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소 일주일에 한 번, 못해도 열흘에 한 번 봐줘야하는 소꿉친구가 있다. 손이 제법 많이 가는 녀석, 이라고 딱 잘라 말하기에는 그 손이 가는 것을 즐기고 있으니 딱히 타박할 것은 없다는 게 문제였다. 를르슈는 지난주 금요일에 보았던 그 얼굴을 떠올렸다. 그때 다음 주부터 기말고사라고 했으니 이번주는 본격적인 기말고사 준비로 또 집을 엉망으로 해둔 채로 하루 하루를 보냈을 것이다.
가면 우선 청소, 그 다음에 빨래, 마지막이 요리인가.
를르슈는 마지막 한 정거장을 앞두고서 스자쿠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 최대한 간결하게 보냈지만 쓰는 사람 입장에서는 들뜬 마음이 묻어나는 것 같았다. 를르슈가 오늘 온다고 했으니 스자쿠는 바로 답장할 것이다. 약간 열이 오른 뺨을 에어컨 바람으로 서늘해진 두 손으로 식히면서 를르슈는 호흡을 가다듬었다.
를르슈보다 여섯 살이나 많은 주제에 돌봐주지 않으면 안되는 소꿉친구. 그의 이름은 쿠루루기 스자쿠. 를르슈가 절찬 짝사랑 중인 상대이기도 했다. 이 짝사랑은 좋은 점이라고는 하나도 찾을 수 없지만, 를르슈는 멈출 수가 없었다. 스스로 억지를 쓰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을 정도로, 하나도 좋을 게 없는 짝사랑이다.
쿠루루기 스자쿠가 열네 살 때, 를르슈는 여덟 살이었다.
이틀 가까이 되는 시간 동안 브리타니아에서 일본까지 비행기를 타고 온 탓에 어렸던 를르슈는 긴장과 피로에 지쳐있었다. 어머니는 이제 막 이삿짐을 옮긴 탓에 어린 두 남매를 돌보기엔 여유가 없었다. 어젯밤부터 불편한 잠자리가 이어진 탓에 를르슈는 반쯤 졸고 있는 나나리의 손을 잡고서 부산스러운 현관문 앞을 겨우 벗어났다.
하지만 어린 아이 둘이서, 그것도 외국에서 와서 아직 일본어도 잘 하지 못하는 아이들끼리 어딘가에 가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를르슈와 나나리는 들어오는 이삿짐을 피해서 이리저리 자리를 옮겨가는 게 고작이었다.
이상한 나라. 말도 안 통하고, 나를 이상하게 쳐다보고. 를르슈는 저를 오고가며 쳐다보는 시선들에 지쳐서 나나리 말고는 아무도 보고 있지 않았다. 그런 를르슈의 시선을 돌린 것이 교복을 입고 나타난 스자쿠였다.
옆집에 살고 있는 쿠루루기 씨네 아들이야. 엄마가 이사 준비할 때 미리 인사해뒀어. 안녕, 스자쿠 군!
엄마의 소개는 간단했다. 를르슈와 나나리가 가볍게 손을 흔들었다. 스자쿠는 어린이 둘의 인사를 받고서는 활짝 웃었다. 예나 지금이나 웃는 얼굴은 사람의 마음을 뒤흔드는 데에 최고였다. 스자쿠 군, 괜찮다면 우리 애들 좀 봐줄래? 어머니는 예나 지금이나 무책임한 말을 한다. 낯선 일본어로 들리는 대화에 끼어들 수는 없지만 곧 스자쿠가 내미는 손을 나나리가 잡음으로써 상황은 종결되고 말았다.
그 다음은 스자쿠의 집에서, 어딘가 삭막한 그 집 거실에서 를르슈와 나나리는 엉거주춤 자리를 잡았다. 여기서 있어도 되는 건가. 어머니는? 저 사람은 좋은 사람인가. 온갖 고민을 하던 를르슈는 긴장의 끈을 풀지 못했었다. 하지만 나나리가 작게 하품을 하는 것을 보고서, 곧 담요를 꺼내들고 온 스자쿠는 나나리에게 그것을 내밀었다.
졸리면 자도 돼.
부드러운 브리타니아어로 말하는 스자쿠에게 를르슈는 나나리의 손을 꼭 잡은 채로 말했다.
안 졸려요.
를르슈의 뾰족하게 날이 선 말에 스자쿠는 하나도 기분이 나쁘지 않은 듯, 오히려 를르슈를 보면서 웃기만 했다. 안 졸리면 안 자도 돼. 이어지는 말에 를르슈는 입술을 삐죽거리기만 했다. 나나리는 를르슈의 어깨에 기대서 잠을 자기 시작했다. 과자라도 꺼내줄까? 괜찮아요. 퉁명스러운 꼬마의 시중을 드는 것이 아무렇지도 않은 듯, 스자쿠는 그럼 말고, 라고 말해놓고서는 과자상자를 꺼내왔다.
하루 종일 이사 때문에 끼니도 제대로 못 챙겨먹은 것이 생각났지만 안 먹겠다고 해놓고서 먹는 것은 자존심이 상했다. 스자쿠는 과자 하나를 뜯어서 반으로 쪼갰다. 하나는 너무 크지? 그래놓고선 를르슈에게 절반을 넘겨주었다. 얼떨결에 과자를 받은 를르슈는 손에 쥐고만 있었다. 절반 남은 과자를 한입에 털어먹은 스자쿠는 맛있어, 하고서 중얼거렸다. 그 말에 를르슈도 과자를 입에 넣었다.
달콤하고 부드러운 맛. 를르슈의 눈이 빛이 나는 것은 당연했다. 아이의 변화에 스자쿠는 그 다음 과자를 내밀었다. 또 절반 나눌까? 를르슈는 나나리의 것도 남겨줄 수 있냐고 물었다. 그럼, 엄청 많이 있거든. 스자쿠는 당연한 것처럼 말했다.
나는 쿠루루기 스자쿠. 스자쿠라고 부르는 게 편할 거야.
스…스자쿠.
너는?
를르슈.
여동생은 나나리?
네.
지금 생각하면 별 것 아닌 이야기를 나누었다. 하지만 그때 어렸던 를르슈에게는 눈을 맞추고 아는 말로 대화를 하는 것은 마음이 편해져서, 옆에 저를 기대고 있는 나나리의 체온도 따뜻했고, 를르슈는 졸지 않을 수가 없었다.
어느 순간 잠에서 깨고 나면 저녁이었다. 옆에서 자고 있는 나나리를 확인하고서, 그 바로 옆에는 같이 엎드려서 자고 있는, 저보다 큰 소년을 바라보았다. 타이밍 좋게 현관문을 두드리는 마리안느의 소리에 스자쿠는 눈을 떴다.
그렇게 눈이 마주치자마자, 를르슈는 비행기 안에서 배웠던 간단한 회화를 떠올렸다. 고맙습니다. 서투른 일본어로 말하고 나면 스자쿠는 처음 보았을 때의 미소를 돌려주었다.
그 미소는 변함없다.
그래서 를르슈의 짝사랑도 변함이 없다.
지하철로 환승 한 번과 여섯 정거장을 건너서, 버스로 세 정거장을 지나오면 스자쿠의 집이었다. 대학생이 된 스자쿠는 진학한 대학교 근처로 이사를 가게 되었다. 그럭저럭 통학을 할 수 있는 거리였지만 스자쿠는 잘 들어오지 않는 부모님과 같이 사느니 완전히 다른 집에서 혼자 살고 싶어했다.
스자쿠가 이사를 가기 전날에 를르슈는 울음을 참으려고 이불을 머리 끝까지 뒤집어 썼다. 울었다가는 다음날 눈이 부어서 스자쿠에게 속상하다는 것을 들킬거라는 생각에 울지도 못했다. 눈물만 글썽거렸다가 눈을 부릅뜨고 천장을 쳐다보기를 반복하며 날을 새고 말았다. 처음 만났을 때처럼 졸음이 가득한 눈으로 이삿짐을 싸는 스자쿠를 돕고 있다가, 한참을 꾸벅 졸고 나면 스자쿠는 떠나고 없었다.
를르슈가 너무 잘 자서, 깨우기가 그랬어.
화가 나서 전화를 하면 지친 기색 없이 대꾸하는 스자쿠의 말은 평온했다. 스자쿠에게 를르슈는 곤히 자고 있는, 깨울 수 없는 어린 아이로 여겨지고 있다는 것이 다분했다. 를르슈는 그것이 싫었다. 그래서 필사적으로 어른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었다.
하지만 시간은 늘 무심하다. 를르슈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지금의 를르슈는 고작 열네 살, 스자쿠가 를르슈를 처음 만났던 때의 그 나이로 만들어주는 것이 전부였다. 그것이 고작이었다.
버스에서 내릴 때까지 스자쿠에게 연락은 오지 않았다. 바쁜건가. 를르슈는 어느새 익숙해진 스자쿠의 동네에 도착했다. 제일 먼저 마트에 들렀다. 어제 스자쿠에게 간다고 말했더니 용돈을 받은 겸, 시험에 지친 스자쿠에게 보양식도 해주고 싶었다.
이것 저것 사들고 나서 스자쿠에게 전화를 걸었다. 첫 통화는 전화를 받을 수 없다는 문구로 넘어갔다. 스자쿠? 다시 메시지를 보냈다. 스자쿠의 집앞에 도착해서야 스자쿠가 그 메시지를 읽었다고 확인됐다. 그리고 전화가 왔다.
“여보세요, 스자쿠?”
‘아, 를르슈. 오늘 오기로 했었지—.’
스자쿠의 말끝은 어딘가 늘어지고 있었다. 이런 스자쿠는 알고 있었다. 그는 지금 술에 취한 상태였다. 술에 취한 스자쿠는 어딘가 들떠보이고, 더 어린 아이처럼 말하고, 평소보다 더 솔직해진다. 하지만 그런 스자쿠는 전화로만 만났다. 직접 본 적은 아직 한 번도 없었다. 를르슈는 긴장하면서 응, 하고 대답했다.
‘나, 오늘 술 마셔서, 좀 늦을지도 모르는데—.’
“시험 있다고 하지 않았어?”
‘그랬던가—?’
“…….”
‘어디만큼 왔어?’
“집 앞이다.”
‘빠르네….’
멍하니 대답하던 스자쿠는 아무런 말도 없이 가만히 있었다. 를르슈는 주머니 속에 들어있는 여벌 열쇠를 떠올렸다, 스자쿠가 사는 집의 여벌 열쇠는 그가 줘서 가지고 있었다. 이런 거 받아도 돼? 처음 받았을 때를 떠올린다. 를르슈도 가끔씩은 혼자서 있고 싶을 때 있잖아? 근데 정말로 혼자 있으면 안 되니까, 내 집에 와있어. 스자쿠는 어른처럼 이야기했었다.
하지만 그럴 일은 없었고, 를르슈는 부적처럼 그 여벌 열쇠를 들고 다녔다. 이 열쇠를 쓸 일이 없는 것이 다행인 것처럼 느껴지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럴 일이 없는 것이 아쉽기도 했다. 늘 스자쿠가 문을 열어주는 집에 들어가서, 손님처럼 지내다 온다. 아무리 집안 일을 하고, 제 집처럼 굴어도, 스자쿠의 손님으로.
“돌아갈까?”
조심스럽게 그렇게 말했다. 스자쿠가 돌아가라고 하면 조금 상처받을 지는 모르지만.
‘를르슈, 열쇠 가지고 있어? 예전에 내가 준 거.’
“…응.”
‘다행이다. 먼저 들어가 있어. 좀 지저분할 지 모르겠지만.’
하지만 스자쿠는 이번에도 상냥한 어른이다. 어린애를 혼자 밖에서 세워두지 않는다. 를르슈는 알겠다고 말하면서 전화를 끊었다. 주머니에 넣고 다니는 열쇠를 처음으로 썼다. 낡은 철문이 열리는 소리와 함께, 아무도 없는 스자쿠의 집으로 들어갔다.
어두운 방에 불을 켜고, 사놓은 물건들을 냉장고에 차곡차곡 나눠서 넣었다. 지저분하다고 했지만 아무렇게나 내팽겨친 옷가지 몇 개를 걷고 나면 스자쿠의 집은 금방 깔끔해졌다. 청소기를 굳이 돌리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세탁기에 쌓인 빨래와 세제를 넣고 돌리고 나면 집은 다시 적막으로 가득했다. 혼자서 그 정적을 지키고 있는 것은 어딘가 외로워서, 를르슈는 앞치마를 두르고서 요리를 시작했다.
햄버그 스테이크를 다 만들고 나서도 스자쿠는 오지 않았다. 연락도 오지 않았다. 분명 를르슈와 약속한 것이 먼저겠지만, 스자쿠에게도 대학생의 생활이 있다. 시험이 코 앞이더라도 술을 마셔야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걸 눈치채지 못하고 방해할 만큼의 바보 천치는 아니었다.
다만 짝사랑 중이라 그 사실을 받아들이기가 조금 힘들고, 섭섭할 뿐인 것이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책상에 올려진 소설책 한 권을 반쯤 정도 읽다가 거실에 드러누웠다. 지지부진한 진도가 나가는 연애소설이었다. 스자쿠의 취향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낯간지럽고, 를르슈에게는 재미없고 지루한 분야였다.
해는 떨어진지 오래였다. 스자쿠에게서 여전히 연락은 오지 않았다. 바로 답장이 오지 않았을 때 돌아갈걸. 그때 전화를 한 번 더 해볼걸. 를르슈는 후회하면서 눈을 감았다. 자고 일어났을 때는 스자쿠가 있었으면 좋겠다, 그런 생각을 했다.
잠에서 깼을 때는, 입 안이 물컹물컹하고 뜨거운 것으로 가득 차고 있었다. 그 낯선 감각에 눈을 뜨면 스자쿠가 있었다. 를르슈와 열렬하게 입을 맞추고 있는 중이었다. 를르슈는 키스를 당하고 있는 중임에도 그것이 남일처럼 느껴져서 눈을 뜨고서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 꿈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생생하고, 현실이라고 하기에는 현실성이 없는 일이었다.
스자쿠의 손이 를르슈의 허리 아래를 파고 들었다. 입고 있는 교복은 어느새 반쯤 벗겨진 상태였다. 피부를 덧그리듯 움직이는 손끝에 를르슈는 몸을 가볍게 떨고 말았다. 를르슈의 반응에 스자쿠는 입을 떼어내고 숨을 고르고 있었다.
그의 숨에서는 술 냄새가 났다. 를르슈는 넘치는 타액을 꿀꺽 삼키고 나서야 자기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다. 그리고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도.
“안녕, 를르슈.”
하지만 스자쿠는 이 상황이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평온하게 인사를 했다. 를르슈의 입술에 남은 타액의 흔적을 닦아주는 손이 아니었다면 를르슈는 방금 전을 꿈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를르슈는 왜, 라는 생각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다.
“스, 스자쿠. 지금….”
“지금 왔는데, 를르슈가 자고 있어서, 키스해버렸네.”
를르슈의 떨리는 손을 붙잡고서 스자쿠는 다시 입을 맞추었다. 가까워진 거리 만큼 더 잘 보이는 눈이 무섭게 번쩍이고 있었다. 를르슈의 벌어진 입안을 파고드는 혀는 또 안을 거칠게 훑고 지나가며, 를르슈의 혀를 맛보려고 기를 쓰고 있었다. 겨우 나도는 호흡까지 다 집어삼키는 스자쿠의 키스에 를르슈는 숨이 차서 그를 밀어내려고 애를 썼다.
제 어깨를 밀치는 손을 잡으면서, 스자쿠는 누워있는 를르슈의 입술을 더 깊게 파고 들었다. 바닥 아래로 더 꺼지지 않는 이상 피할 곳이 없었다. 숨이 찬다. 머리가 어질어질해. 를르슈는 결국 울음을 터뜨렸다. 혀를 섞고 숨까지 앗은 스자쿠는 를르슈의 차오르는 눈물에 그를 놓아주었다.
“왜, 키스하는 거야…?”
물어보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입밖으로 내뱉은 말은 그것 뿐이었다. 스자쿠는 울먹이는 를르슈의 눈가를 닦아주면서 말했다.
“를르슈랑 키스하고 싶으니까, 그래서 했어.”
“뭐, 라고…….”
“미안, 무서웠지.”
울고 있는 를르슈에게는 스자쿠는 백기를 들었다. 잘 돌지 않는 혀로 스자쿠에게 많은 물음을 담고 있는 말끝이 떨리는 것을 보면 그는 겁에 질린 것이 분명했다. 스자쿠는 를르슈에게서 몸을 떼어내며 다시 한 번 미안하다고 말했다. 이번엔 를르슈가 눈을 크게 떴다.
“왜, 미안하다고 해?”
“를르슈는 싫었을 테니까. 기분도 나빴지?”
“아니, 그게 아니라.”
“있잖아, 를르슈. 나는 내가 참을 수 있는 어른이라고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그런 것 같진 않아. 아니, 오히려 더 형편없는 사람이야.”
“…….”
“이제 여기 오지 마. 위험해. 알겠지?”
스자쿠는 를르슈의 벌어진 셔츠 단추를 잠가주며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의 얼굴은 술 기운으로 붉었고, 단추를 채우는 느릿한 손은 그가 아직 취해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었다.
마음대로 키스해놓고, 이젠 마음대로 오지 말라니. 를르슈는 차오르는 눈물을 뚝뚝 떨군 채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빤히 올려다보는 를르슈의 시선에 스자쿠는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싫어, 올 거야.”
“안 돼.”
“위험해도 올 거야. 왜냐면, 왜냐면 난 스자쿠가 좋으니까.”
“……방금 전처럼 키스 당해도 좋아?”
“좋아.”
를르슈는 이를 악물고 말했다. 이렇게 말하지도 못하고 부정당할 바에야 진작에 부딪히고 깨지는 것이 차라리 속이 편했다.
“스자쿠를 좋아해. 키스 당한 것도 좋아, 오히려 더 해줬으면 좋겠어.”
“…….”
“그, 그러니까, 오지 말라고 하지 마.”
“를르슈.”
스자쿠는 더 이상은 안 돼, 하고 중얼거리더니 를르슈에게 다시 키스했다. 이번에는 오갈데 없는 손을 스자쿠의 목 뒤로 두른 를르슈는 있는 힘껏 그 입술에 매달렸다. 어설픈 를르슈의 키스에 스자쿠는 비웃지 않고 그의 모든 것을 탐했다.
입술이 떨어지고 나서, 스자쿠의 깊은 한숨 소리가 들렸다. 를르슈는 불안한 눈으로 그를 올려다보았다. 힘이 풀려서 바닥 위로 누워버린 몸은 제 뜻대로 움직이질 못했다. 키스가 별로였을까. 어린애라서 진심이 와닿지 않았을까. 교복이 식어버리게 만들진 않았을까. 많은 생각이 스쳐지나갔다.
“이제 진짜 안 돼, 더 하면….”
“응?”
“더 하면, 를르슈가 망가져버릴 지도 모르는데.”
“스, 자쿠.”
“…참을 자신이 없어, 를르슈.”
자기 두 손에 얼굴을 파묻은 채로 혼자서 중얼거리던 스자쿠를 바라보던 를르슈는, 그의 바지 아래가 부풀어오른 것을 보고서 순식간에 얼굴이 붉어졌다.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닿기 위해서 겨우 몸을 일으켰다. 저보다 한참이나 큰 스자쿠의 손을 잡고서 말했다.
“참지 마, 스자쿠. 나는…망가져도 돼.”
“…뭐?”
“섹스, 하고 싶은 거잖아.”
스자쿠의 두 눈에 비친 제 얼굴도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았음에도 만만치 않게 붉어진 상태였다. 하지만 더 미루고 싶지 않았다.
꿈 같던 첫사랑이 이루어진 때였다. 를르슈는 명확한 사실이 필요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섹스만큼 확실한 게 없다고, 그 어리고 영악한 중학생은 그렇게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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