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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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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mmer time

DOZI 2020.06.26 23:35 read.235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을 보고서 쓴 소설입니다. 

 

 

 

 

 

 

를르슈에게는 여름이면 돌아가야하는 별장이 있다. 세상을 유랑하듯 떠돌아다니는 어머니가 유일하게 정착한 곳이다. 유로 브리타니아에 가까운 그 곳은 여름이면 내리쬐는 햇빛이 강렬하고 근처에는 산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이 흐르는 강가가 있다. 각자 다른 기숙사 학교에서 지내는 여동생은 그 곳 별장에서 보내는 가족과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긴다.

를르슈는 에어컨도 없고, 인터넷도 통하지 않고, 정전이 빈번히 일어나는 그 곳을 좋아하지는 않지만, 그 장소가 가지는 여유가 좋았다. 하지만 여유로움이 지나치면 한가함, 한가함이 과하면 지루함이 되는 것이다. 올 여름도 그럴 것이다. 

여름 동안에는 정원을 가꾸면서 분주하게 마을 사람들과 교류하는 어머니 덕분에, 하루도 조용할 날이 없는 별장. 여동생은 근처에서 사귄 소녀들과 산으로 강으로 뛰어놀며 노느라 바쁘다. 홀로 남은 를르슈는 남아서 요리를 한다거나, 책을 읽는 소일거리가 고작인 여름이다.

그래서 를르슈는 여름을 싫어한다. 

 

오늘도 창문을 가려놓은 커텐이 무색하게 쏟아지는 햇빛에 를르슈는 신음했다. 짜증나는군. 팬드래건에 언제 돌아가는거야. 혼자서 궁시렁거리면서 몸을 일으켰다. 햇빛이 내리치는 정도를 보면 벌써 한나절의 중반인 것이 틀림 없었다.

평소라면 를르슈에게 아침 준비를 돕자느니 떠들어댔을 어머니가 오늘따라 유독 조용했다. 슬리퍼를 신고서 1층으로 내려가면 나나리가 우유를 마시고 있었다. 안녕, 나나리. 한참 잠이 묻어나는 를르슈의 목소리에 나나리는 웃으면서 돌아보았다. 입가에 하얀 우유 자국이 남아있는 것에 닦아주면 나나리는 알고 있었다고 입술을 삐죽거렸다. 

 

“어머니는?”

“오늘 손님이 오신대요. 기차역까지 마중을 간다고 하셔서.”

“그래서 조용한거군….”

“오라버니, 수영하러 가지 않으실래요?”

“글쎄.”

“맨날 글쎄, 나중에, 이러면 재미 없어요?”

“글쎄—.”

“재미 없다니까요?”

 

나나리가 를르슈의 팔을 잡고 나가자고 조르고 있었을 무렵에, 현관 쪽에서는 차 소리가 들렸다. 어머니의 낡은 자동차가 고물 철덩어리 소리를 내며 주차되는 소리였다. 아하하, 차가 또 말썽이네! 어머니의 호쾌한 웃음소리와 함께 같이 온 손님의 어색한 웃음소리가 섞여들어갔다. 

손님이 오셨나봐요. 나나리는 우유 컵을 싱크대에 넣어두고서 바로 현관으로 달려갔다. 나나리의 뒤를 따라간 를르슈는 한발 늦게 뒤따라갔다. 햇빛이 그림자와 대비되는 정도가 쨍쨍했다. 호흡이 벌써부터 후텁지근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를르슈는 마른 숨을 내쉬면서 바깥으로 한 걸음 내딛었다. 

어머니의 옆에는 젊은 동양인 남자가 서있었다. 하얀 셔츠에 청바지. 어리숙한 대학생 같아 보이는 모습은 어머니의 새 남자친구라고 하기에는 너무 어색해보였다. 를르슈는 눈인사를 하면서 나나리의 옆에 섰다. 식구가 다 모이자 마리안느는 자신의 가족들을 소개했다. 

 

“를르슈, 나나리. 인사하렴, 쿠루루기 씨란다. 당분간 아리에스에서 지낼 거야.”

“안녕하세요, 쿠루루기 스자쿠입니다.”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어요, 당신보다 한참 어린 애들이니까.”

“그래도 기분이라는 게.”

“편하게 말씀하셔도 돼요, 쿠루루기 씨!”

 

붙임성이 좋은 나나리는 그에게 말을 붙이면서 살갑게 대하고 있었다. 를르슈는 그 분위기를 깰 생각은 없었지만 그 틈에 끼고 싶은 생각도 없었다. 이 작은 별장에는 남는 방은 하나 밖에 없었다. 2층에 있는 를르슈의 방 바로 맞은 편에 있는 빈 방이었다.

청소라고는 해본 적 없고, 창고나 다름 없는 그 방을 손님에게 내어줄 생각인가.

어머니는 를르슈를 보고서는 스자쿠의 짐을 가리켰다. 

 

“짐 좀 옮겨드리렴, 를르슈.”

“어디에다가요?”

“빈 방 있잖니?”

“거긴 아직 청소도 안 되어있는데.”

“아, 지난주에 청소한다는 걸 까먹었지, 참. 이런…….”

 

어머니는 손톱 끝을 살짝 물면서 를르슈에게 어떻게 좀 해보라는 식으로 눈치를 주었다. 그녀는 영리한 아들을 이런 식으로 몰아넣는 것을 잘했다. 자기가 원하는 말을 를르슈가 스스로 하게 만드는 방법은 거의 이런 식이었다. 하아. 를르슈는 한숨과 함께 오늘의 무료한 하루에 일정을 더하기로 결심했다. 

 

“우선 짐은 제 방에 두고, 오후까지 청소는 같이 하는 걸로 해요.”

“그래, 역시 내 아들이야! 그럼 부탁할게.”

“네.”

“아, 저. 짐은 제가 옮길게요.”

 

마지막은 한동안 말이 없던 쿠루루기가 한 말이었다. 를르슈는 무슨 소리냐는 식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쿠루루기는 갑자기 쏟아지는 시선에 할 말을 고르는 듯 하다가 어색한 미소를 띄우며 대답했다. 

 

“집 안쪽도, 구경하고 싶어서요. 안될까요?”

“아아, 그래요. 를르슈, 내친 김에 안내도 부탁할게.”

“아무렴요.”

 

남자의 짐은 총 세 개였다. 트렁크 두 개, 배낭 하나. 를르슈는 배낭 하나를 우선 어깨에 짊어졌다. 무지막지한 무게가 어깨를 짓누르는 것에 헉 소리가 절로 나왔지만 이를 악물고 참았다. 나나리가 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나머지 두 개의 트렁크는 쿠루루기가 아무렇지도 않게 들고 올라왔다. 

힘겹게 2층까지의 계단을 오르고, 우선 를르슈의 방에 짐을 갖다 두었다. 슬쩍 트렁크 두 개를 밀어보았지만 배낭보다 무거웠으면 무거웠지 가벼운 것 같진 않았다. 후우…. 갑자기 한 근력운동에 지친 를르슈는 앞으로 방 청소까지 해야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무거웠을텐데, 고마워요.”

“괜찮아요.”

“를르슈라고 부르면 될까요?”

“편하신 대로. 아, 안내를 좀 하자면….”

 

를르슈는 집안 내부에 대해서 가볍게 설명했다. 

1층에는 식당과 부엌이 같이 붙어있고, 거실, 서재, 나나리의 방, 어머니의 침실이 있으니 밤에는 내려가지 말 것. 2층에는 를르슈의 방과 쿠루루기의 방이 될 빈 방이 하나 있다는 것. 이쪽으로 가면 바로 그 방이에요. 마지막으로 쿠루루기가 머물 방을 가르쳐주고 나면 를르슈는 숨을 고를 수가 있었다. 

 

“안내는 이 정도면 될까요?”

“충분하네요.”

“그럼 전 청소 준비를 하러 가보겠습니다.”

“아, 저도 도울게요.”

“손님한테 맡길 정도는 아니에요.”

“가만히 기다리고 있을 성격은 아니라서요.”

 

마리안느는 진짜 창고에서 청소도구를 꺼내왔다. 나나리는요? 방금 전에 줄리아랑 같이 수영하러 간다던데? 도망갔네요. 나나리는 청소를 싫어하니까! 만담 같은 대화를 나누고 나서 를르슈는 청소도구를 끌고서 2층으로 올라왔다. 

쿠루루기는 창문에 걸터 앉아서 먼곳을 바라보고 있었다. 청소해도 되나요? 를르슈의 낮은 목소리에 쿠루루기가 뒤를 돌아보았다. 바람이 산들산들 불어오는 와중에 독서 대신에 청소를 한다는 게 억울하긴 했지만 여기에 있으면 질리도록 읽는 게 책이었다. 

 

“저는 뭐하죠?”

“아무것도 안 해도 돼요.”

“네?”

“어머니의 상대는 어떨까요? 곧 있으면 안드레아 씨가 오시는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걸 좋아하니까 좋은 상대가 될 수도 있겠네요.”

“으음…. 그래도.”

“괜찮아요.”

 

쿠루루기는 정말로 괜찮냐고 세 번이나 묻고서, 안드레아가 찾아오고 나서 내려갔다. 마리안느는 청소를 돕겠다고 했으면서 정작 2층에 한 번도 올라오지 않았다. 어차피 그럴 걸 알고 있었다. 를르슈는 양동이에 물을 부으면서 한숨을 쉬었다. 오늘 대체 몇 번이나 한숨을 쉬는 건지. 

쌓여있는 물건을 완전히 복도로 내놓고, 안쪽을 쓸고 닦는 데에는 삼십 분 정도가 걸렸다. 를르슈는 쿠루루기의 짐을 스스로 옮겨볼까 했다가 그만두기로 했다. 정원 쪽에서는 마리안느와 안드레아, 그리고 그 사이에 자연스럽게 대화에 섞여있는 쿠루루기가 있었다. 

 

쿠루루기라니, 이상한 이름. 어디에서 왔을까. 

나이는 어머니 보단 나랑 가까워보이는데.

 

많은 생각을 하다가 쿠루루기의 침대에 새로 깐 시트에 풀썩 주저 앉았다. 예상치 못한 고된 노동으로 지쳐버린 모양이었다. 생각해보니 아침도, 점심도 거른 채로 계속 움직이고만 있었다. 배도 고프고, 지치고, 졸리다. 를르슈는 눈을 몇 번 깜빡거리다가 그렇게 잠이 들고 말았다. 

를르슈의 눈을 뜨게 한 것은 이상한 부유감이었다. 갑자기 몸이 붕 뜨고 있는 기묘한 기분에 눈을 뜨면 낯선 얼굴이 보였다. 어딘가 흥미로운 것을 보듯이 를르슈를 내려다보고 있는 그 얼굴은 오늘 낮에 만났던 쿠루루기였다. 어째서? 그는 가늘게 떨리는 를르슈의 눈꺼풀을 보더니 를르슈가 깨어난 걸 알아차린 것 같았다. 부유감은 곧 빠르게 끝이 났다. 를르슈는 침대 위로 뉘여지면서 자기 방으로 돌아온 것을 깨달았다. 

 

“미안, 깨웠나보네요.”

 

쿠루루기는 를르슈와 눈을 맞추면서 그렇게 말했다. 일어난 김에 저녁이라도 먹을래요? 마리안느 씨가 곧 저녁이라고 했거든요. 를르슈는 저녁, 하고 말을 되뇌다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하루 종일 자던데, 청소가 많이 피곤했나봐요. 도와주려고 했는데.”

“아니, 어차피 할 일이었고…. 괜찮습니다.”

“그럼 식사하러 갈래요?”

“그래야겠어요.”

 

를르슈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배고파. 아침 점심을 거른 몸은 당이 떨어져서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쿠루루기는 그럼 식당에서 보자고 말하며 를르슈의 방 밖을 떠나려고 했다. 좀 있다 봐요, 그의 나른한 말투를 듣고 있던 를르슈는 쿠루루기를 붙잡아 세웠다. 

 

“원래 말투가 그런가요?”

“네?”

“저, 올해로 열일곱 살이라서 말씀 편하게 해주셔도 돼요.”

“음….”

“아니면 열일곱 보다 더 어리신가요?”

“아, 그건 아니지만.”

“계속 그러시면 나나리도 불편해할 거예요.”

 

나나리의 이야기가 나오자 쿠루루기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를르슈는 이런 비웃음이 익숙했다. 여동생 바보, 라는 이야기나 나오겠지. 하지만 쿠루루기는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를르슈는 여동생을 되게 좋아하나보네.”

 

한층 더 편해진 말투는 를르슈를 마치 오래 전부터 알고 있었던 것 같았다. 를르슈는 괜히 달아오르는 뺨을 숨기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하나 밖에 없는 동생이니까요.”

“나는 외동이라 그런 걸 잘 모르지만…. 나나리도 그런 오빠가 있어서 좋을 거야.”

“네.”

“청소하느라 힘들었지? 도와주려고 했는데, 안드레아 씨가 생각보다 유쾌하고.”

“말이 많죠.”

“아하하.”

“엮이면 답이 없어요. 하루 종일 시달리다 와야 돼요.”

“그 정도까지야.”

 

를르슈의 문 근처에 기대서 대화를 나누던 쿠루루기는 침대에 있는 를르슈 쪽으로 한 걸음 다가가며 말했다. 

 

“그나저나 를르슈는 너무 가볍던데.”

“…설마 안아서 여기까지 데려왔다는 건.”

“맞아.”

“…….”

“모처럼 공기 좋은 곳에 있는데 더 많이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안 돼. 나 같으면 매일 매일 뛰어놀 것 같은데.”

“저 대신 나나리가 잘 노니까 상관 없어요.”

“뭐야, 그게.”

 

두 사람의 거리는 조금씩 가까워졌지만, 그래도 얼마 만큼의 거리를 두고서 이야기를 나누었다. 별 것도 아닌 이야기를 나누며, 마리안느가 저녁 종을 칠 때까지 이야기는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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