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시작이군….”
이는 새학기가 시작되면 일어나는 이벤트이다. 그래, 이벤트라고 해야지 좀 마음이 편해진다. 를르슈의 흘리는 말을 놓치지 않고 들은 스자쿠는 를르슈가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 라커 쪽으로 다가왔다. 황급히 닫으려고 하면 이미 늦었다.
하긴 이미 냄새가 거기까지 갔을 지도. 를르슈의 반항도 의미가 없다. 끼이익, 하고 쇳소리와 함께 열리는 라커에 를르슈는 시선을 딴 곳으로 돌렸다.
“또 시작이네.”
“매년 이야기는 하고 있을 텐데….”
“어디선가 또 여지를 준 건 아니겠지?”
“스자쿠, 나도 할 만큼 하고 있어. 여기 라커에 붙어 있는 이름은 엘런 스페이서, 교과서도 어지간해서는 이름을 적어두지 않고 있고, 내 사적인 물건도 두지 않아. 체육복이나 다른 물건들은 네 사물함에 보관하고 있잖아?”
“이 라커, 비밀번호는?”
“1025다.”
“나나리 생일이잖아! 이 바보야, 그게 문제라고!”
를르슈의 모든 4자리 숫자의 패스워드는 1025로 정해져있었다.
나나리의 생일을 비밀번호로 해서 뭐가 나쁘다고! 를르슈가 버럭 화를 냈지만 스자쿠는 덤덤하게 라커 안쪽을 살폈다.
“지금 당장 신입생의 DNA를 수집하겠어.”
“어차피 한 달 정도 지나면 잠잠해지는데, 그런 곳에 돈 쓰는 건 아깝잖아.”
“내가 만약 이런 일 당했으면?”
“전교생의 DNA를 수집해서 당장 범인을 찾아낸다. 스토킹 행위는 범죄다.”
“내가 할 말이야.”
를르슈가 애쉬포드 학원에 들어오고 나서 6년째, 매년 이벤트처럼 를르슈의 라커는 오는 봄마다 푸릇푸릇한 정액으로 범벅이 되어있었다.
를르슈는 매년 새학기마다 스토킹을 당하고 있다. 그것은 그가 학원 내 학생들에게 비밀로 하고 있는 그의 진짜 직업, 즉 ‘11번째 황자’라는 메리트 말고 그가 가지고 있는 또 하나의 매력 덕분에 생기는 일이었다.
를르슈는 아름답다. 잘생겼다거나, 예쁘다거나, 그런 미사여구로 끝내기에는 아쉬울 정도의 미인이다. 그 아름다운 겉모습과 황자님의 버릇이 어디 가지 않는 우아함 덕분에 스토킹의 질은 해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그의 친구이자 전임기사, 그리고 연인인 스자쿠의 입장에서는 대체 자신이 있음에도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이 못마땅한 것은 당연했다.
매년 신입생의 DNA를 이런 식으로 모으고 있는 것은 학생회 풍기위원으로써도 마음이 아프지만, 를르슈 앞에서는 대체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무뎌지고 멍청해지는 것 같았다. 그의 미모는 사람을 무방비하게 만든다. 이성의 무방비! 덕분에 학원 학생의 대부분의 DNA 정보를 가지고 있는 것은 여러모로 씁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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