쿠루루기 스자쿠는 고양이를 좋아한다. 사실 고양이 뿐만 아니라 여러 동물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그중 꼽으라고 하면 단연 고양이였다. 하지만 기억이 있는 어렸을 때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그의 고양이 사랑은 열렬하다면 열렬했지만 한 번도 보답받은 적이 없는 짝사랑이었다. 손을 내미는 족족 할퀴어지거나, 혹은 깨물리거나. 스자쿠의 손은 항상 엉망진창이 되기 일쑤였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서 고양이 사랑을 실천했다. 스자쿠는 가방에 고양이 간식이나 장난감을 쑤셔넣고 다니곤 했는데, 그걸 보고 있는 사람들은 그런 스자쿠의 모습에 안타까워하면서도, 징하다는 얼굴로 그를 쳐다보았다.
아무튼 평생 고양이에게 미움을 샀으면 샀지, 좋아할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모두의 고정관념을 깨고서, 쿠루루기 스자쿠는 드디어 저를 좋아해주는 고양이를 손에 넣었다. 정확히 말하면 고양이 같은 사람이지만, 스자쿠가 느끼는 그의 귀여움이 인간이라는 종을 초월했기 때문에 ‘그거나 이거나’의 지경에 이르렀다.
스자쿠의 고양이는 브리타니아에서 온 유학생으로, 스자쿠와 같은 대학에 재학 중인 쳥년으로, 미모는 교내에 소문날 정도로 출중하고, 머리는 물론, 집안까지 그 유명한 '브리타니아 황족'의 후예라서 어디 하나 빠지는 곳이 없었다. 이름은 를르슈 람페르지로 그는 전도유망한 미남이었다. 그는 자신이 잘났다는 것을 스스로도 알고 있었고, 그것을 시의적절하게 사용할 줄 아는 능력까지 갖추고 있었다.
그렇게 훌륭한 미남이 어쩌다가 스자쿠라는……스자쿠 역시 어디 하나 빠지지 않는 미청년이지만, 를르슈에 비하면 조금 뒤떨어지는 감이 없잖아 있었다. 여전히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동안은 은근한 컴플렉스이고, 척척 해내는 를르슈와 다르게 어리광을 부리며 천연덕스럽게 남의 손을 빌리며, 결정적으로 하반신이 정조도, 지조도, 절개도 없을 망나니였다.
술자리의 원나잇 헌터(스자쿠)가 어떻게 교내 최고의 하이스펙 유학생(를르슈)를 제 고양이로 삼았는지에 대해, 누구도 그 자세한 내막은 알 수 없었지만, 어느날부터인가 두 사람은 붙어다녔고, 결정적으로 언젠가의 술자리에서 스자쿠에게 평소와 같이 달라붙은 스자쿠의 (구)섹스프렌드의 모습에 를르슈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고, 스자쿠는 그런 그의 모습에 허겁지겁 쫓아갔던 일이 있었다. 다들 스자쿠와 를르슈가 여자를 가운데에 두고서 몸싸움을 하러간 것이 아니냐며 서로 말릴 겸 싸움 구경에 그들이 달려나간 화장실 앞에서, 두 남자가 뜨겁게 입술을 맞대고서 옷을 쥐어뜯을 것처럼 서로를 끌어안고 있던 것을 보게 된 것이다.
그렇게 스자쿠와 를르슈는 자타공인의 교내 캠퍼스 (호모) 커플이 되었고, 아무래도 둘 다 스타일은 달라도 어찌되었든 얼굴값은 한 미남이었기 때문에 그들 때문에 울었던 여자는 두 트럭 정도 나왔지만, 시간이 대충 흐르면서 그 남자들이 사귀던 말던, 하는 분위기로 교내 연애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말이 길었지만 아무튼 스자쿠와 를르슈는 1학년 말에 그렇게 사귀었고, 2학년이 되던 봄에 서로 집을 합쳐서 같이 살기 시작했다. 같이 살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학업 성취도는 급격하게 바닥을 쳤다. 시도 때도 없는 청춘의 혈기를 가라앉히는 데에 하룻밤이 이튿날이 되는 것의 반복이었다. 학교를 나가도 서로 눈이 마주치면 지난밤이 떠올라 얼굴을 붉히기 일쑤였고, 가끔씩은 주변 사람들이 눈감아줘야할 정도로 노골적으로 티가 나는 날도 많았다.
아무튼 둘은 잘도 붙어먹었다. 그래서 2월 22일도 한참 서로를 지지고 볶고 난 뒤에 느즈막한 오후에 일어났다. 먼저 눈을 뜬 것은 를르슈였다. 스자쿠의 팔이 제 허리를 단단히 감싸고 있는 것이 답답해서 눈을 떴다. 저보다 뜨거운 체온이 닿아있는 것은 따끈하니 기분은 좋았지만 그 압박감이 불편했다. 팔을 치우고 나면 다리까지 얽혀있는 것을 풀어내느라 꽤 힘이 들었다. 를르슈가 헉헉거리진 않아도 다소 거친 숨으로 침대에서 일어났을 때, 스자쿠는 눈만 안 떴을 뿐이지 거의 잠에서 깬 상태였다. 를르슈가 키스로 깨워주면 일어난 김에 한 번 더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거니, 하고 기대에 부풀어 있던 스자쿠는 한참을 자는척을 하면서 를르슈의 체온이 남은 옆자리로 몸을 틀었다. 학교야 일찌감치 재끼기로 어젯밤에 암묵적으로 합의가 되어 지각을 걱정할 것은 없었으니, 를르슈가 쭈뼛거리면서 스자쿠의 옆에 와서 일어나라고 속삭여야할 때였다. 그러나 침대에서 발을 내딛는 를르슈의 발소리가 얼마 가지 않아서 툭하니 멈추었고, 그 이후로는 숨소리만 새액새액 들릴 뿐이었다. 한 번 일어나면 금방 잠에서 깨는 편인 를르슈가 다시 졸 일은 없을 텐데. 스자쿠는 슬쩍 실눈을 떠서 를르슈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숨을 멈추었다.
를르슈의 7대 불가사의(출처: 스자쿠) 중 하나인 야한 속옷— 검은 비키니가 엉덩이의 반만 걸쳐져 있는 것을 보고서 우선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렇게 입다 만 듯한 옷차림새는 를르슈 스스로가 했다고 하기엔 믿기지 않았다. 엉덩이골을 훤히 드러내고 있는 모양새에 스자쿠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리고 엉덩이골을 지나 꼬리뼈를 타고 흐르는 긴 검은색의…… 꼬리를 보았다. 검은 털이 윤기나게 흐르고 있는 검은 꼬리.
를르슈를 인생에 있어서 처음으로 자신을 좋아해준 고양이라고 맨날 입에 침이 마르고 닳도록 이야기하긴 했으나 그가 사람이라는 것은 당연히 알고 있었다. 를르슈는 인간남자다. 머리 위에 쫑긋거리는 고양이 귀 같은 것도 없고, 검은색 꼬리도 달려있지 않은 사람이다. 그러나 그 사실을 편견처럼 깨버리는 현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할지. 스자쿠는 를르슈와 같은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어느 정도 돌아가는 두뇌회전력을 갖추고 있지만 상황에 따른 정보해석능력은 현저하게 떨어졌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 대해서는 완전히 돌대가리 상태였다.
그러나 를르슈 역시 빠릿하게 돌아가는 그 머리가 팽팽 돌다 못해 과부하가 올 지경이었다. 를르슈의 앞에 비치는 거울은 침실에 있기에는 꽤 의문스러운 물건이지만, 나름의 수치 플레이를 할 때에 요긴하게 쓰이긴 했고, 그 외의 목적으로는 사람의 모습을 비춘다는 본래 목적으로 쓰이고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지금은 어떻게 쓰이고 있는지 스스로도 목적을 알 수 없었다. 삐죽거리는 고양이 귀와 살랑거리는 고양이 꼬리 같은 것이…… 제 눈에만 보이고 있는건지, 아니면 거울에만 그렇게 비치는지. 아니면 실재한다면? 그렇다면…? 왜? 순식간에 불어나는 많은 질문들에 를르슈는 어떠한 해답도 찾지 못한 채로 제 머리 위로 손을 댔다. 부드러운 털이 손끝에 닿아왔다. 거울 속의 자신은 고양이 귀를 만지고 있었다. 한 마디로, 그 고양이 귀와 꼬리는 실존하며, 를르슈는…… 고양이가 된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반인 반묘겠지만. 아무튼, 고양이가 된 것이다.
거울에 비친 제 모습에 가려져 있던 스자쿠의 시선이 느껴졌다. 를르슈는 스자쿠 쪽으로 천천히 뒤를 돌아보았다. 자리에서 부스스하게 일어나 저를 쳐다보고 있는 스자쿠의 시선은 제 귀와 꼬리를 향해 못을 박은 것 같았다. 그러자 스자쿠가 매번 했던 말이 떠올랐다. ‘를르슈는 꼭 고양이 같아.’ ‘를르슈, 고양이처럼 울어봐.’ ‘를르슈가 있으니까 다른 고양이는 필요 없어.’ 등등의 말들이 지금의 상황을 만들어낸 게 아닐까?
를르슈가 스자쿠 쪽으로 완전히 돌아보았을 때, 스자쿠는 생각치도 못한 충격적인 비주얼에 헉, 하고 숨을 참았다. 생각보다 고양이 귀는 를르슈에게 달려있으니 야하고, 살짝 흔들리는 고양이 꼬리는 그 엉덩이골을 반쯤 내놓고 있는 뒷태를 생각하면 침이 꿀꺽 넘어갔다. 아, 위험한데. 이거 진짜. 스자쿠는 크흠, 하고서 헛기침을 했다. 히죽 올라가려는 입가를 가리려고 손을 올렸는데, 손끝에 뭔가 축축한 것이 묻었다. 스자쿠는 별 거 아닌 듯 쓱 하고 코끝을 훔쳤다. 그러자 를르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뭐지, 콧물 난다고 더러워서 저러는 건가. 스자쿠는 속없는 생각을 하며 다시 한 번 코를 만졌다. 아직도 콧물이 줄줄 흐르는 느낌이…
“스자쿠, 너 코피가 나잖아!!”
“으, 으응?!”
스자쿠의 몸은 스자쿠의 생각보다 꽤 솔직한 모양이었다. 를르슈가 냅다 협탁 위에 두는 휴지를 뽑아다가 스자쿠의 코에 들이박았고, 스자쿠는 쿨럭대면서 그 휴지로 줄줄 흐르는 코피를 막았다. 한쪽에서만 나는 줄 알았는데 양쪽에서 다 터진 것 같았다. 그제서야 입안 가득 비린 피맛이 느껴졌다. 스자쿠는 쿨럭거리는 와중에 다가오는 를르슈의 몸을 한 번 더 훑었다.
입다 만 파자마 상의와 반쯤 걸쳐진 검은 비키니, 그리고 당황함에 바짝 선 고양이 귀와 빳빳한 꼬리까지. 가늘지만 만지면 부드러운 살결이 느껴지는 허벅지가 제게 닿아있는 것을 느끼자마자 스자쿠의 코를 막고 있던 휴지는 단숨에 붉게 물들어갔다. 당황한 를르슈가 휴지를 몇 개 더 뽑으면서 스자쿠에게 내밀었지만, 그때 보이는 가슴골에 스자쿠는 이를 악물었다. 인생 최초의 빈혈이 오는 건지, 아니면 그냥 흥분해서 혈압이 팍 오른 것인지. 아마도 후자겠지만 스자쿠는 주마등이 보이는 것 같았다. 대체로 를르슈와의 첫만남, 데이트, 싸움, 섹스, 데이트, 싸움, 섹스, 데이트, 싸움, 섹스…(이하 반복)였지만 그것도 선정적이어서 코피는 좀처럼 멎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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