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랑거리는 물소리, 향기로운 비누의 냄새, 욕조 가득 받아놓은 따뜻한 물에서 피어오르는 수증기. 그 사이에서 스자쿠는 한숨을 내쉬고 있었다. 손에 들려있는 종이쪽지대로 비눗물을 부었다. 단정한 글씨로 적혀있는 종이쪽지는 다름 아닌 슈나이젤이 남기고 간 것이었다. 그는 자신의 이복동생인 를르슈를 스자쿠의 손에 맡기면서 여러가지 당부사항을 남겨두었다. 그 중에 하나가 이 까다로운 목욕 방식이었다. 그는 이 순서대로 입욕제를 넣는 걸 좋아하고, 아마 이 순서대로가 아니라면 목욕하는 걸 원치 않을 거야. 쪽지 끝에 남겨진 문구에 스자쿠는 혀를 찼다.
욕조 속의 물은 투명하면서도 향긋한 냄새가 은은하게 퍼져나가고 있었다. 스자쿠는 늘어놓았던 입욕제를 한 구석에 몰아넣고서 한숨을 내쉬었다. 다소 거친 그 손길에, 입욕제 중에 하나였던 유리병이 바닥에 쓸리는 소리와 함께 데구르르 굴러갔다. 깨지진 않았다. 스자쿠는 안도하며 작은 유리병을 잡으러 구석까지 걸어갔다.
“거기서 뭐하고 있어, 스자쿠?”
“아, 를르슈 전하.”
스자쿠는 자신이 모시고 있는 주인의 이름을 부르며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무심코 뒤를 돌아본 탓에 무방비하게 알몸의 그를 바라본 것에 대해서 후회하고 말아버렸다. 모처럼 깨뜨리지 않고 잡았던 유리병이 짤그랑, 하고 욕실 바닥에 떨어져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뭐가 깨졌어?”
욕조로 성큼성큼 걸어가는 를르슈는 스자쿠의 상태를 알 리가 없었다. 스자쿠는 오만 가지 생각이 드는 를르슈의 나신 앞에서 고개를 돌리고 급하게 유리조각을 주우며 말했다.
“아, 입욕제가 굴러가서… 주우려다가 떨어뜨려서요.”
“그래? 다치지 않게 조심해.”
“물론이죠.”
유리조각을 줍고서 휴지로 두어 번 주변을 훔치고 나서야 스자쿠는 뒤를 돌아볼 수 있었다. 를르슈는 욕조에 몸을 담근 채로 스자쿠를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욕실의 수증기로 촉촉해진 얼굴이 열에 들떠서 살짝 붉은 빛이 돌았다.
정말 보는 것만으로도 위험한 사람이다. 스자쿠는 그런 생각을 가라 앉히면서 를르슈의 곁으로 다가왔다. 기분 좋은 꽃 냄새가 나는 를르슈에게 꺼내두었던 사탕을 내밀었다. 슈나이젤의 쪽지에 적혀있는 사항 중에 하나였다.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리며 사탕을 입에 물었다.
“나는 어린애가 아닌데.”
“그래도 맛있잖아요?”
“…이번 뿐이야.”
애 취급 하는 건 이번 뿐이라고 말하면서도, 를르슈는 스자쿠가 다음에 내미는 사탕을 또 받아들일 것이다. 사탕을 들고 있지 않은 를르슈의 다른쪽 손을, 스자쿠는 수면 밑에서 들어올렸다. 상처 하나 없이 매끄러운 하얀 팔. 무거운 것이라고는 들어본 적 없는 듯한, 자신과는 전혀 다른 손. 분홍색의 반달진 손톱까지 아름다운 를르슈의 손을 샤워타올로 조심스럽게 문지르고 있으면, 스자쿠는 묘한 기분이 들었다.
손끝, 팔목, 팔뚝, 천천히 위로 올라가면 를르슈의 마른 가슴팍이 드러났다. 하얀 피부 끝에는 따뜻한 물에 잠겨 있는 연한 빛의 유두가 어른거리고 있었다. 를르슈는 스자쿠의 빤한 시선에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손을 내민 채로 가만히 있었다. 괜히 쳐다보던 스자쿠가 민망해져서 고개를 돌리고 말아버렸다.
“스자쿠, 있잖아.”
“네, 전하.”
“혀가 자꾸 베이는 거 같아. 안쪽에서 자꾸 피 맛이 나.”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돌렸던 고개를 바로했다. 를르슈는 그 말이 진짜라고 보여주기라도 하듯, 더 빨갛게 물든 혀를 내밀었다. 그 혀의 붉음에도 눈을 맞추기가 민망했지만, 스자쿠는 주인의 불편함에 대해서 우선 해결을 해야한다는 마음으로 그에게 다가갔다.
“입 안을 좀 볼게요.”
“응.”
를르슈는 얌전히 입을 벌리면서 스자쿠의 손가락이 제 입 안에 들어오는 것을 허락했다. 미끈거리는 혓바닥을 은근히 훑으면서, 스자쿠는 를르슈의 이 하나 하나를 매만졌다. 안쪽의 이 하나가 뾰족하게 혀를 긁는 듯 했다. 이거구나, 스자쿠는 조용히 읊조리며 를르슈에게 잠깐 기다리라고 말했다. 으응, 하고 를르슈는 목을 울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스자쿠가 다시 돌아왔을 때에는 한 손에는 골무를 들고 나타났다. 그게 뭐냐는 듯이 를르슈가 쳐다보면, 스자쿠는 대답하는 대신 를르슈의 뺨에 조심스럽게 손을 뻗었다. 대답을 듣진 못했지만, 를르슈는 눈앞에 흔들거리는 골무를 보고서 고개를 끄덕이곤 입을 벌렸다.
날카로운 이를 가는 소리와 물방울이 똑똑 떨어지는 소리, 그리고 스자쿠와 를르슈의 숨소리가 오갔다. 이내 뭉뚝하고 매끈해진 이의 표면을 쓸어보면서, 스자쿠는 다시 를르슈의 혀를 슬쩍 누르며 손가락을 빼냈다.
“이제 괜찮으시죠?”
“…응.”
“혀의 상처는 덧나지 않게 뜨겁거나 차가운 걸 조심하시고요.”
“알았어.”
를르슈는 다시 사탕을 입에 물고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골무를 다시 갖다둘게요, 라고 스자쿠가 말했다. 를르슈는 미간을 찌푸리며 무어라 중얼거렸다. 전하? 스자쿠가 제대로 듣지 못했다는 듯이 그를 다시 한 번 부르자, 를르슈는 대답 대신에 물방울을 스자쿠 쪽으로 튀기면서 보다 큰 목소리로 말했다.
“나보다 그 골무를 가져다주는 게 중요해?”
“그, 그럴 리가요.”
“…그럼 계속 씻겨줘.”
를르슈는 스자쿠가 씻기던 손의 반대쪽 손을 내밀었다. 어린애가 아니라고 말했으면서 씻는 건 스자쿠에게 온전히 맡기는 이 아름다운 남자를 어떻게 해야하는가. 스자쿠는 예에, 하고 떨떠름하게 대답하면서, 를르슈의 내미는 손을 붙잡았다. 스자쿠가 움직이는 손길에 를르슈는 만족스러운 듯이 욕조에 기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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