가 아니었지만, 이 정도로 만족하기로 했다. 를르슈의 미소에 스자쿠는 안심한 듯이 헤헤 소리를 내며 실없이 웃었다.

 

“로로랑 나나리는 내년에 수험생이니까 자기들끼리 일정이 있을 지도 모르잖아. 내가 먼저 물어보고 알려줄게. 만약 안 된다면….”

“아, 안 되면?”

“나랑 단둘이 가야지, 뭐.”

 

불만이라도 있어? 를르슈의 질문에 스자쿠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불만이 있을 리가! 오히려 환영이지! 또 솔직하게 나오는 그의 말에 를르슈는 겨우 웃음을 참았다.

 

“너 너무 속이 보인다, 스자쿠.”

 

그 말에 스자쿠는 큼, 하고 헛기침을 했다. 그래도 로로랑 나나리가 같이 가면 더 좋지. 뒤늦게 덧붙여지는 마음에도 없어보이는 말에 를르슈는 결국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리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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