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르슈가 일을 마치고 돌아왔을 때, 메이드들이 저마다 한 송이의 장미꽃을 들고서 돌아다니는 것을 보게 되었다. 수줍은 듯이 얼굴을 붉히는 사람도 있었고, 유쾌하게 웃는 사람도 있었다. 가지각색의 반응으로 장미꽃을 들고서 좋아하는 메이드들의 모습에 를르슈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던 중, 를르슈가 돌아온 것을 확인한 메이드 중 한 명이 그에게 고했다.
“아, 를르슈 전하! 지금 나이트 오브 세븐께서 기다리고 계세요.”
“…스자쿠가?”
“네, 응접실에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알겠다. 곧 가지.”
한 송이의 장미꽃들이 어디서 나왔는지는 금방 알아차릴 수 있었다. 를르슈는 화사한 붉은 색의 장미꽃 한 송이를 들고 있는 스자쿠와 마주했다.
“전하, 오셨군요.”
“왔는데… 그 장미는 뭐지?”
“오늘은 로즈데이라서요, 전하께 장미를 드리고 싶었습니다.”
“로즈데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얼굴로 쳐다보고 있으면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장미를 내밀 뿐이었다. 를르슈는 떨더름한 표정으로 그것을 받았다. 이걸 어쩌라고? 로즈데이라는 게 뭐지?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문으로 스자쿠를 장미와 번갈아 쳐다보면 스자쿠가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에 괜히 바보 취급을 당하는 것 같아,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렸다.
“세간에서는 5월 14일을 로즈데이라고 한대요. 장미를 주고 받는 날이라고. 그래서 오는 길에 장미를 좀 샀습니다. 아리에스도 예쁜 장미들도 있지만.”
“매월 14일마다 있는 기념일이군. 장미에는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뭐, 크게 의미는…. 연인들끼리라면 좋아한다는 의미가 있겠지만요.”
좋아한다.
를르슈는 그 말에 스자쿠의 시선을 피했다. 이러나 저러나 해도 이쪽은 짝사랑 중이다. 그런 말을 들으면 급하게 정색을 하게 된다. 무어라 대꾸를 해야하는데 퉁명스러운 말이 튀어나갔다.
“그렇다고 장미를 아무한테나 다 주다니, 불필요한 낭비다.”
“를르슈 전하가 계신 곳에 활기가 더해진다면, 그렇게 낭비는 아니죠.”
“…마음 써주는 건 고맙다고 해두지.”
“영광입니다.”
스자쿠의 ‘좋아한다’는 말은 저에게 전해진 말은 아니었어도, 순식간에 뒷목까지 화끈거릴 정도였다. 를르슈는 목 주변을 느슨하게 풀었다. 쥐고 있던 장미는 책상 위에 올려두고서는 한숨을 쉬었다. 평정을 가장하고 있지만, 스자쿠는 쉬운 상대가 아니었다.
“날이 좀 덥죠.”
“아아, 이제 앞으로 더울 날 밖에 남지 않았지.”
긴장을 다스리기 위한 행동이 스자쿠의 눈에는 더위를 피하려는 것처럼 보인 모양이었다. 들키진 않았다. 를르슈는 안도하며 느긋하게 입을 열었다.
“그래도 네가 장미를 이렇게 뿌리고 다니면 오해하는 사람이 나올지도 모르는데.”
“글쎄요.”
“나이트 오브 세븐은 아리에스 밖에서도 인기가 많으니까 이런 일에는 상관 없나?”
“그렇게 말씀하지 마세요. 전하 만큼 하겠습니까.”
“말은 잘하는군.”
칼 같다.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나눠줬으니 오해할만한 소지도 사지 않았다 이건가. 를르슈는 스자쿠의 알 듯 모를 듯한 철두철미함에 쓰게 웃었다.
“그래, 차라도 한 잔 들고 갈 건가?”
“아, 그러고 싶지만 조금 있다가 라운즈끼리 회의가 있어서요. 전하 얼굴을 뵌 것만으로도 충분합니다.”
“어려운 일을 하러 가는군.”
“뭐…. 그렇죠, 다음 원정에 차출될 인력을 뽑는다는데.”
“가기 싫은가?”
“솔직한 심정으로 말씀드려도 됩니까?”
“나를 믿는다면야.”
“가기 싫습니다.”
솔직하게 돌아온 대답에 를르슈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스자쿠 답지 않은 모습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그런 것을 눈치챘는지, 스자쿠는 뺨을 만지면서 중얼거렸다.
“원정을 떠나면 전하를 볼 수 없게 되잖아요? 아쉽습니다.”
이것이 바로 나이트 오브 세븐의 비기? 를르슈는 아무렇지 않게 받아쳤다. 이런 것에 일희일비할 정도로 어수룩한 짝사랑 상태는 아니었다.
“전화하면 되잖아.”
“직접 만나는 게 좋습니다.”
“스자쿠가 날 그렇게 좋아하는 줄은 몰랐군.”
“알아주시니 다행이네요.”
대화의 결론에 서로 소리 없이 웃으면서 쳐다보기만 했다. 를르슈는 책상 위에 올려둔 장미를 들고서 그 향기를 맡았다. 싱싱한 꽃 향기가 기분을 들뜨게 했다. 로즈데이라, 그런 날도 있군. 뒤늦게 로즈데이에 대한 감상도 떠올랐다.
스자쿠는 꽃을 즐기는 를르슈를 보면서 웃으며 말했다.
“전하께서는 붉은색도 잘 어울리는군요.”
“나는 별로인데. 너무 화려하지 않나?”
“장미가 기가 죽을 미모이신데요.”
“놀리는 건가?”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글쎄….”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장미를 내밀었다. 제가 주었던 장미가 다시 저에게 돌아오는 것에 스자쿠는 의아한 듯이 그것을 쳐다보았다. 를르슈가 장미를 한 번 더 흔들어 내밀었다. 결국 장갑을 낀 손으로 장미를 돌려받은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는 씩 웃으며 말했다.
“너도 붉은색이 잘 어울리네. 파란 망토만 입고 다녀서 파란 장미가 더 적격인가 싶었는데, 붉은 장미도 나쁘지 않군.”
“그런 의미였습니까?”
“뭐가?”
“장미가 마음에 안 드시는 줄 알고….”
“아쉽게도 한 번 받은 건 되돌려주는 성격은 아니라서. 그 장미는 내 거야.”
를르슈가 손을 내밀면 장미는 곧장 다시 돌아왔다. 스자쿠에게 받은 장미라…. 를르슈는 사실이야 어떻든 그에게서 무언가를 받았다는 사실에 기뻤다. 스자쿠와 시시콜콜한 이야기도 나눌 수 있다는 것도 상당한 기분 전환이 되었다.
그 사이에 스자쿠의 호출이 울렸다. 아, 곧 가봐야겠습니다.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앞까지만 배웅해주지.”
“괜찮습니다, 저 혼자 돌아가보겠습니다.”
“아니야, 하루 종일 안에만 있었더니 바깥 공기도 쐬고 싶고.”
“알겠습니다.”
“뭐야, 나랑 같이 나가는 게 불만인가?”
“그럴 리가요.”
결국 현관 바깥까지 나온 를르슈는 스자쿠를 기다리는 차 앞에서 그를 배웅하게 되었다. 그와는 동갑내기이고, 자라온 환경이 다른 만큼 이야기할 거리들은 다양했기 때문에 늘 지루할 틈이 없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에게 더 쉽게 반하고 그의 매력에 빠져든 것이다. 를르슈는 손끝까지 뜨거워지는 감각에 주먹을 움켜쥐고서 밖으로 나왔다.
그늘 아래에 있으면 그나마 선선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현관 앞에서 스자쿠의 배웅을 하던 중이었다. 를르슈의 주변에 사람이 있는 것을 확인하고서, 스자쿠는 안심한 듯 차에 올라탔다. 떠나려는 스자쿠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를르슈는 ‘잠깐’ 하고서 차를 멈추게 했다. 출발할 것처럼 나서는 차를 멈추게 한 를르슈는 곧장 정원 쪽으로 달려갔다.
달려갔다가 돌아온 를르슈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스자쿠의 앞으로 왔다. 를르슈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놀란 스자쿠는 차에서 내려 그가 하던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를르슈는 장미나무를 손질하던 정원사에게 장미꽃 한 송이를 받아서 스자쿠에게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장미. 나도 줄게.”
“……네?”
“손질도 안 되어있고, 아직 피려면, 한참이지만…. 나도 너한테 장미를 주고 싶어서.”
아직 피지 않은 봉우리 째의 장미를 내민 를르슈는 숨을 고르며 웃었다. 달린 탓에 얼굴이 붉게 달아오른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장미를 쥔 손에 힘을 주었다.
항상 계산적인 모습의 황자전하께서 예상치도 못한 일을 벌였다. 그것도 자신 때문에. 스자쿠는 장미를 들고서 한참이나 굳어있었다. 를르슈는 그런 스자쿠의 모습에 무엇이 이상하냐는 듯, 쳐다보고 있었다.
“뭐야, 스자쿠. 내 장미는 별로인가?”
“아, 아닙니다. 너무 생각치도 못한… 감동이라.”
“그렇다고 울지는 말고.”
를르슈의 짓궃은 목소리에 스자쿠는 어딘가 울컥했다. 손에 들려있는 장미는 그의 말대로 가시도 손질되지 않고, 피려면 한참이었지만, 그래도.
“전하, 저 절대로 원정 안 갈게요.”
“황제의 기사가 그러면 되겠어?”
웃으면서 를르슈가 해주는 배웅을 받으며, 스자쿠가 나이트 오브 라운즈 회의에서 원정에 가지 않겠다고 3시간 농성을 펼치는 것은 또 다음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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