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살의 여름, 쿠루루기 스자쿠는 제 방 앞에 떨어진 담배 한 갑을 주웠다.
스자쿠가 서있는 곳은 흑의 기사단 본부 건물, 그리고 그 중에서도 가장 경비가 삼엄한 제로의 사실 앞이었다. 그런 곳에 덩그라니 놓여진 담배 한 갑, 열어보면 서너 개비만 비어있을 뿐이었다. 가면을 쓴 스자쿠는 주변을 둘러보았다. 스자쿠 말고는 아무도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원래 제로가 나올 시간도 아니다. 보초를 서는 사람들끼리 교대를 하고 있을 때, 스자쿠가 잠깐 밖을 나온 것이었다.
이 기가 막힌 타이밍에 그 담배는 스자쿠를 기다리고 있는 것 같았다.
‘주인을 찾아줘야겠지.’
스자쿠는 장갑을 낀 손으로 담뱃갑을 쥐었다. 사람들이 올 때까지 기다릴까 했지만 이상하게 사람의 발소리가 들리자 스자쿠는 재빨리 방 안으로 들어갔다. 담배의 주인을 찾아줘야하는데, 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자신의 주머니에 그 담배를 집어넣었다.
심장이 쿵쾅거렸다. 어렸을 때에도 해본 적이 없는 도둑질이다. 아니, 이건 도둑질이 맞나? 바닥에 떨어진 걸 주웠을 뿐… 아니, 그래도 주인을 찾아줄 수 있었는데, 그렇지만 고작 담배잖아? 의자에 털썩 주저 앉은 스자쿠는 가면 안에서 한숨을 내쉬었다. 숨이 내뱉어지는 입술 끝이 파르르 떨렸다. 정말 도둑질을 해버린 아이처럼 떨고 있는 자신이 우스웠다.
‘제로가 도둑질을 해? 그것도 남이 흘린 담배를?’
‘얼른 돌려줘야 하는데.’
스자쿠는 문밖에서 느껴지는 인기척에 나가볼까 하다가, 우선 ‘아무도 들어오지 않는 시간’이기 때문에 조심스럽게 가면을 벗었다. 시원하게 닿는 공기에 호흡하는 것이 낯설었다. 손끝을 답답하게 감싸는 장갑도 벗었다. 그리고는 주머니에 넣어둔 담뱃갑을 꺼내보았다.
담배는 한 번도 입에 대본 적이 없었다. 술은 몰라도, 담배는 해본 적이 없었기에, 스자쿠는 손끝에서 굴려지는 한 개비의 담배를 보면서 그것을 어색하게 손에 쥐어보았다. 적당히 불을 붙일 만한 성냥도, 라이터도 없기 때문에 불을 붙일 순 없었다. 그래서 입에 무는 시늉을 하는 것까지가 고작이었다. 스자쿠는 입술 끝에 걸린 담배의 느낌에 희미하게 웃음이 새어나왔다.
‘대체 뭘 하고 있는 건지.’
쓰레기통으로 입에 물었던 담배를 던져버렸다. 어른의 흉내라도 낸 아이가 된 기분이었다. 흉내를 냈다는 뿌듯함 보다는 아무것도 모른다는 수치심이 느껴졌다. 스자쿠는 한숨을 내쉬면서 책상 위에 올려둔 담뱃갑을 바라보았다.
‘돌려주지 않으면, 훔친 게 되는 건데. 제로가 담배를 훔쳤다고 하면 너무 모양이 웃기잖아.’
제로의 사실 앞에 있는 감시 카메라가 모든 것을 지켜보고 있었을 것이다. 경제관념이 철저한 사람이라면 이 담배를 찾으려고 온 사방을 뒤지다가 감시 카메라도 뒤지고 있을 지도 모른다. 아니, 뭐 그런 사람은 드물겠지만. 스자쿠는 담뱃갑을 툭툭 두드리다가, 책상 서랍을 열어 구석 깊숙한 곳에 그것을 집어넣었다.
뒤진다면 쉽게 찾아낼 수 있지만, 그 누가 제로의 사실에 마음대로 들어와 담배 하나 찾겠다고 책상을 뒤질까. 스자쿠는 가면을 썼다. 이제 곧 나나리와의 면담을 위해 나가야 할 시간이었다. 스자쿠는 나가기 직전에 방을 둘러보며 책상 쪽을 쳐다보았다.
‘주인한테 가져다주는 게 맞겠지만…….’
이유는 알 수 없다. 돌려주고 싶지 않았다. 훔치고 싶다. 가지고 싶다. 담배는 건강에 좋지도 않고, 제로의 이미지에도 큰 타격이 갈 것 같지만, 아무튼 그러고 싶었다.
‘어쩌면 나쁜 짓을 하고 싶었던 걸지도.’
스자쿠는 그 생각이 들자, 담배를 입에 물었던 시늉을 했던 것처럼 웃음이 나왔다. 나쁜 짓과 제로, 정말 어울리지 않는 말이다. 정의로운 제로가 어떻게 남의 담배나 훔치는 좀도둑 짓을 하는지.
하지만 그러고 싶었다. 정말 오랜만에 이유 없이 ‘그러고 싶었다’라는 욕구로 스자쿠는 일관했다. 제로 실격이네, 하고서 스자쿠는 쓴웃음을 지었다.
“내 담배, 네가 가지고 있지?”
일주일이 지나서였다. 흑의 기사단 파견 원정을 나갔던 카렌이 입을 열었다. 스자쿠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카렌을 쳐다보았다. 담배? 무슨 담배? 스자쿠의 맹한 얼굴에 카렌은 얼씨구, 하고 혀를 찼다.
카렌은 스자쿠가 가면을 벗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상대였다. 카렌이 내미는 서류를 훑어보고 있는 와중에, 스자쿠는 책상 위로 무언가를 내려두는 카렌을 보았다. 뭔가 했더니 ‘카페 제로 7호점’이라고 적혀있는 싸구려 라이터였다.
“담배는 적당히 펴.”
“그러니까 무슨 담배…?”
“내가 여기 방 앞에 담배를 흘렸는데, 네가 가지고 들어갔거든?”
“……내가?”
“그래. 일주일 전에.”
일주일 전, 담배, 내가? 스자쿠는 그 단어들의 조합을 곰곰히 생각했다. 서류의 한 구석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다가 스자쿠는 ‘아아!’하고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카렌은 화들짝 놀라며 한 걸음 뒤로 물러섰다.
“잊고 있었어! 여기 있어, 찾아줄게, 잠깐만…!”
“아니, 됐어.”
“그래도.”
“괜찮다니까. 그리고 너도 담배 정도는 할 수 있잖아?”
“나는 제로야, 담배 같은 건 좋지 않아.”
“아니, 제로는 담배 피면 안 된대? 누가? 를르슈가?”
그의 이름이 나오자 스자쿠는 대번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런 의미가 아니잖아, 라고 말하듯이 카렌을 노려보면 카렌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아무튼 담배는 나빠.”
“애한테나 나쁘겠지, 넌 어른이야, 임마. 담배 정도는 아무도 뭐라고 안 한다고."
카렌의 쏘아붙이는 말에도 스자쿠는 단호했다. 책상 서랍에서 담배를 꺼냈다. 스자쿠가 턱하니 내놓는 것에 카렌은 질린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결국 카렌은 스자쿠가 내민 담배를 손에 들었다. 그리고 담뱃갑에서 담배 한 대를 꺼낸 뒤, 카렌은 스자쿠의 앞에서 담뱃불을 붙였다.
“여기 내 방이거든? 불 꺼.”
“가면이라도 쓰고 있던가. 어차피 여기 스프링쿨러도 작동 안하지?”
“…그게 무슨 상관이야?”
카렌은 구겨진 미간을 펼 생각조차 하지 않고서 저를 쳐다보는 스자쿠에게 말했다.
“너는 여기서 불이라도 나면 죽을 생각이야?”
“…….”
“죽을 생각으로 스프링쿨러도 안 달고 사는 게, 담배 걱정은 왜 하는데?”
대답하지 못하는 스자쿠를 보면서, 카렌은 킬킬거리면서 담뱃갑을 내밀었다. 카렌의 웃음소리에 스자쿠는 고개를 돌렸다.
“나는 내 몸을 걱정하는 게 아니야. 그냥… 제로로써 옳지 못한 일이니까.”
“알아, 알아. 하지만 가끔씩은 나쁘지 않다 이거야. 나도 피우잖아?”
“너도 담배는 끊는 게 좋아.”
“나한테 설교할 생각 하지 말고.”
카렌은 스자쿠에게 담배 한 대를 꺼내주었다.
“그리고 스자쿠, 네가 진짜 제로였다면 바로 이 담배 주인을 찾아줬어야지.”
“여기에 스자쿠는 없어.”
“으, 진짜 꽉 막혔어. 하여튼, 너도 어느 정도 이런 일탈을 해보고 싶었던 거 아니야? 뭐— 어른이 담배 피우는 게 뭐가 일탈이냐만, 제로가 담배를 피우면 일탈이겠지.”
“……일탈?”
카렌은 스자쿠가 들고 있는 서류 한 장을 빼앗았다. 이거 방금 전에 오타 있다고 한 거였지? 가져갈게. 응? 응. 그리고 카렌은 그 서류에 담뱃재를 떨구었다. 으악, 뭐하는 거야? 어차피 폐기될 서류라서 괜찮아, 괜찮아. 스자쿠는 태연한 카렌의 모습에 어이가 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카렌은 멀어지면서 스자쿠 쪽으로 라이터를 두었다.
“처음엔 기침이 좀 날 수도 있는데, 좀 익숙해지고 나면 난 술보다 좋더라.”
“……언제부터 피운 거야?”
“음, 몰라. 꽤 됐어. 자주 피우는 건 아니고.”
카렌의 적당한 대답을 들으면서, 스자쿠는 손끝에 닿는 담배를 굴리다가 그것을 입에 물었다. 오, 모양이 나는데. 카렌의 놀리는 듯한 말에 스자쿠는 아랑곳않고 불을 붙였다. 알려주지 않았음에도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불 붙은 담배가 타들어가는 것을 보았다.
후우, 하고 숨을 내쉬면 연기가 흩어졌다. 먼저 다 태운 카렌은 스자쿠에게 불에 지져진 서류 조각을 내밀었다. 여기에 대충 털어. 나중에 내가 재떨이도 선물해주마. 카렌의 농담에 스자쿠는 쓰게 웃었다. 신기하게 담배는 익숙한 것처럼 기침조차 나지 않았다.
필터 끝까지 태우는 스자쿠의 모습에 카렌은 창문을 열었다. 스자쿠는 급하게 가면을 썼다. 그런 스자쿠의 모습에 카렌은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
“이런 거라도 즐길 여유가 있어야 제로 해먹지. 아무튼 난 간다. 고생해.”
그녀는 그렇게 나갔다. 카렌이 두고 간 담뱃갑과 라이터를 물끄러미 쳐다보던 스자쿠는 다시 서랍 속에 그것들을 집어 넣었다. 바로 옆에 쓰레기통이 있었지만, 버리기는 싫었다.
일탈, 여유, 제로. 모두 스자쿠와 어울리지 않는 말이었지만, 담배는 어딘가 맞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