를르슈 람페르지의 첫 경험은 갈색의 곱슬머리에 훤칠한 키의, 강아지 같은 눈매가 인상적인 남자였다. 를르슈가 그를 본 것은 어느게 게이바에서였다. 그날 를르슈는 잔뜩 취하고 싶었고, 나쁜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그래서 게이바에 갔던 것이었다. 그 게이바는 예전부터 알고는 있었지만 한 번도 가본 적이 없었다. 왜냐면, 를르슈는 게이가 아니었고, 게이가 아닌 사람이 게이바에 가는 것은 나쁜 짓이었으니까.
그럼에도 를르슈는 게이바에 갔고, 때마침 그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눈이 마주치자 남자는 싱긋 웃었고, 를르슈는 그 웃음이 누군가를 닮았다는 것을 떠올리자마자 어이가 없어서 쓴웃음을 지었다. 를르슈는 바텐더를 불러서 술을 한 잔 더 주문했다. 그리고 거친 폼으로 그것을 비웠다. 앞서 말했듯이, 를르슈는 그날 취하고 싶었고 나쁜 일을 저지르고 싶었다. 나한테 말을 걸어, 얼른. 를르슈는 그 남자의 시선이 저에게 닿는 것을 느끼면서 속으로 명령했다. 를르슈의 예상대로 남자는 말을 걸어왔다.
-너무 빨리 마시는 거 아니에요?
-오늘은 빨리 취하고 싶은 날이라서요.
-무슨… 안 좋은 일이라도 있어요?
-있으면, 위로라도 할 셈인가요?
위로, 라는 말을 입에 담자 남자는 웃었다. 남자는 술 친구가 필요하다면, 이라는 말로 를르슈의 옆에 붙었다. 그리고 를르슈는 술을 쉴 새 없이 마셨고, 남자는 계속 들이붓는 를르슈의 주량에 놀랐다. 를르슈는 이거로는 모자라다고 생각했다. 게이바에서 과음을 하는 것만으로는 를르슈가 생각하는 나쁜 짓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았다. 더 강력한 걸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좋아하는 사람이 있는데, 이쪽 사람은 아니거든요.
를르슈의 대뜸 던져지는 고백에 남자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 그 표정. 좀 닮은 거 같기도. 하지만 그 남자는 를르슈가 아는 누군가에 비하면 턱없이 못생겼고, 좀 덜 떨어져보였다. 하지만 나쁜 짓을 하기에는 적당한 상대 같아 보였다.
-오늘도 자기 여자친구랑 논다고 저를 버리고 갔어요.
그것이 오늘 를르슈가 나쁜 짓을 하고 싶은 이유였다. 를르슈의 말에 남자는 그가 말하는 ‘위로’가 어떤 의미였는지 그제야 알아차린 것 같았다. 머리 나쁜 놈은 싫은데…. 를르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반쯤 남았던 술잔을 비웠다. 이걸로 체크 메이트다. 를르슈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를르슈의 빈 술잔이 바닥에 떨어지자마자 남자는 를르슈의 팔을 붙잡았다.
-위로가 필요하면 해줘야죠. 이런 미인의 부탁이라면 더.
를르슈는 그렇게 첫 경험을 했다. 남자는 처음인 를르슈의 몸을 부드럽게 열었고, 나름대로의 쾌락을 주었다. 를르슈에게 이름을 묻거나, 그의 몸에 흔적을 남기는 것 같은 아마추어적인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 생각보다 머리가 나쁜 건 아닌 것 같았다.
를르슈는 싸구려 러브호텔에서 맞이한 자기의 첫 경험이, 꼭 영화 속에서나 볼 법한 남의 이야기 같아서 실감이 안 났다. 이제껏 꿈꿔왔던 자신의 첫 경험은……. 그런 생각을 하니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그래서 를르슈는 욕실로 달아나 몸을 씻었다. 샤워기에서 쏟아지는 물을 맞으면서, 를르슈는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
스자쿠.
* * *
교내 카페의 밀크티는 향이 약해서 싫었다. 하지만 커피를 즐기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주스 같은 것을 먹을 기분도 아니었다. 를르슈는 떠들썩한 녀석들 사이에서 실없는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매주 내는 레포트니 중간고사니 하는 이야기 사이에서 를르슈가 신경을 집중하고 있는 것은 오로지 옆자리의 스자쿠 뿐이었다.
스자쿠가 어제 여자친구와 헤어진 것을 알고 있었다. 그의 학과에서는 물론, 를르슈의 학과에서도 소문이 났기 때문이었다. 그것도 엄청 화려하게 헤어졌기 때문에 그나마 알 수 있었던 것이었다.
학교 앞에서 뺨을 맞았대, 다리도 걷어 차이고.
이름을 몰라서 헤어졌다는데? 정말일까?
그렇지만 사귀는 사이었잖아. 이름을 모를 수가 있어?
쿠루루기 씨는 안 그렇게 보이는데 나쁜 남자네.
그러게, 그러니까 인기가 많은 걸지도.
또 애인이 금방 생기겠지. 여자애들은 왜 저런 남자를 좋아할까?
밀크티를 마시면서, 를르슈는 그 대화들을 떠올렸다.
여자들만 이딴 남자를 좋아하는 게 아니야.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이름도 못 외운 채로 여자랑 섹스만 하고 싶어서 안달난 이딴 남자를 좋아하는 건 여자들 뿐만이 아니라고. 빌어먹을 쿠루루기 스자쿠를 좋아하는 건….
“를르슈, 밀크티 맛있어?”
부드럽게 웃으면서 말하는 스자쿠에게 를르슈는 말했다.
“맛있어 보여?”
“응.”
“한 입 줄까?”
“정말?”
를르슈는 스자쿠에게 잔을 넘겼다. 밀크티를 한 모금 마신 스자쿠는 미묘한 표정을 지었다.
“를르슈가 내린 밀크티가 더 맛있는 거 같은데….”
입에 들어가면 다 맛있다고 하는 주제에, 이런 구석에서 섬세하게 를르슈가 내린 차 맛을 기억하고 있는 점이 열받는다. 웃고 있는 를르슈의 내면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차갑게 식어버리는 것을 모르는 스자쿠는 다시 를르슈에게 잔을 돌려주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떠들고 있는 친구들 사이에서 를르슈와 스자쿠도 섞이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시선이 묘하게 맞물리는 것은 아마도 를르슈의 기분 탓일 것이다. 아마도.
* * *
어렸을 때, 를르슈가 스자쿠에게 사랑을 느끼는 것은 당연했다.
표현이 서툴러도 스자쿠는 를르슈에게 늘 상냥하고 다정했다. 를르슈가 위험에 처하거나, 혹은 힘들어 할 때면 달려와서 도와주고 손을 잡아주었다. 그가 이끄는 곳에는 늘 햇빛이 가득하고, 따뜻하고, 기분이 좋아서, 를르슈는 스자쿠를 사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 스자쿠가 자신에게 품고 있는 우정에 대한 배신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랑과 우정은 양립할 수 없는 것이다. 똑똑한 를르슈는 그것을 아는 순간, 스자쿠에게 연인이 될 수 없는 것도 알았으며, 그렇기에 친구로써 남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라고 믿었다.
를르슈가 초등학교 5학년 때의 일이었다. 같은 반 남자애의 집에서 남자애들끼리 모여서 야한 동영상을 보게 되었다. 다 벗은 여자의 신음소리에 모두가 흥분하며 숨이 거칠어지는 것을 느꼈다. 를르슈는 아무래도 좋았다. 사실은 이런 걸 보고 싶지 않았지만, 스자쿠가 나가지 않아서 같이 있었을 뿐이었다. 흐느끼며 기분이 좋다고 우는 여자의 대사에 스자쿠가 눈을 반짝이며 입맛을 다시는 게 보였다. 화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여자만을 바라보는 스자쿠의 모습에서 를르슈는 절망을 느꼈다.
스자쿠는 언젠가 여자와 저런 걸 할 거야.
내가 아닌, 다른 여자랑.
나를 버리고!
여자의 신음이 높아지다 못해 절정으로 다다를 때, 를르슈는 구역질을 참을 수 없었다. 틀어막은 입에서 흘러넘치는 것들을 억누를 수가 없었다. 를르슈가 토하는 소리에 스자쿠가 놀라서 비명을 질렀고, 동영상은 그대로 멈추었다.
를르슈, 괜찮아?! 스자쿠는 를르슈를 부축하고 화장실로 갔고, 를르슈는 울먹거리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씻고 이거로 갈아입어. 나 치우고 올테니까. 를르슈에게 자기 체육복을 들이민 스자쿠는 화장실 밖으로 나갔다. 를르슈는 아직 빨지 않은 스자쿠의 체육복으로 갈아입으면서, 미묘한 감정을 느꼈다.
흥분하던 중이었음에도, 를르슈가 토하자마자 바로 스자쿠는 를르슈를 선택했다. 그리고 를르슈를 최우선으로 움직였다.
그러니까, 동영상 속의 여자에게 를르슈는 지지 않았다. 아직까지는.
그렇지만 자신에게는 우정이 가장 이상적이고, 친구로 남는 것이 최선이라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도, 를르슈는 자신이 스자쿠를 독점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날 를르슈는 첫 몽정을 했다. 꿈 속의 상대는 당연히 스자쿠였다.
* * *
를르슈는 그 이후로 게이바에 자주 얼굴을 내비쳤고, 첫 경험의 남자와 또 자기도 했지만 다른 남자들과 관계를 갖기도 했다. 그는 섹스에 익숙하진 않았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 서투르진 않았다. 를르슈는 나름의 규칙과 조건을 만들고, 그리고 그 교집합에 맞는 남자가 나타나면 몸을 내어주는 방식을 선택했다. 게이바에서 를르슈는 제법 유명인사가 되었다.
예쁜 얼굴에 섹스를 위해서 남자를 찾으러 다니는 점이 꽤 매력적으로 보인 듯 했다. 를르슈는 몸 뿐인 관계가 이어지는 것을 선호했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를르슈를 독점하고 싶어했다. 저에게 요구되는 집착은 불쾌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을 노골적으로 밀어낼 수는 없었다. 자신도 스자쿠에게 그런 독점욕과 집착을 갖고 있었으니까. 그래서 가끔은 그런 남자들에게 베풀 듯이 섹스를 해주기도 했었다. 하고 나면 기분은 최악이었다. 를르슈는 그런 남자들과 섹스를 해주지만, 정작 스자쿠는 를르슈와의 섹스 같은 건 생각도 하지 않을 것이고… 또 다른 여자들이 있으니까, 친구 따위 찾지 않을 것이다.
섹스는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흥분이 되거나, 마구 떨린다거나, 쾌락으로 미쳐버릴 것 같은 그런 극적인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냥 땀에 젖고, 로션으로 적셔진 뒤를 풀고, 그 뒤로 페니스를 받고, 가슴팍의 유두를 깨물리면서 가는 것이 일례였다. 출발지에서 목적지까지 향하는 과정이었다. 를르슈는 섹스를 하면 할수록 조건반사를 익혀나갔다. 상대방이 무안하지 않게, 적당히 소리 내는 법을 배워나갔다.
사랑하는 사람과 하는 섹스라면 좀 더 흥분이 될까?
스자쿠랑 한다면 더 기분이 좋을까?
를르슈는 그런 생각을 하면서 자신의 입술에 키스를 하려는 남자의 얼굴을 피했다. 남자는 키스가 거절당하자 조금 화가 났는지 허리를 거칠게 놀렸다. 억눌린 신음이 새어나가고, 를르슈는 이 남자가 생각보다 성격이 나쁘다는 걸 알게 되었다. 하지만 스자쿠의 생각은 스위치를 눌린 것처럼 한 번 시작하면 멈출 수가 없었다.
스자쿠는 나보다 더 기분 좋은 섹스를 하고 있을까…….
를르슈는 스자쿠의 너무 많이 바뀌어서 기억나지 않는 여자친구들을 떠올렸다. 가지각색의 모양새를 한 여자친구들은 대체로 예쁘고, 귀엽고, 상냥하고, 다정하며, 때로는 어리광쟁이이기도 하면서, 어쩔 때는 심지가 곧은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겠지. 그런 여자들을 스자쿠는 일일이 사랑하는 걸까. 매번, 여자친구가 바뀔 때마다 진심으로 사랑하는 걸까. 그런건 솔직히 불가능하잖아.
스자쿠를 사랑하는 를르슈로써는 이해불가능인 지점이 몇 군데 있었다. 아, 그 생각을 더 이어서 하기엔 지금의 남자가 화가 난 것 같았다. 를르슈의 머리를 짓누르고 허리를 퍽퍽 쳐올리기 시작했다. 성격 나쁜 놈에게 걸렸군…. 를르슈는 여자 같이 높은 신음을 내며 집중하는 척을 했다. 그제서야 남자의 거친 움직임이 좀 누그러졌다. 짜증나, 빨리 끝났으면. 를르슈는 시트를 부여잡고서 미간을 찡그렸다.
* * *
집으로 돌아온 를르슈는 생각 이상으로 쓸데 없이 난폭했던 섹스 때문에 몸이 나른했다. 조용한 집안이 싫어서 텔레비전을 켜두고서 소파 위로 엎어졌다. 씻고 나왔지만 러브호텔의 싸구려 바디워시로 씻은 것이 마음에 들 리가 없었다. 다시 한 번 씻고 싶었지만, 손 하나 까닥하기가 싫었다.
텔레비전에서는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번갈아 들렸다. 낯간지러운 대사들이 오간다. 로맨스 영화 특유의 감상적인 대사였다. 여자와 남자는 곧 다가올 이별 앞에서 서로에게 애써 웃고 있었다. 진부하다. 를르슈는 그걸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 어디서 많이 본 장면이 이어졌다. 해바라기 밭이다. 이건 스자쿠랑 같이 봤던 영화다. 그것도 한참이나 어렸을 때. 중학생 때.
중학생 때, 스자쿠는 갑자기 어른이 되었다. 교복을 입고, 말투가 바뀌면서, 그리고 를르슈에게서 한 걸음씩 멀어지고 있었다. 를르슈는 자기 마음이 들킨 것 같아서 무서웠다. 하지만 스자쿠는 상냥하게 멀어졌다. 아무런 일도 없었고, 를르슈의 마음은 못 본 것처럼. 그는 를르슈의 손을 잡는 일 대신에 다른 것들을 많이 했다. 그래도 친구로 남을 수 있을 거야. 좀 더 철저하게 숨기고, 티 내지 않는다면. 를르슈가 그런 다짐을 했을 때였다.
2학년이 되었을 무렵, 스자쿠와 를르슈는 키가 부쩍 컸다. 갓 교복을 입었을 때의 어려보였던 얼굴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스자쿠도, 를르슈도, 남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싫을 정도로 확실하게 알아가게 되었다.
스자쿠와 를르슈의 거리는 이제 예전처럼 손을 잡기엔 너무 멀어져 있었다. 를르슈는 그 거리가 이제 섭섭하거나 속상하지 않았다. 친구로 남았으면 된 거야. 를르슈는 자기 첫사랑에 그렇게 못을 박을 생각이었다.
중학교 2학년의 스자쿠는 고백을 많이 받았지만, 누구와도 사귀지 않았다. 를르슈는 그것에 은근한 안도감을 느끼고 있었다. 아직까지는 친구랑 노는 게 더 재미있을 때이지. 그럼 내가 우선이라는 거잖아. 그래, 아직까지는, 그렇지만, 기쁘다. 한정적인 시간이지만, 아직까지는 스자쿠의 우선순위에 내가 있어. 를르슈는 안도하다 못해 약간의 우월감도 느끼고 있었다.
스자쿠가 동정을 버렸다는 것을 알기 전까지는 말이다. 한정적인 시간은 빠르게 끝이 났다.
밤늦게 텔레비전으로 무슨 영화를 보고 있을 때였다. 여자와 남자는 소꿉친구였고, 술을 먹고 단숨에 선을 넘어버렸다. 그 선을 넘는 장면이 텔레비전에서 적나라하게 나오고 있었다. 심야에 틀어주는 영화였으니, 아이들이 볼 리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 일이 일어난 것이다.
스자쿠는 를르슈의 눈치를 보면서 채널을 바꾸려고 했다.
“어차피 빨리 끝날걸. 그냥 보자.”
“그치만 를르슈는 이런 거 싫어하잖아. 옛날에도 보다가 토까지 했으면서.”
“옛날이잖아. 이제 중학생이거든.”
그 말에 스자쿠는 리모컨을 내려두었다. 화면에 집중하고 있는 스자쿠의 눈은, 예전에 보았던 그 흥분에 젖은 눈이 아니었다. 무엇도 못 느끼겠다는 듯이, 오히려 지루한 기색이었다.
“를르슈.”
“응.”
“섹스해봤어?”
“있겠냐. 아직 중학생인데.”
“…나, 섹스했어. 중학생인데.”
스자쿠의 말에 를르슈는 놀라서 그를 쳐다보았다. 아앙, 하고 우는 여자의 신음과 사정을 하는 듯한 남자의 신음이 맞물렸다. 스자쿠는 그것에도 반응하지 않고서, 화면에 시선을 꽂은 채로 말했다.
“나쁘지 않더라.”
를르슈는 그 말에 기시감을 느꼈다. 또 다시 구역질이 올라왔지만 꾹 참았다. 이번엔 실수하지 않는다.
친구로서의 를르슈가 할 일은, 그러니까, 스자쿠를 성적으로 좋아하지 않는 척을 하는 를르슈가 해야할 일은, 그러니까, 그러니까. 를르슈의 똑똑한 머리는 잘 돌아가지 않았다.
거짓말 하지 마, 라고 말을 해야 하나? 하지만 스자쿠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를르슈가 입술을 달싹거리면서 할 말을 고르고 있을 때, 스자쿠는 화면을 돌려버렸다. 우습지도 않은 심야의 개그프로 소리가 두 사람 사이를 채웠다. 를르슈는 거의 울고 싶을 지경이었다. 그리고 얼마 못가서 스자쿠가 한숨을 내쉬면서 다시 채널을 돌렸다. 그 영화가 나오고 있던 채널이었다. 영화 속의 남녀는 이별을 앞두고서 서로에게 애써 웃고 있었다. 진부한 대사들이 오갔고, 해바라기 밭이 나왔다.
그랬었지, 참.
중학교 2학년의 스자쿠와 를르슈는 이제 대학교 1학년이 되었다.
스자쿠는 여자친구의 이름을 못 외워서, 학교 앞 대로변에서 보란듯이 뺨을 맞고 걷어차이면서 이별을 통보 받고, 를르슈는 섹스를 하러 게이바에 드나든다. 기분 나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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