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자루루로 이어질락말락한 부분에서 끝이 났고 뭔가 이야기를 더 이어가기에는 좀 길어질 거 같아서.... ㅠㅠ 손풀기로 쓴 글이라 좀 난잡합니다
세상은 지금을 혹독한 빙하기라고 부른다. 빙하기라고 부르고 싶을 것이다. 언젠가 끝나기를 바라며, 따뜻한 바람이 부는 날이 꼭 오기를 바라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빙하기도 끝날 것이라고. 그렇게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 를르슈는 태어났다.
사람들은 마을이라고 부르기에는 작고, 무리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많은 숫자로 몰려다녔다. 를르슈의 어머니는 확실했지만, 아버지는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를르슈를 불쌍하다거나, 비참하게 만들진 않았다. 그 무리 안에서 아버지가 누구인지 모르는 아이들은 많았다. 를르슈는 어머니인 마리안느 옆에 얌전히 있는 아이었다. 찬바람이 부는 밖을 생각하면 가만히 있는 것이 체력도 소모하지 않고 좋았다.
마리안느는 추운 바람에 굴복하지 않는 여자였다. 남자들보다 뛰어난 사냥실력으로 얼마 남지 않는 먹잇감들을 사냥했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모두에게도 공평했다. 자기와 를르슈가 먹을 것은 사람들에게 나눠주는 양과 똑같은 점이 그러했다.
를르슈는 그런 점이 그녀다운 점이라고 생각했지만, 한편으로는 어머니가 좀 더 먹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마리안느가 아이를 임신한 후로 더 그랬다.
이번에도 아버지는 누구인지 몰랐다. 그간 마리안느가 베풀어온 선행은 를르슈의 여동생이 태어났을 때 다행스럽게도 돌려받을 수 있었다. 를르슈는 어머니와 거의 닮지 않은 여동생의 모습에 처음에는 낯을 가렸다. 게다가 그들의 집에서 아기를 돌보는 것도 처음이었기에, 를르슈는 여동생 나나리의 존재가 버겁기만 했다. 나나리가 젖을 떼기 전까지 마리안느는 사냥도 못나가고 작은 소일거리로 생계를 유지하는 것이 고작이었다.
나나리가 없으면…. 를르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작은 아기를 바라보았다. 나나리는 울음이 잦았고, 짜증도 잘 냈으며, 낯도 많이 가렸다. 평온하던 를르슈의 일상은 아기의 울음소리로 산산조각이 났다. 그래도 아기에게는 짜증을 낼 수 없었다. 어느 정도 젖을 뗐을 무렵에, 마리안느는 다시 사냥을 나갔다. 그래서 나나리를 돌보는 일은 전부 를르슈가 하게 되었다.
애가 애를 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지만, 그 집단의 어른들은 를르슈를 보고 있으면 크게 간섭하지 않았다. 애당초 를르슈는 얌전한 아이었고, 어른스러워서 갓난애 정도는 쉽게 볼 거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나나리가 하루 종일 붙어있는 를르슈에게 더 이상 낯을 가리지 않았고, 쉽게 웃어줄 정도가 되었을 때, 마리안느가 죽었다.
평소처럼 사냥을 떠났던 마리안느의 피 묻은 외투를 돌려받은 를르슈의 심정은 참담했다.
사냥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이야기를 들어도 를르슈는 믿을 수 없었다. 어머니는 그렇게 죽을 사람이 아니야. 를르슈는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그 말을 겨우 억눌렀다. 이제 울타리를 잃은 고아 둘을 이 집단에서 곱게 봐줄 리가 없었다.
이 집단은 ‘낙오자’를 만드는 것에 가차없었다. 낙오되면 죽는다. 그러니까 낙오되지 않도록, 쓸모가 있는 사람이 되어야했다. 그러므로 노인은 버려졌고, 고아도 버려졌다. 를르슈는 그 처지에 놓였다. 나나리는 아직 어머니의 죽음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어린 아이였다. 를르슈도 고작 열 살이었다.
세상이 조금만 더 따뜻했다면 좋았을 텐데.
그렇게 람페르지 남매는 낙오되었다.
며칠 분의 식량, 구멍이 숭숭 뚫려있는 천막, 마리안느의 외투, 나나리.
를르슈는 저에게 주어진 것들을 보며 이를 악물었다. 그래도 이거라도 감사히 받으라는 그들에게 소리 한 번 지르지 못하고 얌전히 버려진 게 기분이 나빴다. 하지만 상황은 계속해서 나빠졌다. 피부에 와닿는 온도가 조금씩 오르고 있었다. 곧 눈이 내릴 징조였다.
눈이 내리면 미친듯이 내리는 이 설산에서 를르슈가 가지고 있는 천막은 쓸모가 없었다. 어딘가 동굴 같은 곳으로 가야했다. 걷는 것에 지친 나나리를 겨우 달래면서 를르슈는 오르막을 걸었다. 낮에 뼈만 남은 사람의 시체를 보고, 를르슈는 밤에만 걷기로 했다. 나나리에게 무서운 것을 보여주기 싫었다. 그리고, 저도 그랬다.
밤에 산을 오른다는 것은 처음엔 무서웠지만, 나중엔 익숙해져갔다. 같은 사람에게 버려져서 얼어죽는 것보다, 짐승에게 먹혀 죽는 것이 더 좋아보였다. 하지만 추운 세상에서 짐승들도 점점 작아졌기에, 를르슈와 나나리를 잡아먹을 짐승 같은 것은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특히 더 추워지는 위쪽으로 갈수록. 떨어지는 식량은 얼어죽은 동물들의 시체를 잡아먹어서 해결했다. 떨어지는 식량보다 무서운 것은 따로 있었다.
꼭대기에 아무것도 없으면?
진짜로 그러면 어떡하지.
아무것도 없다면, 그렇다면 끝인가?
부정적인 사고는 눈보라보다 더 귀찮았다. 나나리는 이제 더 이상 울지 않았고, 를르슈와 이어진 손을 필사적으로 붙잡는다. 나나리는 필사적으로 울음을 참고, 그리고 웃는다. 힘드냐고 물어보면 고개를 젓는다. 를르슈는 그 집단에서 살았던 시절의 아이들을 떠올렸다. 감정에 솔직했던 아이들과 지금의 나나리는 너무도 달랐다. 적어도 를르슈에게는 의지할 어머니가 있었지만, 나나리에게는 자기 밖에 없었다.
가엾은 나나리, 나나리를 죽게 할 수는 없다.
아무것도 가지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를르슈는 나나리를 위해서 살기로 했다. 그래서 그런 기분 나쁜 생각이 들 때면 나나리와 잡은 손에 힘을 더했다. 아플만 한데도 나나리는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오르막이 끝이 났다. 를르슈는 본능적으로 깨달았다.
이 곳은 꼭대기다. 굵은 눈송이가 몰아치는 꼭대기에서 를르슈는 울고 싶었다. 정말로, 아무것도 없었다. 올라오면서 겨우 다리를 웅크리고 앉을 수 있는 동굴이 고작인 이 설산의 꼭대기도 다를 바 없었다. 그제서야 를르슈는 제가 낙오되었다고 생각했다. 나나리의 손을 쥐고 있는 것도 버거웠다.
사회는 옛날에 끝이 났고, 봄은 오지 않는 이 땅에, 설산은 더욱 높아진다. 오라버니, 하고 나나리가 부르는 소리에도 를르슈는 눈물을 참지 못했다. 모든 곳이 눈으로 뒤덮힌 세상은 를르슈에게 너무 가혹했다. 어머니를 불러도 대답할 어머니가 없었다. 이제 죽음 밖에 없다. 이제 서서히 죽을 것이다. 추위에 얼어죽을 것이다. 더 이상 불을 피우지도 않을 것이다. 굶어죽어도 상관 없다.
마지막 희망까지 다 끝이 났다. 나나리가 팔을 흔들었지만 를르슈는 그 자리에서 떨면서 우느라 신경쓰지 못했다. 그리고 그 다음에는 눈을 감았다.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게 죽음이라고 생각했다. 가엾은 나나리. 그런 생각이 마지막이었다.
쿠루루기 스자쿠는 제 또래의 소년이 말을 걸자마자 눈밭에 고꾸라지는 모습에 혀를 찼다. 아마 죽은 거겠지. 옆에 있는 여동생은 계속 두었다가는 죽을 것이 뻔했다. 죽은 사람은 두고 가지만, 산 사람은 내버려두지 않는 것이 스자쿠의 철칙이었다.
사람은 위기 앞에서 강해진다. 이 소녀도 언젠가는 강해질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살아갈 것이다. 스자쿠가 그래왔던 것처럼. 스자쿠는 소녀의 팔을 잡아채며 일어나라고 했다. 커다란 눈동자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오라버니가, 오라버니를 두고갈 수는 없어요!”
“네 오빠는 죽었어.”
“아니에요, 아직…!”
스자쿠는 귀찮았지만 쓰러진 소년의 옆으로 다가갔다. 이제 막 죽은 사람치고는 혈색이 좋았다. 장갑을 벗을 수 없기 때문에 소년의 이마를 덮고 있는 앞머리를 넘기고 제 뺨을 갖다댔다. 혈색이 좋은 것 뿐만이 아니라 체온도 높았다. 죽은 사람이 낼 체온이 아니었다.
오라버니, 오라버니, 하고 우는 여자애는 아직 걸을 힘이 있는 것 같았다. 스자쿠는 소년을 등에 업었다. 아주 가벼웠다. 여동생에 비해 차려입은 옷도 가벼웠다. 죽을 작정이었나. 자살 희망자를 등에 업는 건 기분이 나쁘지만, 아직 자세한 이야기는 모르니 그냥 데려가기로 했다.
여동생은 스자쿠의 등에 업힌 소년의 옷자락을 꼭 쥐고 따라왔다. 어쩌면 오빠보다 당찬 여동생일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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