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메가버스
몸이 끈적끈적하게 녹아버릴 것 같았다. 머리는 진작에 그렇게 되어버렸고. 눈앞에 있는 것만 계속 생각하면서, 그것이 사랑스럽다고 느끼면서 없는 힘을 모아서 그 몸을 끌어안았다. 단단한 몸이 품 안에서 뜨겁게 떨리는 것에 를르슈는 달게 숨을 내뱉었다. 발정기 때의 스자쿠의 사정은 평소보다 길었다. 뱃속이 가득 들어차는 느낌이 생경했다.
를르슈, 하고 부르는 목소리에 대답도 못하고 그저 끌어안고 있기만 했다. 결국 스자쿠는 제 목을 끌어안고 있는 를르슈의 팔을 걷어냈다. 왜? 눈으로 물어보면 키스가 돌아왔다. 아랫입술을 문지르며 밀고 들어오는 혀에 같이 어울려주면 스자쿠가 기쁜 듯이 웃었다.
귀여워, 를르슈. 평소라면 그런 소리 그만두라고 한 마디 했을 테지만 지금만큼은 그러지 않기로 했다. 스자쿠도 귀여워. 를르슈의 목소리 끝이 갈라진 것에 스자쿠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물 갖다줄게.”
“…부탁해.”
스자쿠가 침실 밖으로 나가는 소리와 함께 를르슈는 침실에 홀로 남았다. 몸을 따끈하게 덥혀주던 스자쿠의 체온이 사라지고 나니 한기가 돌았다. 빨리 돌아와, 스자쿠. 를르슈는 스자쿠의 옆자리를 손끝으로 쓸어보며 중얼거렸다.
이번 발정기는 정확한 주기로 돌아왔고, 평소보다 횟수도 더 많았으니까 이번엔 진짜로…. 를르슈는 그렇게 생각하다가 그만두었다. 이런 생각 자체가 스트레스여서 몸에 안 좋다니까. 흐트러진 앞머리를 대충 손으로 훑어내리며 를르슈는 몸을 일으켰다. 발정기 내내 뒹군 몸이 뻐근했다.
자리에서 일어나자마자 스자쿠가 들어왔다. 벌써 일어나?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그냥 일어나기만 한거야. 더는 못 움직여.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그럴 것 같았다고 말했다. 스자쿠는 물과 함께 휴대폰도 갖다주었다. 발정기인 사흘 내내 쌓인 연락들이 제법 되었다. 물을 한 모금 마시고 그것들을 확인하던 를르슈는 제일 먼저 나나리에게 답장을 했다. 나머지는 나중에 해도 된다.
아직 발정기의 여운이 남은 것인지 열이 희미하게 도는 느낌이었다. 스자쿠가 부드러운 손길로 머리카락을 만져주는 것에 를르슈는 눈을 휘며 웃었다.
“볼 때마다 예뻐, 를르슈.”
“…어디가?”
“한 군데만 말하기 힘든데. 그리고 그 부분만 짚어서 말하면 다른 데는 안 예쁘냐고 뭐라고 할 거잖아.”
결혼하고 같이 살다보니 스자쿠도 를르슈의 패턴을 읽는다. 를르슈는 웃음을 터뜨렸다. 그건 썩 나쁜 기분이 아니었다. 서로에게 익숙해지고 있다는 뜻이니까.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기댔다. 한 번 더 할까? 스자쿠의 권유에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아니 우리 많이 하지 않았어? 그렇긴 하지만 더 할 수 있는데. 넌 정말 어디까지……. 지금이 아니면 를르슈랑 실컷 할 수 없으니까!
그래서 결국 한 번 더 했다. 이제 진짜, 더 안 돼…. 를르슈가 앓는 소리를 내며 스자쿠의 가슴팍을 밀어냈다. 를르슈의 다리 사이로 왈칵 쏟아지는 정액을 보며 스자쿠가 그래보이네, 하고 약간의 아쉬움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씻으러 가자. 를르슈를 안아올린 스자쿠는 욕실까지 그를 대령했다. 손 하나 까닥할 힘이 없는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디워시로 몸을 씻겨주는 스자쿠의 손길에 를르슈는 무심코 입을 열었다.
“아기…이번엔 됐겠지?”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쓴웃음을 지었다. 를르슈가 임신에 대해서 많이 신경을 쓰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매번 발정기가 끝날 때마다 이런 대화를 하는 것도. 스자쿠는 임신이나 아기에 대해서는 그저 그랬다. 를르슈와 함께 있을 수 있다면 상관 없다. 아기가 있으면 더 행복해지겠지만 지금이 덜 행복한 것도 아니니까.
거품을 걷어내고 물로 한 번 씻어내린 후에 욕탕 속에 를르슈를 앉혔다. 스자쿠도 빠르게 씻고 를르슈를 끌어안은 자세로 탕 속에 들어갔다. 몸을 기대오는 를르슈를 팔 안에 가두면서 스자쿠는 고민하며 말을 골랐다.
“아기가 있으면 좋겠지만 나는 를르슈랑 같이 있는 게 더 중요해. 임신이나 그런 거에 크게 스트레스 안 받았으면 좋겠어.”
“…….”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조용히 생각에 잠길 뿐이었다. 남들보다 몇 배나 좋은 머리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하는지는 스자쿠로써는 알 수가 없지만 우선 지금의 대답이 최선이 되길 바랄 뿐이었다.
결혼한 지 3년. 연애는 10년 넘게 했다. 서로가 짝을 맺은 알파와 오메가이기 때문에 후사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 자택근무를 하는 를르슈와 회사를 다니는 스자쿠. 둘 다 벌이가 나쁘지 않기 때문에 재정적으로 아쉬운 점도 없다. 가족들끼리 사이가 나쁘지도 않다. 를르슈가 집착하는 아이 문제도 어디에서도 압박이 들어오지 않는다. 그럼에도 를르슈가 아이에 집착하는 이유는 단 하나, 스자쿠 때문이었다.
결혼 2년째 무렵에 정신 나간 아침 드라마를 한 편 보았다. 회사를 다니는 남편에게 오피스 와이프가 있는 걸 안 여자주인공이 수라장을 벌이는 내용이었다. 다음날 신문을 보는데 오피스 와이프가 있는 남편과 그 상대를 폭행한 가정주부 이야기가 나왔다.
오피스 와이프, 드라마 속에서나 존재하는 줄 알았지 실제로도 존재한단 말인가! 나는 뭐지, 나는 하우스 와이프인가?! 스자쿠에게도 오피스 와이프가 있을 가능성…배재할 수 없다. 그 녀석은 천연이니까 자기도 모르게 어장을 만들어서 은연 중에 관리하고 있을 수도 있어. 실제로 사귀면서도 스자쿠랑 자기랑 사귀고 있다는 망상론자들이랑 몇 번이고 만났으니까! 물론 나한테도 자기랑 사귀고 있으면서 스자쿠랑 바람 피우고 있다며 달려드는 놈들이 한 두명이 아니긴 했지만 아무튼 나보다 스자쿠가 더 위험해!
스자쿠: 저는 짝이 있는 알파이며 집에 와이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대: 스자쿠 씨 같은 알파가 한 명의 오메가에게만 만족할 수 없다는 걸 알아요
스자쿠: 아, 그럴 수도 있겠네요. 사실은 와이프가 좀처럼 상대해주질 않아서….
이건 내가 문제인 거 같잖아!
성실하게 상대하고 있다고. 발정기 때이든 아니든 매번 스자쿠가 만족할 때까지 해주고 있어. 물론 입으로는 무리라고 말하긴 하지만 이 쪽은 완전히 녹초가 될 때까지….
스자쿠: 저는 짝이 있는 알파이며 집에 와이프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상대: 하지만 아직까지 아이가 없는 걸 보면 가정에 얽매이고 싶어하지 않으신 것 같아요. 저와 함께 오늘 밤….
스자쿠: 와이프에게 오늘은 야근이라고 말해뒀으니 걱정하지 말고 즐겨볼까요?
“앗, 를르슈, 아파!”
무심코 스자쿠의 팔뚝을 꼬집고 말았다. 를르슈는 미안하다고 사과했지만 스자쿠는 미안하면 키스해달라며 또 조르기 시작했다. 그래, 이러는 걸 보면 오피스 와이프 같은 게 있을 리가 없지. 스자쿠가 원하는대로 키스를 해주며 를르슈는 또 다시 일어서는 스자쿠의 것에 눈을 감았다. 씻은 보람이 없게 됐지만 이걸로 아기가 생길 확률은 또 다시 높아진다. 아기가 생기고 그러면 스자쿠는 진짜 나의 것이 되겠지.
“나 섰어.”
“알고 있다.”
“해도 돼?”
“다시 씻겨줄거야?”
“Yes, your majesty.”
“그럼 해도 돼.”
욕실에서 하는 거 오랜만이네. 소리 울리는 거 기대된다. 마치 모험을 떠나는 소년처럼 들떠있는 스자쿠를 보며 를르슈는 소리 없이 웃기만 할 뿐이었다. 가슴을 더듬는 손길과 뒤를 다시 풀며 들어오는 손가락에 를르슈는 숨을 골랐다. 사실 아이 같은 거 없어도, 스자쿠가 자기를 누구보다 사랑하는 건 알고 있다. 다 나의 자기 만족이지. 그렇지만 그 버릇 없는 자기 만족에 어울려주는 스자쿠가 사랑스러워서 미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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