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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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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자는 그렇게 황제가 된다

DOZI 2020.04.24 19:31 read.451 /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는 를르슈 전하의 박식함은 이미 브리타니아 황궁 안에서는 소문이 날만큼 났으나, 그의 영특함보다 더 소문이 난 것이 있다면 를르슈 전하가 나이트 오브 세븐과 사랑에 빠졌다는 로맨틱한 러브 스토리가 있다. 성별과 신분을 넘어선 사랑을 하고 있는 를르슈 전하의 주된 고민은 앞서 말한 나이트 오브 세븐 때문이며, 최근 들어 그 아름다운 얼굴에는 수심이 깊어진 걸 보아 그와의 관계가 잘 안되어가고 있다는 것이 최근의 이야기다. 

를르슈 전하, 그러니까 를르슈 비 브리타니아는 최근 들어 남자친구의 하반신 사정이 고민이었다. 

 

“서지 않아.”

“네?”

 

‘비’ 가문의 새로운 패트런으로 등장한 바인베르그 가문의 나이트 오브 라운즈, 그 중에서도 세 번째인 지노 바인베르그는 티 타임에 초대당한 채로 대뜸 서지 않는다는 말을 들어야만 했다. 

지노의 나이는 스자쿠와 가까웠지만 신분은 높으신 귀족이라 어렸을 때부터 아리에스 궁에 드나들었던 세월이 있어 를르슈와의 친분도 깊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이런 고충을 담당하고 있었다. 예를 들면 스자쿠와 를르슈의 연애 사정 같은 것.

 

“전하의 말씀을 제가 잘못 들은 것 같은데요.”

“뭘?”

“그……. 서지 않는다는 말 밖에 못 들었는데요.”

“잘 들었잖아. 서지 않는다고.”

“…어디가요?”

“남자한테서 서지 않는 게 어디겠어!”

“전하, 그거 성희롱입니다!”

“닥쳐!”

 

오월 장미도 빛을 잃을 정도로 아름다운 전하의 외모는 엉망진창이었다. 눈가가 어두워진 것을 보아 최근 잠을 못자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 나이 차이는 제법 되지만 친분의 세월이 두터운 소꿉친구가 연애사정으로 마음 쓰는 것이 안쓰러웠던 지노는 입을 열었다. 

 

“그, 스자쿠는 원래 여자랑 잘 놀았으니까요….”

“닥쳐라, 지노.”

“사실을 말씀드려도, 이거 참.”

 

대체 닥치라고 할거면 왜 부른 건지.

지노는 이 아리에스 궁에 저 말고 를르슈의 상대가 되어줄 사람이 많다는 걸 알고 있었다. 연령미상의 예쁜 미녀인 C.C.도 있었고, 늘 상냥하지만 자기 주장을 내세울 줄 아는 여동생 나나리도 있고, 좀 제멋대로이긴 하지만 늘 현명한 선택지를 신속하게 고를 줄 아는 올 스트레이트 어머니 마리안느도…. 

전부 다 여자군. 

남자친구가 필요할 때도 있겠지만, 그는 정말 남자친구가 있는 황자님 아니던가. 남자 사람 친구인 지노로써는 남자 사람 친구로써의 의리를 다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자쿠는 정말 여자만 좋은 걸까…. 그렇지만 난 여자만 서는 놈들도 달려들 정도인데. 나 정도면 서지 않아?”

“저한테 물어보셔도 저는 안 서는데요.”

“끔찍한 소리 마라. 네가 서도 달갑지 않아. 오히려 토 나온다.”

“그건 좀….”

“그럼 서고 싶은 거야?”

“아뇨, 아뇨, 아뇨! 전하께는 스자쿠가 있는데 제가 왜 서야하는 거죠?”

“나는 나름… 사교계에서도 마성이라고 불리는데 스자쿠는 서지 않잖아. 어떻게 하면 좋겠어?”

“…….”

“심각해, 지노.”

 

이제야 를르슈는 소꿉친구의 진짜 얼굴을 보여준다. 지노도 심각해지기로 했다. 

 

“자초지종을 여쭤도 되겠습니까?”

“스자쿠랑 사귄지 반 년이 넘었다. 내가 고백하고, 내가 사귀자고 해서, 스자쿠는 알겠다고 했는데.”

“흠, 합의 하에 하신거죠?”

“나를 뭐로 보고!”

“아니, 전하께서는 워낙 수단과 방법을 가리시지 않으니까요. 그래서 어떻게 고백하셨나요?”

“평범하게 고백했을 뿐이다. 나이트 오브 세븐의 인사권은 내 손에 들어왔으니 나랑 사귀지 않으면 곤란해질지도 모른다고.”

“그거 평범하게 파워 해러스먼트인데요?! 전하, 그런 방식은 옳지 않습니다!”

“스자쿠 같은 소리 하지 마라! 방식이 옳지 않더라도 결과가 괜찮다면 좋잖아?!”

“스자쿠가 제일 싫어하겠네요.”

“그래, 진짜 싫어했으면 진작에 헤어졌어야지. 근데 스자쿠는 나름 데이트도 해주고.”

“누가 신청했나요?”

“물론 내가.”

“으음….”

“그리고 식사도 같이 하고.”

“누가 신청했나요?”

“……내가. 아니, 그래도 키스도 했어!”

“누가 먼저 했나요?”

“……내, 내가.”

 

를르슈의 눈가가 살짝 붉어진 것 같았다. 무언가 반짝이는 것 같더니 를르슈는 눈물 한 방울을 뚝 떨구면서 잠긴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나의 연애는 파워 해러스먼트였구나….”

“아셔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서지 않았던 걸까.”

“서는 상황이 되긴 하셨나요?”

“충분히 됐어.”

“어떻게요?”

 

를르슈는 지노가 내민 손수건으로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 

 

“술을 엄청 마신 스자쿠를 침대로 끌고 가서….”

“저기요?! 아니, 전하는 아직 미성년자잖아요!”

“촌스러운 소리 하지 마. 술 정도는 파티에서 흉내내면서 마실 수 있어. 하지만 스자쿠가 싫어하니까, 내 몫으로 권해진 잔들은 전부 스자쿠가 마셔줬지만…. 그래서 계획은 순조롭게 흘러갔다.”

“그런 계획이었군요, 역시!”

“스자쿠가 내 도움 없이 걸을 수도 없는 상태로 마시게 한 다음에 아리에스 궁에 데리고 와서 벗겼다만.”

“네?! 아리에스 궁이요?!”

“확실하게 해두고 싶어서.”

“으악….”

“아무튼 서지 않았다.”

 

술을 마시면 서지 않는게 남자라고는 하지만, 질 낮은 놈들은 술에 만취가 되어서도 나를 보고서 서는 모양이던데 왜 스자쿠는 그러지 않는거지? 지노, 대답해봐라. 너도 술 정도는 마시고 다닐거 아니야? 술을 마시면 하반신과 이성이 분리가 되지 않아? 남자는 그런 거 아니야? 술 먹고 사고치는 경우를 만들고 싶었는데 왜 난 성공하지 못했지?! 

 

“모든 남자가 그런 것도 아니고, 모든 남자가 그러면 문제가 있는거죠! 대체로 술 먹고 사고 치는 경우는 최악의 경우 아닌가요?”

“최악이라니, 나한테는 그게 최선이었어!”

“전하, 듣는 제가 비참해지려고 하네요.”

“내가 임신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내가 사는 궁에서 나이트 오브 세븐과 섹, 섹, 섹……을 해서 기정사실을 만들겠다는 것도 안되는 거냐?! 나름 스, 스자쿠와 나는 자…타공인……. 아, 됐다. 됐어.”

 

를르슈는 지끈거리는 이마를 짚으면서 지노를 노려보았다. 

 

“그래서 내 패인은 뭐인 거 같아, 지노?”

“진심으로 물어보시는 건가요?”

“진심이다.”

“당연히 시작부터 잘못된 거잖아요.”

“나는 내가 쓸 수 있는 카드를 다 썼을 뿐이다. 그리고, 내가 진짜 싫었으면 스자쿠도 싫다고 했어야지!”

“제 머리가 이상해지는 거 같아요, 전하! 차 좀 마시고 진정하세요!”

“네가 따라라!”

“Yes, your highness!”

 

쪼로록.

차를 따르고, 지노는 새소리와 함께 어우러지는 햇살을 즐기고 있는 황자님과 다시 마주했다. 

 

“스자쿠가 보통 남자가 아닌 건 알겠어.”

“뭐, 어떤 면에서는 보통이 아니긴 하죠.”

“합법적인 방법 안에서는 쓸 수 있는 모든 패를 다 썼다. 중요한 건 결과다, 지노.”

“네? 말씀하시는 의도를.”

“모를 리가 없지. 이제부터 나는 밤의 황제가 된다!”

“네?!”

“하지만 스자쿠에게 아무 약이나 쓸 수도 없으니, 네가 좀 협력해라. 소꿉친구를 뒀다가 이런데 쓰는 게 우정이라고 하는거지?”

“네? 아뇨, 잠시만요.”

“사요코, 잡아라.”

“네?!”

 

어디선가 나타난 아리에스의 메이드에게 팔이 붙들린 지노는 발버둥을 쳤다. 

 

“괜찮아, 지노. 긴장 풀어.”

“됐거든요?! 놓으세요, 이거!”

“처음에만 좀 힘들지, 나중엔 이 약이 그리워질지도 모른다.”

“그게 황자님이 할 소리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