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서 과거와 현재 이야기를 잠깐 정리하자면,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쿠루루기 스자쿠에게 절찬 짝사랑 중이었다. 짝사랑의 기간은 벌써 7년째에 접어들고 있었고, 그 미모와 지략으로도 아직 함락시키지 못한 것을 보면 짝사랑은 꽤나 안 되어가는 중이었다.
어렸을 때 스자쿠는 일본에서 온 유학생이라는 타이틀로 아리에스 궁에서 머물게 되었다. 당시 나이트 오브 식스의 명성을 그대로 유지하여 나이트메어 프레임 사업에 주력하고 있었던 마리안느 황후의 작전 중에 하나로, 나이트메어에 필요한 사쿠라다이트를 얻기 위해서 그 총리에게 잘 보이려고 모셔온, 나름 일본의 왕자님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일본의 왕자님은 낯선 브리타니아에 대해서 날이 서 있었던 때였고, 나나리는 여자라는 점에서 어떻게든 잘 참고 넘어간 듯 하더라도, 또래 남자애인 를르슈를 보자마자 더 이상 비겁한 브리타니아의 수단에 넘어가진 않겠다며 주먹질을 했다. 아마 그때의 대화는 를르슈의 어렸을 적의 대부분의 대화 패턴과 비슷했지만 마무리가 달랐다. 주먹질이었다는 점에서.
“어라, 여자 같은데?” (슬프게도 를르슈는 이런 취급에 익숙했다.)
“일본의 왕자는 바보인가? 보면 몰라? 나는 남자다!” (우습게도 이런 식으로 대응했다. 대체로 를르슈가 브리타니아 황자님이었기 때문에 이렇게 말하면 다들 죄송하다고 했기 때문이었다.)
“바보 취급하지마! 이 비겁한 브리타니아 놈들아!” (주먹 퍽)
일본의 왕자님은 나가고 싶었던 검도 대회도 못 나가고 아버지의 정치외교적 전략에 의해 여름방학을 브리타니아 팬드래건의 아리에스 궁에서 보내게 되어 속상함이 극에 달해 있었다. 호위를 하던 제레미아가 뜯어 말린 결과로 스자쿠와 처음에는 사이가 안 좋았지만, 여름방학이 끝나갈 무렵에는 나나리와 셋이서 사이좋게 지내었다.
얼마나 사이가 좋았냐면, 곧잘 놀던 유페미아까지 질투를 할 정도였다.
“스자쿠는 언제 일본으로 돌아가나요?”
“왜? 내가 빨리 가버렸으면 좋겠어?”
“당연하죠! 스자쿠 때문에 를르슈가 나랑 안 놀아주는데요!”
“를르슈! 유피가 나보고 빨리 가버리래!”
“너무한걸, 유피.”
“그치만!”
그래도 유페미아와는 사이가 좋아서 작년까지만 해도 유페미아의 기사가 된다는 소문도 돌았다. 그때 를르슈의 심정은 참담했다.
스자쿠는 여름방학 이후로 브리타니아에 계속 머물러서, 비 가문의 패트런인 애쉬포드가 만든 학원에서 학창시절을 같이 보내게 되었다. 나나리까지 같이 다녀서 셋이서 단란한 한때를 보내고 있었다. 스자쿠는 당시 아버지가 총리 자리를 그만둔 때라 이제 더 이상 아리에스에 있을 수가 없었지만, 를르슈의 ‘소꿉친구’라는 이름으로 옆에 있을 수 있었다. 그는 그것이 늘 불만이었다.
“나는 를르슈랑 계속 있고 싶은데, 아버지 이름이 없으면 다들 납득이 안되나봐.”
“나랑 계속 있고 싶어?”
“응. 무슨 방법이 없을까? 를르슈랑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기사가 되는건 어때?”
“기사?”
“응.”
“에이, 그거 를르슈의 기사인거지? 완전 부하잖아. 안 할래.”
“…….”
그리고 그렇게 차게 거절을 당했던 다음달에 유페미아가 불쑥 찾아와 스자쿠에게 기사 스카우트 제의를 했다. 유페미아의 말에 스자쿠는 꽤나 동요한 것처럼, 마치 솔깃한 사람처럼 굴다가 결국 거절을 했지만 를르슈 입장에서는 큰 충격이었다.
나는 그렇게 싫다고 딱 자르더니, 왜 유피한테는….
유페미아가 왜 스자쿠를 기사로 삼고 싶어 했는지에 대해서는 알 수는 없었지만, 그 다음날 스자쿠가 장난 삼아 했던 제7세대 나이트메어 프레임 적성 검사에서 합격을 웃도는 수치를 냈다는 것이 드러나면서, 그 정보를 가장 먼저 리 가문이 접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리 가문이 알았다 하더라도 유페미아가 먼저 움직인 것은 의외였다.
를르슈의 합리적이고 이지적인 두뇌는 그때 풀가동되면서, 유페미아가 근 7년간 스자쿠에게 저와 같은 감정을 품고 있다는 결론에 다달했다.
“맞아요, 스자쿠가 좋아요. 를르슈가 양보하세요.”
그리고 그것은 적중했다.
유페미아는 당돌하게 스자쿠에 대한 애정을 드러냈고, 를르슈는 아마도 헤테로일 스자쿠의 연애전선 앞에서 유페미아가 저보다 앞서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했다.
하지만 인정만 했을 뿐, 그것을 패배라고 부르진 않았다. 나름 를르슈도 승전 전략을 세우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 그럼 어쩔 수 없지. 나도 스자쿠가 좋아. 양보는 못해.”
“를르슈는 저랑 결혼도 안 해줄 거면서! 스자쿠 정도 줘도 되잖아요! 이 나나리 바보!”
“나나리 바보라니…. 유피도 나나리 만큼 좋아해.”
“하지만 스자쿠 만큼은 아니겠죠.”
“그렇지. 우린 사랑의 라이벌이다, 유피.”
사랑의 라이벌이라는 말에 지나가던 C.C.가 배를 잡고 웃은 것은 를르슈의 흑역사 중 하나였다.
첫사랑이자 짝사랑. 다사다난한 를르슈의 스자쿠 사랑에는 많은 장애물이 있었지만 유페미아는 귀여운 수준이었다. 슈나이젤 엘 브리타니아가 스자쿠를 특파인지 뭔지 하는 부서로 데려간 이후부터 스자쿠의 얼굴은 주 3회 보면 많이 보는 수준이 되었다. 를르슈가 해바라기라면 스자쿠는 태양이었던 인생에 해가 비치지 않으니 를르슈의 얼굴은 나날이 어두워졌다. C.C.가 어디 가서 여자친구라도 사귀어보던가, 누나는 어떠니, 아니 이런, 누나가 아니라 이모지, 이런 조롱을 해댔지만 를르슈는 예전처럼 격렬하게 반응할 수 없었다.
스자쿠가 없다.
스자쿠가 없어.
이대로 슈나이젤에게 뺏길 순 없어…!
스자쿠 부족으로 죽어가기 일보 직전에, 스자쿠는 으슥한 밤을 타고 와 를르슈의 심장에 콩콩, 노크를 했다. 물리적으로 말하자면 를르슈의 침실에 찾아왔다. 심장이 두근두근한 와중에 문을 열면 스자쿠가 반짝거리는 눈을 쳐다보았다.
오랜만에 를르슈라는 해바라기는 일광욕을 할 타이밍이었으나, 그의 태양이 한 말은 너무나도 가슴 아픈 말이었다.
“나,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될 거래, 를르슈!”
슈나이젤도 아니고 아버지가 스자쿠를 뺏어갈 줄이야!!
그리하여 나이트 오브 세븐이 된 스자쿠는 아리에스에서 독립하여 나이트 오브 라운즈들이 하사받는 저택에서 살게 되었고, 를르슈는 시름시름 앓으며 나나리만 보고 사는 수절 오라버니가 강제로 되는 수 밖에 없었다.
C.C.가 다른 남자는 어쩌니, 가엾은 것, 하고 비웃었지만 눈물 밖에 나지 않았다. 스자쿠를 볼 수 있는 것은 연회나 파티 뿐이었고, 그런 곳에 가려면 사람 꼴은 갖춰야 했기 때문에 미모와 재능을 가꾸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파티에 가더라도 스자쿠가 여자랑 노는 꼴을 보는 것은 당연지사였고, 그것이 그의 비즈니스이기도 했기에 를르슈가 막을 방법은 없었다.
싸우게 된다면 상대는 아버지다.
어떻게 아들의 남자를…!
그러던 와중에 여장을 하고, 마법에 걸린 를르슈는 스자쿠와 만나게 된 것이었다. 자그마치 마지막으로 만난지 7개월하고 12일이 지난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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