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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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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버이날 (?)

DOZI 2020.05.08 13:35 read.222 /

 

를르슈 람페르지에게는 나이 차이가 제법 나는 여동생이 한 명 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것 같은 그녀의 이름은 나나리 람페르지. 를르슈가 소꿉친구와의 열애 끝에 독립 동거를 선언한 이후 태어난 그녀는 를르슈의 살아가는 삶의 원동력의 55퍼센트를 담당하고 있었다. 언젠가 한 번 그의 연인인 스자쿠가 그럼 자기는 원동력의 몇 퍼센트냐고 물은 적이 있었기에 를르슈는 예의상 60퍼센트라고 말한 적이 있었다. 

도합 115퍼센트의 원동력으로 살아가는 를르슈에게는 늘상은 아니지만 가끔씩 골칫거리로 여겨지는 일이 있다면 어머니였다. 자유분방한 어머니를 둔 탓에 를르슈는 유년시절을 제외하고서는 거의 옆집에 맡겨지거나 스스로 집안일을 할 나이가 되었을 땐 이미 스자쿠의 훌륭한 신붓감이 되어있었다. 

스자쿠와의 사실혼 동거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허락을 받으러 갔을 때, 를르슈는 어머니로부터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을 들어야만 했다. 그것은 그녀가 이미 임신 3개월 차이며, 낳아서 기를 것이지만 아버지는 를르슈와 같으니 사이좋게 지내라는 이야기였다. 

태어나서 한 번도 본 적 없는 아버지가 또 동생을 만들어준 것에 대해서 를르슈는 다행인지 불행인지 모를 것에 당면했다. 그리하여 태어난 것이 나나리 람페르지—를르슈의 원동력 55퍼센트였다. 

걱정했던 것과 다르게 나나리는 아주 귀여운 아기였으며, 를르슈는 나나리 돌보기에 빠져있으면서 그녀의 육아에 매달리는 것을 기꺼이 받아들였다. 그때 다시 어머니의 집에 들어가 살면서, 나나리와 함께 보내는 시간을 소중히 여겼다. 어머니가 를르슈를 키우듯 했던 것과 다르게 금지옥엽처럼 나나리를 키우다 보면 어느새 나나리는 자기 집(어머니의 집)을 집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를르슈와 스자쿠의 집이 자기 집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어머니의 또 잦아진 출장일 때문에 나중엔 를르슈와 같이 살게 되었다. 

어찌저찌 처제와 같이 살게 된 스자쿠는 평소에도 나나리를 좋아했기에 여러모로 집안 분위기는 더 화목해졌다. 여기까지는 그럭저럭 좋은 이야기처럼 들릴 것이다.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유치원에 다니고 있는 나나리는 월요일에는 어린이날에 를르슈와 스자쿠와 함께 놀이공원에 다녀왔다. 가지고 갔던 메모리카드가 가득 찰 만큼 즐거운 추억을 만들고서 돌아오는 길에도 풍선을 쥐고 머리띠를 하고서 세 사람은 단란하게 귀가했다. 그날밤에 졸린 눈으로 내일 유치원 친구들한테 자랑해야한다며 일기를 쓰던 나나리를 기특하게 여겼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어린이날 다음인 어버이날 전날이었다. 를르슈는 하나 있는 어버이인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잘 지내시는지, 하고 입을 열자마자 어머니는 지금이 얼마나 바쁘며, 그렇지만 를르슈와 나나리를 한결같이 사랑하고 있음을 청산유수처럼 말했다. 를르슈도 어디 가서 말로 지지 않는 편이지만, 입에 꿀을 바른 듯한 말을 번지르르하게 잘 도 하는 어머니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정신이 아득해졌다. 

 

“…그래서 이번 어버이날에도 못 돌아오신다는거죠?”

'역시 를르슈, 맞아.’

“알겠어요. 아, 그래도 나나리가 전화 걸 테니까 받아주세요.”

'그럼, 그럼.’

 

를르슈는 전화를 끊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를르슈의 드문 한숨에 나나리가 의아한듯이 쳐다보면 를르슈는 쓴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어머니, 내일 못온다고 그러시네.”

“왜요?”

“일이 바쁜가봐.”

“그럼 내일 카네이션은 어떡해요?”

“어머니가 돌아오면 드리면 되지 않을까…?”

 

나나리는 를르슈의 대답에 만족스럽지 못한지 뾰로통한 표정을 지으면서 손 안에 들고 있던 인형의 땋은 머리를 쓰다듬었다. 

 

“나나리만 괜찮으면 를르슈한테 해줘도 되지 않아?”

“오라버니는 어머니가 아니에요. 친구들도 다 어머니랑 아버지한테 해준다고 했는데.”

 

스자쿠의 지원에도 나나리는 이윽고 시무룩해졌다. 나나리는 가위 연습도 하고 핑킹가위도 샀는데. 카네이션 만들기도 오라버니랑 연습했으니까 친구들 보다 더 예쁘게 만들 수 있는데…. 중얼거리는 와중에도 ‘어머니 미워!’소리가 한 번 쯤은 나와도 될 법한데, 나나리는 울지도 않고, 그렇다고 화내지도 않은 채로 인형의 땋은 머리를 다시 풀면서 한숨을 쉬었다. 

 

“이제 잘래요. 안녕히 주무세요, 오라버니, 스자쿠 씨.”

“아, 응…. 나나리, 잘 자.”

“나나리, 좋은 꿈 꿔.”

 

두 사람에게서 밤 인사를 들은 나나리는 작게 하품을 하면서 방으로 들어갔다. 시무룩한 나나리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스자쿠와 를르슈도 한숨이 절로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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