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황제
붉은 장미가 흐드러지게 피어난 에그제리카 정원에 바람이 불었다. 그 옆을 지나가던 나이트 오브 제로는 흔들리는 장미꽃들을 보면서 무어라 중얼거렸다. 그 곁을 같이 지나던 황제가 갑자기 걸음을 멈춘 자신의 기사를 보고 뒤를 돌아 보았다. 스자쿠? 어딘가 먼 곳을 바라보고 있던 나이트 오브 제로는 고개를 돌리며, 늦어진 걸음만큼 빨리 걸어 제 주인의 곁에 섰다.
“뭐라도 있었어?”
“아뇨, 그냥 장미가 예쁘게 피어 있길래….”
“흠.”
황제는 대답이 마음에 들지 않은 듯, 기사에게 비스듬히 시선을 내던지고는 다시 앞질러서 걷기 시작했다.
“를르슈.”
둘만 있을 때 부르는 그런 이름으로 황제를 부른 기사는 그가 원하는 대답을 들려주었다.
“장미가 꼭 를르슈를 닮았네, 그런 생각을 했어.”
그것이 과연 원하던 대답인지는 몰라도, 입밖으로 꺼내기엔 조금의 용기가 필요할 정도로 부끄러운 감상임은 틀림없었다. 적어도, 그 말을 들은 황제는 이해를 하자마자 얼굴이 붉어진 채로 어쩔 줄 몰라하는 손길로 제 머리를 만지며 분주해졌다. 뻔뻔스럽게 고백을 한 기사만이 웃으면서, 저의 주군은 이런 숱한 고백에도 매번 수줍어 하는 것도 꽃 같다고 생각했다.
를르슈가 집무실에서 일을 하고 있을 때 그의 기사인 스자쿠는 대부분 같이 있는 경우가 많지만, 를르슈의 서류를 전하는 일도 가끔씩 하는 경우가 많았다. 오늘도 그의 극비 서류—라는 이름의 스자쿠의 갑갑한 모습을 보기가 견디기 어려운 를르슈의 배려 덕분에 스자쿠는 같은 궁 내에 있는 다른 부서로 향하던 길이었다.
고개를 돌리면 오늘 아침에 보았던 예쁜 장미꽃들이 있었다. 장소는 달라도 황제의 집무실 근처는 를르슈의 눈이 닿는 곳이기 때문에 어느 곳보다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서류를 전달하고 오는 길에도 그 장미에게 눈길이 갔다.
바로 집무실에 돌아갈까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스자쿠는 정원사를 부르게 되었다. 장미 한 송이만 가져갈 수 있을까요? 기사의 정중한 말에 정원사는 가장 만개한 아름다운 한 송이를 건네주었다.
서류를 주었더니 꽃으로 돌아왔다. 마치 마법 같은 일을 본 것 같은 얼굴을 한 를르슈를 보면서 스자쿠는 씨익 웃었다.
“를르슈랑 꽃이랑 같이 있으면 더 좋을 거 같아서.”
“…스자쿠, 너 뭐 잘못 했어?”
“너무한 걸. 칭찬한 것 뿐이잖아.”
“사심 없이 이러는 게 더 속보인다.”
“사심?”
사심이라는 말을 곰곰히 생각해본 스자쿠는 제 뺨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
“가져다주면 키스 정도는 해줄 줄 알았는데, 이것도 사심인가?”
마치 입을 맞추라고 하는 것 같은 그 모양새가 왠지 귀여워서, 를르슈는 꽃을 받은 채로 스자쿠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부드럽게 닿았다 떨어진다. 그의 입술이 뺨이 아닌 입술에 닿았으면 더 좋았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심일까. 스자쿠는 장미를 든 를르슈를 보고서 역시 꽃을 가져다주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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