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 패러렐
쿠루루기 스자쿠 X 를르슈 람페르지
“오늘은 화이트데이….”
일본의 과자회사가 만든, 사탕팔이 상술에 미쳐버린 절정의 날이다. 발렌타인데이는 세인트 발렌타인의 의미를 다지는 날이라는 점에서 그럭저럭 수비 가능한 범위지만, 화이트데이는 대체 뭐란 말이냐. 세인트 화이트라는 사람이 있으면 인정은 하겠다만 사탕과 대체 뭔 상관인가 싶었고, 알고보니 그런 것도 없고, 그냥 사탕을 팔기에 좋은 날로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에서는 발렌타인데이에는 여자가 남자에게, 화이트데이는 그 보답으로 남자가 여자에게 주는 것 같다. 그래, 이 괴상한 문화는 브리타니아에서 왔을 때에도 익숙치 않았다. 발렌타인데이는 왜 여자만 줘야하는거지? 브리타니아는 남자고 여자고 모두 초콜릿을 준다. 굳이 초콜릿이 아니어도 되고. 화이트데이는 정말 괴상함의 끝이었다. 첫 화이트데이에는 초콜릿에 대한 보답이 없다고 학기말까지 재수없는 브리타니아 놈이라고 괴롭힘을 당했다. 그 다음해, 새학년 새로운 반에서 스자쿠를 만나면서 어찌저찌 구원을 받았다.
화이트데이는 정말 이상해.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에 대한 보답을 해야한다고 스자쿠가 알려줬을 때 를르슈는 솔직하게 말했다. 용돈도 턱없이 부족한데 별로 받고 싶지도 않았던 초콜릿에 대해서 내가 보답해야되는데? 스자쿠는 사탕이 들어있는 작은 병을 턱턱 장바구니에 넣으며 말했다.
—그럼 내년부터 발렌타인데이에 초콜릿은 거절하면 돼!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받겠다고 하면 되잖아?
그럼 해결되지? 나는 초콜릿을 좋아하니까 많이 먹는게 좋아. 스자쿠는 아주 간단하게 해결했다. 그 이후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를르슈는 모든 기념일에 쏟아지는 선물을 모두 거절했다. 중학교에 가서도 스자쿠의 해결법은 먹혔다. 나나리에게만 받는 초콜릿까지가 허용 범위다.
발렌타인데이 초콜릿을 받으면 화이트데이라는 쓸데 없는 지출을 해야하니까!
나나리에게 보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무튼 작년까지 3월의 가계부에는 화이트데이 지출은 나나리 한정으로만 적혀있을 뿐이었다. 그렇지만 그것도 작년까지다.
올해는 다르다.
를르슈는 두 개의 사탕을 샀다. 하나는 매년 나나리의 초콜릿에 보답하기 위해 주는 여러가지 과일맛이 나는 사탕이 담긴 별 모양의 유리병에 들어있는 사탕. 그리고 다른 하나, 원기둥 모양에 색색깔의 귀여운 별사탕이 들어가있는 사탕을 샀다.
아침에 나나리에게 사탕을 건넸다. 고맙습니다, 오라버니. 고맙다고 말하면서 웃는 나나리는 너무 귀엽다. 화이트데이인 오늘 나나리에게 사탕은 하늘에서 비가 쏟아지듯 밀려들 것이다. 상냥한 나나리는 다 받아주겠지만 화이트데이를 핑계로 사귀자고 하는 놈이 있다면 죽일까…. 를르슈는 자연스럽게 살인으로 흐르는 제 사고방식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사귀자고 할 수도 있지! 그래, 화이트데이는 그런 날이니까! 나나리에게 반하지 않을 수가 없고! 그리고 화이트데이에 모처럼 용기를 내도 돼!
왜냐면 나도 고백할거니까!
를르슈는 기세 좋게 가방 안에 또 다른 하나의 사탕을 들고 등교했다. 혹시 몰라 가방 깊숙한 곳에 넣어두었기에 가방에 잠깐 열린다고 해서 알아차릴 수도 없을 것이다.
지금 애쉬포드 학원의 고등부 본관 건물 앞에서 묵직해보이는 쇼핑백을 들고 있는 스자쿠도 모를 것이다! 를르슈가 다가오는 것에 스자쿠는 환하게 웃으며 인사했다.
“를르슈, 좋은 아침!”
“좋은 아침, 스자쿠. 그 쇼핑백은 사탕?”
“응. 올해는 용돈 가불 받았어. 슬슬 감당하기 힘드네.”
“초콜릿을 안 받으면 되잖아?”
“초콜릿은 맛있으니까 거절하기 힘들어. 그리고, 음, 그러네, 뭔가 다들 기합을 넣고 나한테 좋아한다고 말해주니까?”
를르슈는 겨우 굳으려는 얼굴을 폈다. 재수없는 녀석이라고 욕 먹는다, 너. 가방 안에서 별사탕이 부딪히는 소리가 괜히 들리는 것 같았다.
“고백이라면 평소에도 받고 있잖아?”
“덤으로 초콜릿이 따라오는 고백이 발렌타인데이라는거지.”
“…저질이네.”
“그래서 화이트데이에 모두에게 사탕 주잖아! 저질이라니!”
“사람의 마음을 가지고 그렇게 대하지 마.”
“그런가….”
시무룩해진 스자쿠를 보며 를르슈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그런 의도로 초콜릿을 받고 사탕을 베푸는 녀석에게 어떻게 고백을 하지. 하지만 를르슈의 비상한 두뇌는 여러가지 조건과 가정, 시뮬레이션 끝에 완벽한 결론에 도달했다.
방과후 학생회실에서 사탕을 주면서 고백한다. 오늘은 학생회장인 미레이가 보충수업을 받는 날이기에 그녀는 오지 않는다. 미레이가 오지 않으면 리발도 오지 않는다. 셜리도 수영부 연습이 있어서 오지 않는다. 니나는 지난주부터 브리타니아에서 학생연구에 참여하고 있다. 돌아오는 건 사흘 후다. 병약한 카렌은 아마 다음달에 있을 전국 검도 대회 여자부에 참여하기 위해서 다니던 도장에 갈 것이다. 대체 언제까지 병약한 설정일지 의심되는 바이나…. 아무튼 학생회실에는 모처럼 스자쿠와 나, 단 둘이다!
“완벽해.”
“응? 뭐가?”
“아니, 별 거 아니야. 사탕이나 열심히 나눠주도록 해.”
“혼자서 다 하기는 힘들어. 를르슈가 명단을 부르면 내가 주는 건 어때?”
“그건 너한테 초콜릿을 준 사람들한테 실례다!”
“그런가. 하긴, 뭔가 를르슈가 애들한테 사탕 주는 느낌이긴 하네.”
그건 싫어. 스자쿠는 중얼거렸다. 괜히 낮아진 목소리가 신경쓰였지만 를르슈는 아무렇지 않은 척 교실로 들어갔다. 스자쿠는 혼자서 다 나눠주기 힘들다고 했으면서, 자기에게 초콜릿을 줬던 여학생들에게 바로 바로 사탕을 나눠주었다. 고백을 거절당했음에도 돌아오는 의리의 사탕에 그녀들은 얼굴을 붉히며 좋아했다.
“스자쿠는 볼 때마다 대단해. 를르슈는 사탕 없어?”
“응?”
“아, 그러고 보니 발렌타인 때 하나도 안 받았지. 그래서 의리의 사탕도 없어?”
여자애들과 스자쿠의 경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를르슈에게 피난 온 리발은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러는 리발은, 회장에게 줄 사탕은 가져왔어?”
“가져는 왔는데, 뭐랄까, 음…. 오늘은 무리겠지?”
“보충수업이 있으니까.”
“젠장, 올해도 주지 못하는 건가요! 발렌타인 때에 받은 의리 초코의 보답이라고 하면서 은근슬쩍 고백을…!”
를르슈는 리발의 울부짖음에 대충 그를 밀어냈다. 지금 나는 일생일대의 고백을 준비 중이다.
“를르슈, 오늘 뭔가 좀 굳어있네.”
몇 시간 후 고백할 당사자가 넙죽 얼굴을 들이밀었다. 반짝거리는 초록색 눈동자는 걱정으로 상냥하게 빛나고 있었다. 심장에 나쁘다. 를르슈는 스자쿠를 밀어냈다.
“가서 사탕 파티나 해.”
“우리 반 애들 건 다 나눠줬어.”
“…그럼 다른 반에 가.”
“곧 수업 시작하는데 어떻게 가?”
“그럼 네 자리로 돌아가.”
“나 를르슈의 옆자리지?”
“…….”
뒷자리의 리발이 두 사람의 대화를 듣다가 키득거리며 말했다.
“를르슈, 설마 오늘 고백하려는 거 아니야?”
부회장님의 고백에 안 넘어갈 사람이 누가 있겠냐만! 리발의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를르슈는 침착하게,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꾸하려고 했다. 그러려고 했으나, 떨어지지 않는 입술과 순식간에 뜨거워지는 뺨, 그리고 귀까지 화끈거리고, 손에 쥐고 있던 노트까지 구겨지는 소리가 들림과 동시에 자신의 신체가 컨트롤 밖에 있다는 걸 실감했다. 입, 입을 열어, 를르슈 람페르지! 태연하게 넘겨라! 고작 리발 따위에게!
그러나 외치는 마음과 다르게 눈앞이 부옇게 변하기 시작했다. 눈물까지 난다고, 내가?! 말도 안 돼. 스자쿠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가 없다. 를르슈는 뻣뻣하게 굳은 고개를 돌리려고 했다.
“어이, 쿠루루기. 자리에 앉아라! 수업종은 안 쳤지만 그래도 수업시간 시작하기 전인데, 준비는 해야지!”
구세주와 같이 등장한 교사의 등장에 스자쿠는 자기 자리로 돌아갔다. 그래봤자 옆자리였기에 를르슈는 저에게 쏟아지는 스자쿠의 시선에 고개를 교과서에 박을 정도로 뻣뻣하게 굳었다. 이 수업이 끝나면 스자쿠는 분명 물어볼 거다. 뭐라고 물어볼까. 진짜 고백하냐고? 누구에게? 거기에서 솔직하게 대답하면 아웃이다. 그리고 낭만도 없고, 시뮬레이션대로 되지 않는다.
완벽하게 해내야한다. 나의 고백은 그렇게 해서 성공해야만 한다.
그날은 오전부터 오후까지 신은 를르슈의 편이었다. 오전의 쉬는시간은 담당 교사가 를르슈를 불러서 수업 준비를 시켰다. 평소에 불성실하게 수업을 듣는 태도(예를 들면 잔다거나, 혹은 결석한다거나)에 대한 벌이라고 했다. 스자쿠도 다른 반 여자애들에게 사탕을 나눠주느라 정신이 없어보였다. 미레이가 보충수업이 있기 때문에 부회장인 를르슈가 점심시간에 대신 교무실에 가서 학생회 보고를 올렸다. 자잘한 오타들을 수정하느라 점심시간 내내 교무실에 있었다. 오후 수업의 쉬는 시간에는 오타를 낸 축구부와 배구부의 주장에게 서류 미비 건으로 예산에 영향이 있을 것이라고 통보했다.
아무튼. 스자쿠를 안 만났다.
이게 과연 좋은 일인가, 나쁜 일인가.
학생회실로 가는 를르슈의 발걸음은 애매한 박자로 떨어지고 있었다. 스자쿠는 마지막 남은 사탕을 아직 주지 못한 애가 있다며 종례가 끝나자마자 바로 나갔다. 사탕만 주고 오겠지. 오늘은 학생회 정기 모임이지만, 미레이의 보충수업이 있는 날은 암묵적으로 안 와도 되는 날이다. 하지만 성실한 스자쿠는 올 것이다.
이제부터 시뮬레이션의 결과를 알아볼 때이다. 우선 학생회실에는 내가 먼저 들어가있고, 스자쿠가 오겠지. 대충 대화를 나누고. 단 둘이서 있을 때 사탕을 주고. 남자인 내가 왜 너에게 사탕을 주냐면, 오늘은 화이트데이고, 그 날에 맞는 의미의 고백이라고. 적당하다. 그 아무리 스자쿠라고 해도 이 정도는 알아먹겠지.
하지만 이 멘트에는 함정이 설치되어 있다.
내가 주는 사탕이 의리의 사탕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고백은 불발. 하지만 우정은 지켜진다. 하지만 연애적 의미의 사탕이라고 생각하면, 나의 고백은 성공, 그리고 연애는 시작된다.
“안 들어가고 뭐해?”
“스, 스자쿠! 놀랐잖아!”
“아, 그러고보니 오늘 회장, 보충수업이랬지. 그럼 안 가도 되는거지? 방금 전에 리발도 집에 그냥 갔고.”
“그, 그렇긴 하지만….”
“그럼 나도 갈래. 를르슈는 뭔가…. 오늘 바빴지? 더 할 일이 있는 거 같고.”
“응?!”
“오늘 좀 피곤해서 집에 갈래.”
를르슈와 눈을 맞추지 않고 말을 하는 스자쿠는 그대로 등을 돌렸다. 잠깐만, 내 시뮬레이션은. 나의 함정이 섞인 고백 멘트는. 그럼. 를르슈는 스자쿠를 부르려다가, 아랫입술을 꾹 깨물었다. 생각치도 못한 상황에 닥칠 때에는 어떻게 해야할까. 그럴 땐 스자쿠가 도와줬는데.
학생회실에 들릴 의미는 없지만 를르슈는 들어가기로 했다. 마음도, 머리도 정리해야한다. 불을 켜고 들어가서, 아무도 없는 곳에 앉았다. 가방 안에 들어있는 별사탕도 꺼냈다.
분명 완벽했는데.
포장을 풀고 작은 별사탕을 두세 알 한꺼번에 우적우적 씹었다. 달콤한 맛과 다르게 머리는 뒤죽박죽이었다. 스자쿠는 그럴 녀석이 아닌데. 분명 학생회실에 왔고, 들어 와야했고. 혹시 내가 생각에 빠져 학생회실 앞에서 너무 시간을 낭비했나?! 거기서 허점이…. 앞으로 고백을 할 때에는 어딘가로 갈 때 생각에 빠져있지 말아야겠군.
그렇지만 다음은 왠지 없을 것 같은 기분이 들어서 불안하다.
아침에 리발의 고백에 대한 이야기에 제대로 대꾸하지 못한 것도 마음에 걸린다. 그때 스자쿠가 어떤 얼굴이었는지 기억이 안난다. 그래, 이야기를 했어야 했는데. 해명을 했어야 했어. 그래야 했는데, 계속 마주치지 못하고, 핑계는 좋았지만 도망다닌 느낌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 스자쿠가 들어오면 최선의 타이밍으로 고백도 하고, 오해도 풀 수 있는데. 아니, 그렇게 되면 그 사탕은 연애적인 의미에서의 고백이 되니까 거절을 당했을 때, 친구로 돌아갈 수도 없게 된다.
“최악이군….”
“뭐야, 그 사탕.”
“스자쿠?!”
어디서 들어온 걸까, 하면 문이 열려있었다. 집에 간다고 했던 스자쿠가 왜 여기에? 설마 나의 환상? 고백을 못해서 미쳐버렸나?!
“정말 고백하려고 가져온거야? 학생회실에 있는 건, 고백 상대는 미레이 회장?”
“진심으로 하는 소리냐?”
“진심이야.”
“아니야!”
“그럼 왜 할 일도 없으면서 학생회실에 있는 거야!”
스자쿠는 를르슈가 화이트데이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걸 알고 있다.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초콜릿을 받으면 돼. 그리고 진짜 좋아하는 사람한테만 사탕을 주면 돼. 그래서 를르슈가 나나리에게만 발렌타인데이와 화이트데이를 챙기고 있는 걸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그런 를르슈가 긴장하고, 리발의 농담에도 웃지 못한 채로 얼굴을 붉게 물들이고, 거의 울 것 같은 얼굴로 스자쿠와 시선을 마주치지도 못하고, 평소라면 핑계 좋게 다 도망다녔을 교사들의 수업 준비를 도맡아 하고, 학생회 부회장의 업무로 쉬는 시간마다 교실을 비웠을 때에는 이제 감당할 수가 없었다. 시선으로 계속 그를 쫓아다닌 끝에 고백의 현장 같은 건 없었다.
하지만 학생회실에, 아무도 없는 그 학생회실에 대체 왜? 교내에 남아있는 학생들은 부활동으로 바쁘거나, 보충수업을 받는 사람들 뿐이다.
“기, 다리려고 했는데….”
“누구? 역시 회장?”
“회장과 나는 관련이 없어!”
“회장과 부회장 사이잖아! 너, 회장의 이벤트 같은 거 질색이라고 하면서 매번 다 들어주고 진행까지 하면서!”
“부회장이니까 하는 거야!”
를르슈는 버럭 소리를 지르는 스자쿠에게 뭐라고 대답을 해야할 지 몰랐다. 분위기는 험악하고, 뭔가 좋은 대화를 나누기도 어렵다. 왜 화가 난거지? 회장이랑 왜 자꾸 엮지? 대체 왜? 왜? 사탕을 혼자 먹어서? 사탕을 왜 혼자 먹게 되었는데!
“솔직하게 말해. 누구한테 고백하려고 했어?”
“…….”
“원래 화이트데이 같은 거 싫어하잖아.”
“…….”
이젠 죄인을 심문하듯이 묻고 있는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짜증이 치밀었다. 내 시뮬레이션대로라면 지금 수줍은 첫키스 와중일텐데 판을 다 깨놓은 주제에…. 열어두었던 별사탕의 뚜껑을 거칠게 닫았다. 가방을 어깨에 걸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래, 화이트데이 같은 거 싫어하는데 모처럼 즐기려고 했다만. 본인이 이렇게 싫어해서야.”
스자쿠의 가슴팍에 별사탕을 팍, 밀어버렸다. 떨어지면 깨지겠지만 스자쿠는 바로 붙잡을 것이다. 예상대로다. 로맨틱한 고백 같은 건 이제 물 건너 갔다. 함정을 설치한 고백? 이판사판이다.
스자쿠가 날 좋아한다면, 회장을 고백상대니 뭐니 하며 오해한 것도 해결되고 연인으로써 좀 질척거리지만 산뜻하게 출발. 그러나 좋아하지도 않는데 저렇게 캐묻는다면 네놈의 우정 따위 이제 필요도 없다. 좋아했던 시간이 아깝군.
를르슈는 학생회실 문을 바로 앞에 두고 다시 뒤를 돌았다. 멍청한 표정으로 별사탕을 쥐고 있는 스자쿠가 보였다.
“너를 좋아한다, 스자쿠. 연애적인 의미로써!”
“뭐?”
“마음에 안 들면 거절해.”
“이거 내 사탕이었어?”
“그래.”
“연애적 의미? 이거 의리 아니지? 우정?”
“연애적 의미로써 좋아한다고 했지!”
스자쿠는 손에 든 별사탕과 를르슈를 번갈아 보더니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나도 좋아. 를르슈. 죽을 때까지 좋아.”
“…죽, 죽을 때까지는 좀.”
“죽고 나서도 좋아.”
“나의 시뮬레이션은 완벽했는데….”
“를르슈의 시뮬레이션은 지금쯤 뭐하고 있는데?”
“음, 손을 잡고 첫키스를 한다거나…. 알고 지낸 시간도 있고 원래 우리는 스킨쉽이 잦았고, 이 정도는, 나도….”
“좋아, 를르슈의 시뮬레이션대로 하자.”
비장한 스자쿠의 얼굴에 좀 놀라서 횡설수설한 사이에 다 빠져나간 시뮬레이션에 를르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별사탕을 쥐지 않은 다른 한쪽 손으로 를르슈의 손을 잡는다. 끌어당기는 힘에 가까워진 거리, 그리고 스자쿠가 눈을 감는다.
나, 나도 감아야하나. 를르슈도 황급히 눈을 감았다. 서로의 입술이 닿기 직전, 스자쿠는 살짝 눈을 떴다. 붉어진 얼굴로 키스를 기다리는 나의 첫사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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