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자루루 12세
뱀파이어 스자쿠 X 제11황자
쿠루루기 본가는 웅장하고 화려했던 것에 비해, 그 신사는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낯선 이국의 하얀 옷을 입은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겁먹은 것을 들키지 않으려고 어깨에 잔뜩 힘을 주었다. 이제 두 번 다시 브리타니아로 돌아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여기서 죽어야지만 를르슈의 역할을 다하는 것이다.
그렇게 되면 나나리도 더 이상 시달리지 않을 것이고, 아리에스는 점차 평화를 되찾아갈 테고. 오로지 를르슈만이 제 역할을 하면 될 일이다.
그럼 이만, 하고 내려가는 남자들은 를르슈를 보고서 어떤 연민이나 동정 같은 것을 내비치지 않았다. 그렇다고 환멸과 경멸 같은 것도 보이지 않았다. 그저 할 일을 다 했을 뿐, 그것은 를르슈와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올해로 열두 살. 를르슈는 아리에스의 아름다운 황자였지만, 지금은 일본이라는 섬나라에 팔려온 인질이었다. 지금 두 나라의 관계가 좋지 않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노골적으로 홀대할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를르슈는 신사의 앞마당에 저를 내버려두고 간 남자들을 쳐다보다가 고개를 돌렸다.
마루에 걸터 앉았다. 저녁노을이 지고, 밤이 오면 추워질 것이다. 알지도 못하는 곳에 아무데나 들어가도 될까? 를르슈의 도덕적인 관념은 죽기 일보 직전의 상황에서도 발휘되었다. 결국 날이 쌀쌀해져서, 차려입은 옷으로도 추위를 막기엔 모자라, 를르슈는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나무로 만들어진 문을 밀고, 그 안에는 천조각 하나 없이 황량했다. 아무도 없는 곳에 버려졌다는 게 그제야 실감이 났다.
“누구야?”
하지만 를르슈가 발을 들임과 동시에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소년의 높은 목소리였다. 를르슈는 잠기려는 목을 겨우 풀며 대답했다.
“나는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다. 너는 누구지?”
“…이상한 이름.”
“그러는 너는 이름이 뭔데?”
를르슈가 기세좋게 말했지만 상대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더 무서웠다. 넓은 내부에서는 목소리가 울리고 있는데, 어디에서 그 소리가 나는지 알 수가 없었다. 를르슈가 주먹을 꽉 쥐며 사방을 둘러보는 것에 작은 웃음소리가 들렸다.
“웃지 마!”
“미안, 그렇지만 가까이서 보니까 너, 되게 예쁘네.”
가까이서?
그 말에 신경을 곤두세우고 앞을 보자, 눈앞에는 심록의 눈동자를 반짝이는 장난스러운 소년이 서있었다. 저와 비슷한 옷을 입고 있지만 검은색이었다. 어두운 와중에도 빛나는 눈은 기이했다. 를르슈는 한걸음 뒤로 물러섰다.
“브리타니아, 라는 나라에서 왔지? 아버지가 이야기했어.”
“…쿠루루기 겐부의 아들이냐?”
“그래, 나는 스자쿠. 쿠루루기 스자쿠.”
“나에 대해서, 뭐라고.”
“오랫동안 굶었으니 상을 주겠다고 하셨어. 맞아, 난 되게 오랫동안 굶었어. 마지막 끼니가 재작년이니까.”
“…….”
“눈치 챘어?”
를르슈는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자기 손목을 잡아올리는 스자쿠의 모습에 말을 꺼냈다.
“너, 사람이 아니구나.”
“응. 눈치가 빠르네.”
“……나를 어떻게 할 셈이야.”
“를르슈라고 했지? 를르슈, 난 배가 고파.”
오랫동안 굶었어. 를르슈는 제 손목에 입을 맞추는 스자쿠를 보고서 뒤로 달아나고 싶었다. 하지만 스자쿠의 손아귀 힘은 강했다.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그제서야 눈치챘다. 여기는 물론이고, 쿠루루기 스자쿠에게서 전부.
“나를 잡아먹을거냐?”
“그래야겠지?”
“…….”
어차피 죽을 각오를 하고 온 몸이다. 이제 와서 죽는 것이 무섭다고 내뺄 수도 없었다. 를르슈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스자쿠는 제 앞에 무릎을 꿇고 앉은 를르슈의 아름다운 흑발을 슥슥 쓸어보았다. 손끝에 닿는 감촉이 좋았다.
“울지 마, 를르슈.”
를르슈는 울고 있었다. 스자쿠는 저도 무릎을 굽혀 를르슈와 시선을 마주했다. 형형하게 빛이 나는 눈동자가 무서웠지만, 눈물로 젖어가는 제 뺨을 쓰다듬는 손은 상냥하게 느껴졌다. 그게 꼭 나나리가 쓰다듬어주는 것 같아서 를르슈는 울음소리를 결국 참지 못했다. 우는 를르슈의 등을 꼭 끌어안으면서 스자쿠는 괜찮을 거라고 말했다.
“뭐가 괜찮아, 나는, 이제, 너한테, 잡아먹히, 고, 나나리는, 볼 수 없고….”
“나나리는 누구야?”
“흐, 흐윽, 내 여동생이다.”
“를르슈는 여동생 때문에 여기 왔구나.”
고개를 끄덕끄덕거리고 있으면 스자쿠는 알겠다고 말했다. 뭘 알겠다고 하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를르슈에게는 크게 위로가 되었다.
“브리타니아로 돌아갈 수 있게 해줄게.”
“…내가, 그냥 돌아가면, 다시 위험해져, 나나리가.”
“나도 같이 가줄게.”
“……왜?”
를르슈의 뺨으로부터 흐른 눈물을 손끝으로 닦아낸 스자쿠는 별 거 아니라는 듯 말했다.
“를르슈가 좋아질 거 같거든. 그래도, 아무런 대가 없이 움직이는 건 힘들어.”
“…….”
“죽지 않을 만큼 먹게 해줘.”
“나, 나를?”
“응. 를르슈가 가지고 있는 피. 그걸로 식사를 조금씩 하게 해줘. 배고프면 못 움직이잖아.”
스자쿠는 그의 귓가에 속삭였다.
“죽지 않을거야.”
대신 죽을 만큼 좋을지도.
어린 소년들이 나눌 대화가 아니었지만, 스자쿠는 아무렇지도 않았고, 를르슈는 그런 말이라도 위로가 되었다.
그래, 죽지 않고 살아만 있다면. 스자쿠에게 를르슈는 그러겠노라고 말했다. 기사가 자신의 왕에게 맹세하듯,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등에 키스를 했다. 그리고 부드러운 손바닥을 뒤집어, 손목을 향해 이를 세웠다.
따끔하면서도 깊게 파고드는 짐승의 이빨이 아팠다. 하지만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를르슈는 어질어질한 정신 사이로 제가 생각해도 우스운 것을 떠올렸다.
이건 꼭 마치…기사를 얻은 것 같은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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