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내리는 게 언제부터 설레지 않게 되었을까.
오히려 눈 때문에 도로가 언다거나, 미끄러져서 다친다거나 하는 일들 때문에 번거로운 날씨다. 눈 오는 날의 설렘을 잊어버린 것은 어른이 되어버린 것 같기도 해서, 내리는 눈은 사람의 기분을 미묘하게 만든다. 좋은 것도 아니고, 나쁜 것도 아닌 눈.
“아, 눈 온다.”
옆자리의 스자쿠가 작게 중얼거리는 소리에, 를르슈는 그가 있는 쪽을 쳐다보았다. 스자쿠의 시선은 이미 눈이 내리고 있는 창문 밖이었다. 교실에서는 선생님의 지루한 물리 수업이 한창이었고, 대부분 졸고 있거나 다른 생각에 빠져 있었다. 를르슈는 후자였다.
스자쿠와 눈이 마주치기 전에 고개를 돌리고 다시 교과서에 시선을 두었다. 아무렇지도 않게 수업에 다시 집중하는 척, 필기를 하고 이 시간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끝나는 종 소리가 울리고 나서야 다들 지루함에 몸을 비틀면서 일어났다. 부산한 와중에 를르슈를 부르는 목소리가 들렸다. 스자쿠였다.
“왜?”
“를르슈, 방금 전에 나 쳐다봤지?”
“…너무 자의식 과잉인 거 아니야?”
“말 돌리지 말고.”
야생동물도 아닌 주제에 스자쿠는 시선에 예민하다. 를르슈는 어깨를 으쓱거리며 창문 밖을 가리켰다.
“눈 내리길래, 그거 좀 본 거 가지고.”
“흐응, 눈….”
스자쿠의 어딘가 석연찮은 반응에 를르슈는 더 이상의 여지를 주지 않았다. 오늘 수업은 물리로 끝이 났고, 를르슈와 스자쿠는 오늘을 기대하고 고대한 학생회장 미레이를 위해서 노동력을 아낌없이 써야하는 날이었다. 가방을 다 챙긴 두 사람은 복도로 나섰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를르슈였다.
“선물은 챙겼어?”
“응. 를르슈는?”
“챙겼지. 안 챙기면 회장한테 무슨 소리를 들으려고.”
“하긴, 그런 것도 있지만… 기대되지 않아?”
오늘은 크리스마스 이브였다. 축제라면 빠지지 않는 미레이 애쉬포드가 실력을 발휘하는 날이기도 했다. 평소라면 화려하게 전교생들을 동원한 크리스마스 축제를 열었겠지만, 올해는 학생회 예산이 부족한 탓에 학생회 멤버들끼리 ‘소박하게’ 파티를 열기로 했다. 간단한 선물교환과 맛있는 음식을 나눠먹는 것이 파티의 주된 내용이라고는 했지만, 과연 미레이가 ‘소박하게’의 의미를 잘 활용할 것인지는 미지수였다.
“스자쿠는 선물 뭐 샀어?”
“그건 받기 직전까지 비밀이잖아.”
“고지식하기는.”
티격태격 하다보면 학생회실 앞까지 다다랐고, 안쪽에서는 벌써 준비가 한창인지 맛있는 냄새가 흐르고 있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를르슈와 스자쿠가 제일 늦게 온 모양이었다. 어디서 공수해온건지 모를 크리스마스 의상을 갖춰입은 미레이와 셜리의 모습에 를르슈는 턱없이 부족한 예산이 어디로 새고 있는지 실감했다. 하지만 그것을 굳이 지금 말할 정도로 눈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미레이가 잔뜩 준비한 이벤트의 대부분이 지나고 나서야 달아오른 분위기는 조금 사그라들었다. 뒷정리의 담당은 오늘의 벌칙에 걸려버린 를르슈와 스자쿠였다. 그럼 내일 봐! 리발은 눈이 더 쌓이기 전에 돌아가야겠다면서 제일 먼저 나갔다. 정리를 돕던 셜리와 니나는 저녁이 늦어져서 걱정하는 부모님의 전화를 받고 돌아갔다. 미레이는 파티가 끝나자 잔소리를 시작하는 를르슈를 피해 제일 먼저 도망쳤다.
결국 남은 건 스자쿠와 를르슈, 두 사람 뿐이었다. 를르슈는 이제 한적해진 학생회실의 히터를 껐다.
“벌써 끄는 거야? 를르슈 춥잖아.”
“절약하는 거야.”
“감기 걸릴 걸.”
“하, 네 걱정이나 하시지.”
교복 자켓을 벗고 셔츠 차림인 스자쿠에게 를르슈는 옷을 갖다주었다. 가까워졌다 멀어지는 거리에 스자쿠는 를르슈의 손목을 붙잡았다.
“를르슈 말이야, 방금 전에 다트 게임, 일부러 져준 거지?”
“왜 계속 자의식 과잉 상태이실까, 오늘따라.”
“맞잖아.”
스자쿠는 를르슈의 잡아떼는 시치미에 넘어가지 않았다. 를르슈는 손목을 붙잡아 제쪽으로 잡아끄는 스자쿠에게 말없이 끌려갔다. 두 사람의 거리는 완벽하게 제로. 를르슈의 허리에 스자쿠의 팔이 둘러졌다. 를르슈는 제 어깨에 턱을 얹고서 저를 끌어안는 스자쿠에게 얌전히 안겨있었다.
“계속 단둘이 있고 싶었는데, 나만 그런 줄 알았네.”
“…알고 있었으면, 눈치껏 빠져나갔어야지. 뒷정리까지 하는 건 내 계획에 없었다고.”
“오늘 계획이 있었어?”
“너 정말…….”
를르슈는 스자쿠의 품에서 벗어나려고 그를 밀어냈다. 하지만 단단하게 허리를 끌어안은 팔 때문에 반항은 소용이 없었다. 버둥거리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의 웃음소리가 귓가에서 낮게 울렸다.
“이렇게라도 둘이서 있으니까 좋네.”
“…비록 쓰레기를 치우고 있지만.”
“그럼 빨리 치우고 갈까?”
스자쿠의 묻는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으며 스자쿠의 등에 손을 둘렀다. 서로를 빈틈없이 끌어안고 있으면 추워지는 공기도 다시 따뜻해지는 것 같았다.
“아니, 조금 더 이러고 있는 게 좋겠어.”
를르슈는 솔직하게 제 마음을 말했다. 진심을 순순히 털어놓는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놀란 눈을 했다. 잠시 팔을 풀어 그의 얼굴을 살펴보았다. 얼굴이 붉어진 를르슈는 부끄러워하면서도 시선을 피하지 않았다. 스자쿠는 더 빨갛게 열이 오른 를르슈의 아랫 입술을 만지작거렸다. 만지는 손길에 조심스럽게 벌어지는 입술은 키스를 기다리는 것만 같았다.
조금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얼굴에 가까이 다가갔다. 를르슈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면 그 뜨거움이 전해졌다. 스자쿠가 더 다가가면 를르슈는 눈을 감았다. 완벽한 키스의 신호였다. 입술끼리 포개고 있으면 뜨거운 것 같으면서도 찬 공기에 식어버린 피부가 느껴졌다. 그것을 달래듯이 혀를 밀어넣고 느끼는 곳을 잔뜩 문지르고 있으면 서로 신음이 흘렀다.
두 사람은 서로 쥐고 있는 교복의 셔츠가 엉망으로 구겨질 때까지 키스를 했다. 몇 번씩이나 부벼댄 입술은 타액으로 번들거렸고, 를르슈의 얇은 입술은 스자쿠가 장난스레 깨문 탓에 부어오르기도 했었다. 아프잖아…. 를르슈는 입술을 닦으면서 중얼거렸다. 그치만, 맛있어 보였는걸. 스자쿠는 일말의 죄책감도 없이 그렇게 말했다.
“섹스하자, 를르슈.”
“여기서?”
“응.”
“아니, 난 안 할거야.”
“하고 싶잖아. 그리고 를르슈도 이미 섰고.”
스자쿠의 손길이 바지 사이를 만지는 것에 를르슈는 다리를 움츠렸다. 키스 중에 어느덧 밀리고 밀려서 를르슈의 몸은 테이블 옆이었다. 허벅지 높이에 오는 테이블에 기댄 채로, 다리 사이를 문질러진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몸을 붙잡고서 이를 악물었다.
“소리 내. 어차피 아무도 없어.”
“싫어…. 그리고 여기서 하고 싶지 않아. 춥단 말이야.”
“금방 따뜻하게 해줄게.”
“안 하면 되잖아!”
“하고 싶어.”
하자. 응?
스자쿠는 를르슈를 끌어안은 채로 재촉했다. 그의 매달리는 듯한 시선에 를르슈는 당해낼 수가 없었다.
젠장, 마음대로 해.
를르슈의 허락이 떨어지자 스자쿠는 기쁘게 웃으며 그의 뺨에 다시 키스를 했다. 를르슈는 제 바지 버클을 쉽게 풀어버리는 스자쿠의 능수능란함에 한숨을 내쉬었다.
테이블 짚고 서줄래? 다정하지만 막무가내인 스자쿠의 부탁에도 순순히 움직였다. 이렇게 된 이상 빨리 끝내고 집에 가고 싶어졌다. 를르슈가 딴 생각으로 가득찼을 때, 갑자기 가슴팍을 꼬집는 손길이 느껴졌다.
“뭐하는 거야?”
“집중해, 를르슈.”
“여기서 뭘 더 집중해.”
“다른 생각하지 말고, 나만 생각해.”
를르슈는 그의 제멋대로인 말에 테이블을 짚은 손을 주먹쥐었다. 테이블에는 아직 치우다 만 것들이 가득했고, 를르슈가 움직이게 되면 그것들은 흔들리는 테이블에 따라서 바닥으로 떨어질 지도 몰랐다. 그러면 치워야하는 일이 두 배로 늘어난다. 귀찮은 자식. 를르슈는 후우, 하고 뒤를 파고드는 손가락에 심호흡을 했다.
“또 다른 생각 하잖아.”
“내가, 무슨 생각을 하든…! 너도 네 맘대로 하면서.”
“자꾸 그러면 혼낼거야.”
“하! 웃기는 소리 좀.”
하지 마, 라는 말은 이어지지 못했다. 를르슈는 제 구멍 안으로 파고드는 스자쿠의 혀에 숨을 멈추었다. 그것은 를르슈가 제일 싫어하는 것이었다. 스자쿠는 어째서인지 몇 번이고 를르슈의 뒤를 맛보고 싶어했지만, 를르슈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행위였다. 엉덩이를 뒤로 내뺀 상태에서 스자쿠의 혀가 더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 느껴지자 를르슈는 수치심으로 얼굴이 달아오르다 못해 터질 것 같았다.
마음만 먹으면 스자쿠를 밀어내고 하지 말라고 할 수 있었지만, 혀가 안쪽으로 파고들면서 타액까지 뜨겁게 느껴지는 것에 허리가 덜덜 떨렸다. 테이블 위에 쌓아둔 피자박스가 바닥으로 떨어지는 소리가 들렸다. 를르슈가 테이블 깊숙한 곳으로 도망치려고 하는 것에 스자쿠는 그의 골반을 붙잡고 더 깊게 혀를 묻었다.
“하, 하지 마…! 그만, 해. 싫어….”
를르슈가 결국 우는 소리를 할 때가 되어서야 스자쿠는 그를 풀어주었다. 타액으로 범벅이 된 구멍은 손가락 세 개를 맛있게 삼켰다. 쉽게 풀린 구멍에 발기한 성기를 가져다대면 눈물로 번진 를르슈의 시야는 하얗게 질리고 말았다. 삽입의 첫 순간은 언제나 늘 버거웠다. 스자쿠의 손이 아랫배를 따뜻하게 감싸오는 것에 를르슈는 깊은 숨을 몰아쉬면서 몸의 긴장을 풀려고 애를 썼다.
“를르슈, 소름 돋았어.”
“추, 우니까, 그런 거야. 아, 아, 움직이지, 마! 으응, 아, 잠깐만, 잠깐만!”
“빨리 따뜻하게 해줄게.”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스자쿠의 허릿짓이 이어졌다. 골반을 붙잡고서 거침없이 박혀드는 스자쿠의 페니스에 를르슈는 테이블에 몸을 반쯤 기댄 채로 소리를 내질렀다. 더는 참을 수 있는 쾌감이 아니었다. 학교에서, 누군가 들어올지도 모르는 공간에서 섹스를 하고 있다. 그 긴장감과 더불어 품안의 스자쿠가 정신없이 저를 탐하고 있는 것에 대한 만족감에 를르슈의 페니스도 발기한 채로 쿠퍼액을 흘려댔다.
스자쿠의 성기 끝이 를르슈가 느끼는 지점을 콱콱 쳐올릴 때마다 를르슈는 테이블 위에 떨어지는 제 눈물을 바라보았다. 오늘따라 더 견디기가 버거웠다. 스자쿠의 것이 더 예민하게 느껴졌다. 스자쿠 또한 평소보다 더 흥분한 것 같았다. 를르슈는 제 팔을 붙잡고 무너진 제 몸을 일으켜 세우는 스자쿠에게 붙들려 끌려갔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얼굴을 제 쪽으로 향하게 만든 다음, 키스를 했다.
방금 전의 키스로 얼얼한 아랫 입술이 문질러지면서 아파왔다. 그렇지만 그를 밀어내지 않고 혀를 받아 타액을 삼켰다. 떨어지는 입술 사이로 스자쿠의 웃음이 흘렀다. 왜 웃는 거야. 를르슈의 시선이 그렇게 말하는 것에, 스자쿠는 대답해주었다.
“오늘 수업시간에, 나 쳐다본 거 맞구나 싶어서.”
“…왜 또 그 이야기야.”
“솔직히 말하면 더 기분 좋게 해줄게, 를르슈.”
“뭐?”
“눈이 아니라, 나 쳐다본 거잖아.”
엄청 야한 눈으로 쳐다봤어. 지금처럼. 를르슈는 스자쿠의 말에 어이가 없으면서도 부정할 수 없었다. 수업시간 중에 스자쿠를 쳐다본 것은 사실이었다. 눈이 내려서, 라는 것은 핑계였다. 스자쿠가 말하기 전까지도 눈이 내리는 것도 몰랐다. 그렇지만 엄청 야한 눈은 대체 뭐냔 말이다. 를르슈는 억울함에 진심을 토로했다.
“그냥, 기대했을 뿐이야.”
“무슨 기대?”
“사귀고 나서 처음 맞는 크리스마스 이브니까. 뭘 할까 싶어서. 아, 갑자기, 움직, 이지 마!”
를르슈는 순식간에 치받는 느낌에 몸이 크게 흔들렸다. 스자쿠의 것이 한층 커지면서 사정의 기미가 느껴졌다. 아, 너무 귀여워, 를르슈. 스자쿠는 테이블에 엎드린 를르슈의 몸 위를 제 무게로 눌렀다. 순식간에 호흡이 무거워진 를르슈는 등 위를 덮는 뜨거운 체온과, 동시에 뱃속에서 퍼지는 정액의 느낌에 저도 사정하고 말았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무게를 고스란히 느끼면서, 시선을 창문 밖으로 던졌다. 커튼도 치지 않고 섹스했구나. 멍청하게 그런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이 몰아치고 있는 바깥 풍경에, 어떻게 집으로 돌아갈지 생각을 하니 정신이 아득해졌다. 아, 너무 좋았어. 버릇 될지도. 스자쿠의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으면서 를르슈는 눈을 감아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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