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자루루+지노카렌
현대 패러렐
“키스를 얼마나 자주 하냐고?”
질문을 받은 쿠루루기 스자쿠는 에, 하고서 손가락을 접기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한 번, 세수하고 한 번, 양치하고 한 번, 옷 갈아입으면서 한 번, 나가기 전에 한 번, 차에 타고 나서…. 벌써 다섯 손가락이 다 접히는 걸 보고서 지노는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렇게 자주한다고?!”
“보통이지 않나?”
“스자쿠의 보통은 다른 거 같아. 선배랑 같이 산지 꽤 됐잖아.”
“결혼하고 나서 3년째인가. 루틴이 그렇게 정해진 거 같아.”
“선배는?”
“를르슈 합의 하에 이루어지는 거야. 나를 뭐로 보고.”
뭐로 보긴. 지노는 를르슈와 스자쿠의 열렬한 연애사를 옆에서 다 지켜본 사람이었다. 죽이니 살리니 배신자니 뭐니 하며 서로의 멱살을 잡고서 나중엔 사랑한다고 끌어안는 것에 그는 진작에 두 사람에게 질린 지 오래였다. 그러나 굳이 오늘 그 둘 중 하나인 스자쿠에게 그걸 묻는 것은 오늘이 키스 데이여서도 있었고, 그의 연애 사정이 복잡하게 얽혀있기도 했다.
“너무 많나? 아침엔 우선 그래.”
“…저녁에는?”
“더 듣기 싫을걸. 돌아와서 한 번, 손 씻고 한 번, 저녁 먹기 전에 한 번, 양치하고 한 번, 소파에서 한 번, 침대에서 한 번, 그 이후는 세본 적 없음.”
“…….”
“우와, 바인베르그 씨 그걸 다 들어주고 있었네.”
지나가던 리발이 중반부터 들으면서 스자쿠와 지노 사이에 끼어들었다. 지금은 점심시간의 쉬는 중이었고, 오랜만에 애쉬포드 멤버들이 다 모였다. 브리타니아 계열의 이 회사는 쿠루루기 스자쿠의 존재가 이질적이었지만, 그는 남편이자 아내를 브리타니아인인 를르슈 람페르지로 둘 정도로 브리타니아의 사정에 대해서 훤히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지노는 뭐라고 더 물어보려다가 리발이 끼어든 김에 아예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펼치기로 했다. 어차피 상대방은 위로 10층은 더 가야 있는 기획경영의 카렌이었다.
“그럼 프렌치입니까, 아니면 베이비입니까?”
“시간 없을땐 베이비.”
“…새삼 스자쿠가 부럽군.”
“를르슈도 처음엔 부끄러워했어. 하지만 사람은 적응의 동물! 습관을 들이면 알아서 길들여지게 되는 법이지!”
“그대로 선배한테 전해도?”
“안 돼. 아무튼 이걸 물어보는 저의는?”
“선의로 대답해줘.”
바라는 게 많아. 스자쿠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그는 결혼하고 나서부터 너스레도 많이 떨고, 여유로워졌다. 가끔은 살이 쪘다고 투정 같은 걸 부리지만, 어느날 갑자기 근육질이 되어서 헬쓱한 얼굴로 나타날 때도 있었다. 무슨 일이냐고 물으면, 입술을 감추며 씨익 웃는 것이 별로 알고 싶지 않았다. 그 주의 를르슈를 만날 때면, 하얗게 질려서 손끝이 달달 떨리는 걸 볼 수 있었다.
“기본 프렌치라 이거군요. 어떻게 길들이나요?”
“우선은 몇 대 맞을 각오로 계속 들이대고.”
“응.”
“스자쿠 끈질기네.”
“조용히 해, 리발. 나는 피를 볼 각오를 하고 시작한 거니까. 아무튼, 어느 순간 반항이 미미해지면 살짝….”
“다들 모여서 무슨 이야기를?”
마지막은 길들여진 당사자인 를르슈였다. 스자쿠의 어깨를 턱, 잡아오는 왼손에는 스자쿠와 3년 전에 맞춘 반지가 있었다. 지금 모인 지노와 리발은 두 사람의 비공식적 결혼식에 축의금을 왕창 뜯기고 호텔의 술 창고를 반은 박살내듯 비워냈다. 그걸로 신경 쓸 스자쿠와 를르슈가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에 한 패기 넘치는 일이었다. 그 자리에 카렌이 있었다.
그래, 카렌이랑 지노는 그때부터 사귀기 시작했다. 지노는 카렌의 를르슈에 대한 마음을 알고 있었다. 그녀가 오늘 이 자리에 마음을 정리하기로 온 것도. 사실상 여기에 온 여자 절반이 를르슈에 대한 마음을 접으러 온 게 아닌가.
어머니 마리안느의 손을 잡고 등장하는 를르슈는 평소의 박력보다는 수줍음이 넘쳐보였다. 먼저 버진로드를 걸어온 스자쿠는 하얀 턱시도를 입고 등장한 제 신부이자 신랑을 보며 환하게 웃었다. 둘의 결혼식은 비공식이지만 아무튼 사내 공인 부부로써 인정받았다.
“아, 오늘의 키스가 없었네.”
“회사에서 무슨 키스야.”
“키스 데이잖아.”
쪽, 하고 를르슈의 뺨에 기세 좋게 닿은 스자쿠의 입술에 를르슈는 뺨을 붉혔다. 적당히 해. 스자쿠의 얼굴을 한 손으로 눌렀다. 아흐아…. 스자쿠의 짓눌린 입술이 뭐라고 중얼거렸지만 를르슈는 신경쓰지 않고 옆자리에 앉았다. 남자 휴게실이 복작거리는 건 드문 일이라 지나가는 사람들이 힐끔거렸지만, 를르슈와 스자쿠가 한 곳에 있는 것을 보고서 들어오는 걸 망설이는 것 같았다.
지노로써는 더 이야기하기가 편해졌다.
“솔직히 말하면 선배와 스자쿠가 부러운데요.”
“그래? 뭐가 부럽지?”
“키스를 자주 하는거요.”
“결혼해, 그럼.”
를르슈는 아주 쉬운 정답을 말하듯이 말했다. 카렌이랑 너는 집안도 비슷비슷하고, 남자랑 여자고, 그림도 좋네. 너 막내라서 카렌은 아쉬울 것도 없지 않나? 카렌도 막내라서 집안 살림은 잘하려나? 둘이 호흡을 잘 맞추고 그러면 상관없지만….
를르슈의 살림 철학과 스자쿠의 끄덕거림에 지노는 뭐라고 하고 싶었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지노와 카렌의 연애 전선에 있어서 결혼 이야기가 먼저 나오는 것은 당연히 두 사람의 나이가 이십대 후반에 접어들고 있었기 때문이고, 결혼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었다. 자본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집안이 부족한 것도 아니었다.
“애정이…문제라고 해야할까요.”
“좋아서 사귀는 게 아니야?”
“저는 좋아요, 카렌이.”
“카렌은? 네가 별로래?”
를르슈의 늘씬한 손가락 끝에는 스자쿠와 맞춘 반지가 반짝거렸다. 카렌은 그 반지의 교환식에서 눈물을 겨우 참는 것 같았다. 그 모습에 지노는 다시 한 번 반했다. 이별하는 여자에게 반하다니, 의외로 변태 같은 취향일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좋았다. 끝까지 자기 마음을 정리할 줄 아는 여자는 멋있다.
그리고 돌아오는 길에 카렌에게 고백했다. 바보 취급하지 말라는 카렌에게 솔직하게 마음을 전하면, 카렌은 지노의 손을 잡아주었다. 항상 당당하게 가슴을 펴고 고개를 살짝 들어올린 카렌은, 그날따라 작고 여려서 지노의 한 손에 다 담기는 손마저 가련한 느낌이었다.
이 여자랑 평생 사랑하고 싶다. 유치하지만 지노의 심장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라고 표현하고 싶었다. 하지만 심장은 펌프질을 하는 순환기에 불과하고, 지노의 감정은 대뇌에서 비롯되는데— 그 대뇌가 비상신호를 보낸 것이다.
“카렌이랑 키스를 아직 해본 적이 없어요.”
연애한지 3년째, 아직도 손만 잡고 있는 지노 바인베르그(현재 사내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의 속사정은 이러했다.
스자쿠와 리발은 물론, 를르슈까지 눈이 동그랗게 떠졌다. 리발은 넋이 나간 손으로 더듬더듬 지노의 하체를 만졌다. 부, 붙어있는데?! 지노는 불쾌한 리발의 손을 떼어냈다. 아, 남자로써 기능은 한다구요! 카렌 앞에서 수 차례나 기능했지만 다 무용지물이 되었던 상황이 3년동안 반복되었다.
“그치만, 두, 둘이 여행도 다니고.”
“침대를 두 개 썼어요.”
“뭐?!”
“더블일 때는 제가 바닥에서 잤고요. 소파나.”
“손은 잡았겠지…?”
“파티에서 에스코트할 때 잠깐.”
“…데이트는?”
“카렌이 좋아하는 영화가 개봉할 때 가끔.”
“……기념일이라던가.”
“생일 정도는 챙기지만, 그건 다 같이 함께.”
그러고 보니, 지노나 카렌의 생일에 애쉬포드 학생회 멤버 모두가 다 참여하지 않았나.
두 사람의 시간은 따로 없었나. 거짓말. 세 남자는 눈빛을 교환하며 지노를 가엾은 눈으로 쳐다보았다.
“카렌은 널 좋아하긴, 하는거지?”
스자쿠의 떨리는 말에 지노는 한숨을 쉬었다.
“역시, 다들 그렇게 생각하는구나.”
당연하지, 라는 말도 나오지 않았다. 여기 3년 동안 손만 잡고 산 연인이 있다. 그리고 3년 동안 하루에 키스는 열 번도 넘게 하는 부부(비공식 비합법)가 있다. 뭐라고 충고 해주기도 뭣한 남자도 한 명 더.
지노는 잘 땋은 머리 끝을 만지작거리며 한숨을 쉬었다.
“이쯤 되니까 뭐라고 확인하기도 무섭고요.”
“어, 억지로라도….”
를르슈는 제가 길들여졌던 방법을 떠올리며 말했다. 지노는 어이가 없다는듯이 말을 했다.
“짐승도 아니고 왜요? 카렌의 의사를 존중하고 싶어요.”
짐승이었던 스자쿠는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렇지, 의사, 합의, 그런 거, 정말 중요해! 스자쿠가 뭐라고 말을 해주고 싶지만 할 말이 없는 상황에 를르슈도 그의 어깨를 토닥여주었다.
“그렇지만 좀 더 연인다운 일을 하고 싶은데….”
“카렌의 취미를 알잖아, 그래, 운동, 그런거 같이 한다거나.”
“카렌의 사적인 시간까지 빼앗고 싶지 않아요. 그런데까지 집착하는 남자친구는 별로잖아요.”
그렇게 해서 스자쿠의 1부터 10까지 다 손에 넣은 를르슈는 스자쿠를 토닥이던 손을 멈추었다. 참 저질끼리 만났다. 리발은 속으로 그 소리를 억누르며 이제 저에게 돌아온 턴turn에 말을 골랐다.
“이런 거는 방법 없어, 본인끼리 해결해야 돼! 우리가 백날 말해도 소용 없어!”
비교적 평화노선이 채택되었다. 스자쿠와 를르슈도 살아났다.
지노는 저들끼리 신이 난 세 남자를 보고서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된 조언을 바라고 말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너무 정론적인 대답이 나오니 할 말이 없었다.
지노 바인베르그, 사내 결혼하고 싶은 남자 1위가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는 멍청이도 아니고, 바보도 아니다. 그런 정직한 정답을 모를 리가 없었다. 그가 그 방법을 실행하지 않는 이유는 단 하나다.
‘사귀지 않는다고 하면 어떡하라고….’
그는 겁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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