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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기는 놈 (上)

DOZI 2021.02.17 23:26 read.542 /

“어차피 를르슈는 처녀 아니지?”

 

그것은 를르슈 인생에서 처음 사귀게 된 연인으로부터, 너무나 당연하다는 듯이 물어오는 질문이었다. 처음엔 자기가 뭘 들었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처녀가 아니라니? 남자한테 처녀라는 말을 쓸 수가 있던건가. 조금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면 그는 난감한 표정으로 를르슈를 돌아보았다.

 

“그러니까… 음, 내가 첫 남자는 아니잖아?”

 

첫 남자? 를르슈는 얼굴을 굳힌채로 그가 하려는 말을 단번에 이해했다.

그러나 이해한다고 해서 무슨 말로 대답해주어야하는지, 그것을 알 수가 없었다. 를르슈에게 그는 처음 사귀는 애인이었고, 남자친구였으며, 첫 남자였다. 하지만 그런 사실을 생각조차 하지 못하고 있는 것처럼 말하고 있었다.

그의 안에서 를르슈는 대체 어떤 사람이길래. 를르슈는 얼어붙은 머리로는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을 처음 느꼈다.

 

“스자쿠는, 그렇게 생각해?”

“아니야?”

 

를르슈에게 다시 한 번 되물어오는 그 질문은 너무 확신에 차있었다. 를르슈가 아니라고 부정했다가는 거짓말이라고 몰아갈 것만 같았다. 를르슈는 그 말에 입을 다물고서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무슨 말을 꺼내야할지 몰랐다.

이런 경우는 처음이다. 아니, 연애 자체가 처음인걸. 그렇지만 이건 아니지 않을까. 이걸 뭐라고 말해야 되는걸까. 를르슈가 떨리는 손끝을 겨우 주먹으로 말아쥐며 머릿속을 정리하는동안 남자친구—스자쿠는 더는 말하지 않겠다는 듯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갑자기 일어나는 스자쿠를 당황한 눈으로 쳐다보았다. 스자쿠는 어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달래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면서 말했다.

 

“잠깐 화장실 다녀올게. 를르슈는 더 마시고 싶은 거 있으면 시켜도 돼.”

“…아아, 응.”

 

자리를 비우는 스자쿠 덕분에 를르슈는 시끌벅적한 술집에서 혼자 자리를 지키게 되었다. 주변을 둘러보면 커플끼리 앉아서 서로 정담을 나누는 모습이 다정해보였다. 저런 분위기를 꿈꾸기도 했었다. 

사귀기 전의 스자쿠는 늘 다정하고 상냥하고, 때로는 고집스러운 모습마저도 멋있어보였으니까. 그래서 더 좋아하게 되었다. 혼자서 하고 말 짝사랑이라고 생각해서 용기를 내서 고백한 것도 거의 객기에 가까웠다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스자쿠는 받아주었고, 그 특유의 다정함은 여전했다. 그의 다정함은 어딘가 거리가 느껴져서, 어느 순간부터는 그게 외로워졌다.

그래도 헤어지는 건 싫었다. 모처럼 그의 옆에 가장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기회를 얻었는데 놓치긴 싫었다. 그래서 가까워졌던가. 아니, 더 멀어진 기분이다.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에서도 이상한 이야기나 나누고 있고. 

 

“다녀 왔어, 를르슈.”

“아, 그래. 그럼 나갈까?”

“다 마셨어?”

“응. 적당히 마셨고.”

“…그럼 쉬었다 갈래?”

“쉬었다 간다고?”

 

오늘따라 스자쿠와의 대화가 좀처럼 이어지지 못한다. 를르슈는 답답한 심정에 그의 말을 되따라했다. 스자쿠는 창문 밖으로 보이는 불빛을 가리켰다. 진한 빨강과 분홍빛의 네온사인이 번쩍거리는 거리였다. 그곳이 어떤 거리인지는 를르슈도 지식으로나마 알고 있었다.

 

“저쪽에서 를르슈랑 쉬었다 가고 싶어.”

“……저쪽은.”

“응.”

“…….”

 

스자쿠는 남아있던 맥주를 다 들이켰다. 그의 목젖이 움직이며 맥주를 마시는 것을 쳐다보던 를르슈는 테이블 위로 아무렇게나 시선을 내던졌다.

나랑 섹스하고 싶은거야? 그럼 그렇다고 말을 하지. 근데 왜 내가 처음이 아니라고 말했어? 왜? 나는, 정말로 처음인데. 네가 처음인데.

그런 말들이 입안에서 맴돌다가 쓰게 녹아내렸다.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두운 전등 아래에서는 하얗게 질리던, 붉게 물들던 얼굴의 낯빛은 중요하지 않을 것이다. 숙여진 고개 때문에 그림자진 시선이 어딜 향하고 있는지 알 수도 없을 것이다.

스자쿠에게 아무것도 보이고 싶지 않았다. 이 기분으로 섹스는 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 이제 갈까.”

 

하지만 그렇다고 나가자고 이끄는 스자쿠의 팔을 내칠 수도 없었다. 그저 그에게서 더 멀어지지 않기 위해서 필사적으로 따라가는 것이 고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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