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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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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렸을 때부터 꾸는 악몽이 있다. 너무 끔찍해서 소리를 몇번이나 지르면서 깨어났다. 내 비명소리에 놀란 부모님이 아래층에서부터 올라와서 나를 끌어안고서 다독이는 것은 거의 일상이었다. 병원 치료와 상담을 병행하면서 나의 악몽을 낫게 해주려고 부모님은 숱한 노력을 했지만 크게 의미는 없었다. 

그 악몽은 나의 어린 말로는 설명할 수 없을 만큼 끔찍했다. 죽는다는 개념을 알기 이전에 악몽을 통해서 죽음을 배웠다.

누구든 그렇게 죽어. 내가 그렇게 죽게 만들었으니까. 

악몽의 결론은 그렇게 이어지고, 그 결론 속에 있는 ‘나’는 나를 쳐다보곤 했다. 많은 사람들의 죽음을 뒤로 한 채로 서있는 ‘나’는 모습은 달라도 나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그것이 악몽의 무서운 점이었다. 나를 멍하니 쳐다보는 ‘나’는, 그 다음에 어떻게 됐는지 알 수가 없고, 나는 따뜻한 부모님 품에서 울면서 말도 못하는 것이다.

커가면서 악몽을 꾸는 빈도는 기적적으로 줄어들었지만, 그래도 잊을 만하면 그 꿈은 나를 찾아왔다. 마치 너는 그것을 잊으면 안된다고 하는 것처럼. 예전처럼 울지는 않지만 그래도 괴로움에 숨이 죄여오는 것은 당연했다. 꿈 안에서 죽은 사람들이랑 같이 죽으러 가야하는 게 아닐까. 나는 눈물과 땀이 범벅이 된 얼굴을 닦아내며 그런 생각을 했었다. 

죽은 사람들은 얼굴을 본 적도 없는 사람들이었고, 인상도 희미하게 남아 떠올리기도 어려웠다. 그저 느낄 수 있는 것이라고는 ‘친했다’거나 ‘좋아하는 사람’이라거나, 그런 감정들이 읽혀지듯 떠올랐다.

 

—친하거나, 좋아했던 사람이 나로 인해 죽는 꿈이다. 

 

그 꿈은 해를 더해갈수록 더 또렷해졌다. 오랜만에 볼수록 꿈속의 전말을 더 확실하게 보여줬다. 전말이라고 하기보다는, 나의 예상이 들어맞은 것이다. 

 

—나로 인해 죽은 것이 아니라, 내가 죽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이제껏 누구도 죽이지 않고 살아왔는데. 그 꿈을 꾸는 것이 억울한 게 당연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냉정한 머리는 늘 죄의식에 사로잡혀있었다. 언제든지 나는 친하거나, 좋아하는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는 악몽.

나는 그 꿈에서 평생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너무 단정 짓는 거 아니야?”

 

책을 읽고 있던 를르슈는 한숨을 내뱉듯이 중얼거렸다. 나는 모처럼 숨기고 있던 비밀을 밝힌 것이었지만, 를르슈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찻물이 식었다고 말할 때와 다를 바 없는 말투였다. 

 

“아니, 나는 심각해.”

“병원은 이제 안 다녀?”

“응.”

“수면제 처방은?”

“해봤는데 효과는 없었어.”

“그나마 지금까지 제일 효과가 좋았던 건 뭐야?”

“르, 를르슈 옆에서 자는 거?”

 

그럴 속셈이 없는 말이었는데도 나의 전과는 화려했기에, 를르슈가 질린 눈으로 쳐다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나는 를르슈가 앉아있는 소파의 빈 자리에 앉았다. 한쪽에 기대고 있던 를르슈는 자세를 바꾸어 내게 기댔다. 

 

“그래도 가끔 자다가 울잖아, 너. 그 꿈 때문이야?”

“응…? 아니, 나 를르슈랑 잘 때는 그런 적 없어.”

“확실해?”

“아, 아마도.”

 

가엾군. 를르슈는 혀를 차며 다시 페이지를 넘겼다.

를르슈와 같이 산 지는 벌써 7년째였다. 7년 동안 나는 악몽으로부터의 해방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정말 평온한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옆에 를르슈가 있기 때문이었다. 

를르슈와 처음 만난 곳은 브리타니아였다. 나는 새로운 곳에서의 시작이 나의 숙면을 돕지 않을까 싶어 아예 새로운 땅인 브리타니아로 대학을 골랐다. 그리고 비행기를 탔는데, 그 옆자리에 있던 것이 놀랍게도 를르슈였다. 

나는 를르슈의 옆에 앉아서, 인생 최초의 숙면을 경험하며 그의 어깨에 전세를 낸 것처럼 푹 자버렸다. 놀랍게도 를르슈도 자느라 저린 어깨에 대한 신경을 쓰지도 못했다. 그 이후로 기적처럼 같은 학교에서 만났고, 같은 기숙사에서 마주치고, 를르슈와의 관계는 급속도로 진전하여 1학년 가을 쯤이 되면 를르슈와 사귀는 사이가 되었다. 

 

“특정 사람이 옆에서 잔다고 악몽을 덜 꾸는 건 말도 안 돼.”

“나도 그렇게 생각은 했는데….”

“그리고 네 악몽은 너무 맥락이 없어. 어렸을 때 무서운 책이라도 본 거 아니야?”

“너도 알다시피 나는 원래 책에 관심이 없어. 어렸을 때는 더.”

“무서운 영화는?”

“부모님이 꿈 때문에 그런 걸 더 못보게 했어.”

“…….”

“를르슈는 이런 적 없어?”

 

를르슈에게 처음으로 털어놓는 이야기였기에 나는 나름대로 긴장을 하고 있었다. 종잇장을 팔랑팔랑 넘기던 를르슈는 한숨을 쉬면서 책표지를 덮어버렸다. 

 

“없어.”

“정말로?”

“정말로.”

 

단호한 목소리에 나는 기가 죽어버렸다.

아무튼 난 를르슈가 있으면 편히 잘 수 있으니까. 나의 말에 를르슈는 사람을 베개 취급하지 말라고 쏘아붙였지만 그렇게 날이 서있진 않았다. 다음날은 우리 둘 다 일정이 있는 날이었기 때문에, 오늘은 손만 잡고 자기로 한 날이었다. 

밤이 되면 이불을 덮고 를르슈의 옆에 붙어서 눈을 감고 있었다. 그의 옆은 늘 숙면을 취할 수 있는 보금자리였다. 눈을 감고서 잠이 오는 그 경계에 잠시 졸고 있으면, 를르슈의 손길이 느껴졌다. 약간 서늘한 손. 앞머리를 살짝 넘기는 손의 움직임에 나는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뭐야, 를르슈.”

“…너 악몽 꾸지 말라고.”

“신경 안 쓰는 거 같더니.”

“그 정도로 야박하진 않아.”

 

잘 자, 스자쿠. 를르슈의 입술이 이마에 닿았다 떨어지는 것이 느껴졌다.

이로써 완벽하게 잠에 빠져들 준비가 되었다. 

 

*

 

스자쿠가 꾸는 악몽이 나에게 옮겨 붙었다. 

몇주 전에, 스자쿠가 머뭇거리면서 했던 악몽 이야기는 그 당시의 내게는 스자쿠가 안쓰럽기만 할 뿐, 큰 감흥을 주진 못했다. 처음 그 악몽을 꾸었을 때, 사람의 무의식은 늘 무궁무진하기 때문에, 그런 꿈에 시달리는 스자쿠가 가엾은 마음에 나도 그것에 공감하고자 그러는 줄 알았다. 

꿈은 지독히도 생생했다. 스자쿠의 설명과 완전히 달랐다. 인상이 흐릿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아름다운 여인, 상냥한 소녀, 검을 쥔 소년. 전부 다 알고 있지만, 이름은 알 수 없다. 알고 있다는 것은 오로지 느낌으로만 알 수 있을 뿐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그들은 나를 쳐다본다. 누구도 탓하지 않는 얼굴로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 그들을 죽인 것은 나다. 

내가 죽였다. 

그 꿈의 끝은 까맣게 꺼지는 세상으로 끝이 난다. 스자쿠는 ‘자신’을 본다고 했지만, 나의 꿈은 그러지 않았다. 마치 나도 대가를 치르는 것처럼, 죽는 것처럼. 그럼 나를 죽인 건 누구일까. 

 

“를르슈도 그런 꿈을 꾼다고? 그런 적 없다며.”

“네 이야기를 듣고 나서부터야.”

“꿈이 옮아가기도 하나?”

“그럴 리가 있겠어?”

 

소스를 볶고 있는 손을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수면 부족으로 머리는 멍한 채였다. 스자쿠는 식탁으로 음식들을 나르고 있었다. 나도 마무리를 마치고 식탁에 앉았다. 

 

“누가 나와?”

“이름은 모르지만…. 아무튼 알고 있는 사람.”

“……응?”

 

잘 먹겠다는 인사와 함께 식사가 시작되고, 악몽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다른 이야기로 바뀌게 되었다. 식사 중에는 다양한 이야기가 오갔다. 나나리의 안부, 스자쿠가 다니는 회사 이야기, 나의 이야기, 주말에 하고 싶은 것들, 먹고 싶은 것들, 보고 싶은 것들. 내일의 이야기를 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는 충분해서, 스자쿠와 이야기를 하면서 밥을 먹으면 평소 이상으로 시간이 길어진다. 

나쁘진 않다. 여유로워서 좋다. 저녁을 먹고 나서 나는 디저트를, 스자쿠는 설거지를 했다. 서서히 졸음이 오고 있었기 때문에 내 몫의 푸딩 절반은 스자쿠가 다 먹어치웠다. 적당한 시간이 될 때까지 책을 읽거나, 텔레비전을 보면서 시간을 때운다.

졸린 탓에 스자쿠의 어깨에 자주 기댔더니 아예 일찍 자자고 스자쿠가 침대로 이끌었다. 옆에 누워있는 스자쿠의 온기를 느끼면서 마주 누웠다. 이대로 자는구나. 오늘은 푹 잘 수 있으면 좋으련만. 한숨과 함께 눈을 감으면 스자쿠의 손길이 느껴졌다. 

 

“이상한 꿈 안 꿨으면 좋겠어, 를르슈.”

“어차피 꿈이니까 신경 안 써.”

“그래도. 괜히 이야기했나.”

 

꿈이 옮겨붙었다는 말을 신경 쓰고 있는 걸까. 스자쿠의 그런 점이 좋아서 웃어버렸다. 꿈은 꿈이다. 조금 음산하고, 기분 나쁘지만, 어차피 일어나면 신경 쓰지 않아도 되고, 눈 뜨고 나면 내 할 일이 있는 일상을 살아가는데 조금도 지장이 없다.

내 뺨을 쓰다듬는 스자쿠의 손을 쥔 채로 괜찮다고 말했다. 꿈은 꿈이고, 내일은 내일이니까. 눈두덩이를 만지는 손길에 잠이 오기 시작했다. 

스자쿠가 나를 만나고 나서 숙면을 취하게 된 것처럼, 나도 스자쿠가 도와주겠지. 조금 대책이 안 서는 해답이 아닐까 싶으면서도, 그가 아니면 믿을 사람이 또 누가 있나 싶었다.

스자쿠, 네가 아니면, 누가 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