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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륜의 스자루루 2

DOZI 2021.03.18 22:28 read.455 /

모브루루 주의

 

 

 

 

를르슈 람페르지가 자신이 동성애자라는 것을 깨닫게 된 것은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였다.

어린 시절부터 를르슈의 어머니는 일하는 것을 좋아했기에 집을 비우는 경우가 잦았다. 어머니의 그런 성향은 를르슈를 또래보다 더 조숙하게 만들었다. 어른스러운 를르슈는 어른들에게는 신뢰를 주었을지언정, 같은 또래 아이들에게는 재미없는 아이로 통했다. 학교에서 친구라고 부를 녀석도 없었다. 를르슈는 대놓고 괴롭힘은 당하지 않았지만, 그렇다고 모두가 끼워주는 그런 아이도 아닌 애매한 위치에 있었다.

외롭지는 않았다. 여동생 나나리를 돌보고 있으면 외로움 같은 것은 금방 잊혀졌다. 학교에서의 지루한 시간을 보내고 나서, 나나리를 데리러 유치원에 갔다가 남은 하루를 그녀와 노는 것에 시간을 보내면 됐다. 그건 모두가 만족했다. 를르슈도, 나나리도, 어머니도. 를르슈의 작은 세계가 충족되는 방식이었다.

그러던 어느날의 일이었다. 를르슈에게 같은 반 남자애 하나가 말을 붙여왔다.

 

“람페르지는 맨날 혼자 집에 가지?”

“응.”

“선생님이 그러는데! 요새 위험해서 혼자 다니면 안된대!”

“나 혼자 아니야. 동생도 있어.”

“…도, 동생은 더 어리니까 위험하잖아! 내가 같이 가줄게!”

 

그 녀석은 운동을 잘해서 여자애들한테 제법 인기가 있었고,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은근히 동경의 대상이었다. 그런 녀석이 를르슈에게 일부러 말을 붙여서 같이 가자고 한 것에는 무슨 이유가 있었을까. 를르슈는 떨떠름하지만 그의 호의를 ‘귀찮아’라는 말로 넘길 수 없다는 것을, 무의식 중에 알고 있었다. 나나리를 데리러 유치원까지 가는 길에 녀석은 를르슈가 귀찮다고 느낄 정도로 많은 말을 걸어왔다.

좋아하는 과목은 무엇이고, 좋아하는 음식이라던가, 나나리와 놀 때는 어떻게 노냐는 등, 혼자서 집에 가는 건 심심하지 않을까, 같은 이야기를 혼자서 떠들어댔다. 를르슈가 하나 마나한 대답을 하고 있어도 녀석은 잘도 떠들었다. 어색한 침묵보다는 나았다.

녀석은 나나리에게도 잘해주었다. 처음 보는 오빠의 친구에 당황한 나나리에게 상냥하게 눈을 맞추고 자기 소개를 했다. 를르슈를 친구라고 불러주었다. 그 말이 어딘가 간지러워서, 를르슈는 나나리와 잡은 손에 힘을 주며 웃음이 새어나갈 것 같은 입술을 꾹 깨물었다.

그렇게 를르슈의 세계는 그 녀석으로 인해 넓어졌다. 나나리와 노는 것 뿐만 아니라, 또래 아이들과 어울리면서 놀게 되었다. 를르슈의 친구들은 늘어났지만 그래도 중심은 그 녀석이었다. 다른 애들 여럿과 노는 것보다 그 녀석과 단둘이서 노는 것이 더 재미있었다. 그 녀석이 부르면 를르슈는 늘 언제든 그를 따라갔다.

처음에는 첫 친구니까, 라는 마음으로 그를 쫓아다녔지만 나중에는 스스로 의문을 가지게 되었다. 왜? 어째서? 너에게만 유독 너그럽고 특이하게 구는 이유가 뭘까?

 

“너를 좋아해, 를르슈.”

 

그 녀석은 를르슈에게 좋아한다고 말했다. 무슨 의미로 좋아하냐고 물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우리는 내일이면 졸업식이고, 를르슈와 그 녀석은 다른 학군으로 진학하게 되었다. 앞으로 만날 일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 것은 그 녀석도 마찬가지였던 모양이다.

그래서 그렇게 멋없는 고백을 툭, 하고 꺼내게 된 것이다. 를르슈는 그제서야 제가 가지고 있던 마음을 깨달았다. 나도 너를 좋아하는구나. 그렇게 말을 되돌려주면 되었다.

 

“대답은 안 해도 돼. 그냥 이제 못 만나니까 꼭 말하고 싶었어.”

“…….”

“그럼 안녕.”

 

그리고 졸업식날, 를르슈는 그렇게 친했던 녀석과 사진 한 장 남기지 않은 채로 학교를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는 아무렇지 않은 척 했지만, 집에 들어가자마자 를르슈는 방문을 잠그고 소리 없이 울었다. 어머니는 바빠서 오지 않았고, 아래층에 있는 나나리는 아무런 사정도 몰랐다.

를르슈의 첫사랑은 그렇게 끝이 났다. 그는 를르슈에게 좋아한다고 말했지만 를르슈를 원하지 않았고, 를르슈는 오갈데 없는 마음을 붙잡고서 우는 것이 고작이었다.

를르슈는 사랑은 또 다른 사랑으로 잊는 법이라는 말을 믿었다. 그래서 그 다음 사랑을 찾아 헤맸다. 중학교에 가서도 그 녀석과 닮은 사람을 찾았고, 또 친해지며, 마음을 품기도 하면서, 그 녀석과 비교하기도 했다. 첫사랑은 강렬했고, 그래서 를르슈는 중학교 생활동안 그 녀석의 그늘에서 벗어나기 위해 애를 썼다.

 

“람페르지, 너 남자 좋아하지?”

 

담임이 하는 말에, 를르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모범적인 학생이라는 이유로 를르슈는 학급위원으로 남아서 일을 하고 있었던 때였다. 담임은 이제 막 부임한 신입교사로, 운이 나쁘게 담임이 되었지만 꽤나 잘생긴 그는 수완이 좋았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인기도 높았다. 를르슈로서는 아무래도 상관 없을 타입의 인간이었지만, 그는 를르슈를 그렇게 여기지 않은 모양이었다.

 

“안 좋아하는데요.”

“거짓말. 맨날 남자애들 쳐다보고 있잖아. 특히 운동부.”

“…….”

“맨날 운동부 남자애들한테 깔리는 상상 같은 걸로 자위하니?”

“……선생님.”

“나도 운동 꽤 하는데.”

 

를르슈의 손을 잡아오며 담임은 낮은 목소리로 웃었다. 그의 손은 손을 만지는 것에서 멈추지 않고 팔뚝으로 올라갔고, 얼굴을 쓸어내리면서 를르슈의 입술에 멈추었다.

 

“키스 해봤어?”

“…….”

“첫 키스야? 귀엽네.”

 

그리고 그는 입을 맞추었다. 를르슈는 반항하지 않았다.

를르슈가 반항하지 않았던 이유는 단순했다. 키스를 해보지 않았기 때문에 키스에 대해서 궁금했다. 그리고 담임이 했던 말들 중에서 틀린 것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를르슈는 자위를 할 때면 운동부 남자애한테 깔리는 상상을 하면서 자위를 했고, 가슴을 만지거나 애널을 풀기도 했었다. 볼펜으로 뒤를 들쑤시기도 하는 날도 있었다. 키스를 하고 나면 섹스도 해보고 싶어졌다.

를르슈에게 키스를 했던 담임도 그에게 섹스까지 가르쳤다. 를르슈는 주말마다 친구를 만난다면서 담임의 집에 찾아가 섹스를 했다. 둘은 사귀지 않았고, 사랑하지 않았다. 그저 섹스를 할 뿐이었다. 를르슈는 제 몸을 덮치는 담임의 얼굴을 마음대로 바꿔서 상상했다. 첫사랑인 그 녀석일 때도 있었다.

 

“나 말고 다른 사람이랑도 해보고 싶지 않아?”

 

담임은 짓궃은 미소를 띄며 그렇게 말했다.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사람과의 섹스도 궁금했다. 그 물음이 있었던 다음 주에, 를르슈는 처음으로 호텔에 갔다. 처음 보는 남자와 섹스를 했다. 얘 깨끗해, 병도 없고. 섹스도 엄청 밝혀. 담임은 그 남자에게 를르슈를 그렇게 소개했다.

처음 보는 남자와의 섹스에서 를르슈는 돈을 받았다. 팁이라고 말하면서, 다음에 또 만나자고 그랬다. 를르슈는 주머니에 돈을 마구잡이로 밀어넣으면서 거리로 뛰쳐나왔다.

그 다음부터 담임이랑 섹스하지 않았다. 하려면 돈을 내라고 말하자 담임은 걸레가 다 되었다면서 를르슈를 상대하지 않았다. 물론 를르슈가 돈을 내라고 한 것은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었지만, 걸레라는 말을 들어버리고 나니 그를 더 이상 상종하고 싶지도 않아졌다.

를르슈는 처음 보았던 그 남자, 그리고 다른 남자, 또 다른 남자… 아무튼 남자들을 만나면서 다리를 벌리고 마구잡이로 섹스를 했다. 그들은 를르슈의 예쁘장한 얼굴과 노골적으로 섹스를 원하는 몸을 좋아했다. 그들이 를르슈를 원할 때마다, 를르슈는 어딘가가 충족되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래봤자 걸레지. 그래서 충족이 되다가도 어느날은 마음 속이 텅 빈 것처럼 허해지기도 했었다. 

 

걸레.

 

어머니는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겉도는 를르슈를 보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나나리를 돌보는 게 힘들었으면 말하지 그랬어? 그렇게 말해놓고서 나나리를 브리타니아의 기숙학교로 보내버렸다. 를르슈는 그것에 대해 반대했지만, ‘정신 놓고 사는 주제에’ 남을 챙길 여유가 있냐는 어머니의 말에 반박할 수 없었다.

그 무렵에 어머니의 일은 다른 곳에서 새롭게 시작해야했고, 를르슈는 고등학생이 되어야만 했다. 새로운 곳에서의 생활이 시작되었다. 를르슈를 걸레라고 부르던 담임으로부터 벗어나고, 를르슈를 걸레처럼 대했던 남자들의 거리에서 벗어났다.

어머니는 여전히 변한 것이 없었고, 를르슈는 모든 것이 다 변한 새로운 환경에서의 시작을 해야만 했다.

 

“람페르지 군!”

“안녕하세요, 쿠루루기 씨. 를르슈라고 부르셔도 된다니까요.”

“아, 맞아. 그랬죠. 를르슈, 이제 학교에서 오는 건가요?”

“네. 장도 보고 왔어요.”

 

를르슈가 장바구니를 들어올리며 말하자, 그녀는 놀란 얼굴로 웃었다. 정말 나보다 살림 잘하는 것 같다니까. 그녀의 칭찬에 를르슈는 싱긋 웃어보였다.

옆집의 쿠루루기는 그 ‘쿠루루기’ 집안의 사람이었다. 남편 쪽은 한 번도 본 적 없었지만, 아내를 보고 있으면 그 가정이 얼마나 잘 만들어졌는지, 완벽한지 알 수 있었다. 언제든 존댓말을 하며, 지극정성으로 내조를 하는 쿠루루기 부인의 모습에 를르슈는 가끔 질리기도 했다. 그녀는 뭘 시켜도 성실할 것 같았다. 성실한 이웃, 성실한 아내, 성실한 어머니.

그런 그녀에게 적당히 인사를 하고, 적당한 말로 시간을 때우며, 를르슈 역시 성실한 이웃의 모습으로 남으려고 애를 썼다. 적어도, 그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랬다.

 

그저 우연의 연속이었을 뿐이었다. 그날은 우연히 옆집의 부인이 자리를 비운 날이었고, 를르슈가 동네 슈퍼에서 하는 세일에 지각을 할 정도로 늦게까지 학생회 일을 하다 온 날이었다. 빈 손으로 돌아가는 날이 어색해서 집 앞 거리를 서성거리다가 들어가던 때였다.

 

“아, 안녕하세요.”

 

를르슈가 인사를 하자 남자는 를르슈를 돌아보았다. 인상을 어려보이게 만드는 둥글고 큰 눈동자가 경계하듯 조금 휘둥그레진 채로 를르슈를 바라보았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정작 인사를 나누고 나면 를르슈를 바라보는 눈빛이 조금 누그러졌다. 대충 를르슈가 누구인지 알 것 같다는 시선이었다. 를르슈는 성실한 옆집 학생으로써의 모습으로 대답했다.

 

“말씀 편하게 하세요. 쿠루루기 씨, 맞으시죠? 옆집에 사는 람페르지라고 합니다.”

“아…. 그래, 이야기 많이 들었어. 네가 를르슈구나.”

“제 이야기요?”

“좀 이런 저런 이야기를… 아내가 많이 신경쓰고 있어서. 만나고 싶었어.”

“아, 저도요. 쿠루루기 씨 만나보고 싶었어요. 어떤 분이실지 궁금했는데, 이렇게 만나게 되네요.”

 

생긋 웃어주고 나면 남자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저도 그렇다고 대답했다. 를르슈는 더 이상 길게 말하지 않고 들어가겠다고 말했다. 서로 갈 길 가자는 뉘앙스의 말에 남자도 고개를 끄덕였다. 를르슈는 제 뒤를 집요하게 따라오는 시선에 괜히 웃음이 났다.

어떤 사람일까 했더니, 저런 사람이었구나. 옆집 남편. 성실한 부인과는 딴판이네.

를르슈는 장바구니에 들어있던 것들을 부엌에서 정리하면서 그 남편의 이름을 떠올렸다. 옆집의 남편 이름을 알 수 있는 이유는, 그 부인이 성실하게, 존경을 담아 그를 ‘스자쿠 씨’라고 불렀기 때문이었다.

 

쿠루루기 스자쿠.

를르슈는 혼자 있을 때면 그 남편을 떠올렸다. 쿠루루기 스자쿠와는 만날 수 있는 날은 드물었고, 만나더라도 아주 잠깐이었지만 그와의 만남은 꽤 영향이 컸다. 어느 정도냐면, 를르슈의 자위 반찬은 어느 순간부터 쿠루루기 스자쿠가 되었다.

그의 손이 어떨지, 체온은 얼마나 뜨거울지, 페니스는 어떻게 생겼는지. 그런 것을 상상하면서 를르슈는 다리 사이를 적셨다. 섹스를 오랫동안 하지 않은 몸은 체온에 굶주려 있었다. 를르슈는 ‘걸레’ 같은 방식으로라도 이 열을 식혀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지 않으면 쿠루루기 스자쿠에게 계속 자신이 매달릴 것이라는 것을 어렴풋이 깨닫고 있었다.

 

그러기 위해서 학교를 쉬고, 거리에 나가려는 날이었다.

 

“어라, 를르슈? 학교 안 갔어?”

 

운이 나쁘게 그와 마주치고 만 것이다. 지금의 를르슈는 어디를 보아도 아픈 얼굴이 아니었기 때문에 꾀병을 부릴 수도 없었다. 쿠루루기 스자쿠 역시 그것을 눈치채고서 를르슈를 혼내듯 쳐다보았다. 입밖으로 나온 말은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정도로 뻔뻔한 변명이었다.

 

“출석 일수는 잘 세고 있으니까 유급은 걱정 없는데….”

“그런 변명을 하라는 게 아니잖아. 왜 학교 안 갔어? 누가 괴롭혀?”

“그럴 리가요.”

“그럼 왜 안 갔어?”

 

더 이상 대답하지 않자, 쿠루루기 스자쿠는 한숨을 내쉬면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는 더는 캐묻지 않겠다고 말했으면서, 또 다른 오류를 범하기도 했고, 그것을 순순히 인정했다. 그는 를르슈에게 했던 말을 모두 지켰다.

그래서 를르슈도 그가 하는 말을 지켜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섹스는 글렀군. 를르슈가 그런 생각을 하며 교복으로 갈아입고 나오자, 쿠루루기 스자쿠는 놀라워했다. 뭐야, 자기가 학교에 가라고 해놓고서는. 를르슈가 학교에 가겠다고 하자, 쿠루루기 스자쿠는 나직하게 말했다.

 

“어른 말이라고 들어주는구나.”

“글쎼요, 어른 말이라면 다 들어줄 정도로 착하진 않아서요.”

 

그리고 웃어주었다. 를르슈의 말대답에 화가 나지 않았을까 했지만, 쿠루루기 스자쿠는 황당하다는 듯이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의 웃음소리가 기분 좋아서 를르슈는 발걸음을 가볍게 하고 학교로 향했다. 다녀오라는 말에, 다녀오겠다는 말이 절로 나왔다.

쿠루루기 스자쿠와 함께 있을 때에는, 나름 성실한 이웃의 가면을 쓰고 있긴 했지만 를르슈는 제 본성을 억누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혼자 있는 시간에, 혼자서 자신을 달래는 것은 한계가 있었다. 누군가가 저를 원해줬으면 했다. 돈으로 저를 묶어두길 바라며, 집착해주는 것도 나쁘지 않았다. 그러다가 질나쁜 녀석들에게 걸리면 골치가 아플 테지만, 그래도 누구에게도 필요가 없는 사람이 되는 것보다 낫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하기도 했었다. 

사람을 고르고 골라서 어떤 남자를 만나기로 했다. 사진도 주고 받았다. 그는 를르슈의 얼굴이 마음에 든다고 적극적으로 대쉬를 해왔다. 하룻밤이라도 좋으니 만나달라는 말에 를르슈는 약속을 잡았다.

술집이 번화한 거리에서 러브 호텔은 늘 가까이에 있었다. 혹시 모르니 번화가 쪽에서 만난 다음, 호텔로 가기로 했다. 남자는 약속시간대로 왔고, 약속한 만큼의 돈을 건넸다. 를르슈는 제 어깨에 둘러지는 남자의 손을 내치지 않고서 거리의 끝까지 걸었다. 남자는 어딘가 쿠루루기 스자쿠를 닮았다. 나이도 비슷했고, 동안인 얼굴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섹스할 때 상상하느라 정신이 다른 데 팔리는 일은 없을 것 같아서 조금 기대가 되었다.

 

그때 쿠루루기 스자쿠가 등장했다. 

왜 그랬냐고 를르슈를 다그쳤다. 그래서 를르슈는 그의 품에 안겨서 외롭다고 울었다. 솔직하게 말했다. 외로워서 그랬다고. 아무도 저를 원하지 않는 것이 너무 외로웠다고. 그렇게나마 저를 안아주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를르슈는 쿠루루기 스자쿠를 끌어안았다.

그는 를르슈의 집까지 바래다주었다. 이제 떠나겠지. 를르슈는 혼자 남아있을 거실이 평소보다 더 넓게 느껴지는 것에 씁쓸해졌다. 뒤를 돌아보는 순간, 저를 끌어안으며 입술을 덮쳐오는 체온이 아니었다면 를르슈는 외로웠을 것이다.

하지만 쿠루루기 스자쿠는 그가 홀로 있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를르슈의 옷을 벗기고, 그의 몸을 어루만지고, 물고 핥고 깨물면서 를르슈를 안아주었다. 그에게서 망설임 같은 것은 느껴지지 않았다. 를르슈도 제 망상과 현실이 뒤섞이는 것을 느끼며, 쿠루루기 스자쿠에게 제 몸을 만지게 해주었다. 그리고 저도 마음껏 쿠루루기 스자쿠를 만졌다. 

쿠루루기 스자쿠와의 섹스는 어딘가가 어긋나 있으면서도, 꽉 맞물린 느낌에 숨이 막힐 것 같았다. 너무 좋아서 울 것 같았고, 너무 벅차서 숨이 멎을 것 같았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이 상황의 모든 것이 위험하다는 경보를 울리고 있는 것 같았다. 바로 옆집에 있는 그의 아내가 떠올랐다. 

 

원래 그 여자의 것인데, 내가 안고 있어도 되는가?

그 완벽한 가정에 내가 흠집을 내고 있는 게 아닐까? 

 

를르슈는 잘못했다고 울었다. 그러자 쿠루루기 스자쿠가 다정하게 안아주었다. 섹스는 격렬하고 이성과 사고는 마비가 되었다. 쿠루루기 스자쿠는 울고 있는 를르슈가 지쳐서 잠들 때까지 그의 얼굴을 들여다보며 살펴주었다. 그 상냥한 손에서 를르슈는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나서도 관계는 계속 이어졌다. 쿠루루기 스자쿠는 를르슈와 무조건 섹스를 하는 것은 아니었다. 모든 남자들이 를르슈의 몸을 탐했던 것과 다르게, 그는 를르슈와의 시간을 즐기는 것 같았다. 정말로 그 외로움을 달래주는 것처럼 굴었다.

그렇게 모진 말로 가정하는 이유는, 언젠가 홀로 남겨질 자신이 너무 비참해져서 를르슈는 그의 다정함을 비꼬아서 생각했다. 

가만히 서로를 끌어안고 있는 시간도, 몸을 맞대며 체온을 즐기는 것도, 키스와 섹스로 가끔 몸을 섞는 것도, 모두 다 동정과 연민에서 오는 것이라고 여겼다. 그런 연민의 시선을 느끼면서 를르슈는 그에게 물었다.

 

“왜요?”

“를르슈는 이제 안 외로워?”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제 그는 확실하게 이 ‘연민’을 그만두고 싶은 것일까?

를르슈는 때가 왔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최대한 아무렇지도 않은 척, 그의 마음에 꽂힐 비수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으로 말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그것이 고작이었다. 

 

“외로워요.”

“왜?”

“결국에 쿠루루기 씨도 저 버리고 떠날 거니까요. 어차피 끝날 거라는 걸 알고 있으면, 너무 외로워요. 같이 있는 것도 외로워요.”

 

하지만 입밖으로 내고 나면 금세 외로움이 찾아들었다. 이제 버려지고 나면 누구에게 이 외로움을 달래달라고 말해야하는 걸까. 걸레처럼 굴던 그 생활로 돌아가는 걸까. 를르슈는 그것들이 겁이 나서 금방 진실을 토해냈다.

 

“안 되겠죠….”

“뭐가?”

“쿠루루기 씨랑, 같이 있고 싶은데. 계속 같이 있고 싶어요. 내가 좀 더 일찍 만났으면, 더 어른이었으면….”

“를르슈.”

 

눈물이 터졌고, 줄줄 흐르는 그것들을 쿠루루기 스자쿠가 빨아들이고 닦아냈다. 그의 품에서 울음이 멎을 때까지 숨을 고르고 있으면 키스가 쏟아졌다. 를르슈는 훌쩍거리면서 말했다. 

 

“이제 그만두고 싶으니까 그런 걸 물어본 거 잖아요.”

“아냐, 를르슈.”

“그럼 왜 물어봐요?”

“…확실하게 하고 싶어서.”

“확실하게.”

“덕분에 확실해졌어.”

 

무엇이 확실해졌다는 것일까. 이제 나를 버리는 게?

겁에 질린 를르슈에게 쿠루루기 스자쿠가 눈을 맞추며 말했다. 

 

“앞으로는 스자쿠라고 불러. 나를 스자쿠라고 불러줘.”

 

그렇게 그는 를르슈의 외로움이 별 것도 아닌 것처럼 해결해버렸다. 그저 스자쿠가 되어주는 것으로, 를르슈에게 사랑을 약속해주었다. 를르슈는 그의 목을 끌어안으면서 스자쿠, 하고 이름을 불러보았다.

그 이름은 익숙하게 혀에 감겨왔다. 사랑이 드디어 를르슈를 골라준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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