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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3

Summer / DOZI 2021.07.22 11:12 read.134 /

아직 여름의 한창도 아닌데도 너무 더웠다. 햇빛을 피하면 그럭저럭 버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그늘 밑은 그렇게 쾌적하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축구공을 쫓으며 운동장을 내달리는 남학생들이 있었고, 달릴 기력이 없이 더위에 지쳐버린 아이들은 맥없이 그늘에 앉아 있었다.

나나리는 머리를 높게 묶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머리를 묶으면 한결 시원해지긴 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일시적이었다. 금방이라도 냉방이 빵빵하게 돌아가는 교실로 돌아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나나리와 같이 있던 여자아이들은 평소라면 수다를 떨고 있었을 테지만, 지금은 뜨끈한 햇볕 아래에서는 입 하나 열기도 귀찮은 듯 입을 다물고 있었다.

그때였다. 축구공을 사이에 두고서 이리저리 몸싸움을 하던 남자들 사이에서 우와, 하는 함성이 터져나온 것이다. 여자들 사이에서도 덩달아 감탄사가 튀어나왔다. 잠시 다른 곳을 보고 있었던 나나리는 상황을 따라가지 못해 옆자리에 있던 친구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방금 전에 람페르지 군이 골을 넣었어. 대단하네— 거의 세 명이서 수비했는데도 뚫고 가네.”

“아, 그랬어요?”

“람페르지 군은 의외네. 운동하는 거 안 좋아할 거 같은데.”

“로로는 나름 승부욕이 강해서….”

 

나나리는 어느새 운동장 한 가운데서 슛을 가로채서 다시 달리고 있는 제 쌍둥이를 쳐다보았다. 로로는 이 더운 날에도 이를 악물고서 질주하고 있었다. 왜 저렇게 열심히 하지? 뭐였더라, 아이스크림 내기였던가. 고작 아이스크림 하나 때문에 저렇게 뛴다고? 나나리는 질린 눈으로 또 골문을 향해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달리는 로로를 바라보았다. 제 쌍둥이지만 가끔 저런 모습을 보면 정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다. 

로로는 또 다시 골을 넣었다. 달려드는 수비수들 사이로 슛은 깔끔한 선을 그리며 골대를 통과했다. 아! 상대팀의 절규 소리가 크게 들렸다. 같은팀 아이들은 로로에게 달려들어 장난스러운 포옹을 했다. 붙지 마, 더워! 그렇게 말해놓고 나서도 로로는 그들을 크게 밀어내지 않았다. 오히려 즐겁다는 듯이 웃고 있었다.

골이 그렇게 들어감과 동시에 수업시간이 끝나는 종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교실로 들어갈 수 있는 것이었다. 더위에 지쳐있던 아이들의 얼굴에 화색이 돌면서 다들 자리에서 일어나기 바빴다. 건물로 들어가는 중에도 축구를 했던 아이들은 시끌벅적했다.

 

“람페르지 진짜 공 잘 차더라. 연습해?”

“딱히….”

“옆반에 축구부 주전도 있었는데. 람페르지가 더 잘 뛰는 거 같았어.”

“그럴 것 까지야.”

 

나나리는 저보다 앞서 가는 아이들 사이에 있는 로로와 그의 같은 반 친구들 사이에서 들리는 대화를 들었다. 친하게 붙어오는 같은 반 아이에게도 약간 낯을 가리는 것 같으면서도 꼬박꼬박 대답하면서 웃고 있는 것이 로로다웠다. 안 뛸 것 같이 굴면서도 한 번 부탁 받으면 거절하는 법 없이 기꺼이 최선을 다하는 것까지. 그 사이에 매점을 다녀온 아이들이 아이스크림을 나눠들고 있었다. 람페르지! 너도 골라! 그 우렁찬 소리에 나나리는 무심코 부럽다, 라고 생각했다. 아이스크림, 나도 먹고 싶네. 하지만 매점까지 가기엔 귀찮고 멀었다.

 

“나나리!”

 

멍하니 친구들 사이에 휩쓸려 걷고 있을 때였다. 로로의 목소리가 저를 부르는 것에, 나나리는 뒤를 돌아보았다. 옆반으로 갔어야할 로로는 나나리에게 아이스크림을 내밀었다. 그것은 로로와 나나리가 제일 좋아하는 딸기맛이었다.

 

“아이스크림, 먹고 싶을 거 같아서.”

“이건 로로 거잖아요?”

“난 괜찮아. 나나리 먹어.”

 

나나리의 손에 아이스크림을 꼭 쥐어주고서는 로로는 자기 반으로 향했다. 그 사이에 나나리의 친구들이 그것을 보고서 수군거렸다. 뭐야? 와, 나나쨩, 람페르지 군이 아이스크림 준거야? 부럽다—! 나도 저런 오빠 있었으면! 조금 시끄러워진 분위기 속에서 나나리는 으응, 하고 어색하게 웃으면서 아이스크림 포장을 뜯어 한 입 물었다. 시원한 딸기맛이 상큼했지만 어딘가 찝찝하게 느껴졌다.

그 찝찝함의 정체는 그날 저녁 밝혀졌다. 

그래, 집밖에서는 그렇게 쌍둥이 여동생을 잘 챙기는 오빠인척 구는 것이다. 나나리는 ‘나나리 것!’이라고 적어놓은 푸딩이 내용물이 텅 빈 채로 쓰레기통에 버려진 것을 보고서 소리를 빼액 질렀다. 범인은 누구냐 할 것 없이 당연히 로로였다. 나나리는 소파에 드러누워 휴대폰 게임에 열중인 로로에게 일갈했다.

 

“로로! 내 푸딩 먹지 말라고 했잖아요!”

“아, 그거 나나리 거였어?”

“‘아, 그거 나나리 거였어?’라니? 여기에 제 이름 적어놨잖아요!”

“못 봤어. 아님 좀 더 크게 적어놓던가.”

 

시큰둥하게 대답하고 있는 로로의 모습에 나나리는 씩씩거렸다. 그런 그녀의 모습에 로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

 

“낮에 아이스크림 줬잖아. 그걸로 봐줘.”

“누가 달랬어요!”

“그래도 먹었잖아—.”

 

늘어지게 대답하는 로로의 모습에 열이 받은 나나리는 들입다 욕실 쪽으로 달려갔다. 욕실에는 방금 막 외출을 마치고 돌아온 를르슈가 샤워를 하고 있는 중이었다. 이젠 최후의 수단이었다. 

 

“오라버니! 로로가 내 푸딩 먹었어요!”

“치사하게 형한테 일러?!”

 

욕실 앞에서 고자질을 하고 나면 로로가 득달같이 달려왔다. 나나리와 로로는 욕실 문 앞에서 우악거리면서 싸웠다. 그러니까 로로가 내 푸딩 안 먹었으면 될 거 아니에요! 나나리도 내 아이스크림 먹었잖아! 누가 달랬냐고요! 누가 그렇게 이름 작게 적어놓으래? 이름 커다랗게 적어놓은 푸딩은 먹기 싫단 말이에요! 그게 말이 돼?

 

“둘 다 그만.”

 

수건을 막 들고 나온 를르슈는 서로 들이박을 기세인 쌍둥이 동생들을 보면서 한숨부터 쉬었다. 상황은 샤워를 할 때부터 다 들려서 파악이 됐지만, 그보다 더 앞선 걱정이 있었다.

 

“너네 고등학생 아니야? 아직도 푸딩 하나 가지고 그렇게 싸워야겠어?”

“그냥 푸딩이 아니란 말이에요!”

“그냥 푸딩이었어!”

“내 이름이 적힌 푸딩이었잖아요!”

“나나리 그만! 로로도 그만!”

 

씩씩거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를르슈는 겨우 둘을 떼어놓았다. 거실 소파에 둘을 앉혀놓고 나서 를르슈는 지갑에서 돈을 꺼냈다.

 

“이 돈으로 로로는 나나리한테 푸딩 사다주고, 나나리는 로로한테 아이스크림 사다줘.”

“그치만 오라버니!”

“형!”

“싸울거면 나가서 싸워!”

 

두 사람의 손에 돈을 꼭 쥐어준 를르슈는 얼른!—하고 다그쳤다. 인상을 찌푸린 채로 신발을 신고 나서는 쌍둥이들의 모습에 를르슈는 재빨리 배웅했다. 나나리가 불퉁한 표정으로 문을 열고 나가고, 로로가 그 뒤를 따랐다.

그제서야 조용해진 집구석에 를르슈는 소파에 걸터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아니, 푸딩 하나로도 저렇게 싸우는 애들을 데리고 어떻게 여행을 가…? 를르슈는 오늘 스자쿠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리며 찡그려진 미간을 꾹꾹 눌렀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생길의 전조였다. 여행은 즐겁겠지만 육아는 별개의 문제이다. 를르슈는 하아, 하고 깊게 한숨을 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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