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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ery2ndPla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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몽유병에 걸린 스자쿠 中

DOZI 2021.10.29 02:15 read.517 /

를르슈가 다시 눈을 떴을 때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의 스자쿠가 있었다. 저를 빤히 응시하고 있는 녹색 눈동자는 밤에 보았던 것과 너무 달라서, 를르슈는 화들짝 놀라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를르슈의 놀라는 모습에 스자쿠 역시 덩달아 놀란 모양인지, 그에게서 한두 걸음 뒤로 물러서며 말했다.

 

“를르슈 전하께서 일어나지 못하시는 거 같아서….”

“아, 아…. 악몽이라도, 꾼 것 같아.”

“그런 것 같아요, 땀도 많이 흘리시고.”

 

를르슈의 젖은 머리카락을 뒤로 넘겨주려고 하는 손에, 를르슈는 고개를 저으며 눈을 질끈 감았다. 밤의 스자쿠가 생각났다. 멈추라고 말하는 자기 말을 듣지 않고, 그만하라는 말에도 계속해서 자신을 집어삼키던 스자쿠. 그 손의 주인이 저를 태연하게 만지려고 하는 것에 겁이 났다. 를르슈의 반응에 스자쿠는 손을 멈추며 의아한듯이 물었다.

 

“전하…?”

“아, 아냐. 내가 알아서 하지.”

“힘드시면 제가 시중을 들겠습니다.”

“필요 없어.”

“얼굴이 아직도 창백한데.”

“필요 없다니까!”

 

를르슈의 날카로운 외침에 스자쿠는 머뭇거리면서 손을 거두었다. 를르슈는 젠장, 이라고 속으로 욕을 중얼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하게 샤워를 하고 나면 몸에는 어젯밤의 흔적도 남지 않아 있었다. 설마 스자쿠가 뒷처리라도 하고 간 건가? 를르슈는 물로 제 몸을 닦아내며 이를 악물었다. 저를 그렇게 밤새 괴롭혀댔으면서, 아무것도 모른다는 얼굴로 태연하게 다가오는 스자쿠는 열이 받았다. 

그날 스자쿠는 를르슈의 격렬한 짜증 속에서 하루를 보냈다. 를르슈의 눈만 마주쳐도 느껴지는 짜증이며, 말을 걸 때에도 속이 뒤틀린 것처럼 씹어 뱉는 를르슈의 말투에 스자쿠는 그의 눈치만 살필 뿐이었다. 그런 스자쿠가 맞불 놓듯 짜증을 한 번 낼 법도 했지만, 스자쿠는 를르슈의 시중만 들 뿐이었다. 이런 구석에서 기사처럼 굴겠다고? 밤에는, 밤에는…! 를르슈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주먹으로 책상을 쾅 내리쳤다.

 

“저, 전하?!”

“말 걸지마.”

“네?”

“옆에 오지도 마.”

“…….”

 

를르슈의 노기 어린 목소리에 스자쿠는 침을 꿀꺽 삼키면서 말했다.

 

“제, 제가 뭔가…  잘못한 거라도.”

“…….”

“…네?”

 

스자쿠의 무고한 시선에 를르슈는 제 손으로 눈가를 덮으며 중얼거렸다.

 

“없어, 잘못한 거. 그냥 내가.”

“네.”

“내가 이상한 거야.”

 

를르슈는 자신이 ‘이상하다’라는 결론을 내렸다. 밤이면 스자쿠에게 키스를 당하고, 성기를 애무받고, 억지로 절정까지 느끼는 꿈을… 아니, 현실을 겪는다. 그런 것을 스자쿠에게 차마 말할 수 없었다.

스자쿠는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얼굴이었다. 를르슈는 스자쿠를 알고 있다. 그는 를르슈에게 거짓말을 할 사람이 아니었다. ‘그런 일’이 있었으면 를르슈에게 무언가의 반응이라도 했을 텐데, 그는 정말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도 모르는 상태였다. 그런 그를 다그칠 수는 없었다.

 

“저한테는 의지가 안 되는 일입니까?”

“…….”

“저는 전하의 기사이자, 친구인데도?”

 

스자쿠의 슬픈 목소리에 를르슈는 입술을 꾹 깨물었다. 고개를 돌리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가 숨을 들이키는 소리가 들렸지만, 를르슈는 더 이상의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가 자신의 기사이자 친구이기에, 의지할 수가 없었다. 

 

* * *

 

스자쿠는 를르슈의 기사이기 때문에, 유사시에 를르슈의 방에 쉽게 들어올 수 있도록 마스터 키를 가지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스자쿠가 자신의 방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그렇다고 책장 같은 것으로 문을 막아놓으면 아침의 스자쿠에게 의심을 살 것이다. 스자쿠와 육탄전을 벌일 수도 없었다. 그건 애초부터 지는 싸움이었다.

우선은 잠들지 않을 것, 그 다음은… 그 다음의 계획은. 를르슈는 베개 밑에 넣어둔 권총을 만지작거렸다. 스자쿠에게 총을 들이미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떠오른 방법은 이것 뿐이었다. 무력에는 무력을 행사한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방문을 기다렸다.

그리고 자정이 훌쩍 지나서야, 스자쿠는 찾아왔다. 그는 평소 잠을 잘 때의 차림으로, 어딘가 몽롱한 눈을 한 채 를르슈의 방문을 열었다. 를르슈는 침대에서 일어나 스자쿠를 맞이했다. 자지 않고 자신을 반기는 를르슈의 모습에 스자쿠는 눈을 가늘게 뜨며 웃었다.

 

“안 자고 있었어?”

 

밤의 스자쿠가 말하는 것을 듣는 건 처음이었다. 그의 목소리는 잠에 취한 것인지 평소보다 낮았고, 를르슈는 그런 것이 어딘가 소름이 끼쳤다. 고개를 끄덕거리는 를르슈에게 스자쿠는 천천히 다가왔다.

 

“나를 기다려준 거야?”

 

스자쿠는 를르슈를 침대로 데려갔다. 스자쿠의 눕히는 손길에 를르슈는 읏, 하는 소리와 함께 스자쿠의 체중에 짓눌러졌다. 를르슈의 허벅지 사이를 파고든 스자쿠는 를르슈의 몸을 감싸고 있는 옷가지들을 더듬으며 중얼거렸다.

 

“를르슈가 나를 기다려주고 있는 꿈이라니….”

“…꿈?”

“응, 이건 꿈이니까. 그렇지, 를르슈?”

“…….”

“오늘은 끝까지 할 수 있으면 좋겠네.”

 

끝까지? 를르슈는 스자쿠의 말에 눈을 동그랗게 떴다. 놀란 를르슈의 입술을 조금씩 벌려 삼키면서, 스자쿠는 익숙하게 입을 맞추어왔다. 저를 서서히 녹여가는 키스는 를르슈에게 독처럼 느껴졌다. 머릿속이 어딘가 마비되면서 세워진 모든 계획들이 수포로 돌아가는 것 같았다.

를르슈를 다정하게, 하지만 숨 하나 놓치지 않으려고 하는 스자쿠의 키스는 탐욕이었다. 를르슈의 가슴을 더듬으며, 지난번에 만지지 못했던 유두 끝을 살살 굴리는 것에 를르슈는 작게 신음했다. 웅얼거리는 그 신음에 스자쿠는 귀엽다고 속삭였다.

 

“더 소리 내, 귀여우니까.”

“시, 싫어….”

 

를르슈의 반응이 불만인지, 스자쿠는 미간을 찌푸렸다. 를르슈의 셔츠 위로 도드라진 유두를 만지작거리던 손을 치우고는, 스자쿠는 그곳에 자신의 입술을 갖다댔다. 젖은 혀끝이 옷자락을 적시며 유두를 핥아올리는 것에 를르슈는 히끅거렸다. 스자쿠를 밀어내려고 반사적으로 몸을 움직였지만, 스자쿠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아, 으, 싫어, 우으….”

“울지 마, 울면 싫어.”

“흐, 나도, 이런 거, 싫어. 스자쿠, 그만.”

“……미운 말만 하고. 꿈인데도.”

 

꿈이라고 계속 되뇌이는 스자쿠 때문에 를르슈 또한 꿈결에 휩쓸릴 것 같았다. 하지만 베개를 짓누르자 느껴지는 딱딱한 권총의 느낌에 를르슈는 정신이 들었다. 를르슈의 발기하기 시작한 페니스를 만지는 스자쿠, 그리고 스자쿠의 입술 사이에서 바짝 선 유두, 벗겨지고 있는 옷, 바깥 공기에도 식을 줄 모르는 체온의 뜨거움. 그런 와중에서 를르슈를 현실로 이끌어 낸 권총의 존재는 무시무시했다.

이건 비정상적이다. 꿈이 아니야. 현실이다. 스자쿠는 이렇지 않아, 스자쿠와는 이래서는 안 돼. 스자쿠는… 나의 기사이자, 친구야. 이런 건 하지 않아.

 

“를르슈, 좋아해.”

 

그러나 그런 를르슈의 각오를 비웃기라도 하듯이, 스자쿠는 단 꿈에 취한 것처럼 중얼거렸다. 그의 눈은 다시 정욕으로 물들어가기 시작했다. 이전의 밤처럼 를르슈를 탐해왔던 스자쿠가 되어가고 있었다.

 

“나, 나를 좋아, 해?”

“응, 계속, 계속 좋아했어…. 를르슈, 꿈에서라도 말할 수 있어서 얼마나 좋은지 몰라.”

“…….”

“를르슈도 나를 좋아해줘, 꿈이라도 좋으니까.”

“…스, 자쿠.”

“응, 내 이름 불러줘.”

 

계속, 불러.

스자쿠는 를르슈의 몸을 풀어가며 중얼거렸다. 를르슈는 베개 밑에 있는 권총을 떠올렸다. 스자쿠가 자신의 다리를 벌리고, 음낭 아래를 물고 핥다가, 그 아래의, 그 후미진 곳에 있는 구멍까지 혀를 굴렸을 때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권총을 떠올렸다. 멈춰야 해, 멈춰야… 멈춰야 하는데. 를르슈의 망설임은 결국 끝내 권총을 들지 못하게 만들었다.

스자쿠의 손가락이 안쪽을 들쑤시며 천천히 벌려가는 것에 를르슈는 몸을 떨어가며 헐떡거렸다. 하아, 아아, 으, 으응. 야릇한 신음들이 스자쿠를 부추기듯이 쏟아졌다. 를르슈는 자신의 귀로 듣기에도 추잡한 소리들이 자신의 방에서 울리고 있다는 것이 믿기지 않았다. 울먹거리면서 스자쿠를 조심스럽게 부르면, 스자쿠는 바지를 벗으면서 작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를르슈랑 하는 거, 꿈이 아니면 좋을 텐데.”

“……으, 읏.”

“네가 나를 정말로 받아주면, 진짜 좋을 거야….”

 

스자쿠의 페니스가 안으로 서서히 밀려들어왔다. 장벽을 치고 안쪽을 꾹꾹 늘려가며, 구멍을 한계치까지 벌리는 압박감에 를르슈는 스자쿠를 있는 힘껏 끌어안았다. 하, 하으, 윽! 우으…! 를르슈의 우는 소리에 스자쿠가 히죽거리며 피스톤질을 시작했다. 아직 익숙해지지 않은 내벽이 스자쿠의 것을 휘감아 같이 찌걱거리며 달라붙었다.

무력에는 무력을…. 를르슈는 깨어지는 시야 사이로 그런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이 쾌락 앞에서는, 무엇도 소용이 없을 것 같았다. 훌쩍거리는 를르슈의 입술에 키스를 하며, 스자쿠는 그에게 좋아한다고 또 다시 속삭였다. 를르슈는 대답 대신에 스자쿠의 이름을 불렀다. 안쪽이 화끈거리면서 질척한 소리가 계속 울리는 것이 부끄러웠다. 붉어진 를르슈의 얼굴을 들여다본 스자쿠는 만족스러운 얼굴로 사정했다. 뒤쪽을 적시는 느낌에 를르슈는 또 다시 정신을 놓아버리고 말았다.

 

* * * 

 

를르슈는 허리 아래가 욱씬거리는 고통에 이를 악물고 일어났다. 밤이 지나가고, 아침이 밝아오면 스자쿠는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고, 를르슈만이 다시 정갈하게 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서 눈을 뜨고 있었다. 지난 밤의 흔적은 퉁퉁 부은 유두와 지끈거리는 구멍, 허리 아래의 알싸한 고통 뿐이었다.

스자쿠가 오기 전에 샤워를 마치고 옷까지 갈아입은 를르슈는 한숨을 내쉬었다. 어제는 섹스까지 하고 말았다. 스자쿠가 말한 ‘끝’은 섹스였다. 그 끝까지 하고 말아버렸다. 이제 스자쿠를 어떻게 봐야할지 감이 잡히지도 않았다. 그럼에도 시간은 흘러서, 스자쿠가 저를 데리러 올 시간이 되었다.

똑똑똑, 하고 정중한 노크 소리와 함께 스자쿠의 목소리가 들렸다.

 

“전하, 일어나셨나요?”

“—그래, 이제 나갈게.”

 

우선 얼굴을 안 보고 말하는 것은 통과. 완벽한 ‘태연함’이었다.

를르슈는 문을 열고 스자쿠를 마주했다. 어떠한 문제도 없다는 듯이, 를르슈를 반가이 맞이하는 초록색 눈동자에는 한치의 흔들림도 없었다. 그 눈을 빤히 들여다보다가, 를르슈는 시선을 피했다. 하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련의 과정이었다. 를르슈는 입을 열었다.

 

“오늘은 군부에서 회의가 있지?”

“네, 그렇습니다. 아침 식사가 끝나시는 대로 자료를 준비해서….”

“아아, 그래.”

 

서둘러 앞서 걷는 를르슈의 뒤를 두 걸음 뒤에서 걷는 스자쿠의 모습은 완벽한 기사 그 자체였다. 스자쿠의 앞에서는 한숨도 삼키면서, 를르슈는 앞만 보고 걸었다. 그럭저럭, 스자쿠를 마주할 배짱은 남아있는 모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