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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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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를 보는 금요일

DOZI 2019.06.17 12:22 read.318 /

스자루루 (+로로나나)

현대패러렐 

 

 

 

 

 

 

 

 

 

 

 

 

 

 

 

“그래서 두 분 다 아직 그 영화를 못 봤다구요?”

“그렇지.”

“지난주에 재개봉을 할 정도로 엄청 인기가 많았는데!”

“나나 를르슈나 영화를 그렇게 자주 보는 편은 아니니까.”

 

인쇄기 앞에 서있는 나나리는 지난주에 있었던 로로와의 데이트를 이야기하며, 그때 보았던 영화 이야기를 했다. 스자쿠는 애인의 여동생이자, 직장 부하인 나나리의 이야기를 듣는 걸 좋아했다. 회사 기강이 어쩌고, 하기도 전에 여기는 이미 미레이 애쉬포드의 소굴이었다. 친목으로 굴러가는 회사는 를르슈 람페르지의 수완으로 큰 이득을 보지도 않고, 큰 손실도 입지 않은 채로 나름 상승세의 곡선을 그리고 있는 중이다. 

여름에 봐도 명작이었어요, 라고 영화의 여운에 잠겨 있는 나나리를 보며 스자쿠는 턱을 괸 채로 웃었다. 나도 그거 볼까? 넷플릭스에 있어? 나나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사실은 로로랑 넷플릭스에서 보다가, 재개봉한다는 소식을 알아서 겨우 표를 구했다구요.

그럼 이번주 주말은 그 영화를 보면서 지내야겠어. 스자쿠의 말에 나나리는 분명 오라버니도 좋아하실거예요, 라고 말했다.

 

“그럴까? 를르슈 취향은 의외로 애 같아서. 권선징악 히어로물을 좋아하지 않아? 멜로나 로맨스는 오히려 나보다 더 빨리 잤던 거 같기도 하고….”

“그럴 수도 있겠네요. 하지만 그때마다 스자쿠 씨가 깨워주시면!”

“아하하, 노력할게.”

 

스자쿠는 자리로 돌아와서 공백으로 비워져 있던 이번주 주말에, 나나리가 말한 영화 제목을 써넣었다. 

Eternal Sunshine. 

예상하건대, 를르슈는 100% 잘 것이다. 잠들 를르슈를 위해서 담요를 미리 꺼내놔야겠다. 더운 것을 못견디는 를르슈는 에어컨을 늘 차게 틀어놓으니 핑계도 다양했다. 때마침 바깥에서 미팅을 마치고 돌아온 미레이와 를르슈는 덥다, 더워, 하면서 돌아왔다.

오늘은 금요일이었고, 를르슈와 나나리는 다음주에 또 보자며 사이 좋게 볼 키스를 하고 헤어졌다. 오빠가 결혼하고, 여동생도 애인과의 동거를 시작하면서 생긴 버릇이었다. 스자쿠는 나나리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몇 년을 본 사이지만 볼 키스는 오빠만이 할 수 있는 전유물 같았다. 그걸 굳이 손대고 싶지 않았다. 

 

“오늘은 영화를 본다고?”

“응. 나나리가 추천해줬어. 로로랑 같이 봤다는데, 엄청 좋았대.”

“…그래? 장르는?”

“멜로, 드라마, 로맨스.”

“…….”

“잠깐의 액션도 있댔어. 약간의 스릴러랑.”

“정말?”

“인터넷에서 평을 찾아보니까 그랬어.”

“나나리가 한 말이 아니면 소용 없어.”

 

그래서 둘은 맥주를 한 가득, 그리고 안줏거리를 할 반찬거리도 사고, 내일 아침에 해장국거리도 사면서 맨션으로 들어갔다.

를르슈가 문을 열고, 스자쿠는 터질 것 같은 장바구니를 부엌에 내려두었다. 내가 치울테니까 먼저 씻어. 를르슈는 수트 차림으로 장바구니 안의 내용물을 냉장고에 솜씨 좋게 집어 넣었다. 스자쿠가 씻고 나오면 안주까지 완벽하게 요리가 되어 있었다. 오늘은 저녁은 건너 뛰고 바로 술이었다. 

부엌의 낮은 테이블까지 그것을 옮기는 건 스자쿠의 몫이었다. 를르슈는 그 사이에 씻으러 들어갔다. 냄비 안의 국이나 밥솥의 밥 같은 것은 가장 마지막에 옮기기로 했다. 스자쿠는 텔레비전에 노트북을 연결했다. 를르슈가 새 노트북을 장만하면서 버려지게 될 노트북을 스자쿠가 게이밍 노트북으로 잘 쓰고 있는 중이었다.

HDMI 케이블과 사운드 케이블까지 다 연결하고 나오니 를르슈가 촉촉히 젖은 채로 나왔다. 밥이고 영화고 다 그만두고 베드인 하고 싶은 마음이 잠깐 솟았다가 가라앉았다. 그건 토요일에 해도 늦지 않아, 쿠루루기 스자쿠. 드라이기로 머리를 말리던 를르슈가 스자쿠를 부르더니 스자쿠 머리부터 말렸다. 

 

“감기 걸린다, 너. 이거 말리는데 얼마나 걸린다고.”

“얼마 걸리진 않지만 안 해도 금방 말라.”

“드라이기로 말리면 더 빨리 마르지?”

 

사실은 머리를 쓸어주는 를르슈의 손길이 좋았다. 를르슈는 어렸을 적부터 나나리를 보살펴왔으니, 스자쿠처럼 짧은 머리카락을 말리는 것은 더욱 손에 익은 듯 했다. 스자쿠의 반쯤 마른 머리가 보송보송하게 말랐다. 그 다음은 를르슈가 머리를 말렸다.

국과 밥을 퍼온 스자쿠는 를르슈가 머리를 말리는 동안 바로 먹을 수 있게 준비를 했다. 를르슈도 마무리가 끝난 것인지 낮은 테이블에 앉았다. 그리고 둘은 영화사와 배급사의 로고를 보면서,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밥은 둘 다 절반씩 먹었다. 영화의 기승전결의 ‘기’부분이 지나갔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연인 둘이 거칠게 싸웠다. 여자가 입이 거친 거 같기도 하고, 남자가 지나치게 찌질한 것 같기도 했다. 영화를 잠시 멈추고 스자쿠와 를르슈는 테이블을 한 번 치웠다.

 

“맥주 가져올게.”

“안주는 계란말이였던가?”

“응.”

“를르슈, 과일 깎아줄까?”

“뭐가 있더라….”

“복숭아랑, 딸기.”

“딸기.”

“그럼 씻어갈게.”

 

방금 전보다 비워진 테이블 위에서 이번엔 어깨를 맞대고 영화를 봤다. ‘승’ 부분이었다. 여자는 남자와 싸우고 나서 홧김에 그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놀랍게도 남자도 여자에 대한 기억을 지운다.

뭐야, 그럼 그대로 헤어지는거야? 스자쿠는 입가를 가리면서 어이가 없었다. 하지만 ‘기’ 부분에서 남자와 여자는 다시 만나는 거 같았는데. 그러면서 차가 박살나고 집이 박살나고, 갑자기 서점 불이 꺼지고. 

눈이 네 개였다가 뭉개진 얼굴이 나왔다가. 스자쿠는 속이 미식거려서 를르슈의 손을 꼭 붙잡았다. 네티즌 녀석들, 여기가 스릴러였구나…. 를르슈는 덤덤한 얼굴로 영화를 보고 있었다. 아냐, 분명 놀라고 있을 것이다. 로로와 나나리의 취향이 이런 영화라는 것에 놀라고 있을 것이다. 

 

“맥주 떨어졌어.”

“사올까.”

“아니, 그만 마실래. 를르슈는?”

“나도 그만.”

“뭐라도 더 먹을까?”

“뭐가 있더라?”

“딸기 다 먹었고…. 복숭아? 아, 푸딩 있어. 아, 유통기한 내일까지야.”

“푸딩, 푸딩.”

 

영화를 한 번 더 멈추었다.

기억이 지워지는 걸 멈추고 싶은 남자와, 기억 속에 지워지는 여자가 열심히 싸운다. 를르슈는 푸딩을 손에 쥐고서 느긋하게 먹었다. 스자쿠도 이리저리 바뀌는 화면에 집중했다. 스자쿠의 푸딩이 좀처럼 줄지 않았다.

나중에 를르슈가 거의 1.7개 정도 먹었지만, 스자쿠는 아쉽진 않았다. 배가 부른 를르슈는 마지막을 거의 졸음을 참아가며 보았다. 그러다가 결국 눈을 뜨고 나니 스자쿠가 뒷정리를 하고 있었고, 를르슈는 쿠션을 끌어안고 소파에서 자고 있었다. 

 

“영화는?”

“아, 그냥 그랬어.”

“나나리한테 말해줘야 돼…. 똑바로 말해.”

“그냥 그랬는데.”

“……다시 틀거야.”

“이미 케이블 다 정리했네요, 람페르지 씨.”

 

스자쿠가 장난스럽게 웃었다. 그릇을 정리하는 뒷모습 중에 엉덩이가 미워보여서 발로 툭 건들면 스자쿠가 위험하다고 또 웃었다. 위험한데 왜 웃지. 이상한 녀석. 를르슈는 하품을 길게 하며 품에 있는 쿠션을 끌어안았다. 

 

“그래서 기억은 다 지웠어?”

“음…. 나중에 를르슈 혼자서 봐.”

“네가 대답하면 되잖아.”

“나도 억지로 졸린 거 참아가면서 봤는데, 를르슈 혼자서 말 몇마디로 알아내는 건 비겁하잖아?”

“너와 나 사이에 비겁한 게 어디있어?”

“안 속아. 궁금하면 인터넷에 검색해.”

“……나는 그렇게까지 약은 녀석이 아니야.”

 

맥주도 들어가고, 딸기도 들어가고, 푸딩도 들어간 를르슈의 뱃속은 좋아하는 것이 온통 넘실거리고 있는 중이었다. 정리를 다 마친 스자쿠가 테이블까지 다 닦는 모습에 를르슈는 정말로 검색을 하려다가, 스자쿠에게 물어보고 싶은 것이 생겼다.

부엌에 행주를 갖다둔 스자쿠는 손을 막 씻고 물기에 젖은 채로 돌아다니고 있었다. 흩어지는 물방울이 신경쓰였지만, 물웅덩이를 만드는 것도 아니니 괜찮았다.

 

“만약에 너랑 나랑 헤어지면….”

 

를르슈의 가정형에 스자쿠는 가만히 를르슈를 쳐다보았다. 스자쿠의 시선을 마주하는 것 대신에 멍하니 쿠션 쪽을 내려다본 를르슈는 말을 이었다.

 

“나는 너랑 있었던 기억을 다 지울지도 몰라.”

“그래?”

“너를 완전히 모르는 사람이 되고 싶을 거 같아.”

“…엄청난 부작용이 있을 텐데? 우리 둘 사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아무도 없잖아.”

“떠나면 돼. 너와 나를 알던 사람들이 없는 곳으로.”

“나나리가 없어도?”

“나나리한테는 가끔 연락하면 돼.”

“내 이야기가 들리면?”

“적당히 거짓말을……. 아, 됐어. 나나리한테 거짓말을 할 바에야 그냥 데리고 살지.”

 

데리고 산다는 표현에 스자쿠는 크게 웃었다. 밤이 늦었는데도 크게 웃는 소리에 를르슈가 시끄럽다며 타박을 주었다. 를르슈의 발끄트머리에 앉은 스자쿠는 나라면, 이라고 저도 가정형을 붙였다.

 

“를르슈랑 헤어져도 절대로 기억을 지우지 않을 거 같아.”

“왜? 나를 과거로 만들 자신이 있어?”

“그럴 자신이 있다고 하기 보다는…. 이렇게까지 나를 사랑해주고 미워해준 사람은 너밖에 없으니까, 인생에 그런 사람이 한 명 정도 있었다는 사실은 기념하고 싶잖아?”

“기념이라….”

“를르슈 람페르지는 헤어지면 나에게 너무 슬픈 사람이지만, 그렇다고 안 헤어질 수는 없는 사람으로 남는거지.”

“말이 어렵군, 스자쿠.”

“서로 사랑하는 지금이 정말 소중한 게 아닐까?”

“그래?”

 

그럼 영화 결말 빨리 말해, 스자쿠. 

직접 보라니까?

결국 스자쿠의 어깨를 발로 찬 를르슈는 휴대폰을 붙잡고서 결말을 알아냈다. 이게 뭐야, 하고서 소리를 지르는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밤이니까 조용히 하라며 키스를 했다. 그렇게 알아내고 싶었던 결말이 너무 황당해서 를르슈는 짜증이 났다. 스자쿠는 혀를 깨무는 를르슈의 폭력에 눈물이 찔끔 났다. 

 

[나나리: 그래서 영화는 어땠나요?]

[를르슈: 최고였어. 나나리의 선택은 언제나 현명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