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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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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어 를르슈 (곧 삭제! )

DOZI 2021.07.08 01:29 read.265 /

인어는 대체로 바다에 살지만 그렇다고 꼭 소금물에만 몸을 담그는 편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꼭 물 밖에서는 살 수 없는 것도 아니었다. 애초에 인어라고 해서 생선 꼬리 같은 것이 달려있지도 않았다. 를르슈의 쭉 뻗은 다리를 만지작거리면서 스자쿠는 새삼 그 매끄러운 피부에 입술을 올리고 싶은 마음을 억눌렀다.

를르슈는 요새는 보기 드문 인어였다. 얼마 남지 않은 인어족이었고, 그 중에서도 정말 드물게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고 있었다. 그래도 사흘에 한 번은 물에 푹 잠겨 있어야 했다. 기분에 따라서 물에는 바닷물과 같은 소금물도 뿌리기도 하고, 스자쿠가 한 번 재미 삼아 해보라고 주었던 배스밤도 넣기도 했다.

바닷물은 늘 파랗기만 하니까, 이런 색은 드물어.

처음 배스밤을 넣었을 때의 를르슈는 신기한 색으로 반짝거리는 물에 발을 담그며 말했다. 를르슈의 말에 욕조 밖에 있던 스자쿠는 그런 를르슈의 말에 그럼 나중에 또 사줄게, 라고 말했다. 그 말에 를르슈는 선물을 기대하는 아이처럼 눈을 빛냈다.

 

* * * 

 

스자쿠와 를르슈가 만난 것은 어느 바닷가 근처의 마을이었다. 스자쿠가 가업을 물려받기 직전, 학생으로서 보내는 마지막 방학을 마무리하려고 놀러간 마을이었다. 그곳에는 어렸을 적의 추억도 있었고, 당분간 지낼 수 있는 별장도 있었기 때문에 스자쿠는 싱숭생숭한 마음을 달래러 갔다.

스자쿠가 도착하자마자 본 것은, 창백한 낯으로 비틀거리면서 부둣가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남자였다. 더위라도 먹었나? 스자쿠는 캐리어를 들고서 느긋하게 걸어가고 있었다. 남자는 배들이 정박되어 있는 근처를 헤매다가 배가 없는 곳 근처에서 바닷물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음? 물 구경? 그러면 좀 시원해지나? 스자쿠는 그때까지 아무 생각이 없었다. 그나저나 별장까지 걸어가려면 이 더위를 뚫고 어떻게 간담. 

그때 첨벙, 하고서 물소리가 들리자 스자쿠는 뒤를 바로 돌아보았다. 비틀거렸던 남자가 보이지 않았고, 그 남자가 서있던 곳에는 물자국이 튀어있었다. 아무리 봐도 바다로 뛰어든 것 같았다.

스자쿠는 들고 있던 캐리어를 내팽개치고 바닷가로 돌진했다. 더위 먹은 사람이 바닷가에 뛰어들어서 살아있을 확률은 아무리 생각해도 희박했다. 스자쿠도 바닷물에 뛰어들고 나서 주변을 둘러보았지만 그 남자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급하게 물 밑으로 내려온 탓에 숨이 금방 차올라서 스자쿠는 물 위로 올라갔다. 수면 위에서 혹시 남자가 떠올랐나 싶어서 찾아도 없었다. 다시 한 번 물 밑으로 내려갔을 때, 운이 나쁘게도 다리에 쥐가 나고 말았다.

스자쿠는 그 순간에 인생의 주마등을 겪었다. 어렸을 때부터 정해진 길을 따라서 걸어와서, 반항 같은 반항 한 번 해본 적 없이 살아온 재미없는 인생이 이렇게 끝이 나는구나. 스자쿠는 점점 가라앉는 제 몸에 발버둥치는 것도 그만두고 있었다. 어쩌면, 그대로 죽는 걸 기대하고 있었던 걸지도 몰랐다. 그때 나타난 것이 그 남자였다.

투명한 물 사이로 부유하는 검은색 머리카락, 햇빛에 빛이 나는 보라색 눈동자. 물로 얼룩진 시야에서도 또렷하게 보이는 것에 스자쿠는 감기려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정신을 차려보면 수면 위로 끌어올려져 있었다. 어깨 뒤에서는 남자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왔다.

 

“수영도 못하면서 왜 바다에 뛰어든 거야?”

 

쥐가 나서 얼얼한 다리는 아직도 움직이기가 어려웠다. 스자쿠는 최대한 몸에서 힘을 뺀 채로 남자가 다리 위로 올려주는 것에 팔힘으로 딛고 올라섰다. 쿨럭거리면서 숨을 몰아쉬고 있으면 남자가 한심하다는 듯이 쳐다보고 있었다. 그 시선에 스자쿠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대답했다.

 

“수영은 할 줄 아는데, 갑자기 하려니 다리에 쥐가 나서. 덕분에 살았네.”

“여기 근처는 배가 지나다니니까 깊다고. 수영은 해변에서 해.”

“아니, 그… 네가 갑자기 물에 빠져서.”

“내가 물에 빠져?”

 

그러자 남자는 하하, 하고서 웃었다. 그는 물에 빠진 사람치고는 방금 전보다 더 혈색이 좋아지고 활기 넘쳐보였다.

 

“나는 인어야, 물에 빠질 수가 없지.”

 

자신을 인어라고 밝힌 남자는 이름은 를르슈, 나이는 스자쿠와 동갑인 스물넷이라고 말했다. 이 마을에서 이런 저런 잡일을 도우면서 인간 사회에서 살아가는 방법을 익혀나가고 있다고 했다. 스자쿠도 이름과 나이를 밝혔다. 아직까지는 백수… 라고 해야하나, 라고 끝나는 자기소개에 를르슈는 키득거리면서 웃었다.

스자쿠의 이름을 듣자마자 를르슈는 너구나, 하고 말했다. 내가 뭘? 스자쿠가 그런 눈으로 쳐다보면 를르슈는 말했다. 

 

“그 수영장 딸린 집에 머문다는 사람이 너였어.”

“아, 수영장. 있었던 거 같기도 하고.”

“내가 며칠 전에 청소했어.”

“정말?”

“힘들더군.”

 

나도 나중에 가서 써도 돼?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어차피 할 일도 없으니까. 근데 인어가 민물에서 수영해도 돼? 를르슈의 어딘가 어설픈 인어 설정에 딴지를 걸듯이 말해보면 를르슈는 아무렇지 않게 괜찮다고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중에 가면 를르슈는 진짜 인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건 사흘 뒤에 정말로 스자쿠네 별장을 찾아온 를르슈를 통해서 알 수 있었다. 수영장을 쓰러 왔다고 말하는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바닷물과 다른 투명함으로 빛이 나는 물을 보고서 를르슈는 갈아입은 수영복 차림으로 발부터 천천히 담갔다.

 

“어때?”

“시원해. 근데 뭔가 좀 부족한 거 같기도 하고.”

“염분 같은 게 없으니까.”

“그래도 나쁘지는 않아.”

 

느긋하게 수면 아래를 유영하고 있는 를르슈를 보면서, 스자쿠도 물에 뛰어들었다. 이번엔 준비운동을 하고 들어갔기에 다리에 쥐도 나지 않았다. 천천히 물을 가로지르는 를르슈를 앞질러가면, 를르슈가 의외라는 듯이 멈춰서 스자쿠를 바라보았다.

 

“수영 할 줄 안다는 게 사실이었군.”

“…그때는 쥐가 난 거라고 했잖아.”

“둘러대는 말인 줄 알았어.”

“너는 인어치고는 느리네.”

“그렇게 힘줘서 헤엄칠 필요는 없으니까.”

“인어는 도망쳐야 할 천적 같은 거 없어?”

“있지.”

“상어 같은 거?”

“아니. 인간.”

 

그 인간과 같은 물에 있으면서 태연하게 ‘인간’이라고 대답하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괜히 입을 다물게 되었다. 정작 그렇게 말한 를르슈는 아무렇지도 않아보였다. 오히려 스자쿠의 침묵에 이상하다고 느끼는 듯 했다. 그는 이내 자기가 무슨 말을 했는지 알아차리고선 웃었다.

 

“근데 괜찮아. 그거도 옛날 일이니까. 인간은 이제 더 이상 인어를 먹지 않잖아?”

“…그, 그랬어?”

 

인어고기 같은 전설이 있기야 했지만 그건 도시괴담과 비슷한 류의 이야기인 줄 알았다. 스자쿠는 볼을 긁적거렸다. 그 틈에 를르슈가 스자쿠에게 장난스럽게 물을 뿌렸다. 튀는 물에 스자쿠가 으악, 하고서 놀라면 를르슈는 장난에 성공해서 뿌듯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래도 너는 내가 인어라는 거 안 믿는 거 같은데.”

“음… 맞긴 해. 수영도 나보다 느리잖아.”

“힘줘서 헤엄칠 필요가 없다고 했잖아. 대신에 다른 특기가 있어.”

“다른 특기?”

“물 속에서 숨을 쉴 수 있어.”

“…응?”

 

직접 보여주지. 를르슈는 그렇게 말하고서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스자쿠도 얼떨결에 잠수를 했다. 햇빛이 들어차는 물 아래에서 를르슈의 검은 머리카락이 흐물거렸다. 꼭 바다에서 보았던 그 모습 그대로인 를르슈는 스자쿠와 눈이 마주치자 씩 웃었다. 숨이 점점 차올랐다. 하지만 를르슈가 아무렇지도 않아보여서 스자쿠도 괜히 오기가 생겨 버티게 되었다.

결국 먼저 수면 위로 올라온 것은 스자쿠였다. 를르슈는 한참이나 있다가 올라왔다. 숨 하나 헐떡거리지 않으면서 태연하게 물 위로 올라오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웃었다.

 

“정말 인어라서 숨이 안 차는 거야?”

“물 속에서 숨 쉴 수 있으니까.”

“바닷물도 아닌데?”

“나름 진화했어, 인어도.”

 

어깨를 으쓱거리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어딘가 진 기분이었다. 혹시 아가미라도 있는 게 아닐까 그의 몸을 빤히 들여다보았지만 그런 구석도 보이지 않았다. 스자쿠의 의문스러운 시선에 를르슈는 유유자적 헤엄을 치면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를 반복했다.

 

“그래도 인어로 인간사회에서 사는 건 이득보다 실이 많지.”

“뭔데?”

“우선… 그래도 인어니까 물 밖에 나와서 살면 힘들어. 최소한 사흘에 한 번은 물에 담근 채로 지내야 해.”

“안 하면 말라죽어?”

“아무래도.”

 

지난번에, 네가 바다에 빠졌을 때가 그럴 때였어. 스자쿠는 바다에 빠졌을 때, 라는 말에 미간을 찌푸렸다. 바다에 빠진 게 아니라 다리에 쥐가 난 거라니까. 평소라면 그런 물에서도 수영 잘 한다고, 나.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크게 웃기만 했다.

 

“아무튼 위험한 건 내가 아니라 너였어.”

“사람을 구해주려고 한 거 뿐이잖아.”

“그렇다고 맥락없이 물에 빠지면 너만 위험해. 그래도 뭐… 구해주려고 한 건 고마워. 구해준 건 나였지만.”

“너 정말 말 얄밉게 하네.”

“맞는 말이니까 괜히 그러지.”

 

둘은 두 번째 만남이었는데도 그럭저럭 잘 맞았다. 대부분이 티격태격하는 말싸움이었지만, 그 마을에는 나이가 맞는 또래가 서로 뿐이었고, 이래저래 말도 잘 통했기 때문에 자주 붙어다녔다. 

그러다보면 를르슈는 인어라서 특이한 것인지, 아니면 원래부터가 그런 것인지, 스자쿠에게 있어서 규격 외의 사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