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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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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oresque 3

2세 / DOZI 2020.11.15 02:38 read.168 /

2세물입니다~ 

오리지널 캐릭터가 나와요! 

 

 

 

 

 

 

 

 

 

오랜만에 꾼 꿈은 를르슈의 집중력을 흐리게 만들었다. 멍하니 있던 사이에 시간은 금방 흘러버렸고, 를르슈는 노트북을 덮음으로써 오늘의 작업을 그만두기로 했다. 마감까지는 시간이 넉넉했으니 문제는 없었다. 오늘은 여유롭게 보내기로 한 만큼 초조하게 굴지 않으려고 했다.

우선은 청소기로 한 번 바닥을 쓰는 것으로 기분 전환을 하려고 했다. 청소는 사람의 마음을 정리하게 만든다. 물리적으로 깨끗하게 비우고 나면 기분은 훨씬 나아지기 마련이었다. 찌뿌둥한 몸을 일으키며 청소기를 돌리고 있으면 세이류의 방 근처에서 먼지가 요란하게 빨려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또 과자 부스러기인가?

의외로 군것질을 좋아하는 세이류의 방에서는 과자 부스러기나 몰래 사먹고 버리지 않은 봉지과자의 쓰레기 같은 것들이 나오곤 했었다. 제때 정리를 하면 내가 들어갈 일도 없잖아.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면서 세이류의 방문을 열었다. 

아이의 사생활을 존중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깨끗한 생활을 유지시켜주는 것도 부모의 의무이다. 세이류의 방으로 들어간 를르슈는 침대 바닥까지 꼼꼼하게 청소했다. 책상 주변만큼은 깔끔했지만 책장에는 다 먹은 과자박스가 책 사이에서 나뒹굴고 있었다. 그것까지 치우고 나면 바닥은 먼지 하나 없이 깨끗해져있었다. 

세이류의 방문을 닫고 나오기 전에, 책상 위에 놓여져 있는 가족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처음 교복을 입었을 때,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약 2년 전의 사진이었다. 입학식 때 가족 셋이서 단란하게 서있는 것을 나나리가 찍어준 것으로, 세이류가 꼭 제 방에 장식해두고 싶다고 말했던 것이다.

 

내년이면 고등학생인가?

 

를르슈는 그 사진을 손끝으로 쓸어보며 그런 생각을 했다. 나는 고등학생 때 뭘했더라, 하고 떠올릴 필요는 없었다. 고등학생 시절은 모두 스자쿠에 대한 짝사랑으로 속이 타들어가는 생활 뿐이었다. 나중에 스자쿠와 마음이 통하고 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그도 다를 바 없었다지만, 를르슈가 보기엔 스자쿠는 자기 없이도 평생을 잘 살 것처럼 굴었기 때문에 믿기가 어려웠다. 

세이류에게도 그런 사람이 나타나겠지. 그럼 좀 쓸쓸해지겠는걸.

그런 생각의 마무리는 ‘아직 이르다’라는 결론으로 끝이 났다. 아직까지는 어리고, 진로희망서도 혼자서 겨우 쓰는 어린 아이이다. 물론 세이류가 보통의 아이들보다 영특하고 똑부러지는 아이라는 것을 알고 있지만, 아직까지 를르슈의 눈에는 어린 아이일 뿐이었다. 

그러니까 그런 걱정도 한참 뒤에나 해도 늦지 않을 것이라고, 를르슈는 자신을 달래면서 세이류의 방문을 닫고 나왔다. 

 

“확실히 그런 생각을 하는 건 좀 이르네.”

“그렇지?”

“아직 중학생이잖아.”

 

세이류가 부 활동을 하는 친구를 돕는다는 이유로 저녁에 늦게 들어오는 날이었다. 늦는다는 전화를 받은 를르슈는 너무 늦게까지는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고선 전화를 끊었다. 옷을 갈아입고 있던 스자쿠는 그 모습에 웃기만 할 뿐이었다.

아직 어린애니까, 라는 말을 하는 스자쿠에게 를르슈는 오늘 있었던 일에 대해서 이야기했다. 그 시절의 꿈을 꿨다는 이야기만 빼놓고 말을 전하는 중에, 스자쿠의 지긋한 시선에 눈을 맞추면 그런 말을 하는 것이다. 

 

“그래도 벌써 중학생이니까…. 애들 크는 건 의외로 금방이고.”

“그렇게 말하면 또 그렇지.”

“를르슈는 섭섭해?”

“안 섭섭할 리가 있나.”

 

저녁 식탁에는 오랜만에 단둘이었다. 섭섭하다고 말하는 를르슈에게 스자쿠는 그저 식사를 이어갈 뿐이었다. 를르슈는 그런 스자쿠의 눈치를 힐끗 보면서 입을 열었다. 

 

“둘째라도 가질까?”

“안 돼.”

 

부드러운 어조였지만 그것은 완강한 반대였다. 절대로 그 뜻을 굽힐 수가 없다는 듯이 여유롭게 웃어보이는 스자쿠를 꺾을 수는 없었다. 이 문제에 대해서 를르슈와 스자쿠는 몇 번이고 싸우곤 했었다. 이번에도 그 조짐이 보였다.

하지만 를르슈도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무어라 말을 하려고 입을 열려는 를르슈에게 스자쿠는 다시 한 번 못을 박았다. 

 

“안 돼. 절대로 안 돼. 이젠 나이도 있고 예전보다 체력도 더 없잖아.”

“스자쿠.”

“이제 이 이야기는 안 하기로 했잖아?”

 

그의 말투에서는 화를 억누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모처럼 단둘이 먹는 저녁 시간에 싸움을 할 생각은 없었다. 그렇기에 를르슈의 기분이 상하지 않게, 스자쿠는 다정한 목소리로 오늘 하루에 대해서 물었다. 를르슈도 더는 그 주제에 대해서 말을 꺼내지 않은 채로, 대화를 이어갔다.

대화의 한 구석에는 알 수 없는 어두운 분위기가 있었지만, 두 사람은 그 경계를 지켜가며 식사를 했다. 때마침 세이류가 돌아왔기 때문에 다행이었다.

 

* * *

 

쿠루루기 스자쿠는 제 옆에서 자고 있는 를르슈의 얼굴을 만져보았다. 따뜻한 체온이 맞닿아 전해지는 온기가 기분이 좋았다. 를르슈의 부드러운 머리카락도 넘겨서 하얀 이마도 쓸어보았다. 제 얼굴을 만지고 있는 손길에 잠깐 미간을 찌푸리던 를르슈는 이내 눈을 떴다. 깨울 생각은 없었던 스자쿠는 놀란 눈으로 를르슈와 마주했다. 

 

“미안, 안 깨우려고 했는데.”

“…왜 안 자고 있어? 잠이 안 와?”

 

를르슈는 다정하다. 깨워버린 것보다 자고 있지 않은 것을 신경 쓸 정도로. 스자쿠는 별 거 아니라고 말했다. 한참 졸린 눈으로 를르슈는 스자쿠의 품을 찾았다. 가슴에 가볍게 매달리는 온기에 스자쿠는 그를 끌어안았다. 

를르슈를 끌어안고 있으면 새삼스러운 감회가 느껴졌다. 이전에는 그와 이런 관계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도 못했다. 그래서 품 안에 있는 를르슈는 늘 믿기지가 않으면서도, 그의 무게감이 느껴질 때면 크게 안심했다. 

과거에 를르슈의 손을 잡을 수 없었던 때를 떠올리면 더더욱 그랬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이마 위로 작게 키스한 뒤에 눈을 감았다. 

 

* * *

 

진로희망. 

스자쿠는 가방 안에 있어야할 그 종이를 찾다가 결국 포기했다. 내일 다시 선생님께 달라고 하지 뭐, 그런 생각을 하면서. 학기 중반이 되면서 진로희망과 희망 대학 조사를 시작했고, 조만간에는 보호자 면담까지 이어질 일정들을 생각하면 스자쿠의 학교 생활은 숨이 가쁠 정도였다. 

하지만 그런 모든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를르슈 람페르지였다. 

그는 스자쿠의 햇수로 3년째 되는 짝사랑 상대였다. 스자쿠는 엇갈렸던 지난 2년을 보상 받듯이 올해는 같은 반이 되는 행운에 감사하기로 했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은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았다. 같은 반에 있는 를르슈를 보고 있으면, 지켜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부족했고, 가끔은 말을 걸고 싶었고, 가끔으로는 충분하지 않아서 매일 그의 옆에 있고 싶어졌다. 

너무 갑자기 친한 척을 하면 불편할 거야. 스자쿠는 그런 마음을 겨우 억눌렀다. 억지로 거리를 두고 있어도 를르슈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많았다. 그는 공부를 잘했고, 그러면서도 수업 시간 도중에는 알게 모르게 선생님들 눈을 속여서 졸 만큼 성실한 편은 아니었고, 그 차이를 깨닫고 나면 또 스자쿠는 를르슈가 한없이 좋아졌었다. 

 

를르슈는 어느 대학을 갈까. 그리고 뭐가 되고 싶을까. 

그 옆에 나도 있으면 좋겠다. 

 

그런 바람을 갖고서 일 년을, 그저 바라보기만 하면서 보내버렸다. 

를르슈의 대학은 스자쿠가 진학하는 대학과는 가까운 거리에 있지만 같은 대학은 아니었다. 그는 뭐든지 골라서 갈 수 있는 선택권이 있었고, 여유롭게 일본에서의 진학은 안정권이었다고 들었다. 마음만 먹었다면 브리타니아의 유명 대학으로도 갈 수 있었다고 그랬다. 그것도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서 확실하진 않았다. 그가 무엇이 될 것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그가 스자쿠의 좁은 시야로는 담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수험이 끝나고 나서는 모든 것이 허했고, 모처럼 붙은 합격장도 다 의미를 잃어버린 것 같았다. 를르슈와 함께 있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마구 써버린 기분이었다. 

실제로 그러했다. 말 한 마디 제대로 섞어보지 못한 채로 헤어지게 되었다.

 

졸업식 날. 이제 돌아서 가려는 를르슈의 모습을 보면서, 스자쿠는 손에 들고 있던 모든 것들을 주변 사람들에게 쥐어주고는 그를 향해 달렸다. 람페르지, 하고 부르는 입술이 경련하듯 떨려왔지만 겨우 말을 이어갔다. 

의아한 얼굴로 빤히 쳐다보는 시선에 스자쿠는 숨고만 싶었다. 겨우 마음을 전하고 나면 속이 후련하기는커녕 마음이 더 괴로워져서 숨이 차는 기분이었다. 눈물이 터질 것만 같아서 빨리 뒤돌아서 나오려는데, 저를 부르는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기적 같은 말을 듣게 되었다. 그 말은 상상치도 못한 것이었다. 나도 좋아해. 를르슈의 입술 끝에서 나온 마침표까지 완전한 문장에 스자쿠는 눈물이 흐르는 것도 잊고서 웃어버렸다.

 

“그럼, 우리 사귀는 건가?”

“…잘 부탁해, 쿠루루기.”

“아, 응! 나도 잘 부탁해. 잘 부탁드립니다.”

“왜 갑자기 존댓말이야….”

“뭐랄까, 그래야 할 거 같아서. 아직 실감이 안 난다고 해야하나.”

 

멍청한 소리를 하고 있다. 우와, 질려버리면 어떡해. 바보 같아 보이겠다. 스자쿠의 머리 한 켠에는 경고음이 울리고 있었다. 더는 말하지 마, 입을 닥쳐, 쿠루루기 스자쿠! 그러나 바짝 마르는 입술과 다르게 아무 말이나 튀어나오고 있었다.

횡설수설하는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가만히 보고 있다가 결국 웃고 말았다. 그는 악수를 청하듯 손을 내밀었다. 

 

“잘 부탁드립니다.”

“…아. 아아, 응, 네! 진짜로!”

 

악수를 하면서 손을 잡았다. 그것이 두 사람의 시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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