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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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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ZI 2019.07.16 11:35 read.500 /

아저씨 스자루루 

 

 

 

 

 

 

 

 

 

 

 

 

 

 

 

 

—내가 죽으면 재산은 다 나나리한테 가게 했어.

 

오랜만에 집에서 밥을 먹는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중에 를르슈가 아무렇지도 않게 한 말이었다. 스자쿠는 입 안에 있는 것들을 씹어 삼켰다. 사레가 들리지 않는 게 다행인건가? 를르슈는 뉴스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 하는 정도로만 이야기하고 있었지만 스자쿠에게는 엄청나게 큰일이었다.

둘이 같이 산지 벌써 10년은 훌쩍 넘었고, 지지난달인가 그쯤에 동거 15주년 기념으로 케이크도 먹고 오랜만에 느긋하게 사랑도 나누고 그러지 않았나? 그런데 갑자기 닥친 죽음의 이야기는 스자쿠가 아무 생각 없이 듣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를르슈, 혹시, 어디 아프다던가.”

“아, 건강은 걱정할 거 없어. 지난 주에 있었던 건강검진도 별 문제 없다고 하고.”

 

그런가. 아니, 를르슈는 거짓말을 잘 하니까 또 거짓말일지도. 스자쿠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쳐다보면 를르슈는 어이가 없다는듯이 말했다.

 

“결과 보고서는 냉장고에 붙여놨으니까 직접 확인하던가.”

“…알았어.”

“근데 너 아직도 병원 안 다녀왔다며? 너야말로 걱정되니까 빨리 다녀와.”

 

너는 술도 자주 마시고, 운동도 과하게 하는 편이니까 오히려 더 걱정된다. 를르슈의 건강에 대한 잔소리는 연례행사였지만 스자쿠는 오늘만큼은 허투루 들을 수 없었다. 알았어. 여느때보다 진심으로 대답한 스자쿠는 다시 밥에 집중하다가, 왜 이 이야기가 나왔는지에 대해서 떠올렸다.

 

“아니, 를르슈 왜 죽어?! 재산은 왜 나나리한테?!”

“사람은 죽는다, 나는 사람이다, 고로 나는 죽는다. 이렇게 말하면 되나? 그리고 나나리한테 재산이 가게 하는 게 어때서? 돈도 많이 버는 자식이 욕심도 많아.”

“그게 아니라, 갑자기 죽는다느니, 재산 같은 거 이야기하면….”

 

무섭잖아.

스자쿠는 솔직하게 말했다. 를르슈는 그런 스자쿠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서글서글한 인상, 사람 좋아보이는 미소, 어린티가 남아있는 눈매는 예전보다 깊어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둥근 모양과 시원시원해보이고, 감정을 감추는 것에는 여전히 서툴기만한 이 남자를 세상에 혼자 두고 간다는 건 를르슈에게도 무서운 일이었다.

그래도 오늘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은 를르슈에게 별 거 아닌 일이었다. 둘 사이의 사랑은 의심할 바 없었지만 흘러가는 시간과 인간이라는 종족은 언젠가 죽기 마련이기 때문에 를르슈는 언젠가 끝을 고려해야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내가 죽으면, 스자쿠는 아무것도 못할 거 같으니까. 귀찮은 일들은 미리 해두려고.”

“건강검진 결과 어디 있어? 보고 와야겠어.”

“아니, 나는 건강해.”

“그럼 왜 그런 이야기 하는거야!”

 

이러니까 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는데. 를르슈는 식사 시간을 지체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어봤자 취침시간만 늦어질 뿐이다. 

 

“밥은 다 먹었어?”

“아직 배고파!”

“그럼 다 먹고 말해.”

“…도망가지 마.”

 

밥그릇을 후다닥 비운 스자쿠와 더 이상 입맛이 없어진 를르슈는 식사 시간을 끝냈다. 설거지를 하는 스자쿠와 바로 옆에서 를르슈는 후식으로 수박을 꺼냈다. 먹기 좋은 사이즈로 썰어내고 나면 스자쿠는 미묘한 얼굴로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수박 안 먹어?”

“를르슈 이야기 듣고 먹으려고.”

“별 거 아닌데.”

“죽는 게 왜 별 거 아니야?”

“아니, 당장에 죽는 게 아니잖아.”

“당장에 죽는 게 아닌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해?”

“언젠가 죽으니까?”

“를르슈!”

 

귀찮은 자식. 를르슈는 소파의 옆자리에 앉도록 스자쿠에게 손짓했다. 불만스러운 표정의 스자쿠는 주저않고 앉았다.

 

“우리는 결혼을 할 수 없고, 또 아이를 가질 수 없잖아, 스자쿠.”

“응. 새삼스러운 이야기네.”

“만약에 둘 다 동시에 죽으면 우리가 아등바등 모아놓은 돈은 어떻게 되는거지?”

“음……. 를르슈와 한날 한시에 죽을 수 있다면 모아놓은 돈이 어떻게 되든 상관 없는데?”

“쓸데 없는 데서 낭만적으로 대답하지 마. 아마 높은 확률로 너의 재산은 사회에, 나는 가족들끼리 재산 상속으로 치고 받고 싸울테지. 나나리는 욕심이 없는 애니 그만둘 수도 있지만 나는 내 돈을 나나리 말고 누구에게도 줄 생각은 없어.”

 

괜히 시선을 마주치기가 힘들어서 다른 곳을 보고 말하고 스자쿠를 보고 나니,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눈으로 스자쿠는 거의 울기 직전이었다.

 

“너한테도 남겨줘도 너는 필요없다고 할 테니까.”

“를르슈가 죽으면 나도 따라 죽을거야.”

“영광이네.”

“죽는다는 이야기 싫어….”

 

를르슈의 허리를 끌어안으며 스자쿠는 훌쩍거렸다. 내년이면 곧 마흔, 불혹의 나이이고, 죽음은 그리 먼 이야기가 아니었다. 를르슈도 스자쿠만큼이나 언제 닥칠지 모르는 죽음에 대해서 겁 정도는 났고, 또 남겨지는 쪽이든 남기는 쪽이든 싫은건 확실했다.

그래도 언젠가는 확실하게 해둬야한다는 생각은 했다. 그게 미루고 미루다가 오늘 그렇게 일처리를 하고 온 것이었다. 

 

“나도 나나리 앞으로 해놓을래.”

“너네집은?”

“알아서 하겠지. 유언장 공증은 어떻게 하더라?”

 

변호사랑 주변 사람 한 명이랑…. 수박을 먹으면서 그런 이야기를 했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는 건 처음이었다. 어렸을 적에 했던 이야기는 대부분 ‘죽을 때까지 너를 사랑해’ 정도였지만, 지금은 죽고 나서의 이야기를 하게 되는 것이었다.

 

“뭐, 현실적으로 두 명이 동시에 죽는 일은 드무니까. 만에 하나 혼자 남게 되면….”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이 허리를 끈적하게 쓰다듬는 것에 억지로 떼어냈다. 모처럼 이야기가 나온 김에 끝까지 정리하고 싶었다. 

 

“를르슈는 어떻게 살거야? 나나리랑 같이 살거야?”

“나나리한테 민폐를 끼칠 수 없지. 알아서 잘 살지 않을까? 이 집은 너무 크니까 팔긴 하겠지만.”

“이사 갈거야?! 나와의 추억이 있는 집인데!”

“그러니까 더 빨리 벗어나야지.”

“벗어난다니, 너무해.”

 

사람의 죽음으로 인한 상실에 대해서 두 사람은 깊게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스자쿠는 어머니를 어려서 잃었지만, 너무 어렸기 때문에 딱히 추억할만한 것도 없었고, 집안이 집안이다보니 어머니가 없다고 해서 부족하게 큰 것도 없었다. 를르슈는 복잡한 집안 사정으로 집안 어른들의 장례식을 여러 번 다녀보긴 했지만 크게 힘들진 않았다. 차라리 그 장례식보다 나나리의 감기가 더 걱정될 지경이었다.

 

“물건이나 돈 같은 건 솔직히 별로 중요하지 않아. 음, 내가 만약에 먼저 죽으면.”

 

스자쿠는 를르슈를 빤히 쳐다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내가 이래라 저래라 할 문제는 아니긴 한데. 스자쿠의 중얼거리는 말에 를르슈는 그의 볼을 꼬집었다. 똑바로 말해. 비공식적이지만 나한테만 하는 유언이잖아.

 

“다른 사람이랑 안 사귀면 좋겠어.”

“응?”

“나만 계속 생각해주면 좋겠어.”

“언제까지고 슬퍼할 순 없잖아.”

“슬퍼하는 게 아니라…. 그냥 나만 계속 사랑하면 좋겠다는 거지. 근데 를르슈는 이렇게 예쁘고 잘생겼으니 주변에서 가만히 두지 않겠지만. 죽은 내가 간섭할 수 없는 게 아쉽네.”

 

그건 그렇네. 마지막 남은 수박 한 조각을 를르슈의 입에 물려준 스자쿠는 별 거 아니라는 듯이 이야기했다. 

 

“를르슈는 나한테 바라는 거 없어?”

“밥 제때 챙겨 먹기, 과식하지 않기, 패스트 푸드 금지, 과도한 운동 금지, 적절한 휴식 취하기….”

“람페르지 씨 안에서 저는 정말 형편없는 어린애군요.”

“전적이 화려해서.”

“제대로 생각해봐. 를르슈가 죽고 나서 내가 어떻게 살았으면 좋겠는지.”

 

디저트 접시를 들고 씻으러 가는 스자쿠의 등을 쳐다보며, 를르슈도 고민하기 시작했다.

혼자 남은 스자쿠는 어떻게 될까. 옆에 사람이 없으면 빠르게 생활 템포가 무너지기 시작하니까, 보름에 한 번 정도는 나나리를 만나기? 음, 나나리도 힘든 시간을 보낼 테니까 좋지 않을 거 같기도 하고. 그럼 지역 소모임 같은 걸…? 그런 거로 더 힘이 빠질 녀석이니까 이것도 안 된다. 그럼 전문가의 도움을 받으러 병원에 다니기? 나쁘지 않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니 병원에 다니는 건 본인의 선택이니까 내가 강요할 수는 없고.

스자쿠가 설거지를 하는 소리를 들으면서 를르슈는 어떠한 답을 내놓을 수가 없었다. 스자쿠는 방금 전까지 하던 이야기를 잊은 것처럼 다른 이야기를 했고, 를르슈도 별 거 아닌 이야기로 넘어가는 것에 괜히 안도했다.

둘은 차례대로 샤워를 하고 같은 침대에 누웠다. 어둠에 눈이 익숙해질 무렵에 자는 것 같았던 스자쿠가 입을 열었다.

 

“그래서 생각했어?”

“뭘?”

“를르슈가 먼저 죽으면 내가 어떻게 했으면 좋겠는지.”

“아…. 그거 아직도 하는 중이야?”

“나도 말했잖아. 빨리 말해줘.”

“빨리 말한다고 그대로 할 거야?”

“내용에 따라서.”

“조건 붙이지 마.”

“아, 얼른. 궁금해서 잠이 안 와.”

“핑계는….”

 

스자쿠가 아예 몸을 돌려 저를 쳐다보았다. 를르슈는 끙, 하고 앓는 소리와 함께 스자쿠와 마주보았다. 어디서 들어오는지 모를 빛에 반짝반짝 빛나는 스자쿠의 눈과 마주하고 있자니 죽고 나서가 뭔 소용인가 싶었다.

솔직히 말하면 스자쿠처럼 자기 말고 다른 사람이랑 사랑하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도 있었지만 그건 죽고 나서의 문제였다. 죽은 를르슈에게는 스자쿠를 묶어둘 힘 같은 건 없을 것이다. 사람의 빈 자리는 사람으로 채워야한다. 를르슈의 빈 자리는 긴 세월동안 함께 살아온 이상 스자쿠에게 무척이나 크게 느껴질테니 쉽게 채워지지 않을 것이다.

를르슈는 스자쿠를 평생 사랑할 자신은 있었다. 평생을 가도 쿠루루기 스자쿠와 같은 사람은 만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확신하건대, 스자쿠에게도 를르슈 람페르지와 같은 존재는 앞으로도 유일무이할 것이다.

둘은 가질 수 있는 것들을 포기하고서 서로를 선택했으니, 솔직히 죽음 따위가 서로를 갈라놓는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스자쿠가 자기 말고는 아무도 사랑하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말했을 때는 자기 사랑을 얕보는 거냐고 따지고 싶었지만, 내년이면 불혹이니, 흔들릴 수 있는 지금에는 마음껏 흔들리며 사랑하는 것도 지금이니 가능한 것이다.

제 뺨을 어루만지는 따뜻한 손에 를르슈는 눈을 감았다. 자기가 먼저 죽고 나서 스자쿠가 어떻게 살 지에 대해서 여전히 상상도 되지 않았고,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유언을 남긴다고 하더라도 뭐라고 남겨야할 지 모르겠다.

 

“진짜 모르겠는데.”

“정말?”

“응.”

 

스자쿠가 뺨을 가볍게 꼬집는 것에 를르슈는 아프다고 소리를 냈다. 얼얼할 정도는 아니지만 잠드려는 찰나에 시원하게 잠이 달아났다. 자지 말고 빨리 생각해. 스자쿠의 볼멘 소리에 를르슈는 이 자식이, 하면서 스자쿠의 뺨을 똑같이 꼬집어주었다.

 

“바라는 거 없어. 그냥 건강하게 잘 살아.”

“건강하게?”

“그래. 아프지 말고 잘 살아.”

“그럼 나 무병장수하는 게 좋겠어?”

“어.”

 

를르슈는 협탁 위에 있는 전자 시계를 보았다. 11시 50분이었다. 얼른 자야되는데. 스자쿠에게 빨리 자라며 아이 재우듯 가슴팍을 두드려주니 스자쿠가 키득거리며 웃었다. 뭐가 또 우스워? 스자쿠는 제 가슴팍 위에 있는 를르슈의 손을 잡고서 그 손등에 입을 맞추었다.

 

“별 거 아니지만 를르슈다운 유언이네.”

“알겠으니까 이제 자.”

“오늘 저녁 내내 우울한 이야기 했더니 슬퍼서 못 견디겠어.”

“뭔 소리야?”

“를르슈의 위로가 필요합니다. 바로 여기에.”

“어디에 손을 대!”

 

파자마 대신 입고 있던 티셔츠를 훌렁 벗는 스자쿠를 보며 를르슈는 기겁을 했다. 내일 출근이야, 바보야! 빨아만 주면 안 돼? 싫어! 슬퍼서 죽을 거 같은데? 죽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