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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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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트위터에서 썰풀던거

천천히 이어볼 거라서 1 붙여봄 

 

 

 

 


 

그 남자는 좋은 상관이었다. 상관이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사람이 좋았다.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영정사진 속의 그를 바라보았다. 장례식장 구석에는 그의 아내가 앉아있었다. 사람들이 오가는 소리에 미미하게 반응하면서, 가끔 고개를 들어 인사를 하는 것이 고작인 것 같았다. 스자쿠는 장례식장을 나가기 전에 아내 쪽을 힐끔 쳐다보았다. 그러다가 시선이 맞았다. 꾹 다물려있던 입술이 벌어지며 그는 스자쿠의 이름을 불렀다.

 

“스자쿠 씨.”

 

슬픔에 잠겨 있지만 여전히 부드러운 목소리로 스자쿠를 불렀다. 스자쿠는 나가려던 발걸음을 멈추고 아내 쪽으로 돌아섰다. 아내—그는 를르슈 람페르지로, 상관이 살아있던 시절에 자주 마주치던 얼굴이었다. 워낙에 발이 넓었던 사람이었기 때문에 오가는 사람도 많은 장례식장에서 를르슈가 스자쿠를 알아본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스자쿠는 옷차림을 고치면서 를르슈의 앞에 섰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모습에 손을 내밀었다. 를르슈는 저에게 내밀어진 손에 자리에서 일어나며 악수를 했다. 장례식장에서 으레 하는 악수였다. 특별할 것도 없는 그 손의 맞춤에 를르슈는 울음을 터뜨렸다.

갑자기 손등 위로 떨어지는 눈물의 온도에, 스자쿠는 당황하면서도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고개를 무너뜨린 를르슈는 스자쿠의 어깨에 기댈 것처럼 다가왔다. 그가 더 무너지기 전에 붙잡은 것은 스자쿠였다. 힘드시겠지만…. 스자쿠의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를르슈에게 닿지도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를르슈는 알아들었는지 다시 몸을 꼿꼿이 세우고 눈물을 닦아냈다.

눈물을 닦는 왼손에는 반지가 끼워져있었다. 스자쿠는 다른 사람을 맞이하는 를르슈의 모습을 보면서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뗐다. 머릿속에서는 울고 있는 를르슈와, 제 품에 무너지려고 했던 그 체온, 그리고 반짝이던 반지가 잊혀지지 않았다. 

 

*

 

죽은 사람의 짐을 가져다주는 것만큼 싫은 일이 또 있을까. 그것도 죽은 지 반 년이나 지난 시점에서.

살아남아있는 사람에게는 트라우마를 안겨줄 지도 모르는 그런 만남을 만드는 자리를, 스자쿠는 기꺼이 가기로 했다. 상관의 이름과 를르슈 람페르지의 이름이 반듯이 적혀있는 문패 앞에서 스자쿠는 잠시 심호흡을 했다.

벨을 누르고 나면 누구냐는 말이 돌아왔다. 쿠루루기 스자쿠입니다. 스자쿠의 대답에 안쪽에서는 한동안 말이 없었다. 끊임없는 침묵 끝에서 스자쿠가 문을 다시 두들겼을 때, 안쪽에서 한참 잠긴 목소리로 대답이 돌아왔다. 

—열고 들어오세요. 

문을 열고 들어가면, 장례식장에서 보던 것보다 더 마른 얼굴의 를르슈가 저를 반겨주고 있었다. 스자쿠의 눈은 를르슈의 왼손으로 향했다. 아직도 반지를 끼고 있었다. 벌써 반 년이나 지났음에도, 그는 아직도 남편을 못 잊는 것 같았다. 워낙에 사이가 좋은 부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스자쿠는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려고 했다.

 

“정리하다가 짐이 나와서요. 버리기는 좀 그렇고.”

“가져다줘서 고마워요.”

“…네.”

“차라도 한 잔 하고 갈래요? 모처럼, 만난 건데.”

 

그의 권유에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성은 빨리 이 집에서 나가라고 하고 있음에도, 몸은 그의 곁에 있고 싶었다.

차를 내오겠다는 를르슈의 뒷모습을 시선으로 좇으면서, 스자쿠는 집의 내부를 둘러보았다. 테이블 위에는 아직도 두 사람의 사진이 남아있었고, 곳곳에는 그가 쓰던 물건들이 놓여져 있었다. 마치 금방이라도 돌아올 사람 같은 흔적이었다. 정말 사랑했구나. 스자쿠는 속으로 그런 생각을 했다. 이전에도 이 집에 집들이를 하러 왔었을 때, 보았던 물건들이 변하지 않고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것에 놀라기도 했었다.

그 부부를 처음 보았을 때 가장 놀란 것은, 초커를 하고 있는 를르슈의 모습이었다. 를르슈는 오메가니까, 각인은 더 천천히 생각해보려고. 상관은 그렇게 말했었다. 군인인 만큼 언제 목숨을 잃을 지 모르는 것이 운명이었다. 그러나 짝을 잃은 오메가가 명을 유달리 하는 것을 생각하면 상관은 각인은 늘 뒤로 미루는 것이 맞다고 말했다. 그리고 자신의 경우에도, 그 말을 지켰다.

그래서 를르슈가 제정신으로 살아있는 것일지도 모른다. 스자쿠는 차를 내온 를르슈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시선은 왼손에서 다시 목으로, 목에서 를르슈의 당황하는 눈으로 향했다.

 

“아, 죄송합니다. 그렇게 보려는 건 아니었는데.”

“아니에요, 신기…할 만하죠. 결혼까지 했는데 각인은 안 했다는 게.”

“아뇨. 이해합니다.”

“그런가요…?”

 

를르슈는 찻잔을 들이밀면서 허탈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는 각인을 안 해서, 괜히 살아있다는 생각이 드는데…. 스자쿠 씨는 이해하나요?”

 

그 말은 마치 그런 사실로 여러 번 상처를 받았던 사람인 것처럼 느껴졌다. 스자쿠는 를르슈가 장례식장에서 있었던 모습을 떠올렸다. 사람들과 눈을 맞추지도 못한 채로 죄인처럼 구석에만 앉아있던 를르슈.

아마 이상한 말들로 매도당했을 것이다. 알파와 오메가면서, 짝인 알파가 죽었는데 살아있는 오메가라니, 둘은 운명이 아니었나 보네, 같은 이야기들을. 그런 게 아닌데.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무어라 말을 건네고 싶었지만 섣불리 말할 수가 없었다. 아무런 말도 할 수 없는 스자쿠를 보더니 를르슈는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는 듯이 웃었다.

 

“괜찮아요. 이건 저와 그 사람의 선택이었으니까. 남들이 뭐라고 해도….”

“…정말 괜찮으신가요?”

“그럼요.”

“하나도 안 괜찮아보이는데.”

 

스자쿠는 를르슈의 눈과 마주하며 말했다. 

 

“그때처럼, 또 울어도 괜찮아요.”

 

스자쿠는 를르슈의 비어있는 오른손을 잡았다. 텅 비어있던 손 안에 들어차는 체온에 를르슈는 당황스러워 하면서도, 손을 빼내진 않았다. 스자쿠는 저보다 한참 낮은 체온이지만, 그래도 뛰고 있는 그의 맥박을 느끼면서 힘을 주었다.

따뜻하게 감싸오는 손에 를르슈는 울지 않으려고 했던 마음이 쉽게 무너지는 것을 느꼈다. 울면 안 되는데, 이제 괜찮아져야하는데. 그런 생각들이 괜찮다고 하는 스자쿠 앞에서 모두 무너져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