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ou cannot see this page without javascript.

Very2ndPlace
< >

극악무도한 스토커

DOZI 2022.04.22 03:05 read.298 /

느긋하게 잘 수 있는 주말이다. 모처럼 늦잠을 자기 위해 햇빛도 들지 않게 암막 커텐을 쳐놓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자쿠는 눈이 부셔서 일어났다. 스자쿠가 알기로는 이 집에는 일어날 시간이 되었다고 자동으로 커텐이 걷히는 최첨단 기술 같은 것은 없었다. 그렇다고 스자쿠가 일어나서 커텐을 걷은 것도 아니었다. 잠에서 덜 깬 머리로, 스자쿠는 햇빛이 쨍쨍하게 들이치는 창문을 보며 중얼거렸다.

 

“이제 여름이네….”

“아직까지는 봄이지.”

 

분명 혼자라고 생각했는데, 뒤에서 한심하다는 듯이 대꾸해주는 목소리가 있다. 스자쿠는 오늘의 늦잠을 방해한 요인을 알아냈다.

어디서 난 건 지 모른 분홍색의 에이프런을 멋들어지게 차려입은 를르슈는 히죽 웃고 있었다. 스자쿠는 오늘로 몇 번째 현관문 비밀번호가 털렸는지 세어보았다. 벌써 열 손가락을 넘어가고 있었다. 비밀번호를 바꿀 때마다 의미가 있을까 싶었지만 이렇게까지 의미가 없을 필요는 없잖아. 스자쿠는 반쯤 일으킨 몸을 다시 침대에 벌러덩 내던졌다.

 

“일어나, 스자쿠. 아침이 다 식겠어.”

“…나 아침 먹고 싶다고 한 적 한 번도 없는데.”

“주말이라고 늘어지는 건 좋지 않아. 애들이 보고 배워. ”

“나 결혼했던가….”

 

이불을 뒤집어 쓰고서 중얼거리는 스자쿠를 무시한 채, 를르슈는 이불을 걷으며 다시 한 번 말했다. 아침 식는다고!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덩달아 소리를 높일까 고민했다.

아니, 내 집에서, 내가 늦잠을 자겠다는데, 대체 왜 를르슈가 아침이 식겠다는 이유로 나를 내 침대에서 벗어나게 만들어야해? 를르슈가 내 와이프야? 아니면 내 남편이야? 아니면 부모님이라도 돼? 진짜 매번 멋대로 집에 처들어와서 밥하고 깨우는 거 가지고 싸우는 거도 한두 번이지…!

마지막 문장에 스자쿠는 입을 다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런 문제로 를르슈와 싸워봤자 득이 없었다. 한두 번 싸워본 것도 아니고, 스자쿠는 계속되는 패배 속에서 나름대로의 교훈을 얻고 있었다. 이 싸움은 장기전이다. 길게 봐야하는 것이다. 아침 초장부터 이렇게 진을 빼면 안된다. 를르슈의 기습에 쉽게 당해선 안되는 것이다.

스자쿠는 더 이상의 아침 투정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를르슈가 정성스럽게 차린 밥상 앞에 앉았다. 정갈한 일식은 완벽한 스자쿠의 취향이었다. 브리타니아인이면서 이런 건 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일본인인 스자쿠도 감히 도전할 수 없는 완벽한 경지에 이른 요리 솜씨였다. 아침 댓바람부터 울컥 치솟았던 화가 좀 가라앉았다. 얌전히 밥을 먹기 시작하는 스자쿠의 모습에 를르슈도 자기 몫의 식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까.”

 

를르슈의 입이 열렸다. 스자쿠는 긴장했다.

 

“이번주 금요일에 나나리 유치원 학예회거든. 올거지?”

“내가? 왜?”

“왜냐니, 유치원 학예회가 쉽게 열리는 줄 알아? 나나리가 얼마나 열심히 연습하고 있는데. 그걸 볼 수 있는건 엄청난 영광인 거야.”

“아니, 영광이긴 한데….”

“그럼 오는 거지?”

“그렇게 되면 회사는?”

“연차 써.”

“그래도 돼?”

“그러라고 있는 거 아니야?”

 

를르슈는 한 마디도 지지 않았다. 스자쿠는 ‘그렇군, 연차를 써야겠다. 휴대폰 카메라로 괜찮으려나… 리발한테 비디오 카메라를 빌려올까? 아, 그러면 삼각대 같은 게 필요해서 좀 번거로우려나.’ 같은 생각을 하다가 혀를 깨물었다. 아니, 뭘 자연스럽게 이런 생각을 해.

 

“아니, 아니. 힘들지. 애초에 나나리 학예회 때문에 회사를 쉰다는 건 말도 안 되고.”

“왜?”

“나나리가 내 딸도 아니고.”

“당연하지, 나나리는 내 여동생이니까.”

“그, 그렇지. 더 정확히는 내 가족도 아니잖아!”

“…너무하군.”

 

를르슈는 들고 있던 밥그릇을 내려놓으며 말했다. 추욱 처진 입꼬리며 침울해진 인상 같은 것이 마음이 쓰였지만, 스자쿠는 애써 모른척했다. 저 얼굴에 속아넘어가서 휴대폰 번호, 라인 아이디, 생년월일, 가족사항, 학력부터 경력까지 모조리 다 불었던 과거가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스자쿠한테 나와 나나리는 그 정도였던 거구나.”

 

그런 얼굴에 넘어가면 안된다니까! 스자쿠1이 외쳤다. 하지만 그 옆에 있는 스자쿠2가 말했다. 그렇지만, 를르슈가 저렇게 괴로운 얼굴로 말하고 있는 거 보면 내가 엄청나게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게 아닐까? 스자쿠1은 펄펄 뛰면서 외쳤다. 나쁜 짓을 당하고 있는 건 나야! 불쌍하게 여겨져야하는 건 나라니까! 스자쿠2가 그 말에 흔들리려고 할 때였다.

 

“스자쿠를 곤란하게 만들 생각은 없었어. 미안. 학예회는 오지 않아도….”

 

스자쿠1이 외쳤다. 아, 그깟 학예회 가주면 될 거 아니야! 비디오 카메라랑 삼각대, 나나리한테 줄 꽃다발 정도만 챙기면 되는 거겠지?! 요새 아빠들(?)이 어떻게 입고 가는지도 체크해서 TPO도 맞추면 되는 거 아니냐고! 스자쿠2가 화색이 도는 얼굴로 스자쿠1의 손을 맞잡았다. 그래, 그거야. 그거면 모두가 행복해질 수 있어!

그리고 스자쿠(본체)가 중얼거렸다. ‘나는 일상의 행복을 바치면서… 모두의 행복을 위해서.’

 

“갈게. 언제라고?”

“금요일 오후 7시다.”

 

앞에서 혼자 죽어가는 것처럼 애처롭게 말하던 모습은 어디로가고, 를르슈는 기다렸다는 듯이 시간, 장소, 기타사항을 전달하고 있었다. 스자쿠는 머릿속으로 열심히 입력을 하면서 회사에서 나나리의 유치원까지 걸리는 시간을 계산했다. 빠듯하지만 어떻게든 맞출 수 있을 것 같고. 를르슈는 스자쿠의 모습에 만족스러운듯이 은은하게 미소를 지었다.

 

“나나리한테도 말해둘게.”

“근데 내가 가는 게 나나리한테도 좋은 거야? 너네 아버지가 가는 게 훨씬 낫지 않아?”

“미쳤어? 그런 남자를 어떻게 나나리의 아버지라고 소개해?”

 

아니 그럼 나는 나나리의 아버지도 아닌데…. 스자쿠는 뭐라고 더 덧붙이려다가 를르슈의 하얗게 질린 낯짝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속이 안 좋아. 그 남자 이야기를 하니까. 중얼거리는 를르슈의 말에 스자쿠는 이상한데서 비위가 뒤틀린다고 생각했다.

 

“아무튼, 금요일날 입을 옷들 미리 꺼내둘 테니까 그거에 맞춰서 입고 와.”

“…거기까지 정해뒀구나.”

“당연하지. 무슨 일이 있어도 완벽한 날이 되어야 하니까.”

 

그 완벽한 날에 자신의 희생이 하나부터 열까지 갈려들어가는 것을 생각하면, 스자쿠는 헛웃음이 나왔다. 를르슈는 쿨럭대며 웃는 스자쿠의 모습에 크게 신경쓰지 않았다.

네가 가지고 있는 옷들 중에서…— 를르슈는 금요일 학예회 준비로 벌써부터 들뜨기 시작했다. 스자쿠는 자기 옷장에 그런 옷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자세하게 꿰고 있는 를르슈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자신이 좀 안쓰럽게 여겨지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짓도 벌써 반년째. 

흘려들어 스루하는 스킬이 나날이 늘고 있는 스자쿠와 변화무쌍하게 스자쿠에게 어프로치하는 를르슈의 간격은 좁혀지지 않은 채로, 반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다.

 

 

* 대충 이어지는 이야기

- 를르슈(20)는 스자쿠(30)의 스토커

- 하지만 어쩐지 주변에서는 두 사람이 사귄다고 생각하고 적극적으로 관계를 응원한다

 

 

같은 내용임… 

시험기간이라 진짜 아무거나 막 갈김