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소식과 나쁜 소식이 있어.”
“아아, 안 들어. 안 골라. 하지 마.”
“아니지, 골라야지. 뭐부터 들을래?”
를르슈는 테이블 위로 엎어진 스자쿠의 맞은편에 앉으면서 주문한 아이스 커피를 홀짝거렸다. 어젯밤부터 계속 과제로 시달린 스자쿠의 눈밑은 까맣고, 평소라면 건강하고 활기찬 분위기도 어딘가 한 톤 다운되어 있어서 보기에 안쓰럽다. 하지만 이건 본인이 자초한 결과다. 종강 직전까지만 제출하면 되니까 상관없다구! 그러면서 기세 좋게 학기 내내 놀아제낀 것이 스자쿠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앞에서 다시 노트북을 펼치면서 마지막 한 장의 레포트를 마무리하기로 했다.
“좋은 소식부터 들을래….”
“지금 하고 있는 과제, 다음주 목요일까지로 미뤄졌다.”
“진짜?!”
스자쿠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를르슈와 겨우 같이 들을 수 있는 교양을 잡았지만 아무래도 스자쿠의 학문적 호기심을 자극하지 못한 이 수업은 를르슈가 아니었다면 지금까지 들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실제로 수업 내내 를르슈와 시시덕거리다가 끝났기 때문에 스자쿠는 기말 레포트에 죽어가고 있었다.
배운 게 없으니 쓸 게 없어, 를르슈.
아니지, 교수님은 가르쳤는데 네가 안 배운거지.
같이 놀았으면서 왜 를르슈는 여유롭지?
누구누구씨 시선 즐기면서 수업 들으면 더 재밌더라고.
“그럼 나쁜 소식은?”
“종강은 다다음주로 미뤄졌어.”
“뭐?”
“이번주는 휴강, 다음주는 보강, 그 다음주가 종강.”
“아니, 아니야. 나 일정 있어, 나 그 주에 를르슈랑 여행가야 돼.”
“처음 듣는데.”
“지금 정했거든. 나를 위한 보상으로 를르슈와 여행가기로 했어.”
산으로 갈까, 바다로 갈까? 스자쿠의 꿈꾸는 듯한 목소리를 들으면서 를르슈는 키득거렸다.
“바다가 좋아.”
“역시 여름엔 바다지. 작년에 갔던 데 또 갈까? 로로랑 나나리도 방학하면 같이 가는 건 어때?”
를르슈의 남자친구는 이런 데서 좀 감동적이다. 를르슈는 휴대폰을 켜서 일정을 확인했다. 로로와 나나리의 방학까지는 아직 시간이 남았고, 대학생들의 방학이 한참이나 더 일찍 시작하게 되었다. 를르슈의 휴대폰을 들여다보던 스자쿠는 히죽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단둘이서 갈까?”
“속셈이 있는 것 같은데.”
“속셈이 없을 수가 없지! 좋아, 힘낼래. 다다음주까지 힘내야지. 를르슈랑 여행가야지!”
를르슈랑 단둘이서!
스자쿠는 기합을 넣으며 다시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돌렸다. 하얀 건 배경이고 검은색은 글씨인 것 같으나 내용은 알맹이도 없는 기분이었다. 벌써 논문과 책을 얼마나 봤는지 모르겠다. 를르슈가 골라준 것만 읽었는데도 스자쿠는 눈앞이 캄캄했다. 기세가 좋다가 또 금방 식는 스자쿠를 보면서 를르슈는 한숨을 쉬었다.
“힘든 거 같으니까 오늘은 그만 쉬는 게 어때?”
“를르슈가 도와줄 때 빨리 해치우고 싶어.”
“다음주까지니까 괜찮잖아. 어차피 집중도 안 되면서.”
“그렇긴 하지만…….”
노트북을 정리하는 를르슈의 모습을 보며, 스자쿠도 한숨과 함께 가방을 정리했다. 쓴 커피는 물리지만 졸지 않으려면 어쩔 수 없었다. 남은 커피를 마시려고 잔에 손을 뻗는 순간, 를르슈가 스자쿠의 잔을 솜씨 좋게 빼앗았다. 멍한 손짓이 허공에 남았다.
“커피는 그만. 속 버린다.”
“이미 신물이 날 정도로 마셨으니까 괜찮아.”
“그게 안 괜찮은거야.”
“야박하네, 를르슈.”
자리에서 일어나는 를르슈를 따라서 스자쿠도 카페 밖으로 나왔다. 집으로 돌아갈까? 스자쿠는 기지개를 켜면서 중얼거렸다. 집에 가서 한숨 자고…. 한숨 자고 일어날 수 있겠어?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푹 떨구었다. 자신 없네. 과제 하나가 일주일 미루어진 거 가지고는 택도 없이 바쁜 기말고사였다.
를르슈는 축 늘어진 스자쿠의 눈썹을 보며 선심을 쓰듯이 말했다.
“우리집 올래? 애들은 좀 늦게 올 거고. 저녁만 먹고 가.”
“저녁만 먹고 가라는 말에서 단호한 의지가 느껴집니다, 람페르지 씨.”
“미리 못박아두지 않으면 누구누구는 말을 안 듣거든.”
를르슈네 집에 가면 무릎베개 해주나요? 스자쿠는 를르슈의 옆을 따라 걸으며 물었다. 를르슈는 어깨를 으쓱거리면서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 무릎베개만 해줄까, 자고 일어나면 뽀뽀도 해주겠지. 천연덕스럽게 말하는 그의 대답에 스자쿠는 길거리에서 크게 웃고 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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