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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버데이 기념

DOZI 2020.07.13 21:16 read.534 /

실버데이 : 7월 14일 , 은반지를 나누며 미래를 약속하는 날 ... 이라고 합니다 ^^ ; 실버데이는 이용당했습니다. 은반지 안나와요 

현대패러렐 스자루루입니다 

 

 

 

 

 

 

 

 

고작 반지 하나가 앞으로의 미래를 책임져준다는 낭만적인 환상을 믿기에, 를르슈와 스자쿠는 너무나도 어른이었다. 낭만과 거리가 멀다고 해서 로맨스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저 좀 더 현실적인 것으로 두 사람의 관계를 견고하게 만드는 방식을 선호할 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반지 같은 것은 참으로 덧없는 것이었다. 

두 사람은 많은 사람들 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반지와 키스를 나눌 수 있는 이성애자 커플은 아니었기 때문에 —물론 동성애자 커플도 할 수 있지만 식을 올린다는 행위 자체가 스자쿠와 를르슈에게는 너무나도 번거로운 일이었다.— 나누어 낀 반지는 없지만, 서로 같은 디자인의 손목시계나 넥타이핀, 커프스 같은 것을 공유하곤 했다. 그러니까 굳이 반지의 형태가 아니어도 서로를 구속하고 있는 물건은 있었으니, 반지에 대해서 크게 유감을 가지고 있던 것이 아니라는 이야기다. 

그러다가 반지에 대해서 다시 재고하게 된 것은 쿠루루기 스자쿠가 먼저였다. 그는 학우이자 직장 동료인 코우즈키 카렌과 지노 바인베르그의 결혼식에서 반지를 나누어 낀 두 사람을 보고서 새삼 혼례를 올리는 식과 그 관계를 견고하게 다져주는 결속품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다. 옆에 서 있던 를르슈는 유감도 감흥도 없는 채로 건조한 표정으로 박수를 치며 결혼식장에서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그날 결혼식에서, 카렌이 던진 부케를 받은 것은 다름 아닌 를르슈였다. 뒤로 넘어지려는 여자를 받아주려다가 얼떨결에 를르슈는 부케를 받았다. 물론 를르슈와 스자쿠의 관계는 이미 유명하기 때문에, 다들 웨딩드레스는 누가 입을 것이냐며 스자쿠와 를르슈에게 장난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것으로 끝이 났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스자쿠는 웨딩드레스, 아니면 웨딩 수트를 입은 를르슈를 떠올렸다. 머리를 비스듬히 넘긴 채로 하얀 수트 차림으로 스자쿠에게 손을 내밀고 있는 를르슈는 상상 속에서도 청순하고 가련했다. 그런 모습을 볼 수 있다면 결혼식 정도는 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스자쿠 나이 서른다섯의 일이었다.

 

반지와 쿠루루기 스자쿠, 그리고 를르슈 람페르지의 관계에 대해서 잠깐 이야기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스자쿠와 를르슈는 열 살 때부터 꾸준히 알아온 사이로, 반평생으로도 모자라서 인생의 대부분을 함께 살아온 사이이기 때문에, 굳이 연인이 아니었더라도 무척이나 가까운 사이임은 틀림없었을 것이다. 반지와 관련된 에피소드가 없을 수가 없는 관계라고 말하면 충분할지도 모르겠다. 

그들의 첫 반지는 나나리를 위한 반지부터 시작한다. 스자쿠와 를르슈가 갓 만났던 열 살 무렵이었다. 한창 그림책 속의 이야기를 동경하던 나나리를 위해서 늘 고군분투하는 오빠 를르슈와 그의 장난꾸러기 친구 스자쿠는 그날도 오전부터 만나서 놀고 있었다. 여름이 막 시작한 그 더위의 초입에서 지치지도 않은 채로 뛰어다니면서, 대체로 를르슈는 끌려다닌다는 표현이 적당했다.

그 전날 나나리는 풀꽃으로 만들 수 있는 꽃반지라는 것을 막 배운 참이었다. 잠자기 직전의 그림책에 나온 꽃반지를 보고서 나나리는 내일은 무슨 일이 있어도 꼭 꽃반지를 만들 것이라고 다짐을 했다. 꽃반지와 꽃목걸이, 화관, 정말 아기자기한 풀꽃 악세서리는 나나리를 금방이라도 숲의 요정처럼 보이게 만들어줄 것이라면서 를르슈도 기대를 더해갔다. 

그 다음날 아침, 스자쿠가 대차게 대문을 박차고 들어오며 ‘놀자—!’ 라고 외치는 소리에 를르슈와 나나리는 튀어나갔다. 그리고 어제 이야기 했던 꽃반지에 대해서 말했다. 오늘은 장수풍뎅이를 잡을 생각이었던 스자쿠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걸 왜 하는거야?”

“왜 하냐니, 나나리가 하면 귀여울 게 틀림없잖아.”

“으으음…. 그치만 나는 만들 줄 모르는데.”

“저도 만들 줄 몰라요! 그렇지만 이 책에 만드는 법이 적혀있어요!”

 

나나리는 어젯밤 읽었던 동화책을 꺼내들면서 스자쿠에게 흔들어보였다. 기대에 부푼 나나리와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풀꽃이 가득한 뒷산으로 올라가기로 했다.

나나리가 아끼는 분홍색 치마가 풀물이 들지 않게 돗자리를 챙겨가는 것은 를르슈의 몫이었다. 뒷산의 너른 풀밭에 도착하고 나면 우선 한바탕 뛰놀고 나서 풀물이 들기 전에 를르슈가 펼친 돗자리에 셋이서 드러누웠다.

이제 꽃반지를 만들어보자며 서로 머리를 맞대었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우선 나나리의 그림책은 너무 모호했다. 

 

“용기, 사랑, 우정을 가지고서 반지를 만들었다는데, 이건 방법이 아니잖아.”

“그, 그치만 여기에 용기로 사랑과 우정을 엮었대요….”

“그림에도 잘 보면 매듭을 짓는 방법이 그려져있어. 아직 포기하긴 이르다.”

 

스자쿠는 초록색으로 물들기 시작하는 손가락 끝을 보고서 슬슬 질린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를르슈는 동그랗게 매듭고리를 짓고, 그 사이에 풀꽃을 끼워넣는 등, 스스로 방법을 터득해가며 반지의 고리를 만들기 시작했다.

정작 꽃반지를 만들어달라고 조르던 나나리는 어딘가 시무룩한 표정으로 꽃만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괜히 만들자고 했나봐. 입술을 삐죽거리는 나나리를 보고서 스자쿠는 좀 멀리 있는 꽃밭까지 가서 노란색 꽃을 꺾어왔다. 나나리의 머리 사이에 꽂아주면 나나리는 환하게 웃으면서 고맙다고 인사했다. 

그 사이에 를르슈의 꽃반지가 완성되었다. 엉성하고, 꽃은 이미 시든지 오래지만 정말 반지 모양이었다. 나나리의 손가락 사이즈에 비하면 한참이나 헐렁했지만 를르슈는 뿌듯한 표정이었고, 나나리는 거의 없는 것과 마찬가지인 그림책의 설명으로 반지를 만들어낸 제 오빠가 자랑스러워서 스자쿠에게 손을 내밀어보였다. 

 

“나도 만들래! 를르슈, 알려줘!”

 

그래서 세 사람은 를르슈가 알려주는 방법대로 다시 반지 만들기에 집중했다. 그날은 뛰어놀지도 않고서 돗자리 위에서 얌전히 반지를 만들었다. 를르슈의 반지는 처음보다 깔끔하고 예쁜 모양새로 만들어졌다. 이번에는 나나리의 다른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응용하면 화관이나 목걸이도 할 수 있을거야.”

 

나나리는 곧잘 를르슈의 흉내를 내었다. 그래서 나나리의 첫 반지는 를르슈의 오른손 검지에 끼워졌다. 나나리의 첫 반지에요! 고마워, 나나리. 를르슈와 나나리의 모습에 스자쿠도 분주하게 손을 놀렸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엉망으로 구겨진 반지를 보고서 스자쿠는 지루하다면서 휙, 하고 덤불 사이로 그것을 던졌다. 지루하기 보다는, 곧잘 만들지 못하는 자기 자신에 대해서 들키고 싶지 않다는 알량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스자쿠가 내다 버린 반지를 찾으러 간 것은 를르슈였다. 스자쿠는 요령을 알려주면 금방 터득하니까, 모처럼 나나리가 만든 꽃반지 놀이를 망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에서 찾으러 간 것이었다. 둥글게 뭉쳐진 꽃반지였던 것을 찾은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그것을 다시 내밀었다. 

 

“왜 찾아왔어?”

“잘 만들었는데 아까워서.”

“모양 이상한데.”

“괜찮아. 여기랑 여기 매듭을 잘 지으면…!”

“그래도 꽃이 너무 시들었어.”

“다시 만들면 되잖아?”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입술을 삐죽거리면서 다시 풀꽃을 꺾었다. 방금 전보다 단정한 모양이었지만 매듭 무늬가 거친 것은 여전했다. 

 

“를르슈, 너 줄게.”

“왜?”

“나나리는 이미 반지 있잖아.”

“…난 괜찮은데.”

“내가 만든 거 싫어?”

 

별로야…? 스자쿠의 작아지는 목소리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를르슈는 친구의 자존심을 지켜줄 줄 아는 남자였기 때문이었다. 

어느 손가락에 끼울까. 스자쿠는 를르슈의 왼손과 오른손을 살피다가 왼손을 골랐다. 를르슈는 오른손을 더 많이 쓰니까 반지는 왼손이 편하겠지. 고리가 작았기 때문에 들어가는 손가락은 네 번째 손가락 밖에 없었다. 새끼 손가락은 너무 헐겁고, 중지는 너무 두꺼웠다. 검지는 금방이라도 끊어질 것 같았다. 

소거법을 통해서 를르슈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진 스자쿠의 꽃반지는 곧 를르슈의 꽃반지로 답을 받았다. 를르슈는 꽃반지를 끼운 손으로 솜씨 좋게 세 번째 반지를 만들어 스자쿠의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워주었다. 그 자리에 끼워달라는 부탁은 스자쿠가 한 것이었다. 

 

“왜 왼손 네 번째야?”

“우리는 친한 친구니까, 똑같은 자리에 똑같이 하는거야!”

“꽃반지는 금방 끊어질걸….”

“잠깐만이라도 좋잖아?”

 

그리고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끼운 반지는 저녁밥을 먹을 때, 정말 똑, 하고 끊어졌다. 아쉽지만 나중에 또 만들면 되지. 두 사람은 그렇게 생각했다. 그리고 왼손 네 번째에 끼우는 반지의 의미를 알게 될 때까지 제법 시간이 걸렸다.

두 번째 반지는 그로부터 칠 년의 세월이 지난 후였다. 그때 쯤엔 쿠루루기 스자쿠와 를르슈 람페르지는 질풍노도의 시기를 거치고 서로의 마음을 인정한 채로, 연인으로써 막 무르익기 시작한 때였다. 아직 학창시절의 한창이었던 때라 주변 아이들에게 휩쓸리기도 하는 시기이기도 했다.

그때 쿠루루기 스자쿠는 이 여자 저 여자를 떠돌던 생활을 청산하고 자신의 마음을 받아들여 를르슈와 산뜻한 연인 관계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았다. 그 말은 즉, 를르슈의 스자쿠에 대한 의심이 아직 가시지 않은 때였다는 것이다. 스자쿠가 밖으로 나돌았다면 를르슈는 속으로만 앓은 채로 서로 방향이 맞지 않은 애정을 겨우 조율하던 때에, 의심은 폭풍의 눈처럼 고요하면서도 금방이라도 비껴나면 모든 것을 망가지게 만들 것 같았다.

지금이야 공공연한 연인 사이로 누구에게나 인정받는 스자쿠와 를르슈지만, 그때 당시에는 주변의 시선이 두려워 연인 티도 못내고 다녔던 때였기에 비밀 연애는 필수였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서로에게 최선이었는지 아직 한참 흔들리며 맞춰가야만 했다. 

연애는 생각보다 피곤한 것,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은 것. 분명 서로 좋아하는데 이렇게 괴로울 수가 있을까. 스자쿠와 를르슈는 그렇게 지쳐가면서도 서로의 옆에 있는 것을 포기하지 않았다.

 

두 번째 반지를 주고 받았던 곳은 단 둘이 있던 학생회실에서였다. 연인이 되기 전까지도 곧잘 둘이서 서류를 처리한다거나, 방과후의 과외활동을 위해서 둘이서 있던 때는 많았다. 그러나 그 날은 연인이 되고서 처음, 단 둘이서, 그 밀실에 같이 있게 된 것이었다. 

긴장한 를르슈의 손은 평소보다 느릿하게 움직였고, 스자쿠는 자꾸 펜을 떨어뜨리면서 한숨을 쉬었다. 모인 이유는 를르슈는 최근에 있었던 학생회 이벤트와 관련한 서류를 해치우기 위해서, 그리고 스자쿠는 내일 있을 수학 수업에 검사할 숙제를 하기 위해서였다. 서류를 보던 를르슈가 스자쿠의 숙제를 겸사겸사 봐주는 것은 늘상 해오던 일이었다. 

하지만 연인이 되고서 처음 있는 밀실의 상황. 스자쿠는 한 문제도 풀지 못했고, 를르슈의 일 처리 속도는 지지부진했다. 스자쿠의 열두 번째 한숨에 를르슈는 주먹을 꽉 쥐면서 이를 악물었다. 

 

“적당히 해라, 스자쿠. 그렇게 같이 있기 싫으면 먼저 가면 되잖아.”

“뭐? 그런 말 한 적 없어.”

“그럼 왜 자꾸 한숨이야?”

“기, 긴장 되니까?”

“웃기는 소리.”

 

를르슈는 그때 당시 스자쿠의 여자 관계와 관련한 의심을 끊어내지 못하고 있던 때였다. 만약 스자쿠가 를르슈가 여자가 아니라는 이유로 헤어지고 싶다면 먼저 차버리고 싶은 것은 를르슈가 되고 싶었다. 그런 이유로 차이는 것은 너무 비참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기껏 고백한 를르슈만 바보가 되는 것 같아서 싫었다. 

비밀 연애였기 때문에 방과후 데이트는커녕 교내 데이트도 해본 적이 없었던 것은 를르슈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지금 상황에서 스자쿠의 안절부절한 모습은 더더욱 불안한 상상을 하게 만들었다. 

상상이 아니라 현실적인 생각이지. 를르슈는 짧게 혀를 차며 다시 서류 쪽으로 눈을 돌렸다. 노트북으로 입력하고 차트로 정리해서 넘겨야할 파일들을 정리하는데 다시 집중하려고 했다. 

 

“를르슈랑 단 둘이 있는데,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퍽이나.”

“를르슈야말로 나랑 같이 있는 거 싫어? 왜 그렇게 말해?”

“신경 쓰지 마.”

“어떻게 신경을 안 써, 좋아하는 애가 그러는데.”

“…너, 다른 여자들한테도 이랬어?”

 

그 말에 스자쿠의 둥근 눈은 말 그대로 휘둥그레졌다. 무슨 말이냐는 그 눈빛에 를르슈는 자신이 실언을 했다는 것을 떠올렸다. 과거의 여자들에게 질투를 하다니, 얼마나 추한가. 를르슈는 대충 시선을 피하면서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을 하려다가 입을 다물었다. 어떤 말을 하더라도 질투를 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었다. 

 

“계속 그런 생각 했어?”

“…신경 쓸 수 밖에 없지. 너는 계속 여자랑 사귀었으니까.”

“좋아하는 건 를르슈 뿐이었어.”

“말로는 뭔들 못해.”

“를르슈.”

 

스자쿠의 한숨과 섞인 제 이름에 를르슈는 눈물이 고일 것 같았다. 추한 모습을 보이고 말았다는 생각에 저도 모르게 수치심이 들었다. 창피했다. 있는 힘껏 아닌 척을 해보아도 스자쿠는 눈치 챘을 것이다. 연인으로써 사귀지 않더라도 둘은 알아온 세월이 길었다. 

 

“질투하는 모습이 귀엽긴 한데, 나를 그렇게 못 믿어주는 게 아쉽네.”

“됐어.”

 

스자쿠는 를르슈의 옆으로 다가왔다. 바짝 붙어 느껴지는 사람의 체온에 를르슈는 얼굴이 붉어졌다. 스자쿠는 노트북 위의 자판을 누비는 를르슈의 손가락을 깍지 껴 잡았다. 힘주어 잡아오는 그 손길에 를르슈는 시선을 피하며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내가 먼저 손 잡은 사람은 를르슈가 처음이야.”

“…….”

“키스도 할까?”

“변태냐, 가, 갑자기 키스라니.”

“우리 사귀잖아, 키스 정도는 할 수 있지.”

“……어차피, 너는 첫키스도 아니니까.”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미간을 찌푸렸다. 키스할래, 를르슈. 스자쿠의 말이 끝나자마자 를르슈의 입술에 스자쿠의 입술이 닿았다. 가볍게 입술끼리 부딪히는 것에서 스자쿠의 입술이 를르슈의 아랫입술을 벌리고 들어오며, 살짝 벌어진 그 틈 사이로 혀가 넘어들어왔다. 스자쿠의 첫키스는 자신이 아니라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능수능란하게 잘할 정도로 경험을 쌓았다는 것은 속상했다. 그 속상함은 붉어진 눈가의 눈물로 맺혀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손바닥에 뺨을 부비며 한껏 응석을 부리듯 몸을 기대었다.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헐떡거리는 호흡이 이어지고,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의 등을 두드리며 그의 입술을 닦아주었다. 

 

“이렇게 키스하고 싶은 것도 를르슈가 처음이야.”

 

잡고 있던 를르슈의 손가락에는 어느새 스자쿠의 손을 꽉 붙들어매어서 붉게 자국이 남아버렸다. 를르슈가 그 손을 풀자, 스자쿠는 다시 떨어졌던 손을 붙잡아 이끌고선 를르슈의 옆에 있던 펜을 들었다. 

왼손 네 번째 손가락에 걸린 볼펜으로 그려진 반지에 를르슈는 헛웃음이 나왔다. 이게 뭐야. 스자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반지야. 나중에 진짜 반지로 줄게.”

“…다이아?”

“원한다면.”

“돈 많이 벌어야겠네.”

“뭐……. 를르슈랑 함께라면 다이아 반지 정도는 금방 해치울 수 있지 않을까?”

“나도 협력해야 해?”

“당연하지. 를르슈도 내 손에 다이아 반지 끼워줘야 해.”

 

스자쿠가 내미는 펜을 쥔 를르슈는, 스자쿠의 왼손 약지에 두 줄을 그었다. 성의 없지만 반지는 반지다. 귀엽네. 스자쿠의 한껏 부드러운 목소리에 를르슈는 어이가 없어서 또 웃고 말았다. 

그렇게 열일곱 살에 기약했던 다이아 반지는 서른다섯 살이 되는 세월동안 한 번도 언급되지 못한 채로 잊혀지고 말았다. 운전을 하던 서른다섯 살의 스자쿠는 조수석에 창틀에 머리를 기댄 채로 자고 있는 를르슈를 힐끔 바라보았다. 를르슈의 손목에는 스자쿠와 세트로 맞춘 손목시계가 얌전히 채워져있었다. 

아는 사람만 알아볼 수 있는 것은 과연 를르슈가 스자쿠의 것이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을까. 모르는 사람이 보아도 인정받고 싶은 욕구는 갑자기 튀어나왔다. 스자쿠는 머릿속으로 를르슈의 손가락에 어울릴 반지를 떠올렸다. 

반지를 한 번도 떠올리지 않았다면 그것은 거짓말이었다. 스자쿠와 를르슈가 사실혼에 준하는 동거를 시작한 것은 스물일곱 살 때부터였다. 그때 서로 가족들에게 인사를 나누고, 합칠 집을 알아보고, 월급 통장을 하나로 묶는 등 그들치고는 요란한 일상을 보내며 나름의 가정을 이룰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을 때였다. 

식을 올린다거나, 반지를 나눈다는 것 같은 행위가 없더라도 둘은 영원한 사랑을 맹세할 수 있었기 때문에 반지에 대해서는 둘 다 언급하지 않았다. 굳이 반지가 아니어도 된다고 생각하게 되는 것은 나중에 가서는 거의 오기에 가까웠다. 

이제 와서 반지 같은 연약한 것에 의지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반지에 대해서 누구도 말하지 않았고,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때까지는 이십대의 철없는 오기라고 하자. 

스자쿠는 밥그릇을 야무지게 쥐고 있는 를르슈의 손을 보면서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고 있었다. 반지를 끼우면 모델처럼 어울릴 것이 분명한 그 손은 시계를 채우지 않을 때에는 하얗고 가늘고, 하지만 은근히 남자의 손이라 예쁘기보다는 늘씬한 감이 보기 좋았다.

반지 끼우면, 정말 예쁠 거야. 

 

“뭐야, 밥 먹다 말고.”

“아, 응. 아니, 다른 생각 좀 하느라.”

 

지금은 저녁 식사 중이었다. 낮 동안에 있던 지노와 카렌의 결혼식장까지 오며 가며 운전한 스자쿠는 조금 지쳐있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로 계속 생각하고 있는 반지 때문에 머리는 살짝 과부하 상태였다. 

 

“무슨 생각?”

“음……. 별 거 아닌데. 우리도 식 올릴까?”

“이제 와서?”

“지노랑 카렌도 이제서야 했잖아. 우리도 하면 좋을 거 같기도 하고….”

“번거롭게.”

 

단칼에 거절을 당했다. 하지만 식을 올리는 것에 대해서 스자쿠도 크게 달가운 편은 아니었다. 하얀 수트 차림의 를르슈가 한 번 쯤은 보고 싶긴 했지만, 앞으로 살면서 그럴 기회는 많을 것이다. 

그렇게 따지자면 반지도 언젠가는 해줄 수 있겠지만, 굳이 지금에서야 해주고 싶은 이유는 뭘까. 손이 안 가는 저녁상을 꾸역꾸역 먹으면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을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저 손은 언제든 예쁠 것이고, 반지는 언제 끼워도 맞춘듯이 어울릴 텐데. 

역시 다이아몬드 반지가 어울리겠지. 심플한 디자인으로, 사이즈는 어떻게 재면 좋읋까. 처음엔 반지가 어울리겠거니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이젠 반지를 사러 갈 생각에 스자쿠는 기대감에 부풀고 있었다. 

이제 와서 남들이 하는 걸 다 하고 싶어졌다. 

이유는 모른다. 하지만 를르슈와 함께라면 나쁘진 않을 것 같았다. 스자쿠는 그날부터 반지를 알아보기로 했다. 

 

스자쿠의 손은 를르슈의 손보다 더 두껍고 마디도 굵은 편이었다. 체온도 스자쿠가 훨씬 높은 편이라,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있으면 스자쿠의 체온이 옮겨와 를르슈의 서늘한 손도 금방 따뜻해지는 것이 예사였다. 깍지를 끼면 살짝 다물려 얽히는 느낌이 좋은 손 잡기는 언제든 기분이 좋았다. 

를르슈가 텔레비전을 보는 내내,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을 잡고서 한참이나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처음엔 기분 좋은 손 마사지라도 받는다고 생각했지만, 뭔가 애매한 손놀림으로 를르슈의 손 마디마디를 누비는 스자쿠의 손이 거슬려서 더 이상 텔레비전에 집중할 수가 없었다. 

 

“스자쿠, 뭐해?”

“아……. 음. 를르슈 손 예쁘구나 싶어서.”

“그럼 보기만 해.”

“싫어, 만질래. 내 꺼잖아.”

“귀찮아.”

“비싸게 굴지 마.”

“손 아파.”

“많이 아파?”

 

를르슈의 아프다는 말에 스자쿠는 바로 손을 뗐다. 이런 면이 스자쿠의 다정한 면이다. 를르슈는 착한 강아지 취급을 하면서 스자쿠의 머리를 슥슥 쓰다듬어주었다. 이제 얌전히 텔레비전 좀 보자. 스자쿠는 심통난 표정을 지었지만, 를르슈가 다시 왼손을 내밀어주자 금방 또 얌전해졌다. 

제 손과 를르슈의 손을 번갈아 만지작거리던 스자쿠는 앓는 소리와 함께 그냥 를르슈의 손을 제 이마 위에 얹었다. 

 

“시원한데.”

“이제 다 놀았어?”

“네, 그렇습니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을 아무리 만져도 기분 좋은 촉감과 보기 좋게 도는 혈색 같은 것을 보며 즐길 뿐이었다. 사이즈 같은 것을 가늠하려고 해도 감이 좀처럼 외워지지 않았다. 정확한 건 종이 띠를 두른다거나, 실로 재는 방법이라지만, 그건 너무 노골적인 것 같았다. 마치 반지를 선물할 거라고 예고장을 던지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반지를 선물할 계획이다. 그리고 천천히, 남들이 다 하는 것을 를르슈와 해치워나갈 생각이었다. 하얀 웨딩수트를 입고서 스튜디오 촬영을 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두 사람의 러브 하우스에 그런 사진 한 장 걸어두는 것도 뿌듯할 것 같았다. 

하지만 아직 반지 사이즈도, 반지의 디자인도 정하지 못한 채로 너무 앞선 생각만 하고 있는 것 같아 스스로도 우스웠다. 적당히 앞질러야지….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바닥에 입술을 쪽 소리 나게 맞추었다. 

텔레비전은 이제 그만. 스자쿠를 봐달라는 신호였다. 

 

 

침대 위의 를르슈는 스자쿠의 키스를 받으면서 옷을 쉽게 벗을 수 있게 허리를 들어올리고 손을 뻗기도 했다. 알몸이 되어 스자쿠의 아래에 깔리고 나면 다리를 벌려 그의 허리를 감쌌다. 이는 숱한 밤의 섹스가 만든 습관이었다. 스자쿠의 타액까지 홀짝거리며 다 핥아 삼키고 나면 스자쿠가 귀엽다는 듯이 를르슈의 뺨에 입을 맞추었다. 

벌어진 다리 사이, 흥분한 페니스를 가볍게 쥐고 흔드는 스자쿠의 손길에 를르슈는 참지 않고 신음을 흘려댔다. 스자쿠의 키스는 뺨에서 목덜미, 목덜미에서 가슴팍으로 떨어지고 있었다. 유두 끝에 닿는 혀의 적나라한 감촉에 를르슈는 화끈거리는 열을 느끼면서 가볍게 절정에 이르고 말았다. 

끈적거리는 정액의 양은 제법 되었다. 예전처럼 자주 섹스하지 않으니까 쌓이고 있을 수도 있겠구나. 스자쿠는 를르슈의 페니스 끝에 남은 정액까지도 손가락에 감으면서 귀엽다고 를르슈의 귓가에 속삭였다. 

 

“스, 자쿠.”

“응?”

“빨아줄까…?”

“오늘은 괜찮아. 를르슈 안에 빨리 들어가고 싶으니까.”

 

스자쿠는 를르슈의 다리를 더 벌리고, 다물린 구멍 위로 정액을 펴바르고 모자라면 로션을 쏟아부었다. 를르슈는 새된 소리와 함께 다시 발기하기 시작했다. 모처럼의 휴일 섹스다. 느긋하게 하고 싶지만 를르슈의 흥분한 모습을 보고 있으면 좀처럼 페이스를 다잡기가 힘들었다. 

를르슈의 구멍 안으로 손가락 세 개를 밀어넣고 안쪽을 풀어주고 있을 때, 를르슈가 입술을 뻐끔거리면서 끊어지는 목소리로 무언가를 말했다. 뭐라고 하는 걸까. 스자쿠는 키스하고 싶다는 충동을 억누르며 그의 말을 차분히 기다렸다. 신음과 교성, 그리고 그 사이로 들리는 말은 꽤나 야한 말이었다. 

펠라, 해주고, 싶어.

 

“펠라는 조금 있다가 해줘, 그럼.”

“으응, 스자쿠 꺼, 빠는 거 좋아….”

“왜?”

 

를르슈가 느끼는 안쪽을 중지로 거침없이 헤집고 나면 를르슈는 눈꼬리에 흐르는 눈물을 느끼지도 못한 채로 중얼거렸다. 스자쿠가, 조, 좋아하니까. 를르슈의 솔직한 말에 스자쿠는 다시 키스를 해주었다. 혀를 섞으면서 아래에 넣었던 세 개의 손가락을 더 안쪽으로 밀어넣고 흔들어대면 를르슈가 높은 소리로 울었다. 

이제, 이제 넣…어! 를르슈는 끊어지는 숨 사이로 삽입을 재촉했다. 스자쿠도 더 이상 참을 것 없이 손가락을 빼고 발기한 페니스를 집어 넣었다. 가장 느끼는 안쪽에 쑤셔박아대며 허릿짓을 하다보면 를르슈의 손톱이 어깨와 등을 할퀴는 것이 느껴졌다. 아아, 아, 아, 스, 자쿠, 하, 으응, 응! 읏! 으아, 앗! 안쪽을 콱콱 들이밀며 쳐박고, 하얀 엉덩이를 두 손으로 벌리면서 고환과 부딪힐 때까지 쳐올리면 를르슈의 신음은 거의 소리가 되지 않은 채로 흐르기 시작했다. 

눈물로 얼룩지기 시작하는 시야에서, 를르슈는 스자쿠의 시선을 찾아 그를 계속 불렀다. 스자쿠는 부를 때마다 짓궃게 시선을 피하기도 하면서, 아니면 노골적인 시선으로 를르슈를 범하기도 했다. 모든 것이 자극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목을 끌어안고서 안쪽에 퍼지는 사정감에 허리를 떨었다. 

정액이 흐르는 느낌과 함께 페니스가 뒤에서 빠지자, 를르슈는 입을 벌리며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어딘가 시선이 맞지 않는 그 눈빛으로 펠라를 해주겠다는 를르슈의 모습은 없던 가학심도 생겨나게 했다. 

해줄 거야?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이며 몸을 겨우 일으켰다. 자기 안에서 뒤흔들고 정액으로 범벅이 된 페니스를 앞에 둔 를르슈는 맛있게 빨아먹기 시작했다. 혀를 내밀어 아직 반쯤 식어있는 그것을 날름거리며 맛을 본 다음에, 귀두부터 혀를 내밀어 삼키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부풀기 시작하는 페니스를 입안 가득 느끼면서 를르슈는 차오르는 호흡을 겨우 다잡았다. 이게 방금 전까지 자신의 몸 안에서 쾌락을 주었던 것이라고 생각하면 를르슈는 견딜 수가 없어졌다. 질척한 타액 소리와 를르슈의 목구멍 너머로 스자쿠의 페니스가 삼켜지는 소리가 뒤섞이며, 목구멍 깊숙한 곳까지 스자쿠의 것을 삼킨 를르슈는 능숙하게 이를 세우지 않고 모든 것을 해냈다. 

입안에 퍼지는 쿠퍼액과 남아있는 정액까지 삼키는 것도 익숙했다. 서로 살결을 맞대고 섹스한 세월이 오래되었어도, 매번 주어지는 쾌락은 늘 신선했다. 를르슈가 펠라치오를 해줄 때의 스자쿠의 얼굴은 늘 새로웠다. 커다란 눈을 가늘게 뜨면서, 어쩔 줄 몰라하며 를르슈의 머리카락 사이를 손가락으로 헤집는 그런 느낌이 좋았다. 

맛있어, 기분 좋아, 기분 좋아, 스자쿠, 좋아해, 좋아해. 를르슈는 그의 음모에 코를 묻다시피하며 깊숙하게 페니스를 삼켰다. 스자쿠는 곧 사정할 것처럼 부풀어올랐다. 할 수 있는 한 삼킨 목구멍이 얼얼하고 턱이 뻐근했지만, 스자쿠의 정액이 안쪽에서 사정되는 것을 느끼자, 를르슈도 제 부푼 아래를 손으로 쥐고 흔들었다. 뒤로갈 때만큼의 쾌감은 없지만, 스자쿠의 것을 삼키면서 사정하는 기분은 좋았다. 

숨을 고르면서 펠라치오를 마친 를르슈에게 스자쿠는 키스를 해주었다. 정액맛이 나는 키스였지만 역하기는커녕 이런 것을 기꺼이 해준 를르슈에게 주는 포상이라고 생각하면 안할 수가 없었다. 이번에는 내가 빨아줄게.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었다. 의아한 듯 쳐다보고 있으면 를르슈는 다리를 벌리며 엉덩이 사이를 손가락으로 헤집어 벌렸다. 그 답지 않은 적극적인 행동이었다. 

 

“뒤, 로 가고 싶어, 스자쿠 꺼로.”

 

느긋한 휴일 섹스는 성립할 수 없는 단어였다.

모처럼 적극적인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의 반응은 격렬했다. 둘이서 땀에 흠뻑 젖을 때까지 섹스를 하고 나서, 를르슈가 거의 쓰러지기 일보 직전이 되어서야 끝이 났다. 샤워를 같이 하고 나서 새로 깐 침대 시트에 몸을 뉘이고 있을 때였다. 

 

“스자쿠.”

“응?”

“왜 갑자기 결혼식이 하고 싶어졌어?”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젖은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슥슥 닦으면서 머리를 굴렸다. 하지만 마땅찮은 대답이 떠오르지 않아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그냥, 갑자기?”

“반지도?”

“반지?! 그건 어떻게 알았어?!”

“하루 종일 손만 보고, 시간만 나면 손을 잡아대는데 모를 수가 있나.”

“아니……. 보통 모르잖아.”

“너는 알기 쉽다니까.”

 

를르슈는 키득거리면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를르슈를 깜짝 놀래켜줄 생각이었던 스자쿠는 왜인지 맥이 빠지고 말았다. 시무룩한 표정으로 를르슈를 바라보고 있어도 를르슈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혼자서 다 준비할 생각은 아니었겠지? 나도 취향이라는 게 있는데.”

“알아. 그래도 좀, 서프라이즈한 느낌으로 준비하려고 했는데.”

“이제 와서. 그렇게 티를 내놓고?”

“정말 야박해, 를르슈.”

 

반지 맞출까.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심통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맞추자! 그러자 이번엔 를르슈가 웃었다. 애도 아니고, 이런 걸로 삐지지 마. 내가 서비스도 해줬잖아? 그 말에 스자쿠는 를르슈의 허리를 끌어안고 침대를 굴렀다. 서비스 해줄 거면 끝까지 해줘! 끝까지 모른척 해줘! 를르슈가 아프다는 비명을 질렀지만, 그건 아픈 척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는 스자쿠는 일부러 허리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다음 휴일엔 반지를 맞추러 가자. 

반지만?

그 다음 휴일엔 뭐하고 싶은데?

 

아직 오지 않은 미래에 대해서, 듣기만 해도 가슴이 설레는 이야기로 가득 채워나가는 것은 언제든 즐겁다. 스자쿠가 그토록 알고 싶어하던 를르슈의 반지 사이즈를 알게 되고, 그리고 그의 웨딩 수트 차림을 볼 수 있게 되는 것도, 이제 곧 금방의 일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