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로 람페르지 X 나나리 비 브리타니아
그는 늘 불편한 상대였다. 나나리의 인생에서 누구보다 가까운 남자였지만, 서로에게 있어 호불호를 따지자면 아마 불호에 가까울 것이다. 서로 싫어하는 건 알고 있었다. 서로가 가지고 있는 입장의 장점을 얼마나 부러워하고 있는가. 나나리는 티 세트가 놓이고 있는 테이블 위를 멍하니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소꿉친구들끼리 모여서 티 타임을 가질 예정이었다. 그 무리에 로로가 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로로 람페르지는 어머니 쪽의 먼 친척으로, 처음 만났을 때는 힘없어보이는 인상이었지만 지금은 어떤 군인보다도 강한 기량을 보이고 있어, 그 역시 ‘람페르지’의 사람이라는 걸 모두에게 증명하고 있었다. 그래서 나나리는 늘 초조했다. 그가 언젠가 오라버니의 가장 필요한 사람이 될 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그녀 역시 열심히 훈련 받고, 황족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도록 다양한 작전에서 활약해왔다.
로로 역시 그녀에게 지지않으려고 하는 것이 보였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두 사람은 서로 싫어하는 만큼 가까이 붙어다녀야했다. 생일이 같기 때문에 같이 열리는 생일 파티는 물론이고, 사교계의 데뷔는 쌍둥이처럼 치렀다. 어떻게 보면 황족의 먼 친척이기 때문에 로로는 나나리의 파트너로써 어디 하나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주변에서는 다들 ‘언젠가’에 대해서 떠들곤 했다. 그때마다 나나리와 로로는 살짝 두세 걸음씩 떨어져서 서로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외줄을 타듯 이어지는 경쟁의 끝에서 승리한 것은, 다름 아닌 쿠루루기 스자쿠였다. 로로와 나나리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 그리고 나이트 오브 세븐의 자리에 오르는 스자쿠의 서임식에서 억울한 마음을 겨우 감추었다.
황제의 기사가 되었으니 를르슈에게서 벗어났다고 생각하면 오산이었다. 그가 황제의 기사가 되는 것으로 인해 를르슈의 옆자리는 완벽하게 스자쿠가 차지하게 된 것이었다.
—스자쿠가 아니면 기사는 필요없다.
를르슈는 자기 입으로 말해놓고도 부끄러운지 더 이상 길게 말을 하지 않았고, 스자쿠는 듣고 싶었던 말을 들었으니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다며 뻔뻔하게 웃었다. 나나리와 로로는 그동안의 노력이 물거품이 된 것에 대해서 마음이 상했지만, 그래도 서로를 위로할 마음은 들지 않았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는 인연이 깊은 ‘비’ 가문은 나이트 오브 세븐과의 인맥을 하나 더 만든 것이다. 나이트 오브 원, 스리, 식스, 세븐. 대부분의 중요 인력들과 함께 하는 ‘비’ 가문은 나나리의 참전과 황후의 친정인 람페르지 가문의 후원으로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었다.
마리안느 황후는 원래부터 민중들에게 인기가 좋았으며, 그녀를 빼닮은 아들은 정치와 전투에 있어서 지지 않는 수완가였다. 귀족들과의 커넥션은 없다 하더라도,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의 긴밀한 연대가 있다는 것은 다른 집안에게 없는 장점이었다.
크게 보면 어디 하나 모나지 않은 완벽한 그림이다. 나나리는 로로가 앉을 제 옆자리를 쳐다보았다. 오늘도 오라버니는 끈질기게 말할 것이다. 스자쿠 씨도 은근히 권할 것이다.
하지만 당사자들끼리 원하지도 않는 일인데. 나나리는 한숨을 쉬었다. 나나리와 로로는 끊임없이 경쟁을 해온 상대였다. 쿠루루기 스자쿠라는 커다란 산이 있다 하더라도, 우선 당장에 서로를 이겨야한다는 생각을 했다.
목표는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의 기사, 혹은 그에 준하는 위치였다.
“나나리 전하, 손님들께서 다 오셨다고 합니다.”
“벌써요? 마중을 가야겠네요.”
“를르슈 전하께서 모시고 오신다니 여기서 기다리시라고 전하셨습니다.”
“오라버니가 먼저 가셨군요.”
오늘의 손님들은 평소보다 많았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셋, 로로 람페르지.
시끌벅적한 티 타임이 될 것이라고 생각에 두근거리고 기대가 되어야할 텐데도, 전혀 그러지 못했다.
이번 쿠루루기 스자쿠의 원정에 로로 람페르지가 따라간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나나리는 저도 모르게 잔을 쥐고 있던 손에 힘을 주었다. 를르슈는 평온하게, 스자쿠가 있으니 무사히 돌아오겠지, 하고 이야기를 했지만, 나나리는 알고 있었다.
그 에리어는 나이트 오브 세븐이 가야지만이 그나마 무사히 돌아올 수 있는 것이고, 그가 나갈 정도로 급격하게 상황이 나빠지고 있는 전선이라는 것을. 로로는 전면에 나서는 것보다 후방에서 지원을 하겠지만 그래도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위험할 텐데.
나나리는 그런 것을 떠올리다가 저의 사고 방식이 이상한 곳으로 흐르는 것에 잠시 숨을 골랐다.
이상한 곳.
그것은 로로 람페르지의 안위였다.
“기다리고 있었어, 나나리?”
“아니에요, 오라버니. 이제 막 준비가 끝나서.”
손님을 대동하고 나타난 오라버니는 고생했다며 나나리의 뺨에 키스를 해주었다. 그의 여동생으로 태어나서 얻은 이 자리를, 로로 람페르지가 얼마나 부러워하는지 알고 있었다. 그래서 나나리를 그토록 싫어하는 것도 알고 있었다.
나나리도 로로가 싫었다. 황족이라는 틀에서 갇혀있지 않고, ‘운이 좋게’ 를르슈의 옆에 있는 것이 아닌 실력으로 를르슈의 힘이 될 수 있다는 것이 부러웠다. 나나리가 황족으로서의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다해야하는 순간에, 로로는 를르슈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었다. 그것은 나나리가 할 수 없는 일이었다.
결국 두 사람이 소리없이 싸운 것과 별개로, 승리한 것은 쿠루루기 스자쿠였지만. 그간의 긴 싸움이 나나리와 로로의 현재 관계를 미묘하게 만들었다.
“오랜만입니다, 나나리 전하.”
“오랜만이야, 나나리.”
지노와 아냐의 인사를 받으면서 나나리는 해맑게 웃었다. 마지막은 로로였다.
“지난 주에 뵙고 또 뵙네요, 전하.”
“람페르지 경은 여독은 다 풀었나요?”
“물론이죠.”
“그럼 자리로 안내할게요.”
웃으면서 다들 자리에 앉히고, 나나리는 그동안 KMF훈련 때문에 쉬어서 제대로 맛이 날지 모르겠다며, 준비했던 홍차를 내렸다. 를르슈의 칭찬, 다른 사람들의 이어지는 칭찬에 나나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로로 람페르지도 나쁘지 않은 듯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나나리의 홍차는 를르슈가 가르친 방식 그대로이기 때문에 그가 좋아할만 했다.
그게 다행이라고 여겨지는 것이 이상했다.
그게 이상하다.
나나리는 로로가 있는 쪽으로 힐끔, 시선을 돌렸다가 다시 자기 찻잔 속을 들여다보았다. 어렸을 적에는 둘이 쌍둥이처럼 닮았다고 했지만, 그런 말이 죽기보다 듣기 싫었다. 하지만 지금은 누구도 그런 말을 하지 않을 정도로 두 사람은 달라졌다.
남자와 여자.
평민과 황족.
로로와 나나리.
나는 과연 그를 싫어했나?
싫어했어도, 지금도 싫어하나?
나나리는 입에 물고 있는 케이크가 무슨 맛인지 잘 모를 지경이었다. 존경하는 오라버니가 무슨 말을 하고 있지만 무슨 이야기인지 알 수 없었다. 확실한 것은 로로 람페르지도, 무언가 미묘한 얼굴로 자리에 앉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상하다.
우리는 지금 이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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