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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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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ght of devil 下

DOZI 2020.07.19 23:14 read.512 /

악마의 몸은 어지간해서는 없어지지 않는다. 소위 말하는 성수에 절여져도 거뜬하고, 불길에 타오르더라도 사나흘이면 다시 재생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 고통이 따르고 시간이 걸리는 재생이다. 

를르슈는 제 검지 손가락이 바닥을 나뒹구는 것에 이를 악물고 비명을 참았다. 턱이 얼얼해질 때까지 비명을 억누르는 것은 힘들었다. 헉, 허억, 헉…! 를르슈의 숨소리에는 고통을 억누르는 것이 묻어났다. 를르슈의 왼손 검지를 잘라낸 스자쿠는 건조한 시선으로 그것을 바라보았다.

 

“잘 참네.”

 

잘 참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악마의 절규는 때때로 지옥까지 닿을 때가 있다. 이 참사를 로로와 나나리에게 들킬 수는 없었다. 만에 하나 그들이 이 남자와 얽히게 된다면 를르슈는 견뎌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현기증이 도는 고통에 를르슈는 다시 이를 악물었다. 고통에 대한 정신력 소모는 체력과 마력을 동시에 좀먹기 시작했다. 

나이프를 고쳐 쥔 스자쿠는 를르슈의 엄지 끝으로 칼날을 들이밀며 말했다. 

 

“어디서 왔어, 를르슈?”

 

스자쿠는 를르슈가 대답하지 않을 때마다 질문 한 개에 하나의 손가락을 잘라버리겠다고 말했다. 그리고 그 대가로 지금 검지가 잘려나간 판이었다. 를르슈는 핑 돌아버릴 것 같은 정신을 겨우 다잡았다. 이대로 꼬리와 날개가 튀어나오면 더 흉한 꼴이 되어버릴 것이다. 다른 신체부위는 다 재생이 되더라도, 꼬리와 날개만큼은 재생이 되지 않는다.

꼬리와 날개가 없다면 다시 지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사랑하는 동생들도 만날 수 없게 된다. 를르슈는 헐떡거리는 숨 사이로 질질 흐르는 타액을 삼키지도 못했다. 고통에 턱이 덜덜 떨려왔다. 인간들은 이런 걸 견디고, 때로는 즐긴다지. 악마보다 더한 놈들. 

 

“손가락, 정말 예쁜데…. 정말 아쉬운 소리만 하게 하네.”

 

칼날이 다시 한 번 움직였다. 썩둑, 써걱, 쿨럭. 피와 살갗이 나이프 아래에서 썰려나가는 소리에 를르슈는 정신을 놓고 싶어졌다. 어둠 속에서 예리하게 빛나는 스자쿠의 시선은 를르슈의 피범벅이 된 손가락에만 닿는 것 같았다. 차라리 그랬으면 좋겠다. 꼬리와 날개에는 흥미도 가지지 않아서, 이대로 반 가사상태로 버려진 다음에 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왼손 두 개의 손가락이 잘려나간 를르슈는 벌벌 떨리는 오른손으로 스자쿠의 나이프가 쥐어진 손을 잡았다. 

 

“그, 만….”

“그럼 대답해.”

“하, 하핫…! 말하면, 믿을 것도 아니면서.”

 

를르슈는 악 다물린 이 사이로 천천히 발음했다. 지옥에서, 왔다.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가늘게 눈을 떴다. 지옥? 스자쿠의 반복되는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지옥에서 왔다니까, 못 믿겠지? 스자쿠는 다시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지옥. 지옥 말이지…. 피가 손끝에서 쏟아지고 있어서, 를르슈의 정신은 서서히 혼미해지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꼬리와 날개를 감추는 것에는 기를 쓰고 있었다. 

 

“지옥은 여기인데, 어디에서 왔다는 거야….”

 

스자쿠가 다음으로 자른 손가락은 중지였다. 를르슈는 칼날이 제 손가락을 또 난도질하는 것을 보자마자 크게 웃다가 결국 혼절해버리고 말았다.

마지막까지 기를 쓰며 꼬리와 날개에 대해서 감추고 있었지만, 를르슈의 그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스자쿠는 쓰러진 를르슈의 등에서 솟은 검은 날개를 보고야 말았다. 살가죽과 이어진 검은 날개, 검은 꼬리. 부드러운 피부 결이 살아있는 그것들을 보고서, 스자쿠는 피로 젖은 나이프로 그것의 끝을 쓸어보았다. 

이것을 자르면 무슨 색의 피가 흐를까?

 

를르슈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이번에는 등가죽이 뻐근하게 아파왔다. 사람의 꼴로는 아플 수 없는 날개뼈 부근이 아팠다. 어떻게 묶인 것인지 몰라서 몸을 뒤흔들었다가, 달빛에 비친 그림자를 통해 제 날개와 꼬리가 드러났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일어났어?”

 

스자쿠는 침대 위에서 지친 듯한 목소리로 물어왔다. 를르슈는 자신의 꼴도, 그리고 피투성이가 된 스자쿠의 모습도 어이가 없어서 목소리가 쉽게 나오지 않았다. 스자쿠는 를르슈 쪽으로 고개를 들다가, 픽 하고 다시 고개를 꺾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목소리, 안 나올거야. 성대까지 다 뜯어봤거든, 너.”

“…?!”

“꼬리랑 날개는 힘줄이 제법 있어서 못 잘라봤는데…. 몸은 상대적으로 연하다고 해야하나, 아무튼.”

 

너 정말 지옥에서 왔구나. 

스자쿠의 지친 말에 를르슈는 자기에게 무슨 짓을 저질렀냐고 묻고 싶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정말 성대를 갈라버린 것처럼 나오지도 않았다. 뒤로 묶인 팔을 바둥거리고 있으면 스자쿠는 쳐다도 보지 않았다. 

 

“알아보겠다고 다 뜯어본 나도 나지만, 정체를 숨긴 너도 문제가 있는 게 아닐까, 를르슈….”

 

말도 안되는 소리를 태연하게 하고 있는 스자쿠에게 어울려 줄 여유는 없었다. 그리고 그 여유는 마력이 동나면서 더욱 당연해지고 있었다. 몸의 어딘가가 재생이 되면서 마력은 소모가 되었고, 또 다시 섹스를 원하는 몸은 스자쿠에게 기대는 수밖에 없었다. 

젠장. 를르슈는 눈알이 멀쩡한 것을 감사하다고 빌어야할지 말아야할지 감이 잡히질 않았다. 눈을 맞추려고 하니 스자쿠는 또 고개를 돌렸다. 

 

“눈이 제일 빨리 돌아오더라, 너.”

“…?!”

 

악마가 인간에게 잡혔을 때, 온몸이 조각조각 나는 고통을 느낄 수 있다던데. 스자쿠는 를르슈가 기절한 사이에 그 조각조각을 다 내버린 것 같았다. 비위 상해. 를르슈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스자쿠는 정말 역겨운지 입을 막고서 헛구역질을 했다. 

 

“누가 할 소릴…!”

 

어느새 재생 속도 하나는 무시무시한 악마답게, 회복한 목소리 덕분에 화를 낼 수 있었지만, 꼬리와 날개가 붙들린 악마가 내는 화가 무서워봤자 크게 위협도 되지 않았다. 를르슈는 지금 일단 일보 후퇴를 해야할 시기라고 판단했다. 

섹스를 해야만 했다. 템프테이션의 준비를 하기 위해 눈을 부릅뜨려고 할 때였다. 스자쿠와 시선을 맞추기 위해서 온몸을 버둥거리고 있으면, 스자쿠는 정말 싫다는 듯이 를르슈에게서 아예 시선을 돌려버렸다. 베개로 자기 귀를 막고 있는 스자쿠는 으아아, 하고서 소리를 질렀다. 

 

“또 이상한 거 하려고 하는거지?!”

“섹스는 너도 좋아했잖아…!”

“남자랑 섹스하는 게 뭐가 좋다고!”

 

적어도 여자 꼴을 갖추던가! 를르슈는 스자쿠의 마지막 말에 어이가 없었다. 여유가 된다면 스자쿠의 말처럼 여자의 모습을 해줬을 지도 모르겠지만, 지금은 마력이 동나서 죽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럴 여유가 없었다. 

를르슈는 최대한 불쌍한 얼굴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스자쿠…. 떨리는 목소리도 동정심을 더하는 것처럼 연출했다.

 

“키스라도 해주면 금방 여자가 되어 주마. 그러니까….”

“방금 전까지 뱃속 구경한 사람한테 키스해주고 싶지 않거든.”

“더한 것도 했는데 키스 가지고 째째하게.”

 

스자쿠는 정말 질린다는 얼굴을 하는 것과 다르게, 를르슈의 앞에 다가왔다. 하지만 눈을 꼭 감은 채였다. 시선이 맞지 않으니 템프테이션은 무리였다.

스자쿠. 를르슈의 작은 목소리에 스자쿠는 손을 뻗어 를르슈의 뺨을 문질렀다. 따뜻한 손의 느낌에 를르슈는 고양이처럼 그의 손바닥에 얼굴을 부볐다. 애교 어린 몸짓에도 스자쿠는 호락호락하게 넘어가지 않았다. 

 

“네 혓바닥도 잘라봤거든….”

“살아있는 사람을 상대로 잘도.”

“를르슈는 생각보다 혀가 길었어.”

“악마니까.”

“악마…?”

 

스자쿠는 를르슈의 뺨을 살짝 힘주어 만졌다. 여전히 시선은 어긋난 채였다. 

 

“사람을 유혹할 땐 혀로 하는 게 제일 편하거든.”

“…말로 유혹한다는 말이지?”

“지금으로는 펠라치오가 절실하다만.”

“그런 말을 하는 것치고는 섹스를 못하던데.”

“어, 어쩔 수 없지…! 섹스는 네가 처음이니까!”

 

이번에는 시선이 맞았다. 하지만 를르슈는 템프테이션을 쓸 수가 없었다. 스자쿠의 말대로 한 번 잘린 혓바닥은 어딘가 둔하게 스자쿠의 혀를 받아들였고, 그의 움직임에 느릿하게 움직이며 타액을 삼키고 있었다. 성욕으로 어두워진 녹색의 눈동자에 마주할 때면, 를르슈는 허리가 떨리는 것을 느꼈다.

키스만으로, 혀를 빨아들이고 그 타액을 삼키는 것만으로도 마력은 어느 정도 회복되어가고 있었다. 밧줄을 풀어낼 정도가 되었을 무렵에는 스자쿠가 스스로 뒤로 묶인 매듭을 풀어주었다. 뻣뻣하게 굳어있던 팔로 스자쿠의 목을 감싸고 있으면 스자쿠에게서 웃는 소리가 들렸다. 

왜 웃는 거야? 를르슈는 스자쿠의 뜨거운 체온을 넘겨받은 것처럼 따뜻해지는 제 몸을 부비면서 묻고 싶었다. 가볍게 날개를 떨면서 살짝 움직이고, 꼬리도 흔들어보았다. 잘리거나 썰리진 않았다. 안심하며 다시 그것들을 감추었다. 순식간에 사라진 꼬리와 날개를 보고서 스자쿠의 몸이 굳었지만, 를르슈가 그 틈을 놓치지 않겠다는 것처럼 키스를 퍼부으면 그의 손은 다시 를르슈의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사람과의 섹스는 처음인 악마가, 그 첫 상대를 마지막 상대로 삼는 계약을 하기까지 앞으로 세 시간.

스스로의 운명이 어떻게 엮일지도 모르는 채로, 악마와의 계약을 앞두고 있는 인간이 섹스의 열락에서 깨어나는 것도 세 시간 후의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