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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무한 너와 공허한 나 上 *

DOZI 2019.06.12 13:26 read.725 /

부활루 그 이후.

제로 스자쿠 X 허무슈 

 

 

 

 

 

 

 

 

 

 

 

 

오랜만에 온 연락 속의 여자는 상당히 지쳐있는 목소리였다. 의지해도 된다면 의지하고 싶어. 남자를 유혹하는 멘트 치고는 힘이 없어서 스자쿠는 가면을 벗었다. 어차피 혼자 있는 방 안이고 여차하면 바로 쓸 수 있게 무릎 위에 올려두었다. 물론 여기까지 오려면 몇 겹의 비밀 루트를 뚫어야했기에 그럴 일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C.C.는 ‘안될까?’하고 정말 간절하게 말했다. 스자쿠는 슈나이젤이 매주 월요일에 정리해서 올리는 스케쥴을 확인하며 중얼거렸다.

 

“무슨 일인데? 잠깐 시간을 낼 수는 있지만….”

‘만나서 이야기할 시간은 5분이면 되지만, 그 이후에도 계속적으로 봐야하는 일이라서. 최소 사흘, 최대…….’

“응? 사흘씩이나?”

‘최대 1년까지 보고 있어.’

“대체 무슨 일이야?”

 

난 지난 1년동안 정말 피곤해서 견딜 수가 없었고, 이 녀석의 뒷바라지를 하는 건 이제 견딜 수가 없다. 브리타니아 공화국에는 미혼모 제도가 있어? 제발 있다고 말해줘. 마음 같아서는 브리타니아에 반품하고 싶을 지경이다. 

C.C.의 영문모를 소리에 스자쿠는 중요한 단어만 체크했다. 미혼모?

 

“음…를르슈랑 너랑 애라도 가진거야?”

‘그러길 바라?’

“상관은 없지만.”

‘거짓말 하지마, 쿠루루기 스자쿠. 나를 질투하고 있는 주제에.’

“질투 같은 거 안 해.”

 

그건 사치스러운 감정이잖아. 제로에게 어울리지 않아.

스자쿠의 말에 C.C.는 지극히 정론을 펼치는 스자쿠의 말에 작게 웃었다. 아쉽게도 우리는 그럴 수 없어. ‘우리’라는 말에 묶이는 C.C.와 를르슈가 부럽지 않으면 거짓말이었다. 예전에는 를르슈와 나나리가 ‘우리’였고, 그 이후에는 를르슈와 C.C.가 ‘우리’였다. 스자쿠와 를르슈는 한 번도 같은 테두리 안에 묶인 적이 없었다. 

 

‘정말로…. 우리는 필요에 의해 그렇게 움직이게 된 것 뿐이야. 를르슈는 불쌍한 녀석들을 보면 가만히 못 두잖아. 나는 때마침 그때 세상에서 제일 불쌍했고.’

“…를르슈 이야기는 그만하자. 나한테 별로 좋은 친구는 아니었으니까.”

‘그래?’

“응.”

‘나나리의 오빠잖아.’

“그럼 나나리에게 부탁하는 게 어때?”

‘명예고문은 바쁜걸로 알아.’

“그럼 나는 얼마나 바쁜 줄 알아?”

 

스자쿠는 제로의 가면을 보면서 중얼거렸다. C.C.는 ‘그랬지.’하고서 상당히 체념한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알겠어. 그럼 여기서 버텨보도록 할게.’

“스스로 할 수 있다면 하는 게 좋아. 여기 인력도 점점 부족해져서….”

 

결혼한 사람들이 쉬는 경우가 많아지면서 스자쿠의 일거리도 늘어나고 있었다. 그만큼 세상이 평화로워지고 있는 증거니 스자쿠는 크게 피로함을 못 느꼈다.

 

‘XXX라는 나라는 앞으로 얼마나 더 평화로울 거 같아?’

 

그곳은 현재 내란지역으로 언제 폭탄이 터질지 모른다. 들리는 뜬소문에 의하면 프레이야 탄두를 새로이 만들 작정으로 유명 과학자들도 납치 피해를 당했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스자쿠는 음, 하고 대답을 망설였다. 

 

“설마 거기 있는 건 아니지?”

‘맞아.’

“당장 나오는 게 좋을걸. 옆나라로 망명이라도….”

‘우리는 신분증명서가 없어.’

“…몰래 담이라도 넘어.”

‘그러고 싶지만 를르슈가.’

“를르슈라면 체력보다 머리를 써서 알아서 넘어가지 않을까? 아, 를르슈의 기어스라면.”

‘…….’

 

갑자기 조용해진 C.C.의 목소리에 스자쿠는 불안해졌다. 를르슈는 그 이별 이후로 연락이 한 번도 없었지만, C.C.는 꾸준하게 안부를 전해왔다. 나나리에게 전해줘, 라는 말을 꼭 붙이면서 두 사람의 무사안녕을 전했다.

 

“를르슈한테 무슨 일이라도 있어?”

‘…있다면 있고, 없다면 없지만.’

“정확하게 말해.”

‘도와줄거야?’

“내용에 따라서.”

‘생각해보니 네가 도와주지 않아도 돼. 코우즈키 카렌도 있으니까.’

“아쉽게도 카렌은 내 부하야.”

‘너보단 를르슈의 말이 우선인 녀석이지.’

“……도와줄게.”

‘조건은?’

“없어.”

 

하아, 하고 긴 한숨을 내쉰 C.C.는 이내 스자쿠에게 욕을 했다. 를르슈보다 끈질긴 놈. 스자쿠는 스케쥴러를 넘겨보며 일정을 조율하기로 했다.

XXX까지 갈때 KMF가 필요할까? C.C.에게 묻자 그녀는 아니라고 대답했다. 최대한 조용하고 얌전하게, 큰 소리를 무서워하니까, 하고 말했다. 아이가 벌써 그렇게 컸나? 스자쿠는 미간이 찡그려졌다.

 

‘빨리 와줘.’

“…나는 바빠.”

‘부탁할게.’

 

애원하는 사람에게는 약하다. 부탁하는 사람에게는 더없이 약하다. 자신에게 의지하고자하는 사람은 더. 

쿠루루기 스자쿠는 이런 점을 이용하는 C.C.가 어느새 를르슈와 닮았다는 것을 생각하니까 기분이 나빴다. 알겠어, 하고 전화를 끊고서 스자쿠는 제로의 가면을 썼다. 야아옹, 하고 아서 주니어가 스자쿠의 발 근처에 다가왔다. 벌써 가는거냐옹, 하고 묻는 거 같았다. 스자쿠는 장갑을 낀 손으로 아서 주니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두번 만지다가 바로 장갑의 끝을 깨무는 것에 또 눈물이 날뻔 했다. 괜히 아서 주니어가 아니었다.

 

 

“와줘서 고마워. 흑의 기사단은?”

“내정 분란을 진압하러 군부와 정부청에…. 아니, 그나저나.”

“못해도 사흘, 길어봤자 일 년이라고 생각해.”

“이거….”

“뭐, 이거라고 불려도 소용없지. 를르슈다.”

 

스자쿠는 바닥에 주저앉아서 길바닥의 개미를 쳐다보고 있는 를르슈를, 아니 그와 비슷한 것을 보며 어이가 없었다. 스자쿠에게 작은 가방을 내미는 C.C.는 스자쿠가 받는걸 확인하자마자 를르슈를 일으켜 세웠다.

 

“를르슈, 일어나. 그래, 그렇지, 개미 안 밟게. 좋아, 이 사람, 스자쿠야.”

“…~?”

“스자쿠, 를르슈한테 손 내밀어.”

“으응?!”

 

스자쿠는 시키는대로 손을 내밀었다. 를르슈는 어딘가 멍하고, 맹해보이고, 시선이 제대로 맞지 않았다. 마치 팔랑팔랑, 하는 소리가 날 거 같은 손으로 스자쿠의 손을 잡았다. 딱딱한 장갑의 느낌에 를르슈는 화들짝 놀란듯 어깨를 떨었다.

 

“장갑 벗어, 스자쿠. 를르슈는 그런 걸 무서워 하거든.”

“뭐?”

“빨리.”

 

결국 장갑을 벗었다. 다시 손을 내밀자, C.C.는 를르슈의 허공을 맴도는 손을 다시 스자쿠에게 쥐어주었다. 스자쿠의 단단하고 뜨거운 손에 닿자 를르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누군지 알겠어?”

“~!”

“그래, 스자쿠. 안 무서운 사람.”

“…!!”

“당분간 둘이서 지내는거야. 알겠지?”

 

그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좌우로 흔들었다. 뭐지, 이, 어린애는. 스자쿠는 솔직하게 드는 감상에 두 사람의 대화를 지켜보고만 있었다. 단어도, 문장도 내뱉지 못하는 를르슈는 거의 행동으로만 대답했고, C.C.는 그런 를르슈에게 하나하나 일일이 설명하고 있었다.

 

“나는 바빠, 를르슈는 위험하고.”

“~~!”

“안 돼.”

“…….”

“금방 돌아올거야. 얌전히 있어.”

“…!”

 

스자쿠와 잡은 손을 꽉 쥔 를르슈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러면서 다시 주저 앉았다. 쑥, 하고 내려가는 왼쪽 팔에 스자쿠도 동시에 주저 앉았다. C.C.는 커다란 짐을 덜어내서 후련하다는 듯이 말했다.

 

“예전에 한 번 이랬어. 너를 만나기 전에 줄곧 이랬는데…. 그때는 어떻게든 버텼지만, 지금은 더는 못 견디겠어.”

“이게 를르슈야?”

“응. 기어스의 조각을 되돌리는 과정에서…뭔가에 휩쓸린 모양이야. 금방 찾아내려면 다시 조각을 찾아내서 접속하는 김에 찾아낼게.”

“……그게 1년이나 걸릴 수도 있다는거야?”

“를르슈를 되찾는데 1년이 걸렸으니까. 솔직히 그 이상이 될거라는 생각도 해.”

 

네가 힘들면 코우즈키 카렌이랑 너랑, 나나리랑 돌아가면서 맡아. 어차피 그 녀석은 자기한테 제일 잘해주는 사람한테는 얌전하니까.

C.C.의 말에 스자쿠는 그게 과연 사람인지, 싶었다. 커다란 배낭을 둘러맨 C.C.는 떠나기 전에 말을 더 보탰다.

 

“를르슈라고 생각하면 안 돼. 그냥 애야. 말도 안 통하는 애.”

 

그리고 스자쿠는 제로 전용기에 올라탔다. 도망치려는 를르슈를 허리채로 붙잡고 올라탔다. 누구입니까, 그 사람은?! 제로의 호위를 맡고 있는 누군가가 물었지만 스자쿠는 그저 ‘중요 인물이다’라고 말했다. 으아아, 아아악! 소리를 지르는 중요 인물이 과연 정의의 사도의 손에 들려있는데 그게 과연 씨알이나 먹힐법 한 소리인가 싶었다.

행여 를르슈의 얼굴이 드러날까 싶어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눈을 천을 찢어 가리개로 만들었다. 앞이 보이지 않자 를르슈의 반항은 더욱 거세졌다. 결국 포로를 포박하듯이 팔다리를 묶고 눈까지 가려놓은 를르슈는 반항도 못하고 울다가 지쳐 쓰러져 잤다.

부드럽게 비행하고 있는 비행기 안에서 스자쿠는 기진맥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