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생이 된 스자쿠는 한층 더 바빠진 것 같았다. 초등학생이 된 를르슈도 그 이전보다 훨씬 바빠졌다. 괴롭히는 녀석들이 늘었는가 하면 쓸데없이 따라붙는 녀석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 사이에서 스자쿠와 같은 사람은 없었다.
를르슈는 자기 감정에 대해서 누구보다 뛰어난 이해력을 보였다. 스자쿠와 를르슈는 서로 남자라는 점, 나이 차이가 10살이나 차이난다는 점, 또 마지막으로 를르슈를 가장 괴롭게 만드는 것은 ‘이 감정이 사랑이 아닐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스스로의 사랑을 믿을 수 없는 나약함, 그것이 만들어낸 의심에 대해서 를르슈는 꽤나 고전하고 있었다.
그럴 때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상냥함을 이용했다.
매년 돌아오는 발렌타인데이, 그리고 화이트데이는 스자쿠에 대한 사랑을 키울 시간이었다. 를르슈는 화이트데이에 나나리에게 주는 사탕과 다르게 저에게만 주어지는 특별한 선물에 늘 마음을 졸이고 있었고, 스자쿠가 를르슈에게 신경을 쓰는 티가 나는 그러한 선물들을 보물처럼 여기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언제까지나 어린 동생에게 주는 이웃집 형의 우정이다. 를르슈가 원하는 것은 애정이고 사랑이었다. 그것은 순진한 것이 아니라는 것 쯤은, 를르슈는 스스로를 잘 알고 있었다.
스자쿠랑 키스하고 싶어.
스자쿠의 옆에 있는 건 나만 했으면 좋겠어.
어린 아이의 말로 이룰 수 없는 바램들을 꿈꾸는 것은 를르슈에게는 달콤한 독이었다. 조금 큰 자신을 상상하며, 성장한 를르슈에게 입을 맞춰주는 스자쿠를 떠올리는 것은 를르슈를 꿈속에서 웃게 했고, 깨어난 현실에서는 울게 만들었다. 더 울고 싶지 않았다. 고등학생이 된 스자쿠는 예전에 비하면 엄청 바빠졌고, 를르슈는 생각지도 못한 곳에서 어른만이 즐길 수 있는 재미에 흥미를 가질 것이다.
어린애에게 관심을 줄 정도로, 스자쿠는 한가하지 않다.
올해 화이트데이에는 스자쿠가 무엇을 줄지, 를르슈는 고민을 했다. 그 이전에는 를르슈가 힌트를 주거나, 혹은 스자쿠가 를르슈에게 꼭 주고 싶은 것을 주었다. 를르슈는 나나리가 모으고 있는 틴케이스와 유리병들을 보았다. 매년 스자쿠가 나나리의 취향에 맞게 동물 모양이나, 다른 아기자기한 형태의 케이스에 담긴 사탕을 건네는 화이트데이.
를르슈도 갖고 싶은 것이 생겼다.
“사탕?”
“응. 스자쿠한테 사탕 받고 싶어.”
“…아, 음. 줄 수는 있는데 괜찮아?”
“뭐가?”
“남자한테 화이트데이에 사탕 받는 건, 좀 그렇지 않을까…?”
스자쿠에게 사탕을 받고 싶다고 말하자, 스자쿠는 애매한 표정을 지으면서 대답했다. 그런가, 기분이 나쁜건가. 괜히 알리지도 않은 사랑이 끝난 기분이라 를르슈는 대답 대신에 고개를 떨구었다.
“그렇지만 나나리한테만 계속 사탕을 줬으니까, 를르슈가 갖고 싶다면 줄게.”
“스자쿠는…남자가 남자한테 사탕을 받는건 별로라고 생각해?”
“아니, 그건 아닌데. 브리타니아랑 일본이랑 인식이 아예 다르니까? 아, 를르슈한테 사탕을 주는건 괜찮지만 를르슈의 친구들이 놀리지 않을까 생각해서.”
“자랑하지 않아. 그 정도는 아니까.”
“응? 그럼 왜 사탕이 갖고 싶은거야?”
나, 이제 고등학생이 되어서 선물도 비싼 거 사줄 수 있는데. 스자쿠는 처음 만났을 때와 다를 바 없이 환한 미소로 말했다. 마치 졸업식 때 키스를 했던 그 얼굴을 했던 사람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였다.
그 얼굴을, 를르슈는 평생 알 수 없었을 것이다.
몰래 지켜본 것만으로도 스자쿠에게 빠져들게 되는 마법이 바로 사랑이었다. 를르슈는 준비해온 변명거리를 늘어놓았다.
“나도 틴케이스 같은 걸 좋아하니까…. 스자쿠의 취향도 나쁘지 않은 거 같고.”
“아, 나나리한테 줄 때는 다른 여자애들이 도와주고는 있긴 하지만…. 그런 거로 정말 괜찮아?”
“뭐야, 왜 계속 물어봐? 주기 싫어?”
“아니…. 를르슈가 이렇게까지 말하는 건 드무네.”
“부담 되면 다른 걸 줘도 괜찮으니까.”
“아니야, 사탕 정도야 뭐,”
스자쿠는 제 허벅지에 앉은 를르슈의 뺨을 쭉 늘리면서 웃었다. 이제 초등학생이고 예전처럼 작고 가벼운 아이가 아닌데도 스자쿠는 이렇게 를르슈를 제 몸에 가까이 앉히는 걸 좋아했다. 가볍게 끌어안는 것도 서슴지 않았다. 나나리가 아니라면 뿌리칠 타인의 손을 스자쿠라고 생각하면 를르슈는 기꺼이 품에 안길 수도 있었다.
그렇게 닿고 있을 때면 괜한 용기도 생겼다.
“스자쿠는 여자친구 있지?”
“여자친구…? 아, 지금은 없어.”
“헤어졌어?”
“으으음—. 를르슈가 그런 걸 어떻게 아는거야? 아직 초등학생이잖아.”
“지난 번에 봤으니까.”
“졸업식 때?”
“응.”
“걔랑은 예전에 헤어졌어. 지금 사귄 애는 입학식 때 만났는데…. 아, 그래도 헤어졌구나.”
“스자쿠는 여자친구가 많아?”
고개를 갸웃거리며 묻는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어색하게 웃으며 를르슈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한 번에 한 명씩만 사귀는데, 자주 차여.”
“차인다고?”
“뭐야, 내가 찰 거 같아?”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졸업식 때 그 모습은 누가 봐도 스자쿠가 여학생을 좋아하지 않는 것 같았다. 를르슈와 같이 있는 스자쿠가 훨씬 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일 정도로.
“스자쿠는… 좋아하지 않아도 사귈 수 있어?”
결론은 그곳으로 다다르면서, 를르슈는 지금까지 냈던 용기 중 가장 큰 용기를 내며 사실과 부딪히려고 했다. 를르슈의 질문에 스자쿠는 눈을 동그랗게 뜨다가, 나중엔 눈웃음을 지으면서 를르슈의 뺨을 툭툭 건드렸다.
“그럴 순 없지.”
“…그럼 다 좋아해?”
“물론 좋아해!—라고 말하는 게 맞겠지? 근데 모르겠어. 사실,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사귀는 건 좋지 않다고 생각하니까 그렇게 말은 했지만…. 나는 좋아하지 않는데 여자친구를 사귀고 있는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자주 들긴 해.”
“…….”
“나쁘지?”
일반적인 견해로 보았을 때는 나쁜 연애 습관이라고 생각핧 수도 있다. 하지만 를르슈의 입장에서는 그것은 기회였다.
스자쿠는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키스할 수 있고, 좋아하지 않는 사람과 사귈 수 있다. 그렇다면 나중에, 아주 먼 미래라고 하더라도 를르슈를 좋아하지 않더라도 키스해줄 수 있고 사귀어줄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를르슈가 이런 걸 묻다니, 좋아하는 애라도 생겼어? 연애는 잘 못하지만 경험은 있으니까 상담 정도는 해줄 수 있는데…. 음, 초등학생한테는 좀 과하려나?”
“스자쿠 같이 나쁜 남자한테 그런 상담 받고 싶지 않아.”
“나쁜 남자라니, 너무해. 를르슈한테는 잘해주잖아,”
“일부러 잘해주는거야?”
그건 그것대로 쇼크였다. 스자쿠의 성실한 점을 알고 있다. 그가 옆집의 어린 이웃이랑 의무감에서 함께 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생각은 몇번이고 했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스자쿠가 그렇게까지 거짓으로 자기를 대할 수는 없을 거라고, 혼자서 그렇게 믿어왔다.
“일부러라니, 당연히 를르슈가 좋아서 그런거지.”
“…….”
“물론 나나리도 좋아해!”
“당연히 그래야지.”
를르슈는 평정을 가장했다.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가 귀여운듯이 요즘 학교에서는 어떻게 지내냐느니, 가끔은 를르슈와 같은 학교를 다니고 싶다고 이야기하는, 그런 를르슈가 바라는 말들을 하면서 결국 평소와 다를 바 없는 이야기로 저녁을 맞이했다.
그 다음주의 화이트데이에는 스자쿠는 사탕을 주었다. 를르슈와 나나리는 고양이 모양의 유리병에 담긴 별사탕을 받았다. 색깔까지 나나리의 것과 똑같은 것을 보고서 를르슈는 크게 충격을 받았다.
스자쿠의 특별한 것을 원했다.
하지만 그것이 별 것 아니었다는 것을 새삼 실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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