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안느 X C.C.
살면서 이렇게 아름다운 신부는 처음 본다. 이 자리에 있는 모두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그러면서도 C.C.는 자신의 감상이 진부하다고 생각했다. 하얀 드레스와 면사포를 내려쓴 마리안느는 흘러내리는 검은 머리를 땋아올렸다. 몇 가닥 흘러내린 머리카락도 연출된 것처럼 부드럽게 흔들렸다. 손에는 파스텔 핑크의 장미가 메인으로 장식된 부케를 들고 있고, 걷는 자세는 허리를 반듯하게 세워서 우아하고 당당해보였다.
그녀는 황제의 기사에서, 황제의 여자로 모습을 바꾸고 있는 중이다. C.C.는 황궁의 높은 곳에서 기둥 그림자에서 몸을 숨긴 채로, 공범자 두 명의 결혼식을 훔쳐보고 있었다. 마리안느가 자신의 가족 자리에 앉으면 된다고 했지만, C.C.는 그러지 않았다. 정확히는 못 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를 데리고 도망가는, 신부가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 그런 이야기는 수 백편이나 있을 정도로 진부하지만, 현실에서는 좀처럼 일어나지 않는다. 그 이유를 C.C.는 실감하고 있었다. 현실이 그런 데에는 이유가 따로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부부가 되었음을—.”
사제의 축복 아래에서, 사랑과 거리가 멀다고 하더라도 누구보다 아름답게 빛이 나는 신부를 그렇게 쉽게 손에 넣고 도망칠 수는 없다. 한 순간의 아름다움이라고 해도, 일생의 행복처럼 보이는 그 광경을 부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C.C.는 자신이 인간의 시간에서 아주 오랫동안 벗어나 있었음에도, 오늘처럼 이렇게 인간다운 감정을 느껴본 것은 오랜만이었다. 거의 텅 비어있는 마리안느의 가족석에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앉아있었다. 비스마르크 발트슈타인이 나이트 오브 원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에, 신부의 출신을 비웃던 사람들이 모두 입을 다물었다.
마리안느 비 브리타니아로 다섯번째 황후가 된 마리안느는, 대대로 이어지는 황실의 다른 가문과 다르게 ‘비’ 가의 초대 가주가 된 것이었다. C.C.는 아리에스 궁의 황후라는 이명까지 하사받는 마리안느가 웃는 모습에 입맛이 썼다.
—나이트 오브 원이 되고 싶지 않아?
마리안느가 샤를의 청혼을 받아들인 날, C.C.는 그 옆에서 두 사람을 지켜보고 있었다. 샤를은 마리안느의 대답에 만족한 듯이 돌아섰고, 마리안느는 그를 배웅하고 나이트 오브 라운즈 집무실에 남았다.
—확실히 황후가 되는 것보다 나이트 오브 원이 되는 게, 나에게 있어서 더 어울리는 자리일 수도 있겠지.
나이트 오브 식스에서 나이트 오브 원이 되는 것, 그것이 싫다면 황제의 황후가 되는 것이 어떻겠냐는 건조한 프로포즈였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는 전원 공석에 가까울 정도로 텅 비어있었다. 혁혁한 공을 세운 마리안느가 나이트 오브 원이 되는 것에는 누구도 반대할 수 없겠지만, 황후가 되는 것은 귀족도 아닌 서민 출신인 마리안느에게 반대가 거셀 것이 분명했다. 누가 봐도 가시밭길이었다.
C.C.는 자신의 친구가 그런 길을 가는 걸 원치 않았다.
—하지만 쉬운 인생은 내가 바라는 게 아니야.
거짓말. 황제의 기사가 쉬울 리가 없잖아.
C.C.는 주먹을 꽉 쥐며 눈을 부릅 떴다. 마리안느는 그런 C.C.를 바라보는 것 대신에, 창 밖으로 노을이 지는 하늘을 바라보았다.
—운명은 예외의 상황과 부딪히면서 달라지겠지.
—……그렇게 해서 바꿀 필요는.
—나는 너와 계약했지만, C.C.가 말한 왕의 힘을 가질 수도 없었어. 그럴 힘을 가질 가치도 없이 나약한 인간이라는 걸, 그때 증명한거야.
—기어스는 그런 힘이 아니야, 마리안느!
—나는 그때 무력한 인간이라는 걸 깨달았지. 그리고 그게 내 운명이라면?
마리안느는 입술을 끌어당기며 웃었다. 늘 장난스럽고 소탈하게 웃는 그 미소와 다른 것이었다. C.C.는 숨을 멎게 하는 그 미소에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그런 운명에 굴복하지 않아. 몇번이고 싸워서 바꾸겠어. 나이트 오브 원이 되는 건 운명을 따르는 거나 마찬가지야.
—그렇다고, 그렇다고 해서…누군가의 여자가 되는건, 너답지 않아.
—아하하, 확실히 샤를의 여자가 되는 건 나도 최선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아.
하지만 선택할 수 있는 선택지 중에서 가장 매력적인 조건이거든.
마리안느는 나이트 오브 식스의 망토를 바닥으로 떨어뜨렸다. 카페트 위로 소리도 없이 먹먹하게 떨어지는 망토는 처참하게 구겨졌다. C.C.는 이 망토를 등에 업고, 샤를의 기사가 되었던 마리안느를 떠올렸다. V.V.라는 같은 존재를 만나고,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나고, 자기를 이 저주에서 풀어줄 방법을 함께 알아가자는 기쁨이 순식간에 먼지구석에서 구르는 것 같았다.
네가 기어스를 쓰지 못하는 게, 이렇게 원망스러울 줄이야.
C.C.는 그런 말을 꾹 눌렀다. 기어스는 저주받은 힘이다. 왕의 힘이니 뭐니, 그렇게 꾸며대도, 언젠가 폭주하고 저주를 받아 영생을 살게 하는 시작이었다. 마리안느에게 그런 저주가 먹히지 않은 것은 C.C.에게 있어서 가장 기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슬픈 일에 지나지 않았다. 마리안느의 떨어진 망토를 주우면서 C.C.는 중얼거렸다.
—물건을 함부로 다루면 안 돼….
—아아, 미안. 하지만 C.C., 그건 이제 줍지 않아도 돼. 그 망토를 등에 지고 있는 이상, 나는 더 앞으로 나아갈 수 없거든.
—……나도.
—
—나도 너와 같이, 가고 싶어, 마리안느.
C.C.가 겨우 고르고 고른 말에 마리안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는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당연하지. 내가 결혼해도 C.C.는 언제까지나 계속 함께인 걸. 나는 기어스가 없지만, C.C.의 소원을 들어줄 수 있도록 노력할거야. 그래, 그것도 내가 바꿀 수 있다면 바꿀 운명이야. C.C., 이 결혼은 아무것도 아니야. 그저 나의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하나의 수단이라고 했으면서, 너는 그렇게 아름답게 웃을 필요가 있었나?
C.C.는 부케를 던지는 것 대신에 연분홍색의 장미를 샤를의 가슴팍에 장식하는 마리안느를 보았다. 저 손끝은 검을 쥐고 전장에서 휘두르는 탓에 거칠고 딱딱하지만, 그 체온에는 눈물을 멈추게 하는 마법같은 힘이 있다.
기어스 따위와 다르게 상냥한 힘. 그녀만이 가진 힘이다.
“나는 마리안느의 친구가 되고 싶지 않아….”
너와 같이 옆에서 그 시간을 보내고, 남겨진 시간이 아쉬우면서도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다고 믿으면서, 그렇게 주어진 시간을 추억으로 가득 채우고 싶다. 가능하다면, 같은 날에 죽어서 두 사람 누구도 외롭지 않게, 상냥한 죽음으로 끝이 나는….
“친구로 끝나고 싶지 않아.”
하지만 너는 언젠가 죽고 말겠지. 기어스도 없는 너는 코드도 잇지 못하고 죽어버릴거야. 그럼 나는 또 혼자 살아남아서, 나를 기억하는 사람도 없이, 너와 함께 있던 나를 그리워해줄 사람도 없이 혼자서 외롭게 살아서, 이 저주를 누가 풀어주길 바라는 소원을 품은 채로 살겠지.
너처럼 기어스도 없이, 내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하는 사람은 두 번 다시 없을 거라고 생각하면서.
“비겁해, 마리안느.”
너는 내가 아닌 사람을 사랑하지도 않는다고 하면서, 평생의 반려로 맞이했다.
C.C.는 더 지켜보는 것을 그만두고서 높은 계단을 뛰어내려가듯이 내달렸다. 그리고는 황궁 뒤쪽에 있는 장미정원으로 달려갔다. 사랑하지도 않는다면서, 수단이라고 했으면서! 그러면서 사랑스러운 신부로 있는 네가 미워, 누구보다 행복한 얼굴로 웃는 네가 미워. 비겁해, 나를 두고 가면서!
만발한 붉은 장미가 꽃잎도 흩날리지 않은 채로 피어있는 덩쿨을 보며, C.C.는 소리 없이 한참이나 울었다. 바람 한 점 불지 않고, 잔잔하고 부드러운 장미향이 온몸에 스며들 것 같았다.
너는 나를 두고 가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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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05.14 14:04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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