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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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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자쿠가 눈을 뜬 것은 서너 시간이 지난 후였다. 불편한 자세로 침대에 누워있던 스자쿠는 겨우 눈을 떴다. 온몸이 쑤시는 것처럼 아파왔지만 열은 떨어지고 있었다. 아마 이 상태로라면 내일 쯤이면 다 나을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지금 몇 시지? 스자쿠는 휴대폰 시계를 보기 위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낡은 침대의 스프링이 끼익거리는 소리가 귀에 거슬렸다. 스자쿠는 자리에서 일어나면 보이는 그 남자, 를르슈 람페르지가 아직도 자기 집에 있는 것에 당황하고 말았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의 침대에 기대어서 꾸벅꾸벅 자고 있었다. 어딘가 지쳐있는 듯 미간을 좁히면서 자고 있는 를르슈 람페르지는 자는 얼굴마저도 이지적이며 잘생긴 얼굴이었다. 그 잘생긴 얼굴로 펠라치오를 한다거나, 애널 자위를 한다거나, 아무튼… 엄청난 일을 저지르고 있는 를르슈 람페르지.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이름을 겨우 불렀다. 그는 스자쿠의 부르는 목소리에 를르슈 람페르지는 으응, 하고 앓는 소리를 냈다. 꿈결 속에서 대답하는 것 같았다.

스자쿠는 조심스럽게 그의 어깨를 두드렸다. 이번에 툭툭 두드리는 손길에 를르슈 람페르지가 눈을 떴다. 흐응, 하는 소리와 함께 화들짝 놀란 어깨가 움찔거리더니, 이윽고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 쪽을 돌아보았다.

 

“일어났어, 스자쿠?”

“응. 자고 있었는데 깨워서 미안….”

“아냐, 몸은 괜찮아?”

“덕분에.”

“다행이군.”

“를르슈가 침대까지 옮겨준 거야?”

“맞아. 힘들었어, 너 의외로 무거워서….”

 

를르슈 람페르지는 그렇게 말해놓고서 스자쿠의 바라보는 시선을 은근슬쩍 피했다. 어째서인지 뺨이 붉어진 것 같은 것은 착각이 아니었다. 그는 무언가를 부끄러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두 사람이 말없는 침묵의 시간을 보내고, 먼저 입을 연 것은 를르슈 람페르지였다.

 

“그… 스자쿠, 기억하고 있겠지만, 너… 내 펠라치오로 말이야.”

“아, 응….”

“바, 발기도 하고… 사, 사정도 했으니까.”

“아아….”

 

를르슈 람페르지는 입술을 만지작거리면서 중얼거렸다. 스자쿠는 그가 해주었던 펠라치오를 떠올렸다. 생각 이상으로 별로였고, 테크닉도 영 꽝이었던 그 펠라치오의 어디에 흥분해버려서 잔뜩 거칠게 움직이고 사정까지 해버리고, 그 여파로 쓰러질 정도로 아팠었지. 어디에 흥분했냐고 하면 뭐, 를르슈 람페르지의 얼굴 정도에 흥분한 것이겠지만. 그걸 뭔가 순순히 인정하는 것은 스자쿠로서는 달가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펠라치오에 발기하고 사정한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다. 머리에 열이 올라서 기억나지 않는다고 거짓말을 하면 좋겠지만, 를르슈 람페르지에게 이것마저 거짓말을 하는 건, 어딘가 지뢰를 밟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스자쿠가 발기와 사정에 대한 사실을 시인하자, 를르슈 람페르지는 용기를 얻었는지 다음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이제 우리는 사귀는 건가?”

“으음…….”

“너 설마, 그렇게 해놓고서 나한테 흥분하지 않았다고 거짓말이라도 할 셈인가?”

“아, 아니, 그건 아니야. 그냥… 좀…….”

 

거짓말이라도 할 걸 그랬나. 스자쿠는 갑자기 그건 아니라고 말한 자신이 후회되었다. 를르슈 람페르지라는 부잣집 도련님의 등골을 쏙쏙 빼먹고 그를 등쳐먹는 연애를 하는 것은 사실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이제 그 관계에 애널 섹스라는 옵션이 패시브로 따라붙는 것이었다.

스자쿠는 지금까지의 경험상, 를르슈 람페르지가 펠라치오나 애널 자위에서 멈출 남자아 아니라는 것 쯤은 계산할 수 있었다. 그는 진짜 섹스를 원하게 될 것이다. 그럼 스자쿠는 그 를르슈 람페르지의 애널에 자기 페니스를 넣는 사태를 맞이하게 될 것이다. 그때는 진짜 흥분할 수 있을까. 지금은 아프다는 이유에서… 아니, 아프니까 발기 안 할 줄 알았는데 발기도 하고 사정도 해버렸는데. 스자쿠는 자기 자신을 믿을 수 없었다. 자신의 계산을 정 반대방향으로 뚫고 나간 를르슈 람페르지의 형편없는 펠라치오에 흥분하고 말아버리지 않았던가.

흥분할 수 있어. 사정도 할 수 있어. 그렇지만 를르슈 람페르지의 안에 넣는 건 좀…. 스자쿠가 말을 아끼는 것은 어떠한 거부감이 드는 것 때문이 아니었다. 를르슈 람페르지의 펠라치오를 통해서 그의 입이 좁다는 건 확실하게 알았다. 그리고 쉬이 풀어지지 않았던 를르슈 람페르지의 애널이 좁은 것도 넣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그런 좁은 곳에 자신의 페니스를 박아넣고 섹스를 한다면, 스자쿠는 흥분할 수 있다지만 를르슈 람페르지는 발기가 되기라도 할까?

엄청 아플 거 같은데.

 

“뭔가 걸리는 게 있어? 참고로 난 너에게 발정유도제 같은 걸 먹이지도 않았으니까 너는 순수한 욕정으로 나에게 흥분한 거라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어.”

“보통 아픈 사람한테 발정유도제를 먹었다고 생각은 안 해. 그런 게 아니라…….”

“뭐가 문제야?”

 

엄청 아플 텐데 섹스하고 싶을까, 라는 생각을 하기 이전에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얼굴을 빤히 쳐다보았다. 그는 피하지 않고 스자쿠의 시선을 받아내다가, 갑자기 또 부끄러워진 모양인지 시선을 피했다. 아, 그 시선을 피하는 얼굴을 보니 스자쿠는 왜 자신이 그에게 어딘가 심통이 났었는지 갑자기 이유가 떠올랐다. 그것은 좋은 핑계일 것 같기도 했다.

 

“를르슈 말이야, 사실 여자를 좋아하는 거지?”

“무슨 소리야, 갑자기.”

“어제 미팅 끝나고… 여자애들이랑 계속 있었잖아. 여자애들이랑 노는 게 재미있어서 그런 거지?”

“그럼 내가 너를 따라가야 했다고?”

“…날 좋아한다며.”

“그럼 반대로 너한테 묻겠는데, 널 좋아한다는 사람을 데리고서 여자애들이 가득한 미팅에 가는 건 실례라는 생각은 안 해? 내가 무슨 마음으로 거기에 있었는지 생각은 안 해봤어?”

“난 여자랑 놀러간 게 아니잖아. 리발이 불쌍하니까….”

“나중에 전화번호도 교환 했잖아!”

“그 애랑 연락 안 했어!”

“나중에 할 거잖아!”

“그럴 리가 있겠어? 네가 있는데!”

 

스자쿠는 그렇게 말해놓고서 갑자기 기침이 터져나왔다. 콜록거리면서 기침을 내뱉는데 큰 소리를 낸 여파가 상당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얼굴이 새빨개질 때까지 기침을 하는 스자쿠를 보고서 그의 등을 두드려주었다. 를르슈 람페르지가 침대 구석에 올라와서 등을 쓸어내려주는 것에 스자쿠는 괜히 억울해졌다. 나는 그런 생각 한 번도 한 적 없었는데, 왜 맘대로 그런 생각을 하지?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가 기침이 멎는 것을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잠시 입을 다물고 있다가 말했다.

 

“내가 있는데 왜 미팅 같은 데를 나간 거야?”

“…리발이 불쌍해서. 열심히 하려고 하잖아.”

“나는 안 불쌍해?”

“…….”

“나도 열심히 하잖아.”

“그건…….”

 

를르슈 람페르지의 말은 사실이었다. 그는 정말 열심히 하고 있었다. 스자쿠의 연애적인 호감을 얻기 위해서 오만 방법을 다 동원하는 중이었다. 누구보다 스자쿠가 그 노력의 위대함을 피부로 느끼고 있는 중이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말을 끝까지 하지 못하는 스자쿠의 당황함을 알고서는 소리 없이 웃었다. 그 미소는 씁쓸해보이고, 또 어딘가 허탈한 듯했다. 이제 스자쿠에 대한 마음을 접어버릴까봐, 스자쿠는 갑자기 그게 두려워졌다. 를르슈, 라고 이름을 부르려고 하는데 먼저 입을 연 것은 를르슈 람페르지 쪽이었다.

 

“여자애들이 걱정되니까 그랬어. 다들 술에 많이 취했고, 집에도 돌아가야 할 텐데, 나까지 가버렸다가 사고라도 나면 어떡하나 싶어서.”

“그런…….”

“리발이나 다른 남자애들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그냥 걱정이 되서 그런 거야. 나도 여동생이 있으니까.”

“…….”

“그런데 너는 먼저 가버리고, 나라도 있어야겠다 싶어서.”

 

를르슈 람페르지는 대체 어디까지 왕자님, 아니, 황자전하인 것인가? 스자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물론 술에 많이 취한 여자애를 보면 걱정이 되는 건 스자쿠도 매한가지지만, 그때 그 미팅 자리에서 그렇게 많이 취한 사람은 없었다. 스자쿠는 개인적 인내심이 한계에 달해서 나오긴 했어도 그런 걱정이 없었기 때문에 나왔는데. 그런 스자쿠를 탓하지도 않고서 를르슈 람페르지는 걱정이 되어서 그랬다는 말만 했다.

 

“그리고 나도 스자쿠를 좋아하는데 여자애랑 나갈 리가 없잖아. 설마 그거 때문에…….”

“으응…….”

“아니야.”

 

를르슈 람페르지는 말을 하다 말았다. 스자쿠는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아 심통난 목소리로 그에게 캐물었다.

 

“뭔데 말을 하다 말아?”

“그거 때문에 스자쿠가 아픈 거는 아니겠지, 라는 생각을 좀 했어. 근데 그건 너무 자의식 과잉 같아서 말 안 하려고 했고.”

“…….”

 

그거 자의식 과잉 아닐지도. 스자쿠는 그 말을 겨우 삼키면서 고개를 저어 거짓말을 했다. 감기 기운이 조금 있었어, 라고 말은 꺼냈지만 스자쿠의 인생에서 감기 기운이 느껴진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어제 오늘처럼 갑자기 아프거나 하는 일도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일이었다.

 

“어제는 미팅 끝나고 여자애들 다 돌려보내고 그냥 집에 갔어. 이건 진짜야.”

“의심하진 않았어.”

“그럼 왜 물어봤어? 난 너를 좋아하니까 노력하고 있는 중인데. 펠라치오도 할 정도로.”

“…….”

 

더 이상 할 말은 없었다. 스자쿠는 묵비권을 행사하기로 했다. 그리고 생각보다 말을 많이 하고 기침까지 해서 그런지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스자쿠의 지친 기색을 알아차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 오래 있었군. 일어난 걸 봤으니까 나도 집에 돌아갈게.”

“지금 시간에 지하철이 있어?”

“택시 타고 들어가면 돼.”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를 붙잡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힘이 없었고, 명분도 없었다. 쉬는 게 맞는 것 같았다. 를르슈 람페르지가 방을 챙기면서 나갈 준비를 하는 소리가 들렸다. 가방을 챙겨든 를르슈 람페르지가 스자쿠의 침대에 잠시 걸터앉았다. 끼익, 하는 낡은 스프링 소리가 들렸다. 스자쿠는 얼굴을 가까이하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미모에 잠시 숨을 멈추었다. 아프니까 별 게 다 과민반응이네. 스자쿠는 두근거리는 심장을 겨우 억누르며 그가 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입술을 천천히 맞대었다. 열에 올라 바짝 마르고 거친 스자쿠의 입술에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입술이 부드럽고 말캉하게 느껴졌다. 따뜻한 입술 끝의 감촉이 닿았다 떨어지는 것에 스자쿠는 눈을 감았다. 를르슈 람페르지로부터의 키스는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는 몇 초 동안 입술을 맞대고 있다가 스자쿠에게서 멀어졌다. 붉어진 뺨의 를르슈 람페르지는 약간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말 하는 걸 잊었는데… 양치도 했고 입술도 닦았으니까 너무 더럽다고 생각하진 마.”

“그런 거 신경 안 써.”

“그래…? 의외네. 신경 쓸 줄 알았는데.”

 

를르슈 람페르지는 목을 울리며 웃었다. 스자쿠는 그 웃음에 목구멍이 홧홧해지는 기분이 들었다. 겨우 침을 삼켜 그 열기를 내리고 나면 를르슈 람페르지는 이미 현관 쪽으로 향하는 중이었다. 멀어지는 를르슈 람페르지에게 스자쿠는 어떻게 해야 그를 붙잡을 수 있는지 고민을 하다가, 그냥 그가 신발을 신는 소리를 들으면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무력함을 느꼈다. 아프고, 돌아가지 않는 머리로는 뒤탈 없는 애원을 하는 방법을 알 수가 없었다.

 

“스자쿠, 그럼 나는 갈게.”

“아…… 잘 가.”

 

스자쿠는 그를 소리로만 배웅했다. 를르슈 람페르지는 나갔고, 스자쿠는 혼자 남아서 를르슈 람페르지와의 대화를 곱씹었다. 뭔가 좀 할 만한 대화를 한 것 같았는데 어째서인지 머리에 남는 게 없었다. 아니, 머리는 과부하 상태여서 더 이상 기억하는 것은 무리였다. 뭔가 확실하게 하고 싶었는데, 아무것도 확실해지지 않은 답답함이 가슴을 꽉 조여왔다.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부재중 통화가 잔뜩 찍힌 휴대폰을 들여다보았다. 늦은 시간에 택시를 타고 돌아가는 를르슈 람페르지가 걱정이 되었다. 여자애들은 그렇게 챙기면서 왜 자기 자신은 그렇게 무방비하게 다니는지 의문이 들었다. 아픈 사람한테 펠라치오를 해주는 그 몰상식함을 보여줬으면서 어째서 스자쿠와 키스하기 전에 양치를 하고 입술을 닦았는지도 의문이었다. 생각할 수록 의문투성이라, 스자쿠는 를르슈 람페르지에 대한 생각을 멈추고 싶었다.

이래가지고는 를르슈 람페르지 생각 밖에 못하는 바보가 된 거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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