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수인 를르슈/줄리어스를 키우는 스자쿠 이야기입니다
“어린이날이 뭐야?”
그 질문에 스자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고양이 수인이긴 하지만 올해로 인간 나이 5살, 완벽한 어린이인 두 사람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어린이날엔 어린이를 위해서……음, 어린이를 놀아주는 날이야!”
“놀아주는 날?! 어떻게?!”
체력은 를르슈 급으로 없으면서 재미와 놀이를 위해서라면 작은 몸을 불사하는 줄리어스는 귀를 쫑긋 세우며 이야기를 들었다.
“보통 놀이공원을 가거나, 아니, 이건 사람이 너무 많고, 갖고 싶은 선물을 사준다거나….”
“나, 갖고 싶은 거 있어!”
“뭔데?”
“모여봐요, 동물의 숲!”
“스위치도 없잖아. 그리고 지금 구하기도 어렵고.”
줄리어스의 말에 를르슈는 토를 달면서 말했다. 물량이 부족해서 스자쿠도 구하기 힘들어. 스자쿠는 클릭 속도가 빠를 뿐이지 결제하기 위한 정보 처리 능력은…. 그 뒤로 이어지는 마음 아픈 말은 스자쿠를 슬프게 했다.
두 사람이 그 게임에 관심이 많은 것은 알고 있었기에, 평소에 게임에 관심이 없던 스자쿠가 몇 번이고 게임기를 사기 위해서 결제 시도를 했지만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은 사실이었다. 링피트라는 운동 게임도 있으니까 를르슈와 줄리어스라면 할 수 있을지도!—같은 마음도 있었다.
“그럼 소풍 갈까? 차 타고 좀 멀리 나가자!”
그리하여 를르슈와 줄리어스가 골든 위크 중에 가장 기다린 날이 어린이날이라는 것은, 5월 5일에 온갖 동그라미가 쳐진 달력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날을 위해서 스자쿠는 가벼운 계획도 세웠다. 도시락을 싸는 연습까지 몇번이고 했기 때문에 스자쿠까지 5월 5일을 기대하게 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었다.
5월 4일이던 어제까지만 해도 해가 쨍쨍하다 못해 더위를 먹을 지경이었기에 스자쿠는 내일 날씨가 맑다 못해 다시 없을 화창할 어린이날이 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그런 스자쿠의 기대를 배신한 것은 날씨였다.
“비 와, 스자쿠….”
우중충한 하늘을 보면서 노심초사하며 도시락을 싸던 스자쿠는 를르슈의 말에 우아악, 하고 소리를 지르고 싶었다. 너무하잖아! 차라리 어제부터 날씨가 나빴으면 플랜 B를 준비했다구! —하지만 그런 소리는 입밖으로 낼 수는 없었다.
를르슈야말로 정말 속상한 얼굴로, 눈물이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은 눈으로 스자쿠에게 사실을 고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직 잠옷 차림이던 줄리어스도 빗방울이 창문을 톡톡 때리는 소리에 일어나서 놀란 눈으로 달려왔다.
“쿠루루기! 를르슈! 비가 온다! 어떡해?!”
살짝 올라간 안대를 주섬주섬 다시 고쳐 쓴 줄리어스는 어떡하냐고 이번엔 를르슈한테 물었다. 를르슈는 매정하게 손을 내치며 말했다.
“스자쿠도 어떻게 할 수 없어! 오늘 소풍은…!”
“그, 그치만 쿠루루기가 오늘은 소풍을 간다고 했잖아!”
“소풍은 오늘 말고 다른 날에도 갈 수 있어.”
“어린이날은 오늘 뿐이잖아! 를르슈, 너 바보 아니야?!”
고양이 귀를 바짝 세운 줄리어스는 있는 힘껏 짜증을 냈다. 를르슈는 바짝 서있는 줄리어스의 꼬리를 보더니 이를 세워서 콱 깨물었다. 아악! 줄리어스의 비명과 함께 를르슈는 아무것도 안했다는 것처럼 얌전을 뺐다.
“쿠루루기! 를르슈가 날 깨물었어!”
“를르슈….”
“줄리어스가 짜증나게 했단 말이야! 스자쿠도 날씨는 어떻게 할 수 없는데!”
“줄리어스….”
“쿠루루기가 스위치도 못사주고 날씨도 어떻게 할 수 없는 무능력자일 리가 없어!”
아픈 곳을 연타로 두 번 찔린 스자쿠는 잠시 회복하기가 어려웠다.
지금부터라도 놀이공원? 아니 너무 늦었고, 사람도 엄청 많을 거야. 를르슈랑 줄리어스는 쉽게 지칠거고. 스자쿠는 준비하지 않은 플랜 B의 존재가 이렇게 미울 수가 없었다.
'딩동’
'딩동’
“손님이다!”
“누구지?”
를르슈와 기싸움을 하던 줄리어스는 스자쿠의 팔에 덥썩 잡았다. 인터폰 화면을 보여달라는 뜻이었다. 알았어, 알았어. 스자쿠는 줄리어스를 한 팔에 안고서 인터폰 버튼을 눌렀다. 누구세요?
'나야, C.C.다.’
“C.C.?! 갑자기?”
'어린이날이잖아. 빨리 열어, 무거우니까.’
“알았어, 잠깐만.”
화면이 꺼지기 전에 C.C.의 손에는 선물 상자로 보이는 것이 살짝 비춰졌다. 줄리어스는 화색이 돌면서 를르슈에게 도다다 달려갔다.
“를르슈! C.C.가 선물 가져왔나봐! 엄청 컸어!”
“C.C.가?”
“어린이날이래서 주나 봐! 스위치겠지?! 맞아, 분명 스위치일 거야!”
“아무리 C.C.래도 그건 무리지.”
그리고 그 ‘무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온, 스위치 두 대의 C.C.를 보며 스자쿠는 패배감을 느꼈다. 대체 어디서 구하셨나요? 나는 C.C., 이정돈 일도 아니야.
C.C.의 옆에 찰싹 달라붙어있는 녀석이야 둘째치고, 줄리어스와 를르슈는 저희들에게 들이밀어진 두 대의 게임기에 눈을 반짝이고 있었다. 신이 나서 전원을 넣고 게임에 집중하는 모습에, 스자쿠는 평소라면 박스부터 먼저 치웠을 를르슈까지 게임에 몰두하는 것에 쓴웃음이 났다.
눈앞의 C.C.는 커피를 홀짝거리면서 스자쿠가 내민 과자를 제 옆에 있는 ‘를르슈’에게 내밀었다. ‘를르슈’는 오물거리면서 과자를 먹었다.
“비가 오는 걸보니, 아무래도 쿠루루기 스자쿠의 계획이 실패로 돌아간 것 같아서 겸사 겸사 놀러왔다. 자, ‘를르슈’도 인사해.”
“…….”
“‘를르슈’는 여전하구나. 안녕, 잘 지냈어?”
'를르슈’는 C.C.가 이전에 스자쿠의 집에 맡기고 갔던 를르슈와 줄리어스의 또 다른 쌍둥이 형제 중 하나였다. 처음엔 우여곡절도 있었지만 지금은 스자쿠를 봐도 고개 정도는 까닥할 정도가 되었으니 나름 친해졌다면 친해진 것이었다. 줄리어스와 를르슈가 게임기에 정신이 팔린 탓에 좀 적적해졌던 스자쿠는 ‘를르슈’의 뺨을 톡톡 건드렸다. 두 사람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느낌이 나쁘진 않았다.
“게임기한테 져버렸네.”
“이 나이대 애들이 다 그렇지, 뭐.”
“아, 도시락 싸놓은 거 있는데 과자 말고 그거 먹을까?”
“네가 만든 건가?”
“음…. 나하고 를르슈가.”
“먹을래.”
“아니, 나 혼자 만든거면 안 먹을 거였어?”
“못 먹겠지. 너네집 를르슈는 의외로 질투쟁이니까. ‘내 스자쿠가 만든 건 너한테 줄 수 없어!’라고 할 걸?”
“그럴 리가….”
부엌에 다 담아놓은 도시락을 꺼내러 움직인 스자쿠를 따라서, 왜인지 모르게 를르슈가 따라왔다.
“어라, 를르슈? 게임은 다 했어?”
“아니. 아직. 지금 섬 이름 정하고 있어.”
“오, 뭐라고 할거야?”
“카미네시마.”
“……주, 줄리어스는?”
“몰라.”
“나중에 물어봐야지, 그럼.”
“스자쿠는 누구네 섬에서 살 거야?”
“응?”
찬합을 열었더니 후식으로 먹을 과일이 먼저 나와서, 스자쿠는 다른 찬합을 열어보았다. 이건가? 아니군. 를르슈가 저거야, 하고 가르키는 것에 그것을 열어보니 정답이었다. 이걸로 가져가고……. 생각 중에 다시 를르슈의 질문이 떠올랐다.
“누구네 섬에서 살 거냐니. 누가 섬 샀어?”
“스위치 한 대당 섬 한 개 밖에 못 만들어.”
“아, 그래? 게임 이야기였어?”
“계속 게임 이야기 했잖아. 그래서, 줄리어스 스위치에서 하면 줄리어스 섬에서 살게 되고, 내 스위치로 하면 카미네시마에서 살 수 있어.”
“……크흠.”
“스자쿠는 어디서 살 거야?”
“아무데나 상관 없는데.”
“그럼 나랑 같이 살자, 스자쿠.”
“지금도 같이 살고 있잖아.”
“카미네시마에서!”
“아니, 그……섬 이름 바꾸면 안되겠어?”
“섬 이름이 마음에 안 들어?”
“조금 꺼림칙하네.”
“둘이서 뭐해? C.C.가 빨리 갖다 달래. ‘를르슈’가 배고파 한다구.”
줄리어스도 부엌에 들어왔다. 나도 배고파! 스자쿠는 한 입 사이즈의 주먹밥을 내밀면 줄리어스는 낼름 받아먹었다. 맛있다! 를르슈가 만든 맛이야! 그렇겠지, 를르슈 레시피니까. 를르슈는 스자쿠의 말에 시무룩해진 채로, 줄리어스의 칭찬에도 크게 반응하지 않았다.
“를르슈, 무슨 일 있어?”
“스자쿠가 내 섬에 살기 싫대.”
“하긴. 카미네시마는 이상하잖아. 쿠루루기는 내 섬에 살 수 있게 해주지!”
“그 게임 안 한다니까…. 아, 줄리어스도 섬 이름 정했어?”
“응! 다시 없을 역작이다!”
“이름이 뭐야?”
그 말에 줄리어스는 자신만만하게 말했다.
“에리어 11이다!”
줄리어스의 에리어 11에서 살 지, 를르슈의 카미네시마에서 살 지, 정해야하는 하는 순간에 배고픔을 참지 못한 C.C.가 멀었냐며 부엌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스자쿠는 그 사이에서 행정특구 일본을 찾았을 지도 모른다.
아무튼 어린이날에는 어린이들은 선물을 받고, 어른들은 모처럼의 소풍 도시락을 거실에서 까먹는 것으로 골든 위크는 지나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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