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밤의 파티는 평일임에도 근래 들어 가장 크고 화려한 파티였다. 사실상 아리에스 궁의 모든 사람들이 매달려서 준비한 파티는 성공적으로 끝났다. 파티의 주인공인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준비 과정 내내 ‘간소’하고 ‘소박’하게 준비하라고 그렇게 당부했지만, 그의 주변 인물들이 일 년에 딱 하루 있는 그 날을 그렇게 만들지 않았다.
저녁부터 시작한 파티에, 를르슈는 분위기가 무르익어갈 무렵에 겨우 얼굴을 비칠 수 있었다. 평소보다 화려한 연회복을 입고 나타난 를르슈의 등장에 모두가 기다렸다는 듯이 그를 반겼다. 알고 지내는 모든 사람들이 아리에스의 연회장에 모인 광경은 근 두 달만이었다. 반가운 얼굴들과 마주하며 떠들고, 가끔씩은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것도 즐거웠다.
오랜만에 떠들썩한 파티라고 좋아하는 여동생과의 춤을 마지막으로 를르슈는 쉬겠다고 말했다. 애초에 사람과 부대끼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황자가 이렇게 긴 시간 연회에 남아있는 것은 드문 일이었다. 부드러운 선율의 음악과 사람들의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어우러지는 와중에도 를르슈는 겨우 웃을 수 밖에 없었다. 웃고 있어도 웃을 기분이 아니었다.
그래도 파티의 호스트인 만큼 오늘 하루는 끝까지 자리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에 를르슈는 마지막 손님까지 배웅하고 연회장의 문을 닫았다. 불이 다 꺼진 다른 황궁의 적막함에 를르슈는 드디어 한숨을 쉴 수 있었다. 평소보다 늦었지만 나나리의 밤 인사를 하러 가야할 시간이었다. 연회장을 부지런히 정리하는 메이드들에게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를르슈는 복도를 걷기 시작했다.
달빛이 드리워지는 복도를 소리 없이 걷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그가 뒤에서 나타날 것 같았다. 호위도 없이 혼자서 돌아다니시면 안 돼요, 라고 말하는 목소리가 들릴 것 같았다. 하지만 그 사람이 지금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를르슈는 나나리의 침실 앞에서 마음을 다 잡듯이 숨을 골랐다. 하루의 마무리를 좋게 해야지 나나리가 걱정하지 않는다. 심지어 오늘은 나의 생일이니 더 즐거워하지 않으면 안 돼.
문을 열고 들어서면, 아직도 파티의 여운에 취해서 생글거리며 웃고 있는 나나리가 있었다. 이제 파티는 끝났으니까 얼른 자야지, 나나리. 다정한 를르슈의 목소리에 나나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침대에 누운 나나리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며 를르슈는 좋은 꿈을 꾸라고 인사했다.
“매일 매일이 오라버니 생일이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나나리 생일이 오지 않을 텐데?”
“음, 그렇다면 일 년 중 하루 정도는 제 생일을 축하해주세요!”
“나나리의 생일이라면 하루 말고도 364일 정도는 축하해줄 수 있어.”
장난스러운 농담에도 웃음을 터뜨리는 나나리의 모습에 를르슈도 따라 웃었다. 곧 잦아든 웃음소리에 나나리는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올해만큼은 오라버니 생일이 하루는 더 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왜?”
“올해는 스자쿠 씨가 없었으니까요.”
그의 부재를 느끼는 것은 를르슈 말고도 나나리가 있었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이번 생일 파티의 쿠루루기 스자쿠의 부재를 눈치챘을 것이다. 항상 를르슈의 옆에서 그를 보좌하는 스자쿠의 부재는 상당했다.
“스자쿠도 전투에 집중하려면 어쩔 수 없지.”
“나이트 오브 라운즈는 그렇게 바쁜 걸까요? 지노 씨랑 아냐도 와줬는데….”
“바쁘지 않으면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아니지. 지노랑 아냐가 형편 좋게 놀고 있는 거야.”
“…….”
“곧 있으면 크리스마스 파티도 있을 텐데, 못해도 그 전에는 한 번쯤은 스자쿠도 들러주겠지. 스자쿠를 만나면 나나리가 보고싶어 했다고 전해줄게.”
“아, 크리스마스 파티! 맞아요, 그때는 꼭 오셨으면 좋겠어요.”
아직 성인이 아닌 나나리는 황녀로서의 공무를 보기 어렵기 때문에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 만날 일이 드물었다. 그쪽에서 먼저 찾아오거나, 혹은 일 관련이 아니라면 만날 일이 없었다. 를르슈와 나나리는 출신이 남들보다 남다른 어머니 덕분에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 얼굴을 마주 할 기회가 몇 번 더 있었을 뿐이었다. 성인이 된 를르슈는 그 기회를 발판 삼아서 황자로써 움직이고 있었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와의 관계를 더욱 돈독하게 만드는 군사 작전은, 사실은 그런 의도에서 비롯된 시도는 아니었지만 결과는 썩 나쁘지 않았다. 덕분에 오늘 생일 파티는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참석과 귀족 가문, 가까이 지내는 황족까지, 화려한 라인업이었다.
를르슈는 나나리의 손이 따뜻해질 때까지 꼭 잡아주었다. 나나리는 크리스마스에도 또 춤을 추고 싶다고 말하면서 잠이 들었다. 나나리의 침실을 나오기 전, 창문이 꼭 닫혀 있는 지 확인하던 를르슈는 저도 모르게 창문 밖을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조그마한 불빛이라도 보이면 좋겠다. 그 녀석 성격을 생각하면 아주 늦은 밤이라도 찾아와줄텐데. 별 다른 날이 아니어도 그랬으니까.
바람 한 점 들어오지 않는 창문을 확인하고, 커튼까지 꼼꼼히 친 를르슈는 조심스럽게 침실 문을 닫고 나섰다. 아직까지도 청소 중인 연회장을 지나가며, 복도를 홀로 걸으며, 자기 침실까지 아주 느린 발걸음으로 걸었다.
급하게 전화가 온다거나, 받으러 가면 특유의 활기찬 목소리로 전하, 하고 부르는 스자쿠라던가. 를르슈는 그런 것을 기대하고 자기 침실 앞까지 왔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하아. 결국 크게 한숨을 쉰 를르슈는 문을 열고 들어갔다. 씻고 나와서 잘 준비를 마쳐도 전화 한 통조차 오지 않았다. 휴대폰을 멍하니 쳐다보던 를르슈는 시간을 확인했다.
23:59
이번에 참전한 전선은 그렇게 상황이 나쁜 곳도 아니었다.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와중에 상황의 좋고 나쁨에 대해서 단언하는 것은 나쁘지만, 스자쿠가 하루 종일 전화 한 통, 메일 한 줄 보낼 수 없을 만큼 급박한 곳도 아니었다. 스자쿠가 나가는 전투에 대해서 어지간한 정보를 다 꿰고 있는 를르슈로써는 이상하게 느껴졌다.
휴대폰이 고장났다거나 그런 거라고 해도 주변 사람들한테 이야기를 해서 빌리면 되지 않나? 아니면 나이트 오브 세븐 전용의 핫 라인…을 사용한다는 건 조금 그런가. 고작 내 생일 축하를 하려고?
00:00
자정이 넘어가고 나서 새로운 날짜로 바뀌었다. 를르슈는 휴대폰을 테이블 위에 올려두고 자리에 드러누웠다. 어지간한 일로 꼬이지 않는 머릿속 계산이 뒤죽박죽이었다.
고작 내 생일 축하라고 하더라도, 스자쿠는 할 줄 알았는데.
텅 비어있는 손이 유독 시리게 느껴졌다. 어렸을 적부터 스자쿠는 함께한 친구였고,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되면서 출세가도를 달리기 시작할 때부터는 친구에서 조금 미묘한 위치로 자리잡았다. 처음엔 크게 성장하는 그의 모습에 초조함을 느껴서 그런 것인 줄 알았다. 를르슈가 기를 쓰고 나아간다고 한들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될 만큼의 패기도 없으며, 를르슈가 원하는 것은 아리에스의 평화라고 할 정도로 소박한 것이었다. 그래서 아리에스의 손님에서 어느 순간 군인이 되어 나이트 오브 세븐의 자리에 오른 스자쿠가 낯설게 느껴졌다.
무엇이 스자쿠를 그렇게 움직인 걸까. 나는 가장 가까운 곳에서 그를 보았음에도 왜 몰랐지. 그것이 속상하고 초조할 뿐이었다.
를르슈는 높은 자리에 오른 스자쿠를 따라 움직였다. 그와 언제든 함께할 수 있도록 전선에서의 군사 지휘권까지 얻어내기도 힘들었다. 하지만 함께 할 수 있다면 그것까지도 감수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고작 생일 축하 한 번 못 받았다고 이렇게 기분 상할 일인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 를르슈는 눈을 감았다. 어차피 이제 생일은 끝났고, 내일은 또 내일이 있다. 할 일이 산더미고, 나나리와 약속한 크리스마스 파티도 준비해야 된다. 이런 걸로 마음 쓸 시간이 없다.
를르슈가 겨우 잠에 빠져들었을 무렵에, 드디어 랜슬롯에서 벗어난 쿠루루기 스자쿠는 한 시간 뒤 보고를 마친 후에 펜드래곤으로 귀환할 것이라는 이야기를 들었다. 이번 작전은 남은 잔챙이들을 소탕하는 것이 주 목적이었기에 크게 거슬리는 점은 없었다. 전투에서의 피곤함보다는 다시 장시간 비행을 하고 돌아가야한다는 점이었다.
“스자쿠 군이 원한다면 돌아갈 때 비행기가 아니라 랜슬롯으로 돌아가도 되는데.”
“로이드 씨가 그렇게 순순히 말하니까 불순한 의도가 느껴지는데요.”
“하하, 들켰어? 왜냐면 여기서부터 펜드래곤은 엄청 멀고, 먼 만큼 랜슬롯이 얼마나 버틸 수 있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얻을 수 있고~ 그리고 스자쿠 군도 비행기보다 랜슬롯이 편할 거고!”
스자쿠가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하자 옆에 있던 세실이 말려들지 말라며 잔소리를 했다. 로이드가 아쉬워하며 눈을 흘겼다. 우여곡절 끝에 샤워를 마치고 제복으로 갈아입고 나온 스자쿠는 보고할 준비를 마쳤다. 수복이 덜 된 탓에 핫라인 연결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말에 스자쿠는 그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 전투의 지휘관은 슈나이젤이었다. 를르슈의 진면목을 파악하고 있는 몇 안되는 사람 중 하나인 슈나이젤은, 스자쿠에게는 미묘한 상대였다. 스자쿠의 공을 높게 사는 슈나이젤은 은인이기도 했지만, 를르슈에게 군사지휘권을 내준 사람이었다. 아리에스의 사람들을 가장 큰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를르슈를 아리에스 밖으로 끌어내게 만든 슈나이젤이 스자쿠에게 달가울 리가 없었다. 어렸을 때부터 두 사람끼리 뭔가 내기가 오고 갔다는 이야기는 들었고, 슈나이젤은 하나를 내주어도 곱게 내주는 편이 아니고, 를르슈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걸 별로 좋아하는 편이 아니니 딱히 캐낼 수 있는 것도 없었다. 그저 스자쿠만 꺼림칙한 상태로 남아버린 것이다.
연결되는 소리와 함께 커다란 스크린 너머로 슈나이젤의 얼굴이 비쳤다. 스자쿠의 경례에 슈나이젤은 소리없이 웃기만 했다.
‘자료는 이미 다 받아보았고, 이번 전투는 어려운 일도 아니었으니 자세한 내용은 펜드래곤에서 듣도록 하는 게 어떨까, 쿠루루기 경?’
“예, 알겠습니다.”
‘피곤하군.’
그러나 하나도 피곤하지 않은 얼굴이었다. 슈나이젤의 뜬금없는 소리에 스자쿠는 그저 기계적인 대답만 할 뿐이었다. 슈나이젤은 대답을 딱히 바라고 한 말은 아닌 듯 했다.
‘얼굴만 비치고 나갈 예정이었는데 를르슈가 배웅까지 해준다니 나도 모르게 끝까지 남아버렸지 뭔가.’
“…네?”
‘아, 쿠루루기 경은 전투 중이라 몰랐나? 오늘은 를르슈의 생일 파티가.’
“앗, 끊어졌네! 전파 상태가 안 좋은가봐, 스자쿠 군!”
황족과 나이트 오브 라운즈의 핫라인이 전파 상태가 안 좋다고 끊길 리가 없다는 걸 아는 스자쿠는, 세실이 지금 고의적으로 슈나이젤과의 연결을 끊어버린 것을 눈치챘다. 하지만 그것에 대해서 물어보기도 전에 스자쿠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했다.
오늘은 를르슈의 생일 파티가
오늘은 를르슈의 생일 파티가
오늘은 를르슈의 생일 파티가
저도 모르게 눈을 매섭게 뜨고서 로이드와 세실을 쳐다보았다. 마이페이스의 로이드는 눈을 둥글게 휘며 웃었다. 아주 태연하게 웃으면서 잔인한 사실을 알려주었다.
“그러네, 여기는 12월 5일이지만 지금쯤 펜드래곤은 12월 6일이고, 를르슈 전하의 생일은 한참 전에 끝났네!”
그때, 큰 소리 한 번 안 내기로 유명한 나이트 오브 세븐이 그렇게 크게 소리를 지르는 건 모두가 처음 봤을 것이다. 랜슬롯으로 귀환하겠다는 스자쿠를 뜯어말린 세실은 자초지종을 설명했다.
슈나이젤이 이번 전투에 나이트 오브 세븐을 참전시킨 이유는 단순한 변덕 때문이라고 이미 유명한 사실이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 쪽에서는 나이트 오브 세븐이 를르슈 황자와 친하기 때문에 그의 세력을 견제하고자 일부러 그랬다는 설이 나돌고 있었지만, 특파부 안에서는 슈나이젤의 이복 남동생과 그의 친구 이상 연인 미만의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남자, 쿠루루기 스자쿠가 아니꼬워서 그랬다는 이야기가 정설이었다.
세실은 처음 작전 내용을 들었을 때, 슈나이젤이 정말 성격이 나쁘다고 말했다.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대동될 만한 규모도 아님에도 굳이 스자쿠를 그 먼 곳으로 보내버린 이유, 그리고 그 먼 거리만큼 존재하는 시차. 스자쿠와 를르슈의 친밀한 관계를 알고 있는 세실이 무어라 한 마디 하려던 찰나에 슈나이젤이 입을 막았다는 것이다. 스자쿠에게 시차에 대해서 언급한다면 바로 지원을 끊겠다느니 하며 협박을 당했다는 로이드의 말에, 스자쿠는 얼굴을 감쌌다.
“멍하니 있는 것보다, 비행기 안에서 전하의 선물이라도 고르고 있는 건 어때?”
상대는 브리타니아의 전도유망한 황자다. 가지고 싶은 건 어지간해서 다 가질 수 있다. 스자쿠는 대답 대신 노려보았다. 어이쿠, 무서워라. 로이드를 겨우 앞자리에 앉혀놓은 세실은 정말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가는 동안은 푹 쉬라고 말했다.
전투 중에는 집중하길 바란다며 연락을 하지 않는 를르슈를 알고 있었다. 지금 당장 전화를 한다고 하더라도 늦은 밤이었다. 초 단위의 일정을 소화하는 를르슈의 컨디션을 생각하면 참아야만 했다. 를르슈는 잠귀가 밝아서 메일 오는 소리에도 잠을 깰 수도 있으니 연락하는 건 아예 생각도 안 했다.
시차를 생각하지 않고 움직인 스자쿠가 잘못하긴 했지만, 스자쿠는 어딘지 모르게 를르슈에게 섭섭했다. 사실 섭섭하다는 감정 이상의 것이 느껴졌다.
—나는 나이트 오브 세븐 이전에 를르슈의 친구이고, 또….
서서히 멀어지는 이국의 땅을 내려다보며, 스자쿠는 의자 시트에 몸을 묻었다. 도착하면 제일 먼저 를르슈를 만나러 가야지. 시차를 생각하지 못했다고 말하면 바보같다고 말하면서도 용서해줄지도. 선물은 뭐가 좋을까. 술은 한 번 마시기 시작하면 끝이 없고, 보석은 애초에 꾸미는 걸 별로 안 좋아하는데.
이런 저런 생각 와중에 전투의 피로가 뒤늦게 들이닥치면서, 스자쿠는 한 번도 깨지 않고 잠을 잤다.
제일 먼저 를르슈를 만나겠다는 다짐과 다르게, 나이트 오브 라운즈라는 직책이 스자쿠의 발목을 붙잡았다. 귀찮지만 보고가 우선이었고, 슈나이젤이 빙글빙글 웃으며 파티가 이랬느니 저랬느니 하며 이야기하는 것에 얼굴을 굳혔다. 슈나이젤의 집무실은 나이트 오브 라운즈가 모여지내는 곳과 가까워서 지노와 아냐를 만났다. 전하의 생일 파티가 꽤나 화려했는데, 전하도 파티를 즐기는 모습이 정말 좋았노라 말하는 녀석들을 매정하게 떼어냈다.
겨우 아리에스 궁의 정원을 도착한 스자쿠는 저를 알아보는 제레미아에게 말을 걸려던 찰나였다. 전하의 알현, 이라고 운을 떼기가 무섭게 제레미아는 고개를 저었다.
“전하께서는 쿠루루기 경과 만나고 싶지 않다고 하신다.”
“…네? 아, 혹시 일이 많아서 그러시다면.”
“아니다.”
그냥 너를 보고 싶지 않다고.
제레미아의 목소리임에도 불구하고 등 뒤에서는 를르슈가 크게 엄포를 놓는 것 같았다. 스자쿠의 황망한 얼굴에 제레미아는 더 이상 말을 잇지 않고 뒤돌아서서 제 갈길로 나섰다. 멍하니 있던 스자쿠는 고개를 들어 눈에 익은 아리에스를 둘러보았다. 평소라면 커튼을 걷어 환히 들이치는 햇살을 즐길 를르슈의 온실이 커튼으로 가려져 있어서 보이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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